" 안녕하세요, 어머님. 세훈아 안녕! "
" … …. "
" 으이구, 주말 동안 잘 지냈어요? 편식 안 하고? "
통학버스라는 큰 개념 안에서 가지고 있는 확신은 깨질 리가 없다. 도로 위에 절반은 차지하는 버스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유치원 내 통학버스는 원장의 자랑 아닌 자랑이었다. 그나마 다른게 있다면 승차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4ㅡ7살이라는 점. 조수석이라 치고 맨 앞에 설치해준 제자리가 이리도 부담스러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금방이라도 급정거를 하는 순간 앞에 위치한 창문으로 튕겨 나갈 거 같은 느낌을 조성하는 창문(4D) 과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보이는 버스 운전사 아저씨의 눈초리 그리고 뒤에 위치하는 유치원 생들 간의 담소라고 하기엔 낯선, 그렇다고 이야기라고 하기엔 부족한. 그 어정쩡한 사이에 내가 위치해 있다는 게 웃겼다. 다 큰 처자가 핑키핑키한 이 버스 안에 토끼 앞치마를 매고 앉아있다는 자체가 웃긴 요소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원장, 시발. ㅂㄷㅂㄷ. 캥거루 마냥 앞치마에 대롱대롱 매달린 양쪽 주머니 안으로 주먹을 쑤셔 넣었다. 요즘 아이들은 핑크색만 주구장창 좋아한다는 소리를 어디서, 어떻게,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하루아침에 봉고차를 갈아 치운 원장의 능력에 저절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시발, 앞치마라도 바꿔주던가.
백현이, 종대 그리고 세훈이…… 그다음은.
또다시 기사 아저씨의 손길에 의해 자동문이 열렸다. 오오. 뒤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환호 섞인 감탄사였다. 하긴, 저럴 만도 했다. 매일 손으로 힘겹게 여는 봉고차 문과 대조되게 상쾌한 효과음을 내며 조심스럽게 열리는 자동문이 자기들한테는 어찌나 신세계로 다가올지. 상상만 했을 뿐인데 몸서리가 저절로 친다는 건 아마 기분탓이 었을터였다. 왜 아이를 가진 엄마, 아빠들이 덕통사고로 숨을 거두는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겠다. 저도 모르게 심장을 부여잡느라 목에 매달린 명찰 카드가 신명 차게 움직이는 걸 느꼈다. 허억, 허억. 시발, 이렇게 숨을 거둘 수 없다. 일명, 내 자리 (선생님 좌석이라 읽고 4D 체험관이라 쓴다.) 뒤쪽으로 자잘하게 나열돼있는 좌석에 위치한 아이들에게 두고 있던 포커스를 곧장 앞으로 옮겼다. 아까 잠시 훑음으로써 짐작 가는 건 백현이는 보나 마나 자고 있겠고, 종대는 문에 의해 놀라기도 잠시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세훈이가 왔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겠지. 뭘 하든 간에 예상가는 아침 시나리오는 내가 이 유치원에 종사한 뒤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다.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달려있는 게 폼이 아니라는 듯, 번쩍번쩍 제법 새것 티가 나는 은색 봉대를 지지대 삼아 집고 멀대같이 서있던 무거운 몸뚱어리를 숙였다.
" ……세훈이 가요? "
" 피망도 꼬박꼬박 먹는다니까요. "
" … …. "
" 정말로,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선생님 보고 싶다고. 유치원 가고싶다고, 어찌나 조르던지. "
그 조용한 세훈이 가요?
유치원생 주제에 철벽이 파워라는 세훈이 가요?
잘 지내셨냐는 전형적인 안부 인사를 뒤로 어머님은 살갑게 물음을 받아치셨다. 품에는 세훈이를 놓칠세라 꼬옥 안으며, 오른쪽 손으로 머리칼을 손수 정리해주는 모습도 잠시 제 품에 안기려 손을 뻗는 세훈이를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우리 아들, 이제는 엄마보다 선생님이 더 좋은 거야? 곧바로 제 앞치마 끈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세게 그러 쥐는 걸 느끼면 어머님은 아들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며 호탕한 웃음을 뱉으셨다.
베이비파우더 향 그리고 꽤나 낯선 미묘함이 섞인 향. 뭐랄까, 어린아이긴 한데 어린아이가 아닌 느낌. 바람이 살랑이며 부드러운 머리칼이 제 볼에 와 닿았다는 걸 알았을 때의 세훈이는 제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며 숨을 소곤소곤 내쉬고 있었다. 지금처럼 세훈이를 안아들 때나 세훈이를 가까이할 때 풍기는 내음이 다른 아이들과는 너무나도 미묘해서 그 특유의 내음이 특이해서. 어린아이라면 다 풍기는 기본적인 베이비 향이 왜 세훈이만 다른 건지. ……풍기는 포스가 달라서 그런가.
처음 보는 사람은 무조건 낯. 본심에 가려진 낯섬에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는 울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낯의 벽들은 하나씩 무너져가기 시작해 마음의 문을 여는. 어리고 여린. 아이들만의 기본적인 심리였다. 제가 전담하고 있는 딸기반을 포함해서 유치원 내에 어우러지는 모든 반을 조사해도 이러한 결과가 당연하게 나온다 다짐하는 건, 제가 유치원에 종사한지 일 년 동안 아이들에 관해 관찰했던 모든 것 하나하나가 헛된 수고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것과 비례했다.
집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의 첫날. 유치원에서의 반나절. 사회생활의, 첫 걸음질.
딸기 반에서 번호가 1번이라는 종대도, 종대와 트리오로 합작하며 매일 같이 교실을 한순간에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사용하는 백현이도. 또 다른 아이들도. 빠짐없이 다 그랬다. 가기 싫다며, 떨어지기 싫다고. 가지 말라고. 엄마 품에서 강제로 건너와 낯선 사람 품에 안겼을 때 그때의 심정은 어찌나 무섭고, 두려웠을지 누구나 잘 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겪어왔을 관문을 어린아이들은 이제야 첫걸음을 내딨었음을. 아마,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발로 첫 사회생활의 문턱을 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이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붉어질 거 같고. 그렇다고 시선을 자꾸만 두기에 미련에 갇혀 회사는커녕 유치원을 빠져나가지도 못할 거 같은 어머님들의 심정도. 훗날 유치원 선생이란 게 그 심리 하나 모를까.
표정이 없다. 말이 없다. 눈빛에 생기가 있지 않다.
세훈이와 맞닥트린 시점에서 생각해낸 문장들이었을 터였다. 역시나. 예상대로. 내 촉대로. 문장들은 귀신같이 턱턱 맞아 들었다. 세훈이는 뒤늦게 저의 딸기반으로 편입한다는 원장의 말과 이어지는 동료 선배들의 고생 좀 하라는 말에는 심기 어린 걱정들이 담겨있었다는 걸 왜 몰랐을까, 하고 진정 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원장들과 동료들의 말은 이러했다. 원래 세훈이는 강남 지역에 있는 모든 유치원을 다녀봤을 만큼이다 명성이 자자하다고. 처음엔 좋은 뜻인 줄 알았건만, 그 이야기를 깊숙이 파고들고 파고들 때면 꽤나 많이 옮긴 것에 불구하고 절반은 강제 퇴출이었다는 소리에 얼굴에 벙찜이 드리워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이가 정말로 적응을 못한다고. 활동에 실천적인 정신을 보이지 않는다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린아이를 구설수에 올리는 것도 모자라 이런 아이는 못 받는다며, 미루고 미루다 결국은 우리 유치원까지 그것도 제 반까지 온 상황이라 이거다.
처음엔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수만 가지 의문이 떠들어가는 시점에 처음으로 맞닥뜨린 의문은, 이 모든 게 세훈이의 잘못인가 싶었다. 왜? 아이가 뭘 잘못했다고?
" 요즘은 세훈이가 집에 와서 먼저 말도 걸고 그래요. "
" … …. "
" 뭐, 그림을 그렸다. 놀이터에서 놀았다, 모래로 성을 만들었다. "
" … …. "
" ……진짜, 진짜 울컥하더라고요. "
세훈이는 말이 없었다. 병치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후천적 혹은 선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그랬다. 다만, 성격 탓에 워낙 낯을 심하게 가린다고. 세훈이의 편입 절차를 치르기 위해 제 유치원에 들렸던 어머님께서 조심스럽게 하신 말씀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혹시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어머님의 불안감. 정말로 유치원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는지도 모를 불안감 때문에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새웠을지, 또 얼마나 많은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지. 수만 가지 걱정에 사로잡혀 떨고 있는 어머님의 뒤로 옷깃을 놓칠세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러쥐고 있는 작디작은 세훈이까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잘 부탁드린다는 안부를 뒤로 어머님은 허리를 숙이면서까지 감사함을 표했다. 항상 피부에 자리 잡고 있던 다크서클이 이제는 매끈한 피부에 의해 사라져버린 사실에 한번, 어머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메게들 속에 숨긴 간접적인 말들에 한번. 엄마라는 타이틀 안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뒤늦게야 깨달아 버렸을 때 어머님께서는 이내 얼굴에 미소를 드리우셨다. 감사합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머님과 같은,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선, 어머님을 따라 기분 좋은 조소를 입꼬리에 매다는 수밖에 없었다.
" 세훈아. "
" … …. "
이제는, 첫 만남과 사뭇 다른 미묘함이 저를 사로잡았음을.
" 세훈이는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 "
" … …. "
아이와 엄마가 어깨에 짊어지고 가던 눈물은 더 이상 사라져 보였음을.
" 선생님. "
" 응? "
" 빨리 들어가여, 추워여. "
아이의 얼굴엔 만개 꽃이 피었음을.
이 시대의 순애보
드디어, 고지가 눈앞이다. 시발.
옆반 이씽이가 선물이라고 대뜸 내밀었던 딸기가 대롱대롱 달린 머리끈이 어디 갔나 했더니. 앞치마에, 그것도 캥거루를 연상케 하는 제 주머니 속에 고이 처박혀있었던 걸 알게 되자마자 곧바로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까먹고 있었나 보다. 어쩐지 저를 바라보는 이씽이의 눈빛에 왠지 모를 기대감이 담겨있더라니……. 제 손바닥 안에 올려진 핑크 핑크 한 머리끈을 어루만졌다. 새것 마냥, 창문 틈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의해 빤짝 빤짝거리는 게 죄책감을 가지는데 한수 덧붙여보였다. 시발, 새 거 니까 빤짝빤짝하겠지. 팽팽하게 늘어나는 고무 재질의 끈을 손톱으로 작게 튕겨냈다.
핑크색은 진짜로 제 취향이 아니었다. 질색할 정도로 싫어했다. 모던함을 추구하는 나로선, 내 세계에 핑크라는 여성스러움이 침입한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고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핑크로 잔뜩 치장한다는 4살 때도 검은색 아니면 그나마 밝은 흰색 컬러를 주구장창 입혔을까. 집안 어르신부터 부모님, 그리고 혈육들까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신념 (?) 은 지금까지 쭈욱 이어지고 있었다만…… 그걸, 우리 씽이가 파괴하다니. 착한 놈. 새로운 트라이를 하게 도와주는 착한 놈. 금방이라도 뒷좌석에 안전벨트를 맨 체 창문만 바라보고 있을 씽이에게 달려가 뽀뽀라도 퍼부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씽이가 준거니까 어쩔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이걸 쓰레기통에 버려? 가위로 갈기갈기 찢어? 씽이께서 친히 쓰시라는데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빌빌 기어야 하지도 못할망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시바. 핑계도 뭐 이딴 핑계가 있나 싶다. 퍽이나 웃겼다. 이성보다 본성이 먼저라는데. 이성 따위가 우리 씽이를 꽉꽉 누를 순 없다 이거다.
" 30분에 도착 예정이라 들었는데. "
" … …. "
" 원래 이 유치원은 사람을 십분씩이나 기다리게 합니까? "
드디어 막바지라는 듯 경쾌한 음과 함께 자동문이 또 한 번 열리며 퀭하디 퀭한 정신을 일깨웠다. 역시나 따라오는 건 아이들의 감탄사였고.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종대와 백현이 사이에 세훈이가 끼여 같이 환호성을 내뱉는다는 정도. 우와, 세후나 저거 신기하지! 라며 들뜬 아이들의 담소 거리에 왠지 모를 미소가 띠어지는 건 기분 탓일 거다. 동네를 떠나가라 울려되는 엔진 소리는 버스가 정차 함으로 인해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할 때 아이들도 거짓말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눈대중으로 대충 흘겨보았음을, 세훈이와 손을 잡고 세상 떠나가라 노래를 부르던 종대도. 어느새 잠에 깼는지 시원한 창문에 붙어 눈만 껌벅거리던 백현이도. 저를 똘망한 눈으로 좇던 세훈이와 이씽이도. 버스 좌석에 하나둘씩 자리 잡고 있던 모든 아이들도. 순식간에 고요함을 머금은듯하게 버스는 고요함에 가라앉았다. 낯선 사람과, 낯선 아이. 새로 들어온 친구라 자각하기 전까지는 아마 낯선 이로 판단을 내렸을 아이들의 포커스는 방금 전 읊조린 낯선 이에게 옮겨갔음을 알아차렸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두 손 두 발 다 들어 눌러댄 자동문이 비켜간 자리 틈으로 몸을 잽싸게 빠져나왔다.
" 도민석. "
" … …. "
" 선생님한테 인사 안 하고 뭐 해. "
꽤나 추웠다. 면 소재의 얇은 니트만 몸을 감싸고 있는 게. 니트 소재의 질감의 옷의 일부 단점이라 생각하는 극세사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신기하다고 느낄 와중에 선선한 바람 따위로 부들부들 떠는 내가 한심해 보일 수가 없다. 자칫 방심했다간, 금방이라도 콧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살갗을 파고들 정도로 날카로운 바람은 아닌데 왜 이리도 예민하게 반응하냐 함은 어느정도 날이 서있는 바람은 더욱더 저에게 치대기를 반복했을 터에,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으면 앙상하게 변해버릴 색색들의 나무들. 결국은 짧은 가을이 물들어가고 그 틈에 겨울이 덧붙여 가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훗날, 갑과 을에 뒤덮여버린 어정쩡한 관계에서 이런 식으로 대면하리라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뭐, 상상할 이유가 딱히 없지만 어색하긴 그지없는 상황이었더랬다. 솔직히 대뜸 없긴 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서로 경찰서를 간다니, 심부름꾼이 되라니, 변호사를 부른다더니, 죄다 이상한 말을 끌어 놓아 운운하는 꼴이 자칫하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앞에서 읊었던 타이틀 안에 얽혀진 관계는 그대로되, 그 밑으로 빠지는 여러 갈래들이 순식간에 바뀐 상황이라 이거였다. 깔끔하게 올린 머리는 물에 의해 축축이 젖어 있고, 지금까지 만나왔던 수에 비례하게 매일 같이 입고 있던 슈트는 어느새 편해 보이는 홈웨어로. 단순한 것마저도 새롭게 대면하는 상태에서 나는 입을 벙어리마냥 꾹 다 무는 수밖에 없었다.
아아, 맞닿은 시선이 이렇게나 따가울 수가 없다. 우러나온 탄식이 저 깊은 속부터 턱 끝에 머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금방이라도, 땅이 꺼질 만큼이나 한숨을 뱉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직까지는 선선한 바람이라 자각했건만, 칼바람인 마냥 낯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그와 비례하게 날이 선 말투는 저를 위축되게 만드는 건 그 전과 동일했다. 얼굴에 묻어나는 피곤함 하며, 풍기는 모던함 하며, 메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는 버릇까지. 그나마 마음에 든다는 눈마저도 다크서클에 다 덮혀진 꼴이, 정말로 매섭긴 했다. 오금이 스스로 떨릴 정도만큼이나.
제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건네는 소리가 저거였다. 만나는 부모들마다 하는 안부 인사도 아닌. 안녕하세요, 라는 기본 인사도 아닌. 저 말을 던진 이후로 밝게 인사를 건네려 했던 제 입이 다물어진 이유 중 하나였다. 울화 섞인 어이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꼭 도경수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집어 해석해본 바로는 늦은 걸 다 떠나서 그냥 내가 아니꼬운 게 분명했다. 고작 십분 늦었다고 이렇게까지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행동도 도경수가 처음일거고, 고나리질까지 덧붙이는 것도 도경수가 처음일 거다. 안면 치고 만난 사람들 중에 이렇게까지 파탄자 성격을 시전하는 도경수가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더랬다. 시발, 내가 늦고 싶어서 늦었냐는 대답을 곧바로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했다. 사람이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던데, 도경수는 언제까지 내 한계의 도달점을 찍을 모양인지 당최 파악이 가지 않았다. 아니, 파악이 가면 그게 병신인거다. 억울함을 호소한 욕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는 폼?
도경수의 눈빛 속에 담겨있는 물음이었다. 눈이 있으면 시계를 당장이라도 주시하라는. 입이 있으면 지금이 몇 신지 읊어보라는. 의식하기만 해도 쿡쿡 찌르길 반복하는 제 심장을 자칫해, 손으로 움켜질뻔한 걸 간신히 통제해냈다. 제 손목에 차있는 가죽 시계가 잠시 흔들림을 느꼈다. 솔직히 방금 느낀 도경수의 물음은 제 정곡을 족집게 마냥, 아주 제대로 집었더랬다. 큰맘 먹고 지른 시계라 자랑 좀 하려고 차고 온 게 그리 죄인가 싶었다. 나보다 수천 배, 수억 배 더 비싼 시계는 주구장창 끼고 다닐 사람이 훗날, 여자 시계 하나에 질투가 날 사람도 아니고. 고작 폼으로 달려있는 시계가 그리도 아니꼬울까. 그래! 도경수의 마음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만큼이나 넓은 아량을 가진 내가, 아이들의 심리도 딱딱 맞추는 내가, 고작 도경수 생각을 하나 모르는가 본데. 시발, 1도 모릅니다. 저는 박수하가 아니었네요. 썅. 공과 사는 확실하게 하며, 원칙은 그대로 지킨다는 유명하디 유명한 도경수의 신념을 평범한 월급쟁이가 왜 알아서 이해를 해야 하나 싶었지만, 솔직히 그 신념을 고작 십분 늦었다고 억지로 끼워 넣는다는 자체가 오히려 더 이상한 부분이라 이거다.
" ……어, 미, 민석아. 선생님은 처음 보지? "
" … …. "
" 그, 앞으로 민석이 보살펴 주고. 또, "
" 알아요. 아빠가 말해줬어요. "
그래, 아빠가 뭘 말해줬니.
따가리라 말해줬니. 선생이라 말해줬니. 하하.
또다시 말투에 칼을 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기분이 상당하게 나쁜 모습을 알아차리기도 잠시 도경수의 포커스는 저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는 걸 느꼈다. 빨리 인사를 안 하고 뭐 하냐는 물음에 민석이는 곧장 자신의 가방을 끈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반쯤 숙였고 그에 따라 나도 얼떨결에 몸을 반쯤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고개만 까딱하면 됐을 법이긴 한데 노려보는 시선이 워낙 무서워야지. 그냥 허리를 90도로 숙일 수밖에 없었다. 민석이한테도, 도경수한테도 건네는 인사이긴 했으니까. 아직까지 덜 마른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행동도 무서웠고, 한숨을 푹푹 내쉬는 모습도 무섭고, 괜히 일찍 나왔다며 혼잣말을 주구장창 씨불이는 것도 무섭고. 시발. 오금이 지리다 못해 오줌을 지릴 정도다. 아주 무서움의 정석을 달리는 새끼…….
아, 미안해요. 갑작스런 도경수의 목소리였다.
" 아침엔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서. "
" … …. "
" 눈치 주자고 한 말은 아니었어요. "
" ……죄송합니다. "
" 죄송할 거 까진 아니고. "
" … …. "
귀담아듣지 말았으면 해서.
낮은 중저음이 쌀쌀한 배경과 어우러지는 게 꽤나 조화롭다 생각했다. 도경수를 맞닥뜨리면 무조건하는 게 사과인 것 같기도 했다. 워낙 밥 먹듯이 반복됐던 상황이었던지라 그렇게 낯설지 많은 않았다. 사과를 조공으로 또 바쳐야 하나. 또다시 가라앉는 상황을 뒤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지는 말에 동감한다는 내적의 표시였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간, 끝내 해수면 속으로 가라앉을 분위기인 걸 나도 잘 알기에, 도경수도 그리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서. 맞받아치는 듯 저를 따라 고개를 작게 끄덕임을 알아차렸다. 선생님, 하고 저에게로 손을 뻗는 민석이를 곧장 품으로 안아들었다. 허이고. 부전자전으로 풍기는 내음도 똑같다.
" 민석이, 잘 부탁해요."
" … …. "
" 선생님. "
또다시 아침이 밝아오고, 난 똑같은 삶을 반복한다.
우렁차게 울리는 엔진 소리에 의해 떨리는 버스 안의 내부의 진동도 자각하지 못한 체 창문으로 머리를 기댔다. 날이면 날마다 기운이 쏙쏙 빠져나가는 걸 느낄 때마다 영혼도 포함되는 것 같았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대조되어 이럴 때일수록 열을 올려야 한다며 매일 같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원장새끼 때문에 온 전신에 근육통이 오지는건 기본이오, 또다시 싸이는 준비물에, 과제물에. 훗날, 대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게 체험해주는 원장에 눈물겨운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오죽했으면 조용하다던 이 선생도 하루 날이면 날마다 입에 욕을 붙이고 살까 하고 문뜩 생각이 났다. 이래서 눈치가 필요한 거였다. 눈치는 곧 사회생활이고, 유치원 생활이었다. 오버된 리액션과 거지 같은 목소리로 구연동화를 읊조리는 등, 이런 게 내 직업인 걸 어찌하리까. 부정하려야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입에 꼬아 물던 머리끈을 손아귀에 끼워 넣은 체 머리를 질끈 올려 묶었다. 오늘따라 기분이 들뜨셨는지 기사님은 엑셀을 밟으며 버스를 모시는 걸 알았을 때 덜렁 거리던 딸기 모형들이 제 머리 부근에 닿는 걸 느꼈을 터였다. 어느새 꽉 채워진 내부는 아이들의 소리로 북적거렸고 문뜩 뒤를 돌아보면, 여전히 자고 있는 백현이와 신나게 떠드는 종대. 그 사이에 껴있는 세훈이 그리고 씽이까지. 그날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내부였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미소를 입에 머금은 체 반쯤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켰다.
" 안녕하셨어요. "
" ……아, 네. "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인사를 평일이 올 때마다 해야 한다는 사실이, 존칭까지 써가며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원장 슨새의 사실이. 퍽이나 웃길 지경이었다. 손발이 저절로 오그라들 것만 같았다. 도경수는 여전히 편한 홈웨어였다. 꽤나 값비싸다는 브랜드 로고를 자신의 가슴팍에 떡하니 붙인 체 긴 소매를 팔 부근까지 걷는 모습이 미칠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부들부들한 털 소재의 니트가 저리도 포근해 보일 리가 없다. 역시 비싼 건 태부터 다른가 싶었다. 추워 죽겠는데 밝게 떠오른 태양까지 구름이 가린 상태에서도 이렇게 빛이 날수가 있을련지, 이건 명백히 사기였더랬다. 괜스레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건 기분 탓일 거다. 나만 그런 게 아니란 듯, 자기도 같은 마음이라며 고개를 대충 숙이는 도경수를 눈짓으로 대충 훑고 있을 때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던 민석이에게 포커스를 곧장 돌렸다. 민석아, 안녕!
" 민석이 왜 이렇게 가벼워졌어, 응? "
" … …. "
" 선생님이 밥 골고루 먹으랬는데. 아빠가 밥 안 챙겨줬어? "
" 허, "
" 아닌데! 아빠가 많이 챙겨주는데! "
어제 치킨도 시켜줬어요!
일침 아닌 일침이었다. 도경수가 그렇게도 잘하는 간 보기 위함이었음을. 절대로 악의적인 의도는 아니었음을. 단지, 확인만 했음을. 이어지는 민석이의 덧붙힘을 들어보면 보기에는 개뼈따구만 던져주게 생겨가지고 꼴에 아빠 노릇은 꽤나 하는 모양이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이것저것 챙겨줬다며 신이 난 듯 연달아 말하는 민석이를 애써 제제 시키고는 곧바로 고쳐 안아들었다. 시발, 그래도 부러운 건 숨길 수가 없었다. 차별이 워낙 심해야지, 괜히 억울한 느낌이라 이거다. 자발적인 호의를 베풀어주는 날이 오기나 할까. 부질없는 꿈같은 건 애써 지워버리는 게 답이다. 썅.
선생님. 헛웃음을 뒤로 미루며 던지는 도경수의 물음이었다.
" 안부 인사는 안 해주나 봐요. "
" 네? "
" 잘 잤냐, 잘 지냈냐. 뭐, 이런 거. 안 해줘요? "
" ……민석이한테 해줬는데. "
" 민석이 말고. "
" … …. "
" 나한테 안 해주냐고, 나한테. "
우리 되게 오랜만에 보잖아.
그게 그거랑 무슨 상관인지. 어이가 없음을 낯빛에 곧바로 표출해냈다. 납득이 가지도 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들이붓는 도경수를 판단하기에는 내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한참 잘 돌아가던 머리는 왜 이제야 과부하가 되는 건지. 아마, 도경수를 만날 때마다 머리는 새하얀 백지가 돼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뇌가 텅텅 비었다고.
재 왜 저럼?
유치원에 나오지도 않은 건 자기면서, 잘못이라고 판단하기엔 부족한 무언가를 저에게로 돌리는 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거다. 언제는 늦어도 지랄. 이제는 일찍 와도 지랄이니, 이게 웬 신종 지랄임을 느꼈다.
" 아. "
" … …. "
" 취향이 독특하신가 봐. "
" ……또 뭐가요. "
" 머리끈. "
도경수가 검지 손가락 하나를 저에게 뻗다 말고 어색하게 접으며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 장난이고. "
" … …. "
" 꽤, 어울리네. "
" … …. "
" 점심 타임 잊지나 마요. 연락할게. "
……전화기를 변기통에 빠트려야 하나.
a private talk. |
옹호자 입니다.
본의 아니게 전편 수정과 개인적인 일로 많이 늦었습니다.
급하게 오느라 분량도 예전같이 못하고 퀄리티도 점점 떨어져 가는게
혹시나 글의 몰입도에 방해가 될까, 제일 많이 걱정이 되네요.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은 몇 없지만 항상 감사드리고 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 편은 분량 꽉 채워서, 이번 주 내로 들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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