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애보는 시간적 시점이 자주 바뀌는 점을 유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띠링,
[ 아메리카노 먹고싶은데. ]
" … …. "
띠링, 띠링,
[ 누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김종인이 또 변기통 안 올리고 오줌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
띠ㄷ,ㄷㄷ, 띧ㄷㄷ, ㄷ띠링ㅡ.
[ 아메리카노. ]
[ 시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암모니아 냄새 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먹고 싶어. ]
[ 김종인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나 향수라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이런 시부랄!!!!!!!!!!! "
으억, 하고 나오는 억누른 신음은 꽤나 골치가 아팠다. 요 근래부터 허리가 자잘하게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떨어진 물건도 못 주울 정도로 굳어버린 허리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린 신음에 대한 화근이었다. 아파도 더럽게 아프다. 괜스레 눈가가 시려왔다. 괜히 묶던 머리를 길게 느려틀어 놓았던 게 제 목 부근을 간지럽히기 시작했을 터였다. 시발, 아파서 못 해먹겠네.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 주구장창 내뱉는 혼잣말은 아픈 제 허리와 또다시 일을 맡기고 떠나버린 동료들에 대한 분노감이 섞여있었다. 원래 신입이 이렇게나 혹독한 건가 싶었다. 차라리 변기통에 묻은 똥이나 치우라고 시키던지. 하루 종일 불편하기도 더럽게 불편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히고 앉아 쉴 틈 없이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시발, 거기다 덧붙이는 용도로 자신들의 업무까지 하는 김에 같이 해달라며 떠밀어 보이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영악함이 묻어있었다 이거다. 내가 이래서 살겠는가. 오금이 저린다. 나도 시험 쳐서 들어온 건데 존나 월급쟁이인 마냥 계약직 취급을 받는 게 무슨 사회란 말인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리는 걸 느꼈을 때 결국은 손에 집고 있던 펜을 제 데스크 구석으로 던져 보였다. 그래. 사회가 이렇게도 혹독하단다 아이들아. 세훈아, 보고 있니? 징징하고 울리는 허리 때문에 이리저리 자꾸 미루다 큰일 치르지 말고 병원 가서 침이나 맞으라는 엄마의 당부 아닌 당부가 문뜩 떠올랐다지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될 대로 되라지, 그냥 이대로 죽치고 앉아있다가 병원까지 실려갈 기세였다. 나도 좀 아파서 휴가 좀 받아보자, 썅.
오후 댓 바람부터 저 지랄이었다. 휴대폰 화면을 시끄럽게 울려대며 장악하는 꼴이 꽤나 한심해 보였다. 웃기기도 짜증 나게 웃겨서 얼굴에 멋쩍은 미소가 드리워질 지경이었다. 진짜 뭣 같네. 금방이라도 입안에 침이 고여있다면 휴대폰을 향해 직선으로 뱉고 싶은 심정일 정도로 열이 올랐다는 걸 느꼈다. 어둡침침한 배경화면과 이질적으로 푸른 계열에 화면으로 바꾸었다만 대조되게 내 휴대폰은 더러워지고 있었을 터였다. 괜스레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한참 예민하던 신경에 칼을 찌르기까지 하는 새끼들을 어떻게 족쳐야 할지. 지금 상황에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문자의 선도주자는 도경수요, 그 뒤로 쫄따구 마냥 따르는 후자는 트윈스라. 정말로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엎친 데로 덮친 격이라고, 열이 오르는 머리는 정말로 피가 쏠리는 기분이었다.
만나 보지도 못한 주제에 어쩜 그렇게 죽이 잘 맞는지. 시도 때도 없이 알림 창으로 도배를 해대는 새끼들에 아주 놀라울 따름이었다. 첫 시작은 당연스럽게 심부름이었다.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안다는 핫타임, 그러니까 이 점심 타임 때마다 연락을 넣어대는 근성남이 극도로 당연스러운 거라 생각했다지만 오늘따라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주어만 쏙 빼놓고 이상한 말만 나열하지를 않나. 문자 치는 게 그리도 귀찮다며 전화로만 용건을 말하는 도경수가 텍스처로 연락을 넣지를 않나. 참으로 이상했을 터에 웃으며 따라오는 트윈스 새끼들에게 포커스가 돌아간 건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알아차렸다. 아차, 싶었다. 자기주장 확고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멍청한 새끼인 마냥 말로 시간을 늘리는 도경수의 문자에 신경질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보낸 그 시점부터 ㅋ, 만 연달아 보내는 새끼들에 결국은 노트북으로 쏟아붓던 집중력을 한순간에 깨트려 보였다. 지끈지끈 거리는 관자놀이와 머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신경이 예민해졌다는 걸 뜻했다.
저 문자의 근원은 김준면이 아닌 쌍둥이 새끼들이란 걸 순식간에 깨달았다. 애초부터 못 알아차린다는 게 이상한 거였다. 훗날 김준면이 일하는 타이밍에 문자를 주구장창 연락을 넣는 성격이 아님을 세상 사람들이 알고, 성격과는 다른 차분하게 문자를 이어나가는 김준면인걸 내가 알기에, 단 한번에 아니라는 확답적인 촉이 왔다지만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중 사고 치는 날이 7번이라는 트윈스 중 한 명이 제가 놀랄 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다며 호들갑을 싸대는 주된 원인이 김태민이란 걸 알았고, 그 어마어마 한일을 저질은 새끼는 김종인이란 걸 알아차렸다.
끝내는 소리를 질러버렸다. 내 주위에 누가 있든 상관이 없었다. 시발, 난 앞만 보고 산다. 누나 방향제도 설치해줬다며 온갖 대화창을 웃음으로 도배하는 녀석과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다고 개지랄을 떠는 도경수에 대한 깊은 빡침을 숨길레야 숨길 수가 없었다. 숨길 수도 없는 당연한 상황이었다. 까고 말해서 인내심 테스트를 한 것도 아니고 그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를 놀리는 것 마냥 양쪽에서 지랄들이니 소리를 안 지르고 배길까. 사람을 아주 돌부처로 만들 지경인가 싶었다. 또다시 제 볼갗을 때리는 머리칼을 급하게 쓸어 넘겼다. 시발새끼들. 미친듯이 뿜어져 나오는 욕을 대신해 소가 숨을 내뱉는 마냥 씩씩 거리며 가빠진 호흡 내뱉기만 하다 급하게 휴대폰의 집어 들었다. 또다시 제 눈에 비추어지는 푸른 배경이 화를 돋우는데 한수 기여를 했다. 속에 괜히 끓는 기분이었다. 첫빠따는 너다, 이 새끼야.
" 용건. "
" … …. "
" 뜸 들이는 거 싫어, 빨리 말해. "
" … …. "
" 말 안 해? "
수화기 너머로 반복만 해대는 신호음이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1초, 2초, 넘어가는 신호음이 오늘따라 짜증이 나는 건 기분 탓일 거다.
가만히 들어보면 신호음은 사람을 참을성 없는 육식동물로 판단하기에 아주 적합한 소리였다. 아주 간드러지는 소리로 사람 간을 보는 게 어지간히 답답할 수가 없다. 말이라도 통하면 욕이라도 퍼부어주는 건데. 이어지는 무음 속에 진동소리가 오합지졸 하게 섞인 느낌이랄까. 그냥 괜스레 기분이 나쁜 소리였을 터였다. 입안에 머무는 욕이 너무나도 찝찝해서. 왠지 모를 분노감이 차올라서. 전화를 받는 순간 욕이라도 미친 듯이 퍼부어 주고 싶은 마음이 저를 사로잡았다.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차웠다. 방금 전까지 테러 해댄 게 누군데, 문자 치기를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한테 친히 전화를 걸어준 게 누군데, 시발. 전화받을 생각을 일제히도 아마 전화가 신명 나게 울려도 모를게 뻔한 상황을 신호음에 대신 말해주고 있는 상황이 퍽이나 웃겼다. 가망 없는 휴대폰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세게 그러쥐었다.
달그락, 하고 들리우는 소리에 이어 나지막이 퍼지는 목소리가 정말로 반가웠던 건 사실이었다. 우의적인 태도가 아니었음이라 단정 짓는다지만 약간의 우의가 담겨있었음을, 결국엔 낯빛에 모든 감정을 드러냈다. 도경수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정말로. 기다림에 지쳐있던 정신을 일깨워주는 도경수의 행동이 난 반가웠던 거라 이거다. 괜히 성공의 쾌감을 느꼈던 기분은 말 따위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멀대같이 큰 농구 골대에 점프슛으로 공을 던져 넣은 기분이었다. 시발, 내가 조던이다.
전화를 받거나 혹은 먼저 걸었다 해도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갖추는 예의가 있다 배웠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며 물음을 던지는. 여태까지 가져온 만남의 근거로 도경수를 분석해봤을 때 그렇게 예의가 떨어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괜히 대기업 대표로 명성을 알린 게 아닌 듯 사람 간의 소통에서 라던가, 개인적인 자리에서라도. 취해야 할 모든 행동은 갑인 도경수가 먼저 치고 들어갔다.
그래서 지금 영 이상한 게 말이 아니라 이거다. 주어만 쏙 빼놓고 주구장창 말만 나열하지 않나. 그 쉬운 여보세요, 하나 까지 묵혀놓은 체 용건만 읊으라며 칼인 마냥 날카롭게 말을 하지 않나. 싸가지 중에서 만렙이라는 도경수가 사람을 간 보는 모든 행동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난 판단을 내렸다. 그것도 다 속임수였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솔직히 연달아 욕 섞인 말을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상황에 부딪히고 도경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오자 말문이 턱하고 막힌 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였다. 시발, 무서운 걸 어떡해. 전형적인 갑과 을에서 을이 초반부터 먹고 가는 건 쭈굴이였다. 어깨 한번 못 펴고. 자기주장 한 번도 발설하지 못하고. 평생 갑의 눈치만 보고 실실 기어야 하는 그런 전형적인 찌질이의 상태라 이거다. 무슨 근거로 이 판단을 내리냐, 하고 묻는 사람들(도경수) 에게 대통령이든 뭐든 이 관계에 서있다 해도 제 입장에 동감을 하는 사람들은 100% 로라는 자신감과 비례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자꾸 억누른 숨만 뱉어내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모든 일은 부딪혀 보라지만 부딪힌 그 후가 문제였다. 어떻게 하든 간에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에 서있는 나는. 지금의 상태로써 전화를 끊을 수도. 그렇다고 도경수가 말해보라는 용건을 힘차게 읊을 수도 없는. 그런 애매모호한 상황에 놓였음을 알아챘다.
" ……지금 못 가요. "
" 오라는 소리 안 했는데. "
" 그럼 문자는 왜 보냈는데요. "
" 먹고 싶어서. "
" … …. "
" 왜, 먹고 싶다고 말도 못해? "
솔직히 까고 말해서 이 일에 시발점인 사람이 이렇게나 당돌한 건 난생처음이었다. 그딴에 오히려 당황한 건 나였고. 당장 말을 하지 않으면 끊을 거라는 말을 물레 방아처럼 빙빙 돌리는 도경수에 한번. 폭탄이 자신의 앞에 떨어져도 태연할 거라 확신하는 도경수의 반응속도에 한번. 머리는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고 안에선 쥐가 나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적잖게 당황을 했다는 낯빛을 단숨에 드러냈다. 제 주위에 누가 있든 말든 진짜로 당황했다 뜻이었다. 정적을 들이밀고 이어 당당하게 제 주장을 읊조렸다는 게 꽤나 자랑스럽다지만 받아치는 도경수의 반응속도는 쩔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훅치고 들어올 수가 있는 건지. 괜히 말빨이 쩐다는 소문이 퍼질리가 없었다.
" 그래서 사 오라구요, 말라구요. "
" 사 와주면 고맙지. "
" … …. "
" 사 와주려고? "
괜히 도경수가 아메리카노 따위 하나에 목숨 걸 새끼가 아니었다. 이렇게 꼬투리까지 물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늘어지는 것까지 봐도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손짓 하나면 비싸다는 루왁커피 하나까지 자신의 앞으로 대령할 수 있는 그런 권력을 가진 새끼가 고작 2,500원짜리 커피 하나에 징징대는 꼴은 누가 봐도 저를 놀릴 속셈이었다. 놀리고도 배길 거다. 유치원이랑 회사랑 거리가 고작 몇 걸음 차이도 아니고 꽤나 먼 거리에 위치한 회사를 오고 가라 할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었다. 아아, 도경수의 펀치라인 따위에 간신히 두고 있던 포커스를 잃어버렸다.
거봐, 거봐. 내 말이 맞다니까. 참으로 기가 찼다. 꼬리를 내리면 진돗개마냥 덥석 물고 놔주질 않는 도경수의 박수를 쳐줄 심정이었다. 존나 대단한 새끼. 약자가 이렇게까지 자존심을 구겨야 살맛이 나는 것 같았다, 도경수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영악해질 수가 있는지 도경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았지만 지금까지 쭈욱ㅡ, 이어지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더랬다. 방금 전 전화를 받을 때 잠깐이나마 베풀었던 호의적인 행동에 대한 생각이 쿠크다스 마냥 구겨지는 제 자존심과 비례했다. 그깟 신경질 났다는 감정하나도 포장해야 하는 자체가 제가 쭈굴이였다는걸 깨닫게 해주는데 한수 기여했다.
" 항상 먹는 거 알지? "
" … …. "
" 퀵으로 부탁할게. "
저 말을 마지막으로 도경수는 감사함을 표했다. 직접적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들떴다는 걸 보여주는 도경수의 목소리는 꽤나 밝았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새끼도 아니고.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등받이에 기대어있던 찌푸둥한 몸을 결국엔 일으켰다. 절대로, 도경수가 무서워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존나 슬프다. 심부름꾼으로서 마땅한 일을 하는 거 뿐인데 왜 이렇게 눈시울 이 따가워지는지 모르겠다.
이 시대의 순애보
" 저 도착했는데. "
" 근데. "
" 내려오시라구요. "
내가 올라갈 수도 없잖아.
가을. 지금의 시점부터 가을 시즌이었다. 이제는 얼추 여름의 색깔은 치워버린 것 같았다. 다운돼있는 톤들이 거리를 장악할 때마다 날씨와 어우러지는 게 너무나도 예뻐서. 간혹가다 보이는 푸른 색깔들이 아직은 완전한 가을이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해줘서. 눈대중으로 대충이나마 살펴 보이는 포털 사이트에서 컬렉션을 준비한다는 패션업계들부터 음악, 음식, 분위기. 다 하나같이 가을 감성에 젖은 마냥 한순간에 바뀌어진 상황에 감탄사를 내뱉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들이 제법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떨어지는 낙엽이 이렇게나 구슬플 수가 없다지만 떨어지는 낙엽의 수와 대조되게 택시 요금은 어느새 기본요금을 훨씬 더 뛰어 넘어가고 있었다. 쓰기에도 아까운 돈을 택시 하나에 쏟아부으면서 하루하루를 이어나갈 때 처음엔 상실감이 정말로 컸을 터였다. 지불하는 돈이 어마어마 했어야지, 매일같이 맥주로 밤을 지새우던 저에게 금주령을. 저절로 술배를 집어넣어주는 도경수에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고 싶었지만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더랬다. 통장에 구멍이 나면 도경수가 채워주겠지. 솔직히 제가 움직이거나 자신에 대해 써대는 경비에 도경수의 돈은 일제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내 돈과 내 카드였다. 부려먹으려고 아주 작정을 한 도경수가 이리도 얄미워 보일 수가 없다. 나쁜 새끼. 제 손에 고이 올려져 있던 지폐들과 동전들을 세차게 바지 주머니로 쑤셔 넣었다.
몇 십분을 달려야 나오는 도경수의 회사 앞에 정차를 한 택시는 어느새 저와 거리를 두고 멀어지기 시작했다. 6700원. 제 유치원에서부터 회사 정문까지 도착했을 때 나온 비용이었다. 간혹가다 가까운 거리를 멀게 운전을 하시는 택시기사의 상술을 뺀 최소의 요금이 저거였다. 6700원이 땅을 파야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쑥쑥 빠져나가니 통장 잔고는 하루가 다르게 텅텅 비어 나갈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도경수의 잔심부름까지 제 비용으로 대야 한다는 게 정말로 억울했다. 심부름의 정의가 뭐냐고 묻고 싶었다. 남을 시키면 그 일에 대한 페이나 필요한 경비를 갑이 지불해줘야지, 을이 대신하는 심부름이 어디 있나 싶었다. 시발, 악덕 고용주는 아니라면서 자부하더니. 지금의 상태로선 도경수가 악덕 고용주를 뛰어넘는듯했다.
" 나? "
" 네. "
" 나보고 내려오라고? "
그럼 누구요, 시발.
" 나 지금 못 내려가. "
" ……그럼 커피는요. "
" 뭘 어째, 들고 올라와야지. "
" … …. "
아메리카노의 샷 추가 그리고 생크림을 토핑으로. 보기에는 에스프레소만 주구장창 내려 먹게 생겨가지고 요구하는 건 많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경수의 입맛에 적응하기도 잠시 매일 마다 제가 알지도 못하는 커피 명칭들을 줄줄이 나열하며 그에 맞는 디저트까지 골라오라는 도경수의 생색까지 이제는 태연스럽게 받는 내가 참으로 대견스럽긴 처음이었다. 커피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따라오는 게 디저트까지 사 오라는 도경수의 문자였지만 요 근래에 들어선 도경수는 오늘처럼 전화는 하되, 문자로 요구를 하진 않았다. 그 뜻은 귀찮으니까 알아서 사 오라는 거였겠지. 유치원에서 갖가지 물건을 챙겨 문을 나서고 나와 근처 커피숍에 갈 때까지. 오늘은 또 무슨 디저트를 사가야 되는 지가 제 숙제였다. 생크림을 좋아한다고 생크림 케이크를 사갔다 간 부담스러워할게 뻔했다. 아메리카노는 그저 가볍게 먹는 애피타이저 용이지, 홍차처럼 무겁게 어우러져 가는 그런 종류의 티가 아니었다. 그냥 가벼운 쿠키 같은 게 어울리는 정도.
DOKS. 오늘도 로고를 대충이나마 눈대중으로 구경하기도 잠시 제 손에 도배돼있는 각종 먹거리들을 인도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주 먹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다고 해서 주구장창 쿠키를 사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괜스레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도경수가 시킨 심부름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커피숍에서 멍청하게 고민에 빠져있었던 제가 우스웠지만 결정 장애 하나만으로 여러 가지를 사 들었던 제가 퍽이나 웃겼다. 이 돈이면 치킨을 몇 마리나 사 먹을 수 있는데. 잇새로 삐져나오는 한숨이 꽤나 적잖았다.
들고 있었던 커피와 여러 갖가지의 디저트들을 미친 듯이 샀으니 무게가 안 나가는 게 이상했다. 보기 좋게 붉은 기 돌던 손은 커피 팩들과 종이 상자를 내려놓자마자 손의 일부가 들고 있던 팩 상자의 끈 모습으로 그대로 낙인이 되어 노랗게 변해버리는 게 쥐가 올 것만 같은 느낌을 조성했다. 저린 손을 탈탈, 털기도 잠시 제 핸드백 곧장 열어 속에 처박혀 있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도경수는 여전히 태연했다. 그리고 더럽게 싸가지 없다. 자신 보고 어쩌라는 식의 말투였다. 까고 말해서 주구장창 도경수의 회사만 바라본 체 멍하니 있을 수도 없을 상황이었다. 업무를 보고 있는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노트북 자판 소리에 도경수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지만, 저도 직장을 가지고 있고 그게 그냥 직장이 아닌 터라 주구장창 서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까고 말해서 동상인 마냥 서있는 자체가 퍽이나 이상했고 이상한 눈초리를 받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구원 아닌 구원을 요청하려 도경수에게 전화를 걸었건만 돌아오는 도경수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받아치는 도경수가 눈앞에 있다면 그대로 족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했다. 아, 이게 진정한 노답이라는 건가. 이 상태로 있다간 정말로 발암에 걸릴 것만 같았다. 말이 통해야 올라가든지 하지. 묵언 속에 담긴 말은, 무턱대고 자신에 회사에 어떻게 올라가냐 이 말이었다. 딱 봐도 길거리를 거느릴 것 같은 복장으로 대표실에 들어간다는 자체가 정말로 이상한 요소였다. 사람이 생각을 해보면 도경수의 말만 곧장 믿고 올라갔다간 회사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는 건 한순간이라 이거다. 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아까 이상한 여자가 갖가지를 싸 들고 대표실에 들어가더라. 이 말 한마디가 여사원들 사이에서 얼마나 와전이 많이 되는데. 괜스레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 혼자 오기 불편해서 그래? 다른 곳으로 포커스를 옮기는 도경수의 대뜸 없는 물음이었다.
" 비서라도 보내줄게. 같이 들어오던지. "
" 아니, 저기. "
" 어, 어. 정문에 보면 서있을 거야. 그쪽으로 데리고 와. "
뭔 얼척 없는 소리인지?
" 그럼 올라와서 봅시다. "
……아아, 시발. 존나 싫다. 개싫다. 혐오할 정도로 싫다.
멀대 같은 비서랑 또 단둘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날 목 죄어 숨을 턱하고 막히게 했다. 괜히 돼지 목에 목줄을 차고 있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도경수는 그나마 혼자 말을 씨불이는 게 괜찮았다지만 그와 정반대인 비서가 문제였다. 비서는 외모에 걸맞게 말이 더럽게 없었다. 어색하게 말을 건네면 단답으로 대답을 읊조리는 정도로. 이 회사는 사람을 당황하는데 아주 적절한 요소를 가지고 있나 싶었다, 처음에는. 닮은 게 있으면 뭐 하냐, 도경수의 그 비서라더니. 도경수가 여러 사람을 망쳐놓은 것 같은 기분을 새삼 들게 했다.
" 저, 비서님. "
" 네. "
" 사무실 옮겨졌어요? "
" … …. "
" 그쪽 방향이 아니길래. "
" 아, 네. "
통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문 사이로 삐져나오는 비서를 향해 어색하게나마 허리를 숙였다. 비서는 예나 지금이나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여전히 깔끔한 슈트와 올린 머리.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피부가 더 하얘진 정도. 저게 정녕 성인 남자의 피부인가 싶었다. 제 꺼칠꺼칠한 피부가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여전히 비서를 만나면 빠진다는 자괴감에 허우적 되고 있으면 이런 제가 웃긴지 미소를 입꼬리에 매단 체 비서는 고개를 숙였다. 단정히 예의를 표한다는 전형적인 뜻이었다.
비서는 들어가자는 말을 아낀 체 손짓으로 저를 안내했다. 간혹가다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저를 힐끔힐끔 쳐다본 체 회사 로비를 거느리는데 여간 부담스러운 게 말이 아니었다. 그럴 거면 대놓고 쳐다보던지. 솔직히 이 상황에선 내가 도망칠 상황이 어우러지지도 않았는데 괜스레 감시를 받는 기분이었다. 존나 부담스러우니까 쳐다보지 좀 마라, 썅. 눈짓을 약간 이나마 돌려 마주친 시선을 뒤로 다시 원위치를 시킨 비서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열심히 째리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도경수나, 비서나 의아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평소대로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으면 평소대로 9층을 누르는 게 당연했다지만 비서는 착각이라도 한 듯 여전히 미소는 지우지 않은 체 5층 버튼을 꾹 하고 눌렀다. 어리둥절한 낯빛을 얼굴에 띄었다. 몇 번을 만났지만 풀어지지 않는 정적을 깨고 먼저 말을 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비서의 시선이 꽤나 무덤덤한 것 같아서. 나만 괜히 호들갑 떠는 것 같아서.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는 표시를 해주는 판에 하나하나 숫자가 더해질 때마다 눈치를 보는 건 나였다. 시발, 자신도 모르게 회사 내부 구조가 바뀐 듯했다. 5층 버튼을 누른 게 만약 실수라면 곧바로 9층을 눌렀겠지. 근데 왜 안 누르냐가 의문이라 이거다.
당혹스러운 감정을 숨긴 체 왜 이러냐는 식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건 비서의 의미심장한 웃음뿐이었다. 올라가는 단 몇 초가 몇 시간으로 바뀌는 매직에 몸을 부르르 떨 지경이었다. 존나 무섭다. 할거 없이 봉지 겉면만 쓸고 있을 타이밍에 마주친 시선으로 느낀 건 눈빛 하나로 사람을 때려죽일 심상인가 싶었다. 존나 무서워도 좀 적잖게 무서워야지. 오버해서 말하자면 그냥 조폭 눈빛이나 다름이 없었다. 드디어 열린 엘리베이터에 막혔던 탄식을 내뱉기 잠시, 또다시 손짓을 표하는 비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태까지 가진 만남의 횟수에 배가되게 수도 없이 숙인 고개는 정말로 담이 걸릴 것 같았다. 도경수가 비서 교육을 시킨 게 악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원래 사람이 예의가 바른 건지. 수도 없이 표하는 예의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까지 이르렀다.
" 어, 왔어? "
" … …. "
비서는 어느새 자신의 손목에 차여있는 시계를 한번 살펴본 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거기에 뒤따라 가고 있는 건 나고.
처음엔 백화점인가 싶었다. 지금 제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은 보통의 백화점과 오버랩이 되는 광경이었다. 셔츠 매장이 위치해있는 일층과 도경수의 사무실만 오고 가서 그런지 매장이 5층까지 어우러져 있는 건 처음 안 사실이었다. 입을 떡하니 벌렸다. 도경수네 회사가 큰 줄은 알고 있었다만 이지경까지 클 줄은 몰랐다. 제 손에 무거운 짐이 들린 것도 자각하지 못한 체 눈만 데구르르 굴리면, 면세점에만 있는 매장들이 하나둘씩 위치해 있는 것에 한번. 평소에는 보지도 못 했던 명품 매장들이 위치해 있는 것에 한번. 도경수의 영향력이 이렇게나 컸다는 걸 깨달았음에 한번. 그냥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전히 재촉하던 발걸음을 멈춘 건 다름 아닌 비서였다. 끝내는 도착했다는 간접적인 뜻이었다. 무거운 짐을 고쳐잡은 체 비서를 흘낏 쳐다보는데 비서는 여전히 실실 웃는 표정이었다. 뭘 쪼개냐 시발.
" ……뭐예요? "
" 그냥. "
같이 밥 좀 먹어보려고.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대뜸 아닌 평범한 레스토랑이었다. 비서는 여전히 발걸음을 제자리에 멈춘 체 들어가라며, 손짓을 해왔다. 저기를 들어가라고요? 혼자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도경수의 사무실이 언제 평범한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잡생각이 뇌리를 떠다니느라 복잡해진 머릿속을 애써 부여잡아도 무슨 영문인지를 도대체 모르겠다 이거다. 비서는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딱 봐도 비서의 낯빛은, 무슨 상황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아는 것 마냥 태연한 낯빛이었다. 이러니까 내가 속으로 욕을 안 하고 베낄까.
꽤나 모던한 분위기를 추구하는 도경수의 색깔과 정말로 잘 어우러지는 분위기에 입을 떡하니 벌릴 지경에 이르렀다. 열려있는 문 사이로. 벽에 도배를 하고 있는 유리창 너머로. 밝디 밝은 길쭉한 형광들이 아닌 은은한 조명들이 레스토랑 내부 안을 장악하고 있는 것에 대해 눈을 두어 번 깜박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ㅡ. 다가온 첫인상으론 분위기가 꽤나 괜찮았다. 다른 음식점 마냥 복잡하지도. 그렇다고 고급스러울 정도로 부담스러운 조명이 아닌 그 애매한 적정선을 지키는. 알앤비와 어반풍이 어우러져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정말로 아름다운 감을 없지 않아 덧붙여 줬다, 분위기를.
" 아까는 커피 심부름 시키셨잖아요. "
" 그건 핑계. "
" … …. "
" 내가 그냥 오라고 하면 안 올 거잖아. "
" … …. "
" 어서 앉아요. 다리 아프겠다. "
도경수의 너머로 위치한 샹들리에가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다.
도경수가 장난스럽게 미소를 낯빛에 띄었다. 이 뜻은 정말로 자신이 읊조렸던 몇 시간 전의 말이 장난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충분한 요소였다. 시발, 그럴 거면 왜 시켰는지. 도경수가 항상 먹는 입맛을 고려해 사온 아메리카노가. 도경수를 갖다 주겠다고 디저트 따위를 고민한 내가. 택시를 타고 올 때부터 회사에 발을 들이기까지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던 내가. 전부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억지로 수그렸던 화가 속에서부터 미친 듯이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미간을 미친 듯이 구겼다. 신경질이 나는 건 누구나 동감하는 아주 당연한 상황이었다. 누구는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누구는 태연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지를 않나. 제가 사 왔던 모든 것이 내쳐지는 게 한순간이지 않나. 단순히 핑곗거리 하나 만들겠다고 바쁜 사람을 오고 가라 하는 도경수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지만 이어 덧붙이는 도경수의 말은 차올랐던 화가 한순간에 당혹스러움으로 바꾸는데 한수 기여한 말이었다.
내가 그냥 오라고 하면 안 올 거잖아.
솔직히 심부름도 친히 비싼 돈 써가며 갈 생각이 일제히 없다는 건 사실이긴 했다. 누구 때문에 억지로 움직이는 거 뿐이지. 읊조리는 말을 봐서, 도경수는 명백히 저를 캐치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고서야 이런 식의 말들이 나올 리가 없었다. 억울하기도 억울했고 판단하기도 어려운 이 상황에 만감이 교차했을 터였다. 도경수는 와인잔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시는가 동시에 자신의 건너편 의자로 눈짓을 표했다. 앉으라는 소리였다. 아니, 시발 이 상황에서 어떻게 앉으라는 거지. 영문도 체 파악하지 못한 미심쩍은 눈빛을 숨길 수가 없는 타이밍이었다.
" 왜 자꾸 떨어요? "
" … …. "
"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밥 먹자는 건데. "
" 제가 뭘 떨어요. "
" 손봐, 손. 엄청 떠는데. "
" ……안 떨거든요. "
" 당신은 단둘이 있을 때마다 떨더라. "
수전증인데, 시발.
" 왜, 내가 부담스러워요? "
" … …. (네.) "
" 무서워? "
" … …. (네, 존나요.) "
" 아니면서 왜 자꾸 떨어. 내가 당신 감옥에 처넣기라도 한데? "
존나 회사 때려치우고 족집게 사업이나 차려 보시는 게 어떤지.
경찰서 안 간다고 했잖아. 보류한다고. 이어지는 도경수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떨고 있었나 보다. 도경수는 여전히 와인잔의 겉표면을 매만진 체 다른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아까 비서랑 있을 땐 그나마 괜찮다고 자부한 내가 미워졌다. 뭐가 괜찮은지 1 도 모르겠다. 꽤나 평소와는 다른 압도하는 분위기가 무서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도경수의 태연한 낯빛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단둘이 있는 상황이 익숙지 않아서 그랬는지. 내가 보기엔 전자나 후자나 떨고 있는 사실 모두에 포함되는 것 같았다만 진짜로 무서운 건 사실이었다. 그래, 보류한다 했었지. 도경수는 완전히 경찰서를 가지 않는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잘못 까딱했다간 경찰서 행 인걸 나도 알고 도경수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떨고, 내가 빌빌 기는 거겠지. 검지를 뻗어 제 몸 상태를 집요하게 물어오는 도경수를 피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냥 옷깃만 작게 그러쥐었다.
" 도경수씨, 저, "
" 먹었다고 거짓말 칠 거면 때려치워요. 다 알아보고 연락했으니까. "
" … …. "
" 또 사생활이니, 뭐니 참견은 하지 말고. "
" … …. "
" 이런 건 내가 알아도 피해볼 건 없잖아. "
" … …. "
" 다리 아프게 자꾸 서있을 거예요? "
저 말속엔 강압적으로 앉으라는 소리가 포함돼있었다.
도경수의 목소리는 이질적으로 아주 낮아지고 있었다. 잇새 사이로 입술만 잘게 깨물었다. 괜히 신경을 거스르게 한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도경수의 표정이 어두워질 리가 없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도 도경수는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아마 이런 제 행동에 동감을 할 거라 생각한다. 평생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는 을의 굴레에서 당당하게 벗어나는 게 이상한 거였다. 만약 벗어난다 해도 아무 제약이 없으면 다행인 거지만 난 제약부터가 남달랐다. 자칫했다간 경찰서행에 인생에 빨간 줄이 그 여지는 건 한순간이라 이거다. 이런 상황에서 도경수의 떨지 말라는 소리에 누가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에 잽싸게 앉을까.
" 의자라도 뒤로 빼줘야 되나. "
도경수는 눈 언저리를 작게 매만지며 물어왔다. 아니요! 잽싸게 고개를 저었다. 시발, 도경수는 자기가 떨지 말라고 일침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더 떨게 만드는 자체가 신기했다. 커피 박스와 종이 박스를 도경수 근처의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각은 안 하고 있었다만 꽤나 오래 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피가 안 통했는지 노랗게 변하는 것에 이어 새파랗게 변해가는 손을 급하게 마주 잡으며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손이 저리는 걸 숨길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이런 저를 주시하다 말고 몸을 일으키는 도경수를 두 손으로 자제시키고 나서야 의자에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앉기도 더럽게 험난하네.
그제야 도경수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건조한 날씨에 비례하게 터버린 입술을 혀로 축이며 도경수의 행동만 주구장창 주시를 하는데 도경수는 작게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버섯이랑 미트……. 도경수의 혼잣말이었다. 아, 왜 이렇게 한 페이지를 주시를 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도경수는 음식 소개를 덧붙여주는 상세 소개를 읽고 있는 모양이었다. 꺼칠하게 터버린 입술의 한 부분만 혀로 쓸고 있을 타이밍에 눈을 올려 도경수가 들고 있는 메뉴판에 포커스를 옮겼다.
" 비싼 거 아니에요? "
" 뭐가, 음식? "
" … …. "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자신의 레스토랑임을 만천하에 알려주는 블랙 톤의 가죽 메뉴판과 금색으로 칠해져있는 레스토랑의 명칭이 꽤나 고급스러웠다. 까고 말해서 메뉴판이 이런데 음식도 더럽게 비싸다는 건 정말로 확실했다. 도경수가 눈은 여전히 메뉴판에 둔 체 입꼬리를 올렸다.
" 돈은 이런데 쓰라고 있는 거야. "
" … …. "
" 괜한 걱정하지 말고 먹어. "
" 아. "
" 뭐 먹을래. 가볍게 코스로 먹을까? "
그게 가벼운 거면 난 얼마나 가벼운 거니…….
" 출장, "
" … …. "
" 내일이야, 출장. "
" ……근데요? "
" 근데라니, 우리 아들 돌봐줘야지. "
시발, 모처럼 맞는 휴가에 술이나 주구장창 땡기려 했더니.
애피타이저로 나온 샐러드를 포크로 집다 말고 물어오는 도경수에 적잖게 당황함을 얼굴에 표했다.
" 뭐야, 잊었어? "
" 뭘요. "
" 그 원피스 받고 민석이 봐주기로 했잖아. "
" … …. "
" 내가 분명히 이맘때쯤이라 말했을 텐데. "
포크로 샐러드를 집는 건 무리였다. 집어도 더럽게 안 집어진다. 괜히 신경 안 쓰는 듯 태연하게 포크를 콕콕 찍었지만 애꿎은 채소들만 딸려오는 게 어지간히 짜증이 났다. 젓가락도 없어서 더럽게 불편해죽겠는데. 왜 젓가락 두짝을 대령해주지 않냐에 대해 의문을 넣을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 바질 먹고 싶은데. 불만 없으면 코스로 시킨다는 도경수의 말에 얼마 있지 않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이 하나둘씩 채워지자 결국은 하나에 주시를 못한 체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다. 진짜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명성에 맞게 음식 하나하나가 이렇게까지 고급 져 보일 수가 없었다. 토핑 되어있는 하나하나가 어찌나 반짝스럽던지. 음식 위에서 별들이 떠다는 것만 같은 느낌을 조성하는 음식에 결국은 침을 꼴깍하고 삼켰다지만 불구하고 제일 먹고 싶은 게 애피타이저로 나온 샐러드라 이거다.
* 바질 원산지는 동아시아이고 민트과에 속하는 1년생 식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에 많이 사용된다.
출장. 말 그대로 출장이었다. 심부름이 아니라 부탁이라 청했던 도경수의 말이 이제야 생각이 났다. 내 황금 같은 휴일, 시발. 말투는 여전히 명령어조가 살짝 섞여있었지만 꽤나 간절하게 청해오는 도경수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수락을 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한순간에 여름 계획표 마냥 짜놓았던 계획표들이 갈기갈기 찢어졌음을 확인할 때 결국은 속에서 울화통이 터짐을 반복했을 터였다. 나도 어지간히 운은 없는듯했다. 휴일에도 어린애를 봐야 한다니. 아무래도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는 감이 없지 않아 저를 사로잡기 시작했을 터에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돌보면 되는데요.
" 제 집에서 민석이 제우면 되는 거예요? "
" 아니. "
" 그럼요. "
" 우리 집에서 일주일 동안 지네. "
이 시발?
" 민석이 다른데 가면 낯가려서 잠 못 자. "
" ……부탁이라면서요. "
" 부탁이긴 부탁이지. "
" 바라는 게 너무 많잖아요. "
" 어쩔 수 없잖아. "
적응도 잘못하는 애를 다른 곳에 재울 수도 없고.
쉴 새 없이 포크로 찍어대는 제가 거슬렸는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웠는지. 도경수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칼과 포크로 샐러드를 중점에 두고 포개어 제 앞접시에 샐러드를 올려다 놓는 선의를 베풀었다. 이 행동으로 봐서는 전자나 후자, 둘다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자각해 감사함을 표하기도 잠시 말을 덧붙이는 도경수에 숙이려던 고개를 어정쩡한 위치에 멈춰버렸다. 여전히 도경수는 태연했다. 요구하는 태도도 태연했다. 부탁하는 태도도 태연했다. 그냥 다 태연했다.
" 왜 일주일이에요? 2일 정도면 비서 먼저 돌아온다면서요. "
" 비서가 도민석 비선줄 알아? 내 비서야. "
" … …. "
" 무턱대고 먼저 귀국할 애 아니거든? "
" ……누가 뭐라 했나. "
" 그리고 너 일주일 동안 휴가라며. "
" 네? "
" 원장인가 뭔가, 무슨 일 때문에 휴가라면서. 시간 딱 충분하겠네. "
" … …. "
" 아. "
그거 하나 물어봤다고 발끈하는 사람은 아마 도경수가 처음일 거다. 괜히 작게 언성을 높이는 도경수에 나이프를 들고 있는 손으로 흠칫하니 도경수는 이내 반쯤 채워져있던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시발, 성질머리하고는…… 더럽게 고약하다.
" 저 휴간 거 어떻게 알았어요. "
" … …. "
" 어떻게 알았냐니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이새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 "
" 또 뒷조사했구나. "
" ……그, 있잖아. "
" 도경수 씨 뒤에서 사람 캐는 게 취미에요? "
아니면 몰래, 뭐 이런 게 취향인 건가.
취존은 해줘야 한다는 게 도덕적으로 당연한 거였지만 취미한테는 포함되지 않는다. 앞 글자만 같다고 해서 그게 자동으로 성립이 되는가 본데 절대로 아니었다. 도경수가 성격파탄자인 건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만 이런 식의 취미를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쩐지 하는 행동부터 변태 같더라니. 괜스레 미심쩍은 낯빛이 지어지는 건 숨길 수가 없었다. 도경수가 물을 들이키다 말고 허공에 포커스를 옮겼다는 걸 눈짓으로 깨달았다. 그러니까 복잡하기도 복잡하고, 난해하기도 난해한 상황을 풀어헤쳐보면 도경수는 내 모든 사생활을 캐고 있었다는 걸 들킨 거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고 지금은 자신의 말로 인해서 제가 알았다는 게 팩트였다 이거다.
" 와, 진짜 무서워 지려고 그래. "
" 아니, 그, 비서가 먼저. "
" 왜 또 비서님 탓으로 돌리고 그래요? "
" ……하아, 그게 아니고. "
순식간에 갑과 을이 바뀐 느낌이 꽤 나쁘진 않았다. 꽤나 당황했는지 눈을 깜박이는 행동에 이어 포크의 끝을 이빨로 잘근잘근 깨물지를 않나. 애꿎은 입술만 깨물지를 않나. 이 상황에서 제가 취해야 할 행동은 별거 없었다. 늘 도경수가 해왔던 그 태연스럽게 행동 하나만 취하면 모든 상황은 끝이었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 까지 참을 때면 여전히 도경수는 안절부절이었다. 매번 당당하게 맞췄던 시선을 피하기까지 하는 도경수에게 집요하게 포커스를 두며 포크로 샐러드를 집다 말고 앞에 놓인 붉은색 냅킨으로 손을 뻗었다.
" 원래 이런 상황에선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 게 상책이지만. "
" … …. "
" 민석이 때문에 눈 감아 주는 거예요. "
" … …. "
" 집 비밀번호나 문자로 찍어줘요. "
" … …. "
a private talk. |
옹호자입니다.
최대한 열심히 쓸수 있도록 노력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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