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p de Foudre(쿱데포드레)
02
(부제: 원우가 내 원수인 이유)
초등학교 때 아빠 직장 때문에 이사를 가게 되었었다. 생판 모르는 동네였지만 사교성 하나는 그 누구와도 뒤지지 않았던 나였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전학을 갔었다. 새 동네의 친구들은 착해 보였고, 실제로 착했다. 선생님의 자기 소개 하라는 말과 함께 선 교탁에서 둘러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나와 갈등을 빚을만한 인물들은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때 안심했다. 별 문제는 없겠구나, 하고. 그때는 어렸으니까, 별 문제 없겠구나 라기 보다는 쟤네랑 잘 놀 수 있겠다, 라고 느꼈을 것 같다. 단 한 명만 없었어도 내 학창 시절은 꽤나 행복했었을 거다.
전원우는 무슨 이유에서 그랬었는지는 몰라도 나를 굉장히 싫어했다. 나는 걔한테 딱히 잘못한 것이 없었다. 걔가 무섭게 생겨서 유독 말을 걸지 않았던 건 있었어도 걔한테 악의를 가지도 무언가를 해본 적은 절대 없었다. 아무튼 걔를 아는 동안 걔가 내 욕을 남한테 하고 다니는 걸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 아이의 행동이 모든 것을 말해줬다. 나는 너가 싫고, 매우 언짢아. 딱 그렇게 쓰여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매일같이 나를 대하던 전원우였다. 나는 전학 온 주제에 물의를 일으키고 다니기 싫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요리조리 전원우를 잘 피해다녔고, 최대한 그 아이의 비유를 맞추려고 빌빌거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찌질했던 시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걔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였다. 역시 못된 사람은 어렸을 때의 떡잎부터 다르다. 걔는 내가 아이에 없어지길 바랐었을 거다.
그 당시 내 용돈은 한 달에 3000원이었다. 먹어 봤자 불량 식품을 사 먹는 게 다였고, 사봤자 딱지나 스티커나 지우개를 사는 게 다였던 나이었으니까. 그리고 전학 오기 전까지는 심지어 돈을 남겨서 따로 모아 두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전학 오고 나서는 아니었다. 전원우는 유치했다. 매일같이 나한테 지우개를 빌리고, 안 갖다 줬다. 가져다 주는 날에는 지우개의 몸통이 반 쯤 찢겨져 나가 있거나 구멍이 뽕뽕뽕 뚫려 있었다. 환공포증이 있었던 나로써는 지우개를 버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또 상한 우유를 내 가방에 넣어 놓질 않나, 벌레 싫다고 난리를 피우던 애가 멀쩡히 커다란 벌레를 잡아서 내 필통 안에 넣어놓질 않나....
그렇게 3년을 버틴 나에게는 중학교라는 비상탈출구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하늘은 무심하게 나를 전원우와 같은 중학교에 배정해주고 말았다. 심지어 나는 1학년을 건너 뛰고 2, 3학년을 전원우와 같이 보냈다. 3학년 때는 한 학기동안 짝을 안 바꿔 준다는 악명 높은 선생님이 담임으로 걸려, 전원우와 무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짝을 했었어야 했다. 그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 얄쌍하게 찢어진 전원우의 두 눈이 나를 같잖다는 듯 바라볼 때면,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늘이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전원우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 새끼한테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다른 건 없었다. 나는 그 새끼랑 장장 3년을 같은 교실에서 썩으면서 보냈다.
전원우는 굉장히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공부에 목을 매는 애도 아니었지만 전교 1등의 자리는 늘 전원우 거였다. 그렇기에 선생님들의 신임 또한 얻은 그 애였다. 반장은 도맡아서 하고, 누가 실수만 했다 하면 너는 원우처럼 야무지게 뭘 좀 할 수 없겠니, 이런 말이 들려올 정도였다. 찌질했지만 내가 전원우를 밟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공부를 걔보다 더 뛰어나게 잘 하는 방법밖엔 없었고, 그래서 더 피 터지게 공부했다. 그러나 나는 그 애의 턱 밑까진 쫓아올 수 있었어도 그 애를 이길 수는 없었다. 너 애쓴다. 전원우한테 들은 가장 치욕스러운 말이었다. 전교 2등, 경쟁이 치열한 우리 학교에서는 누구나 꿈에 그리는 등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날 집에 가서 펑펑 울었다. 그 말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그리고 지금도 내 앞에는 그 새끼가 앉아 있다. 저 너머 팀장실에 있는 전원우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아까 전에 먹은 점심이 얹혔는지 속까지 더부룩했다. 첫 날을 이렇게 불쾌하게 보냈는데, 앞으로의 회사 생활은 도대체 또 어떻게 적응해야 한다는 걸까. 다시 직장을 구하는 건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인데, 전원우랑 같은 부서에서 일하기는 더더욱 싫었다. 한숨을 쉬고 오늘의 간단한 업무를 보고 있자, 한 선배가 나에게 다가왔다.
"김세봉 씨."
"네?"
"김세봉 씨 아까전에 왜 우리랑 밥 안 먹었어. 우리가 세봉 씨 안 기다리고 너무 빨리 자리 잡아서 못 찾았던 거야?"
"네. 저도 당연히 선배님들이랑 먹으려고 했죠... 그런데 어디 계시는지 도통 모르겠어서...."
"앞으로는 우리한테 꼭 붙어서 가. 나 아까전에 깜짝 놀랐잖아. 식당 나가는데, 팀장이랑 세봉 씨랑 밥 먹고 있었어서."
왜 깜짝 놀랐는지 얘기해주려는 것 같은 선배였지만 나는 알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안 좋은 얘기가 나올 거였으니까. 전원우랑 나랑은 엮이면 안 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물과 기름처럼.
"원래, 전 팀장은 밥 따로 먹거나 윗 대가... 아니, 윗 사람들이랑 먹거나 남자 사원들이랑만 먹거든."
"아...."
"전 팀장, 보면 알겠지만 잘생겼잖아. 키도 크고, 스타일도 좋은 편이고. 여직원들이 엄청 꼬이거든. 장난 아니야. 그런데 오늘 전 팀장이 세봉 씨한테 그것도 직접 찾아가서 밥 먹었다면서. 화장실에서 다들 엄청 떠들어 대더라. 둘이 무슨 사이냐고."
"...그냥 원래 알던 친구에요. 만약에 누가 물어보면 그렇다고 해 주세요."
"아.... 그렇구나. 근데 진짜 이상하네. 전 팀장은 여자랑은 사무적인 얘기 빼고는 아무 말도 안 하거든. 정말로. 아무튼 이제는 우리랑 가. 괜히 걱정된다. 여직원들이 그런 거에 또 쌍심지 켜고 달려들면 곤란해져."
그건 전원우 특성이지. 전원우는 여자한테 관심 없기로 유명했었다. 전원우 별명이 만리장성이었다. 철벽이 그것 만하다고. 오죽하면 여자애들 사이에서 게이설이 돌았겠냐고. 그런 전원우가 유일하게 말 걸기 좋아하는(괴롭히기 좋아하는)나는 다른 여자애들한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 일이 또 반복된다면 나는 정말 죽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말에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는 팀장실 유리문을 살짝 째려보았다. 나는, 네가 정말 싫다.
*
"세봉 씨. 이거 팀장님한테 좀 갖다 줄래요? 내가 지금 바빠서...."
"아, 네.... 알겠습니다."
2주 후, 전원우는 다행히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주 5일 근무제라 그래 봤자 열 번 밖에 보지 않았지만, 전원우라면 나에게 엿을 먹이고도 남았기에, 나는 만족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석민 선배가 나에게 서류철을 넘겨주며 전원우에게 넘기라고 부탁했다. 근처도 가기 싫은 팀장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지만 선배의 부탁을 거절할 만한 짬밥이 되지 않는 나는 그냥 웃음으로 일관하며 팀장실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석민 선배님께서 갖다 드리라고 하셔서.... 여기 있습니다."
업무를 보고 있었던 건지, 모니터에 시선을 박아 두었던 전원우가 미동도 없더니, 내가 입을 떼자 마자 눈을 치켜 떴다. 싸늘한 저 표정, 난 그 표정이 그렇게 무서웠다. 트라우마가 있어서일까.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철을 받아 든 전원우였기에, 목례를 하고는 뒤를 돌았다. 바로 나가려고 했지만, 내 이름을 불러 오는 전원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세봉 씨."
"네."
"오늘 저녁에 뭐 해요?"
"집에 가죠."
"같이 퇴근 해요."
내가 왜요? 기가 막히단 표정으로 전원우를 보았지만 전원우는 오히려 능글능글 하게 웃을 뿐이었다. 도대체 왜? 네가 왜?
"저.... 무슨 용건이신지 궁금...."
"상사 말이잖아요. 하란 대로 해요."
"......."
"요즘 불경기라 재 취업 못 한다던데."
미친놈. 싸이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난 네 부모님이 세상에서 제일 궁금해. 어떻게 하면 저런 괴물을 낳을 수가 있을까. 넌 인간 아니야. 넌 인간이 못 돼. 상사한테 찍히면 답 없다던데, 난 찍혀도 제대로 찍힌 것 같다. 내가 네 눈에 띈 게 죄라면, 그냥 네 눈 앞에서 사라지면 되는 거니?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나는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그냥, 퇴근 시간에 세봉 씨 자리에 그냥 그대로 앉아 있으면 돼요."
"......."
"알겠지."
"......."
비굴하다. 팀장실을 나오면서 든 생각이다. 고맙다는 석민 선배의 말에 대충 끄덕이고는 내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내가 쟤한테 정말 무슨 잘못을 했더라. 모두가 다 착하고, 젠틀하고, 이성적이라는 전원우를 나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아냐, 그건 아니야. 인간 관계는 언제나 상호적이다. 누가 내 얼굴에 침 뱉으면 나도 뱉어야 되는 거고, 누가 날 미치게 싫어하면 결국 나도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건 자연의 섭리니까. 오늘만큼은 죽어도 퇴근하기 싫었다.
그러나 6시는 꽤나 빨리 찾아 왔다. 어차피 전원우는 퇴근 시간을 가지고 뭐라 쪼는 타입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직원들은 퇴근한 상태였다. 정말 짜증나는 건, 무슨 내가 전원우 애완견도 아닌데 말을 듣고 있다는 거였다. 잘리고 싶냐는 듯한 그의 말이, 나에게는 너무 서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곧 아빠는 명예 퇴직을 하실 거고, 나는 학자금 대출 받은 것도 조금이지만 마저 갚아야 하는데. 일자리가 없으면 안 되잖아. 이건 생존의 문제다. 혼자 합리화 하면서 커서가 깜빡이는 모니터를 계속 바라봤다. 이윽고 전원우가 팀장실에서 나왔다.
"기다릴 거면서 표정은 왜 그랬어요."
"......."
자기가 무슨 조련사라도 되는 듯한 저 말투랑 표정. 너무 싫다. 내가 무슨 네 개야? 나도 사랑 받고 자란 외동딸이야. 난 아직도 네 만행들을 잊을 수가 없어.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 빨리 회사를 나오고 싶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전원우가 옆에서 뭐라고 떠들건 신경 쓰지 않고 전원우가 가는 대로 따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3층에 멈추자, 전원우는 차키를 꺼내 문을 열었고, 타라고 했다. 정말 타기 싫었지만 그냥 탔다. 난 여기서 저 새끼가 더 승진할 때까지 버텨야 되니까.
"이제 회사 아니니까 그냥 말할게요."
"......."
"너 나한테 왜 이러는데?"
"......뭐가."
"야, 나는. 기절할 뻔했어. 내가 널 따라 다니는 건지, 아니면 너가 나 따라오는 건지. 난 너 그만 보고 싶다고 말 했었잖아. 근데 왜...."
"여기 온 건 너야."
"......하."
"그리고, 옛날 일은."
"옛날 일은 옛날 일로 하자? 그런 얘기 하고 싶은거면, 제발 조용히, 아니 그냥 닥쳐. 제발."
"......."
"너 스스로 가슴에 손 얹고 말해 봐. 너가 나한테 했던 짓. 너가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넌 기억 하나도 안 나겠지만, 나한테는, 나한테는.... 아직까지도 화가 나, 나는."
차라리 전원우랑 서로 윽박지르고 싸우면 서로 말도 안 할텐데, 전원우는 내가 핏대를 세울 때마다 싱긋도 안 한다. 그게 더 화가 난다. 개야, 짖어라. 난 내 할 일 한다. 이런 마인드인 것 같아서. 이런 순간에만 입을 싹 닫는 전원우가 너무 미웠다. 너, 진짜 네가 어떤 애였는지 알기는 하니?
"나 걔 정말 좋아했어. 고등학교 때 걔도, 대학교 때 걔도."
"......."
"근데? 너가 뭔데 나 맨날 뒤에서 엿 먹이는데."
"......그건."
"나, 고등학교 때 1년 반 동안 혼자 애들 눈치 보면서 너랑 석식 먹었어. 너 그것도, 그것도. 다 일부러 그랬던 거잖아."
"......."
"네가 그랬어. 난 네가 웃는 거 보면 짜증난다고. 그래서? 그렇게 싫었어?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 다 쫓아낸 거야?"
"......."
"넌, 누군가가 그렇게 싫어지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네 감정 속여 가면서도 엿 먹여도 된다고 생각하니?"
"......속인 거 아니야."
"그럼 그게 뭔데!"
처음이었다. 전원우한테 그렇게 소리질러 본 거. 전원우는 물론 싱긋도 안 했다. 그래도, 적어도 나는 전원우가 듣고 있다는 점에 대해 만족했다.
"나 네가 웃는 거 싫었어."
"......아. 그래?"
"그냥 짜증났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내 앞에서는 웃지도 않던 애가."
"......."
"다른 애 앞에서는 그러니까 짜증 나더라고."
"......전원우, 핑계...."
"그냥, 그 뿐이야."
전원우는 끝까지 이렇다. 표정에 그 어떠한 변화도 없이, 앞만 본 채 툭툭 던지는 말들이 잔인했다. 난, 너를 이해를 못 하겠어.
쿱데포드레...의 뜻은 네이버에 치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일단은 서치하지 말아 주세요 ㅠㅠㅠ
제목이 정말 전부에요.. 스포 당하니까 보지 말기!ㅋㅋ
독자분들이 별로 없을... 것 같아요ㅠㅠ 작가의 말을 보고 있는 당신들은 인내왕입니다... 똥글을... 흐엉ㅠㅠㅠㅠ
그래도 제가 감히.. 끼적여본 글이니... 읽어 주셔요ㅠㅠ엉엉
일단 원우랑 여주랑 많이.. 싸우죠.. 네. 원우가 잘못했으니까요..ㅋㅋ원우 너 정말!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도 과거에 관한 얘기가 자주 삽입돼서 나올 거에요. 그래야 원우랑 여주의 관계가 조금씩 납득이 가거든요..ㅋㅋㅋ
원우는 집착왕 컨셉이에요. 대화를 보시면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ㅋㅋㅋㅋㅋ 지금 원우가 많이 흘리고 있어요!!ㅋㅋ
암호닉은 읽어주시는 것도 감사한데ㅠㅠ얼마든지 받습니다!!ㅋㅋ
그럼 아무튼 감사드려요ㅠㅠ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