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전원우] Coup de Foudre 03(부제: 전팀장의 50가지 그림자)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10/17/14/eeb42efabf4302cdbdb7f78977d6ae21.jpg)
Coup de Foudre
(부제: 전팀장의 50가지 그림자)
03
내가 처음부터 전원우가 싫었던 건 아니었다. 전학 온 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누군가를 싫어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아무튼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단지 좀 무섭다고 느꼈을 뿐이지. 그리고 처음엔 지금 생각해 보면 화가 나는 장난들도 싫었지만 정말 장난이라고 생각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싹 사라졌다. 입학식 날, 내가 배정받은 반에서 창가 자리에 앉아서 밖을 보고 있던 전원우를 발견했을 때의 그 황당함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전원우는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 뭐 저런 말라깽이한테 관심을 갖나 싶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게 그만큼 우리 학교에는 인물이 별로 없었다. 전원우가 취향 저격하는 상이라나 뭐라나, 내 앞에서 너무 멋있다고 떠들어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맞장구 치는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진짜 아무도 청소를 안 했어요?"
"응. 선생님도 미안하게 생각해. 근데 청소는 해야 되잖아. 너랑 원우가 대신 해 줄래?"
총체적 난국이었다. 내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유독 시키는 일이 많았었다. 서류 정리 좀 해 줘라, 이거 좀 누구한테 갖다 줘라.... 3학년 때 전원우랑 임원이었던 나는 덕에 허드렛일을 죽어라 했었다. 방과후에도 남아서 무언가를 해야 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전원우가 신경 쓰였었다. 무서웠으니까. 나는 전원우가 나에게 사소하게 내뱉는 말들에 상처를 받았었고, 그래서였는지 전원우 옆에 있으면 늘 가시를 세우게 되었었나 보다. 눈알을 도륵 도륵 굴리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교무실 안이 싸해졌지만 대답 하기는 싫었다.
"할게요.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저희가 문 잠그고 갈게요."
"그래? 그럼 좀 부탁해. 고마워."
난 너가 거절할 줄 알았는데. 입을 쩍 벌리며 전원우를 바라봤다. 선생님 앞에서는 잘도 웃는 전원우가 신기했다. 사회생활 잘 하겠네, 너. 그래서 결국 나는 교복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매고 빗자루를 들어야만 했다. 층 전체가 텅 비었는지, 고요함이 맴도는 건 복도 뿐만이 아니었다. 서로 얘기를 나눌 법도 한데, 나는 전원우한테 엄청난 괴리감을 느꼈었고, 거부감이 먼저 들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교실 바닥을 쓸었다. 몇 분이나 쓸었을까. 전원우는 나를 지나치며 말을 툭 내뱉었다.
"너만 하기 싫은 거 아닌데."
"......아니, 나는 그게."
"저거 안 쓸어?"
내 발 밑에 떨어져 있는 휴지 뭉치를 가리킨 전원우가 명령조인지, 그냥 의문문인지 모를 말을 내뱉더니 나를 지나쳐 갔다.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사람 무안하게 하는 데 뭔가 있는 건가. 걔가 4분단을 쓸면 내가 1분단을 쓸었고. 걔가 2분단을 쓸면 나는 복도를 쓸었으며, 걔가 대걸레를 빨러 갔을 땐 내가 3분단을 쓸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에겐 보이지 않는 벽이 놓여져 있는 듯 했다. 그렇게 30분이나 흘렀을까. 숨막히는 고요함을 깬 건 울리는 내 핸드폰 벨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창 밖에는 빗소리가 청명하게 울려퍼졌다. 뭐야, 오늘 비 와?
"......여보세요."
-응, 세봉아. 오늘 우산 가지고 학교 갔지?
"아니.... 나 오늘 안 가지고 왔는데.... 엄마 오늘 안 와요?"
-오늘 늦을 것 같아서 지금 전화한 건데. 우산을 안 갖고 갔어? 어떡하니? 오늘 전국적으로 소나기 온다고.... 하던데.
"......아휴."
-친구 없니? 친구랑 같이 쓰고 가면....
"아.... 그렇구나. 아.... 알겠어요. 이따 봐."
하긴, 밖에선 소나기라고는 하지만 꽤 굵은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먹구름이 자욱하게 깔린 하늘을 보니 금방 그칠 비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청소 도구함에 빗자루를 정리해 놓던 전원우가 전화를 끊자마자 한숨을 내쉬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난 똑똑히 봤다. 전원우 손에 들려 있는 나름 커 보이는 우산을. 그렇지만 나는 걔한테 같이 쓰고 가면 안되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바보 같았지만 나는 먼저 중앙현관으로 재빨리 내려갔다. 가방으로 비를 막고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 모습을 전원우한테 보였다가는 자존심이 상해서 죽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저 사이를 뚫고 지나갈 수 있을까. 이를 악물고 머리 위로 가방을 든 채 발걸음을 내딛자, 실내화가 밖에 나가기 무섭게 짙은 색으로 변해가며 젖기 시작했다. 소름 끼치게 차가운 빗물이었다. 왜 나는 학교에서 집까지 가깝지 않은 걸까. 왜 신호등을 2개나 건너야 할까. 재수 없게도, 내 앞에서 신호가 걸려 버렸다. 더군다나 그 거리는 사거리였다. 다시 초록불이 들어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주변에 비를 피할 만한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우산이 없으면 빌려달라고 묻는 게 정상 아니야?"
"......."
어느 순간, 비가 멈췄나 싶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우산이 나를 덮고 있었고, 내 앞에는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는 전원우가 서 있었다. 비를 맞은 내 모습을 바라보던 전원우의 미간이 좁혀질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수치심을 느꼈다. 넌 되게 한심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한심하다, 너."
"......."
"그냥 쓰고 가."
"......아니, 괜."
"너 쓰라고."
"......."
"너 그러는 거 한심하니까, 그냥 쓰라면 쓰라고."
*
난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나를 한심하게 내려다 보던 그 애 얼굴이 생각이 나서, 힘들었다. 그리고 난, 지금 그 새끼와 또 점심을 먹었다. 난 아직도 너를 이해를 못 하겠어. 차 안에서 화를 냈던 날, 전원우가 했던 대답은 상상 그 이상으로 전원우다웠고, 난 그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장 인간다운 대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원우는 나한테 뭘 받아내고 싶은 건지 끈질기게 질척댔다.
"커피 안 마셔요?"
"안 마셔요."
"그냥 사줄 때 마시면 좀 덧나나?"
"예. 덧나구요, 건강에도 안 좋구요. 돈 낭비구요."
"내 돈이잖아요."
"그 돈 차라리 불우 이웃 돕기에 쓰세요."
기가 차서. 너가 나한테, 도대체 왜? 내가 그렇게 전원우 신경을 긁는 소리를 했는데도 저 모양이라고. 능글능글하게 웃는 전원우를 뒤로 한 채, 내 자리로 향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오늘도 퇴근 같이 하자는 뻔뻔한 말 뿐이었다. 싫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온데 간데 없어진 전원우였다. 그리고, 뒤늦게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모든 여직원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그러고,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화장실로 갔다. 그냥 화장실에 가지 말 걸.
"그, 영업팀에 새로 들어온 사람 있잖아. 김세봉 씨였나? 아무튼. 그 사람 전 팀장이랑 뭐, 사귀어?"
"뭐?"
"아니, 둘이 맨날 같이 다니던데? 전 팀장이 엄청 치대던가. 모르겠다. 아무튼 전 팀장이랑 밥을 먹질 않나, 아까 전에 전 팀장이 커피 안 마시냐고. 조르던데?"
"신입사원이? 무슨 연결고리가 있다고?"
"원래 알던 사이라는데? 사귀는 거 아니야, 그러면?"
"전 팀장한테 들이댄 여자들을 봐. 그 사람이랑 사귀겠어? 눈이 그렇게 높은데?"
"아니 왜. 전 팀장 임원진 아들이잖아. 서로 돈 보고 그러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뭐 우리가 모르는 매력이 있을 수...."
"...저 잠깐 지나갈게요."
딱 봐도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식의 대화가 오가는 화장실이었다. 화장을 고치고 있었던 건지 눈을 내리 깔고 마스카라를 하고 있는 그 사람들 뒷통수를 한 대 씩 갈기고 싶었다. 내가 들어온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신나게 떠들어 대는 꼴을 볼 수가 없어서 잠깐 지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자기들이 실수 했다는 건 알았는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 너네 같은 애들 줄기차게 많이 봤어. 사람들 다 똑같더라. 나도 화장실에서 대충 얼굴을 고치고 손을 씻었다. 아직도 할 얘기가 더 남았는데 내가 있어서 불편한 건지 입을 닫은 그들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 쉬었다. 손을 털어 물기를 없앤 뒤, 화장실 문을 열자 마자 저 멀리 탕비실에서 커피를 들고 오는 전원우가 보였다. 아니, 왜요, 도대체 왜!
"나 그래서 혼자 커피 마셔요."
"아니, 그래서.... 네. 그러시군요."
"세봉 씨 남자친구 있어요?"
"......아니. 예?"
뒤에 아까 그 화장실의 미친년들이 있는 게 뻔한데, 전원우는 자신이 이 회사에서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알면서 그러는 건가. 내 귀에다 대고 대뜸 남자친구 있냐고 묻는 말에 정말 학을 뗄 뻔했다. 내가 너한테 그거 말해줄까봐?
"대답하는 게 어려워요?"
"있으면요?"
"채승철이었나 최승철이었나."
"......팀장님."
"아, 최승철이었나? 잘생겼었는데."
"......."
"기억 나죠?"
저 미친 놈. 내가 전원우한테서 제대로 엿 먹은 일.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서 그 이름을 뻔뻔하게 올리는 전원우를 보자니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칠 것만 같아서 입술만 꾹 깨물고 있었다. 너는 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는 하니?
"왜 그렇게 사람이 못됐어요?"
"......."
"내 앞에서 최승철 들먹이지 마세요. 팀장님이 입에 올릴 이름 아니에요."
"그 형 아직도 그 때 그 여자랑 만나던데."
"......팀장님."
"그거 원래 세봉 씨 자리였을 텐데."
"......하."
"아쉽죠."
*
시간은 흘렀고, 나와 전원우는 나이를 먹었으며, 우리 둘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전원우는 여전히 유치했고, 심지어 뻔뻔해지고 능글 맞아졌다. 최승철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부터 전원우와 상종하기 싫다고 느낀 나는 애초부터 퇴근을 같이 할 생각조차 없었기 때문에 회사를 미친듯이 빨리 빠져나왔다. 옛 말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전원우는 나는 놈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해서든 전원우와 나란히 걷지 않기 위해 앞으로 1보씩 빨리 걸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좀 천천히 가면 안 돼?"
"사과 하고 싶어서 계속 나한테 이러는 거야? 유치하게?"
"......."
"정말 그런 의도였으면 더 이상 머리채 잡지 말고 그냥 미안하다고 해."
"......."
"나 너한테 많은 거 안 바라. 이미 너한테 정 떨어질 거 다 떨어지고, 네 인간성 다 알아, 나도."
"......."
"그냥 미안하다고 하는 게 어려워? 그렇게 자존심이 세? 무슨 자존심도 명품인가 봐?"
그렇게 말 걸기도 싫었던 애랑 대화가 술술 오가는 걸 보면 시간이 지나긴 지났구나 싶었다. 싫어함의 감정에는 미동도 없었지만 적어도 어떻게든 피해 다니려고 했던 옛날보다는 낫겠구나 싶었다. 쏘아붙이듯 말하자, 전원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뒤를 돌아 보니 전원우는 살며시 웃을 뿐이었다.
"너 귀엽다."
"......야. 나 너랑 장난치자고 말하는 거 아니라고."
"장난 아닌데."
"......너 진짜 이상해졌다. 싫다고, 싫다고, 그렇게 티를 냈으면서. 이젠 너 싫어하는 사람한테 그러는 걸로 바뀐...."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전원우였지만 이렇게 대놓고 안 듣는 걸 보니 짜증이 날 것 같았다. 가방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 전원우를 보며 나는 그냥 말을 끊고 내 발 걸음을 돌렸다. 같이 가기 싫으니까. 뒤를 돌자 마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난 10년 전 그 날처럼, 우산이 없었다. 넌 또 나를 세상에서 가장 미개한 사람 보듯 보면서 한심하다고 나를 사뿐히 즈려밟고 가겠지.
"당연히 우산 없을 거고."
"......."
"뉴스 좀 보고 살아."
".......'
"싫어도 붙어. 너 그러다 비 다 맞고. 감기 걸리고."
우산을 펴 든 전원우가 무슨 도자기 만지듯 내 어깨를 살짝 끌어당기더니 금방 손을 뗐다. 난 전원우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정상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원우는 짓궂다. 그리고 전원우는 못됐다. 그렇지만 몇 년 전에도, 전원우는 때로는 악마같기도, 천사 같기도 한 사람이었다.
"최승철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그 때 일 미안하다고 생각 안 해."
"......너."
"가끔 그런 생각도 해."
"......무슨 생각인데."
미안하다고 생각 안 해. 딱 잘라 말하는 전원우를 노려보았다. 너가 그런 말을 왜 해.
"그 여자 자리 아마 네 자리였을 거야."
"......전원우."
"난 그게 소름끼치게 싫었어."
"......."
"네 자리가 거기가 아니길 바랐어."
"......."
"그래서 그랬어. 나도 알아. 나 못됐던 거."
전원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로 향하는 건지는 몰라도 무작정 빗소리를 따라 걸어가는 우리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들이 섞여 나오는 것 같았다. 난 전원우가 미웠다. 그리고 전원우를 아직까지도, 속좁게도 전원우를 용서하지 못한다. 난 전원우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었다.
"지하철로 가는 거 아니야?"
"......."
"우산 들고 가."
"......싫어."
"들고 가라면 좀 들고 가라고."
"너 없잖아."
"나 우산 두 개야."
"......."
"나 그 때부터, 우산 두 개씩 들고 다녀."
출입구 앞에서 나에게 우산을 건내주고, 또 다른 우산을 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가는 전원우를 나는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원우의 왼쪽 어깨는 많이 젖어 있었다.
여러분 ㅠㅠㅠ 제가 왔어요,,, 허허
똥글에 늘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너무 감사드려요ㅠㅠ암호닉은 나중에 몰아서 적을게요ㅠㅠ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ㅠㅠ
원우는 참 저도 알다가도 모를 캐릭터인 것 같아요ㅠㅠ오늘 승철이라는 인물이 등장했는데요ㅠㅠㅠㅠㅠ승철이는 간간히 나올 거에요!
그리고 원우는 지금 굉장히 많이 티를ㅠㅠㅠㅠㅠ내네요ㅠㅠㅠㅠㅠ 제가 이런 캐릭터를 상당히 좋아하는데 원우 취향저격 탕탕 ㅠㅅㅇ ! 인 것 같아요ㅠㅠㅠ
둘이 빨리 화해해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
늘 읽어주시고 더불어 댓글까지 손수 작성해주시는 분들 너무 감사드려요~~
굿잠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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