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ㅡ Written by.세모론
“제발 좀 가만히 있어!!”
불안하게 거실을 왔다갔다거리며 온 집안을 헤집어 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손톱까지 물어뜯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보고, 결국 거남이 형은 컴퓨터를 하다말고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경 쓰여 죽겠다느니 정신 사납다느니 뭐라 뭐라 하는 거 같았지만 나는 그 신경질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지금 내 고민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기 때문에. 아아 어떡하지. 전화를 해? 말아? 해? 하지 마? 진짜 어떡하지? 으악, 미치겠다!
“느악!!!”
“으악!! 좀 조용히 좀 하라고!!”
결국 터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소리치자 형도 쥐고있던 마우스를 집어던져버리며 소리쳤다. 남에 집에서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민폐 끼치지마! 라고 형에게 소리치니 앉고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나를 지나쳐 현관문으로 향하는 형이었다. 발소리가 아주 쿵쾅쿵쾅, 온 집안을 울리는게 내가 뭐라 했다고 삐진 모양이었다. 나보다 나이는 더 많으면서 속은 나보다 훨씬 좁다. 자기 말로는 여린 마음을 가졌다나 뭐라나 했던거 같은데. 여린 마음은 무슨, 소리친건 형 잘못이잖아!
“어디가!”
“개새끼. 닮은 동물도 하필 개여가지고 성격도 아주 개 같고 ― .”
내가 예의상 붙잡아주면 고마운줄 알아야지 어디서 기다렸다는 듯이 쌍욕 퍼레이드를 입 밖으로 우수수 내뱉고 난리야? 형은 내가 더러워서 여기서 컴퓨터 안한다고, 너 보니까 나도 미칠 것 같다고, 왜 나한테 뭐라 하냐고 등 아까 내가 정신 사납게 군거랑 잠깐 뭐라했던 것에 대해 불만을 열심히 쏟아내었다. 듣다 보니 끝이 없어서……와, 그걸 어떻게 참았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형의 불만을 한 귀로 흘려 보내주었다. 너는 떠들어라 나는 계속 하다만 고민을 할 테니.
“나 간다!”
결국 불만을 다 시원하게 쏟아내고 어깨를 들썩이는 형에게 뭐, 딱히 간다는데 붙잡을 맘도, 내가 정신없이 군게 맞으니 할 말도 없어서 나는 군말없이 잘 가라고 배웅을 했다.
“오라고 전화하면 죽는다.”
“와서 밥하라고 전화하면?”
“그것도 죽어.”
“근데 형.”
“뭐.”
“전화 할까, 말까.”
“해, 새꺄.”
“누구한테 전화한다는 소리인지 알긴 알아?”
“몰라. 관심 없어. 못된 놈.”
형이 현관문 뒤로 사라지고, 현관문 앞에 서있던 나는 커다란 한숨과 함께 어깨를 한껏 내려뜨렸다. 김성규한테 전화 할까 말까를 물은 거였는데……. 형이 알았더라면 또 게이니 뭐니 했겠지? 말 안하길 잘했다. 분명 김성규라고 했으면 신발을 다시 벗고 들어와 게이는 안 된다며 설교를 늘어놨을게 분명했다. 엄마를 생각해 봐라, 커밍아웃은 안 된다는 그런 개소리 말이다. 저번에 김성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발악을 했었는데도 아직도 내가 게이인 걸 의심하는 형. 어휴, 나는 힘없이 휘청휘청 소파로 걸어가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이 마냥 내 몸을 던졌다.
내가 방송을 마치고 내려오니 거남이 형은 정말로 성규의 전화번호를 해킹해서 나에게 김성규의 번호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었다. 그러곤 하는 말이 너무 쉽게 해킹되던데? 였다. 형은 나에게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뒷머리를 글쩍였다.
김성규의 번호를 해킹하라고 소리쳤었던 그때는 어떻게든 빌어먹을 김성규의 번호를 알아내서 뭔 말이라도 할 심정이었지만 막상 김성규의 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고 보니 이거 진짜 전화를 해야 되나 하는 고민이 무지막지하게 밀려왔다. 내가 잘 흥분하는 성격이라 좀 열받아서 오버를 했던게 제일 마음에 걸렸다. 당연히 김성규에게 할 말은 많았다. 그 때 내가 왜 야하다, 라고 했는지 해명도 해야했고 트리클로버에 남우현 게이설을 퍼트린 장본인인 김성규에게 내가 왜 게이냐고 따지기도 해야 했으니까.
내가 김성규의 번호를 받았던게 스케줄이 막 끝난 새벽 3시 반 쯤이여서 번호를 받은 그 때에는 바로 전화를 하진 못했고, 지금까진 계속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만 하고 앉아있다. 밤새 몇번이나 초록색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했는지 모르겠다. 핸드폰을 집어던지며 발악하기도 수십 차례. 고민하느라 잠도 못자 다크가 발끝까지 내려왔다. 지금 이 꼴로 샵에 가면 내 담당 메이크업 아티스트 누나가 끔찍하다며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겠다. 오늘 저녁쯤에 라디오 하나가 있어서 망정이지. 이 상태로 밖에 나갔다간 내 엽사를 더 늘리는 행위밖에 되지 않겠다.
하…….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 전화 하나 때문에 밤도 쫄딱 지세우고. 마치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까말까 고민하는 사람마냥. 남우현아 김성규 좋아하니? 에휴.
“돌겠네, 진짜.”
내가 왜, 이미 수십 번 마음먹은 김성규에게 전화를 하자 싶으면 손이 덜덜 떨려오고 땀이 주륵주륵 나고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려 호흡곤란 증세가 오는지를 모르겠다. 정말 심각하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왜 이리 긴장을 하고 있는 게야? 나는 당당해야해! 왜냐면 나는 피해자니까! 그렇지 남우현? 대답하란 말이야, 어서. 하, 정말 김성규한테 전화하는게 뭐라고 이 난리지? 그 통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걸, 어제 새벽부터 덜덜 떨고 있는 너를 알기나 하냐 남우현. 나는 진짜 잘못한거 하나도 없는데. 찔릴것도 없는데. 왜……. 젠장.
주머니에 들어있는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 형 말대로 한 번 전화해보는 거야! 사나이가 전화 하나 못하고 빌빌 대고 있기는. 창피하다, 새꺄. 남자가 가오가 있어야지. 지금 이게 맞는 말인가? 모르겠다.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헤롱헤롱. 설마, 김성규한테 쪼는건 아니지 남우현? 절대 아닙니다! 그럼 어서 통화버튼을 눌러! ……네! ……누르고 말았다, 젠장.
내가 통화버튼을 눌렀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른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고 김성규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렸다. 쿵쾅쿵쾅,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크게 뛴다. 통화 연결음이 이렇게 무서울줄이야. 달달, 다리가 저절로 떨렸다. 손톱을 물어뜯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이내 몇 시간 같던 몇 초가 흐르고 딸깍, 하는 소리에 나는 바보같이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여보세요?」
“…….”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김성규 특유의 목소리에 머릿속이 순식간에 하얘져 버렸다. 어, 어…….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아, 그.”
「누구세요?」
“나……남우현인데…….”
「뭐?!!」
김성규가 갑작스럽게 빽, 소리치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들고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뭐, 뭐야! 얘는 왜 갑자기 소리치고 그래! 듣는 사람 놀라게! 엉엉.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에 땀이 줄줄 흘러 핸드폰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핸드폰을 반대편 손에 넘기고 땀에 절은 손을 바지 위에 쓱쓱 문댔다. 그나저나 나는 왜 두 무릎을 딱 붙이고 허리를 꼿꼿이 핀 채 정자세로 김성규의 전화를 받고 있는가. 흡.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너, 어떻게 내 번호 알아?」
“어? 그 건…….”
성규의 날카로운 물음에 말문이 턱하고 막혔다. 어, 그게 말이야. 사실 니 아이디 좀 해킹 했어, 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 이 상황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니, 바보. 나는 열심히 내 뇌세포를 태워가며 그럴싸한 거짓말을 지어내려고 하는데 딱히 좋은게 생각나지 않는다. 아, 생각 좀 해보라고 이 연분홍 뇌야.
“깊, 깊은 사연이 있다아…….”
「뭐? 사연?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이 찐따, 찌질이같은 남우현아! 왜 자꾸 말을 더듬니. 그리고 고작 생각해낸게 깊은 사연? 아아악! 미치겠다! 이건 흑역사가 될 게 분명해. 제발 며칠 동안 니가 김성규를 욕했던것 같이 당당하게 말하라고, 이 주둥아리야. 아주 청산유수처럼 말 잘했잖아. 응? 니가 왜 말을 더듬어, 너는 피해잔데! 가해자가 당당한 우리나라의 모순을 내가 여기서 느끼게 되다니. 기뻐서 눈물이 나려고 그러네. 젠장맞을.
“후하, 후하…….”
「지금 뭐해?」
깊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무아미타불……. 후하, 이제야 좀 진정되고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다. 그래, 완벽한 옴므파탈인 남우현 니가 왜 저딴 못생긴 김성규한테 쫄고 있어? 말도 안돼! 나는 그제서야 목을 큼큼, 풀며 제대로 말할 준비를 했다.
“김성규.”
「야 너 나보다 어리거든? 누가 맘대로 반말 쓰래.」
“아씨,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그래, 너 이 번호 어디서 알아냈는지가 더 중요해.」
“……있어, 니가 모르는 방법.”
「죽고 싶냐. 빨리 안 불어? 누가 알려줬어.」
잘하고 있나 했더니 왜 죽고 싶냐는 성규의 목소리에 덜컥 겁먹은 거니 이 찌질이 남우현아. 절망스럽다 진짜. 됐고, 이제 너의 특유의 능글거림을 뽐낼 차례야. 얼굴에 철판을 깔아라. 아자, 아자.
“다 아는 수가 있지.”
「스토커냐?」
“참나, 내가 뭐하러 너의 뒤를 캐고 다녀?!”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는 게 심히 수상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 지금 딱 내 스토커 같거든? 그리고 반말하지 말라고! 기분 나빠.」
“싫은데?”
「깝치지 마. 때리고 싶어지니까.」
“때려보던지.”
「나의 안티심을 폭발하게 하지 말아줄래?」
“너야말로.”
「뭐? 너한테 안티심이 어딨어.」
“니가 내 안티니까 나도 니 안티야.”
「유치하긴, 쯧쯧.」
“뭐가 유치해!”
내가 녀석을 슬슬 짜증나게 하려고 깝치다가 오히려 내가 녀석의 말놀림에 발끈하고 말았다. 녀석의 수에 넘어간 것 같아 기분이 더러워졌다. 역시 패기 넘치게 내 팬페이지에서 나를 깔 때부터 알아봤어, 보통 놈이 아니야. 아랫입술을 윗니로 질겅질겅 씹으며 애써 끓어오르는 패배감을 묻어두고 어떻게 녀석을 골탕 먹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저 수화기 너머로 살포시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 거 같았다. 어? 뭐야 저 웃음소리는? 내가 뭐가 유치하냐고 발끈한게 웃기나? ……이놈의 김성규를 진짜.
“야, 너 왜 웃어.”
「안 웃었어. 됐고, 누가 핸드폰 번호 알려줬냐니까?」
“웃었잖아. 웃었지?”
「아, 누구한테 내 번호 받았냐고!!」
“누구한테 받았을까요? 알아맞혀보세요~”
「아, 남우현 진짜.」
“으하하하, 내 능력껏 구한거야. 오해하지마.”
「웃기고 앉아있네. 니가 능력은 무슨.」
“너 자꾸 나 무시한다? 너 나 몰라? 나 남우현이거든?”
「그리고 나는 너의 안티에요.」
아 맞다. 김성규는 내 안티였지. 가장 큰 핵심을 깜박했다. 근데 왜이렇게 김성규 놀리는게 재밌지? 이러면 안되는데.
「휴……. 알겠어, 누구한테 내 번호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전화하지마.」
“뭐? 왜! 너 내가 너한테 좀 깝죽댔다고 삐졌냐?”
「삐지긴 누가 삐져? 멋대로 예측하지마! 내가 애도 아니고 삐지긴 왜 삐져!」
“삐졌구만. 미안해, 장난 좀 쳐봤어.”
「……안 삐졌다고, 이 빌어먹을 남우현아.」
으하하하하, 나는 녀석의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수화기 너머로 작게 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왠지 뭔가 정말 김성규다워서 나는 한참이나 즐겁게 웃어댔다.
「야, 작작 웃고. 전화 끊는다.」
“응? 왜. 끊지 마. 아씨, 안 웃을게.”
「참나, 너 나랑 전화하고 싶어?」
“아니 그건 아닌데, 놀리는게 재밌어.”
「닥치고 전화하지마. 알겠지? 내 쪽에서도 니 전화 안 반가우니까.」
“와, 차가운거 봐. 누가 보면 공주인 줄 알겠네.”
「니가 출국할 때 계란 폭탄을 맞고 싶구나? 공주는 또 무슨 헛소리야.」
“아씨, 이러지마! 왜 이렇게 까칠하고 난리야?!”
「너한테만 까칠한거야. 끊으라고, 좀.」
“……왜 이러실까요, 김성규씨.”
「아무한테나 능글거리지마.」
“그럼 너한테만 능글거릴게.”
「아씨,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 끊어!」
“안돼, 안돼! 너한테 할 말 있다고!”
「난 너랑 할 말 없어.」
“그, 그 때 내가 너한테 했던 말……해명해야 해.”
「해명 필요없어.」
“이씨……트리클로버에 나 게이라고 니가 써놨지.”
「…….」
“내가 모를 줄 알았냐?”
긍정의 침묵. 어휴,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은근히 순진한 구석이 있는건지 아님 멍청한건지. 후자라고 생각하면 김성규한테 맞겠지? 혼자 생각하자. 그나저나 이거 가지고 김성규를 삶고 지지고 볶으면 되겠네. 니가 내 게이설 퍼트렸지? 인간이라면 조금이라도 죄책감이 들겠지. 자, 이제 승리는 내 차지군.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끊어.」
“응? 왜!”
「아씨, 끊을거야.」
“어, 어? 그럼 나 너희 집 쳐들어간다!”
「뭐? 너 내 집도 알아?!」
는 무슨. 당연히 모르지. 하지만 곧 다시 거남이 형한테 부탁해서 집 주소까지 캐낼 생각이야. 지금 나는 단지 너를 만나야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떠보는 것뿐이라고 김성규. 왜이렇게 놀라고 그러니. 그러니까 내가 끊지 말라고 했잖아. 괜히 나를 협박해서 화만 불러 일으키는구나.
“당연하지.”
「너 만나면 죽여 버릴줄 알아.」
“어? 그럼 만나? 만나는 거다!”
「으으, 짜증나!」
“헤헤. 파라다이스 카페 알아?”
「어…….」
“그럼 거기 서 봐. 음……12시 반까지!”
「아씨. 알겠어.」
성규가 신경질 적으로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스프링마냥 소파에서 튀어 오르며 기쁨에 젖은 광란의 댄스를 췄다. 와, 드디어 비싸신 김성규랑 만나는구나. 아싸! 이리저리 온 거실을 뛰어다니며 춤추다가 문득 내가 왜이리 기뻐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갑작스럽게 들었다. 마치 학수고대하던 여자와의 데이트 약속을 따낸것 마냥…….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내 꼴이 딱 그거여서 나는 멘탈이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난……게이가 아닌데? 왜 기뻐하는 건가. 도대체 이 넘쳐흐르는 엔돌핀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안티 김성규와 갖는 두 번째 만남이 도대체 뭐라고. 하하하, 어이없는 웃음이 입술을 가르고 튀어나온다. 사실 전화로 대화하면 되는걸 굳이 약속을 잡아내서 만나자고 한 것도, 충동적이었다. 전화를 하고, 녀석이 누가 전화번호를 알려줬는지 말하라고 닦달했을 때만해도 김성규와 만남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런 거지? 내 입은 왜 그따위로 움직였을까. 말해봐 이 남우현아. 김성규가 보고 싶었니? 에이, 설마. 내가 왜 이러는 지 누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
“헐!”
그렇게 또 의미 없는 삽질을 하고 있다가 시계를 딱 봤는데 준비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으악, 안돼!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뭐 입지? 아아, 일단 샵에 전화해서 머리 손질이랑 피부 마사지 예약해 놔야지. 얼른 단축번호 9번을 눌러 황급히 예약을 하고 침대 위로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바쁘다 바빠. 음, 무슨 색 옷 입지? 더우니까 검은 색은 패스. 아, 노란색 입을까? 상큼할 것 같다. 입고 있던 빨간 츄리닝을 얼른 벗어 던지고 오늘 같은 날에 입기 좋은 노란색 티를 입었다. 근데 오늘 같은 날? 그게 뭘까. 오늘 같은 날이면, 김성규를 만나는 날. 김성규를 만나는 날이면……. 아, 또 쓸데없는 고민에 빠질 것 같아서 뺨을 몇 번 두드리며 정신줄을 부여잡았다. 어울리는 목걸이랑 팔찌, 귀걸이를 꼼꼼히 이리저리 대보며 그렇게 신나게 준비를 했다.
“내꺼하자, 내가 널 사랑해. 어? 내가 널 걱정해. 내가 널 끝까지 지켜줄게.”
노래가 저절로 나오고 온 몸이 들썩 거렸다. 왜 이렇게 신나지? 엔돌핀 폭발! 기분이 겁나 좋았다. 성규를 만나면 뭐부터 할까? 일부러 점심시간에 약속 잡았으니까 근처에 맛있는 식당 데리고 가서 밥도 먹이고 야하다고 실수 했던거 사과도 하고 나 게이 아니라고 해명도 하고 그래야지. 내 멋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꼭 김성규를 내 팬을 만들어버려야지. 그래, 올해 목표는 이거다. 안티 김성규 내팬으로 만들기. 으하하, 날 보고 흔한 내 팬처럼 얼굴을 붉히며 나를 제대로 쳐다도 못 볼 김성규를 생각하니 너무 웃겼다. 두근두근. 아유, 설레라. 미치겠네.
“으악!!”
벗어놨던 츄리닝을 밟고 미끄러져 엉덩이만 박지 않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오 쉣, 오른쪽 궁둥이가 겁나 아프다.
“으하하하하핳.”
그래도 좋다고 웃기나 하는 이 병신 남우현을 보세요, 여러분. 진짜 병신 같죠? 알아요. 근데 그런데도 좋은 걸 어떡합니까! 으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