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에 집중해주세요, 결말의 복선입니다
복숭아
W. Bohemian Heal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왜 감정을 망설였는지 스무살을 앞둔 이 한달이 생각보다 여름과 겨울이 뒤엉켜 머리가 복잡해져갔다.
06: 일기예보
***
"인대 약간 늘어났데, 그러게 왜 손으로 막아? 골절이였음 어떻하려고"
"그럼 공을 손으로 막지. 발로 막아?"
"근데 권순영은?"
"아 몰라. 밥이나 먹어"
"아까 걔랑 있던데? 교실에서 둘이 뭐 앉아서..."
깨작거리기만 하는 ㅇㅇ에 젓가락을 치워내고 입 안으로 소시지를 뺏어 먹던 석민은 별대응 없이 수저를 내려놓는 ㅇㅇ의 기분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바닥을 드러낸 소시지에 제 식판에서 소시지를 가져와 그녀의 밥 위에 올려주는 최승철에 결국 다시 수저를 든 ㅇㅇ는 말없이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체한다, 천천히 먹어"
"너 지금 소시지 뻇어 먹어서 삐친거야? 으, 이 쪼자.."
"아 닥쳐! 밥 좀 먹자 밥 좀!!"
안그래도 갑갑한 마음 주위에서 시끌한 부승관과 이석민에 한소리하고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ㅇㅇ는 곧바로 교실로 몸을 돌렸다. 다들 한 마디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짜증스러운 그녀는 교실문을 여니 점심시간이라는 명목하에 다들 운동장과 급식실의 자유에 교실은 너무도 조용한 공간이 되어있었다. 문 앞에 턱하니 상대와 부딪혀 어깨를 찬찬히 문질거리며 고개를 드니 그녀 앞에 서 있는 이는 다름아닌 권순영이었다. 겨울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듯 두 사람 사이에는 좀 더 시린 바람이 불었고, 그는 먼저 그녀를 지나쳐 교실문을 닫았다.
- ㅇㅇㅇ시점 -
체육시간 이후 우리는 한 마디 없었다. 부승관은 쎄한 우리 둘의 기운에 저까지 기빨릴듯 하다며 종례가 끝나자마자 교실을 냅다 뛰쳐나가버렸고 권순영은 천천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쁜 새끼,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주지. 뭐가 그리 억울한지 입술 툭 내민 네가 미움과 동시에 나 역시 몸을 일으켰다. 기분이 바닥이다, 침대에 그대로 누워 수백시간 잠들어 있고 싶은 우울감이랄까. 권순영을 힐끗 보고 교실을 나서니 내 앞을 최승철이 가로막았다, 내 신을 들고 흔들어보이는 그는 교무실을 다녀온 듯 하였다.
"같이 가자"
"네 집에서 꽤 멀잖아"
"환자 보호차원. 나때문에 다친 거니까"
씩 웃어보이는 최승철에 오늘따라 그의 표정 변화를 참 많이 보았던 것 같았다, 교문을 완전히 빠져나왔을때 그냥 아무이유 없이 뒤를 돌았을때 권순영 곁엔 ㅁㅁㅁ이 서 있었다. 왠지모를 배신감, 침대로 곧장 향하고 싶은 마음은 돌아서 집에 들어가기 싫은 거부감으로 변질되었고 버스정류장이 아닌 시내로 몸을 틀었고 최승철은 아무말 없이 걷기 시작했다.
"집, 안 갈 거야?"
"지금은? 기분 완전 꿀꿀해. 권순영 얼굴도 보기 싫고, 그냥 답답하다"
"남은 시간은 나랑 있어. 기분 풀려야 다시 안 다투지"
"몰라. 먼저 말 한 마디도 안 걸거야"
"퍽이나"
곧 화해할 거 안다는 둥, 내 볼을 쥐어 늘리는 최승철에 팔뚝을 찰싹 때리자 그는 엄살을 피우며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뒤이어 그는 새 손을 꽉 쥔채 카페로 이끌었다. 어쩌면 가까운 사람보다 멀었던 이가 더 내 마음을 잘 알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잠시 서글퍼지며 다시끔 권순영이 떠올랐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우개로 박박 지워내고 그를 따라 걸었다.
*
"다녀왔습니다"
9시, 영화 한 편에 저녁을 먹고 다니 어느새 하늘은 새까맣게 옷을 입어버렸고 빨리 화해하라며 등떠민 최승철에 조용히 들어온 집 안은 고요했다. 야근이라더니, 진짜 조용하네. 부모님의 야근 문자가 다시 머리속에 나뒹굴고 불 꺼진 거실에 옅은 조명을 켜두고 이층으로 향하러 계단을 올라가며 최승철에게 고맙다는 문자라도 남기려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올라가다 귀에 거슬리는 끼익끼익 긁히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옥탑에 있다 내려오는 권순영의 발걸음이 분명하다, 무시한 채 내 곁을 지나칠 그에 나 역시 계속 휴대폰을 고정한 채 걸음을 옮기니 내 옆에 멈춰선 권순영은 물었다.
"여태까지 뭐했는데"
"뭐가"
"뭐하다 이 시간에 들어왔냐고, 전화 내가 몇 통 했는지 몰라?"
"최승철하고 영화 봤다. 전화 안 왔었거든?"
왜 또 시비를 거는지, 미간을 좁히고 너를 올려다보니 권순영은 어느새 내 휴대폰을 가져가 통화목록을 보여주었다. 부재중 마흔다섯통, 상단바에 잡스럽게 떴던 팝업들을 지우던 차에 함께 지워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걱정할 이유가 없지 않나, 나한테 화나서 무시하고 지나친 주제에. 언쟁을 하기도 싫었고 네 손에 들린 휴대폰을 뺴앗아 빠르게 지나치니 권순영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할 말 없냐?"
"무슨 할 말"
"연락 씹은 너 걱정하면서 기다린 나한테 할 말 없냐고"
"그럼 넌, 아까 화 내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조용히 입 다물었잖아. 고의건 실수건 괜찮단 말 한마디 못해주냐고"
냉랭함이 한순간에 뒤바뀌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저 서운했을뿐이다, 다친 거 나였는데 왜 너는 나에게 화만 내고 나를 지나친 걸까. 서운함이 눈물로 그렁그렁 차올라 시야를 가렸다. 눈물이 많은 내가 아니었건만, 별 거 아닌 일이었건만, 조용하고 좁은 계단 나는 눈을 가렸다. 너는 아무 말 없이 내 앞에 서 있었고 나는 눈가를 붉어지도록 손가락으로 닦아낸 뒤 너를 지나쳐버렸다.
내가 나의 감정의 근원을 참 별거 아닌 일에 의하여 확실해졌을때, 뜻하지 않은 처음 첫 사랑은 사람을 설명불가한 감정을 전하며 바꾼다는 게 명백한 사실에 되어 버려있었다.
***
"이 놈 기집애,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직도 안 일어나?!! 엄마가 오늘 친구 딸 결혼식 같이 가야 한다고 몇번을 얘기 했어 엉?!! 당장 안 튀어일어나?!!!!"
아픈 밤이었다. 그 뿐이었다.
권순영은 여직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한참을 이불 속에 파무쳐 멍하니 잠을 미루다 겨우 잠들었건만 경쾌한 토요일 아침 전쟁같은 엄마의 목소리와 강스파이크에 등짝을 벅벅 문지르며 짜증스레 몸을 일으켰다. ㅇ여사 참 한결같아, 대단해. 엄지 척이야 엄마. 어떻게 수년동안 똑같은 곳만 때리는가.
"이모, 아저씨가 셔츠 좀 찾아 달ㄹ..."
빨갛게 오른 등짝을 손으로 쓸으며 욕실로 향하던 차, 일층에서 급하게 올라오던 권순영과 다시 마주친 나는 지각 할 때보다 빠른 속도로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아침 몰꼴은 이유가 아니었다. 단지, 오늘은 피하고 싶었다. 젖은 머리칼에 넥타이를 손에 쥐고 셔츠 단추를 잠그던 권순영도 놀랐는지 멈칫, 하는 모습이었고 엄마는 한 시간 내로 준비하지 못할 시 집 안 방구석에 던져놓고 가겠다 선전포고 후 일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우리 딸 얼른 자라서 시집이나 보내버렸음 좋겄네, 임자"
"그치? 순영이 반만 닮아봐. 평생 끼고 산다, 살어. 저리 꾸며놓으면 뭐해, 하루가 전부인데"
"아 우리 엄마아빠 맞아?!"
"맞아 이것아. 머리 울리니까 순영이 시계나 차줘"
갈색 원피스를 꺼내 입고 가까스로 머리를 늘어뜨린 뒤 누군가 꺼내 신발장에 고이 놓여둔 구두를 구겨 신고 나오자 모두들 준비를 말끔히 마친 뒤 차에 타고 있었다. 아니 어찌 딸을 이리 대하나,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아닌가! 거세게 반발을 해보지만 괜히 오십년 사신 것이 아니다, 말빨 다시 한번 엄지 척. 권순영의 시계나 차달라는 말에 옆을 돌아보니 덜컹거리는 차인지라 불편한지 인상을 찌푸린 채 메탈시계를 매만지는 그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시계를 빼앗아 손목에 채워준 뒤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의 운전실력에 멀미가 도졌는지, 울렁거리는 속에 눈을 꽉 감고 잠을 청하자 다행히 고개는 빠른 시간 내에 두어번 떨어지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위험하게 고개가 떨어지는 내가 푹 잠에 들 수 있었던 건 머리 뒤에 대어준 권순영의 손에 더이상 고개를 떨구지 않고 잠에 들어서였기 때문이었다.
"아 추워...지루해..."
"그러게 누가 늦게 일어나서 부리나케 준비하래? 옷장에 걸린 거 막 입고 나오니까 그렇지. 엄마 먼저 들어갈거야, 알아서 들어와"
"몰라"
춥다고 야단 맞고 꿀같은 토요일, 참 행복하네요. 내 눈에 흐르는 건 땀인가, 서럽게 진짜.
발을 동동 거리면 오랜만에 신은 높은 굽이 적응치 못해 이미 발목에 상처를 남겨 쓰라렸고 호텔 내 결혼이지만 어디 들어가 쉴 곳 조차 없어 찬 바람 쌩쌩 불어 직빵으로 맞으며 그나마 한산한 로비에 등을 기대 서자 아주 약간 살만했다. 다리가 더럽게 아픈 거 빼고.
"벗어. 이거 신고 있어"
동동거리면 거릴수록 찢어진 살이 아파 주저앉으려던 찰나 내 앞에 허리를 숙여 앉아 어디서 가져온 건지 낮은 슬리퍼를 앞에 내려놓는 권순영. 그의 눈치를 보며 구두에서 내려오자 권순영은 주저없이 목을 죄던 넥타이를 풀러 상처에 꾹 눌렀다. 아파 미치겠네, 피를 닦아내고 나머지 왼발에 슬리퍼를 신겨주곤 몸을 일으킨 그는 말없이 나를 내려다 보다 웅웅 거리는 나의 휴대폰 화면을 보고 조용히 깊은 숨을 내쉬었다. 발신자는 최승철이었다, 그리고 권순영은 당연한듯 저의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곤 그 역시 벽에 몸을 기대었다.
"화난다고 잠 설치지 말고, 불편하다고 이렇게 나와있지도 마"
"신경 꺼"
"내가 미안하다고"
휴대폰은 여전히 울렸다. 권순영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2015년의 절정이 곧 다가옴을 알리듯 바람은 시렸다.
What do I say We didn’t have to play no games
I should've took that chance I should've asked for u to stay
And it gets me down the unsaid words that still remain
- f(x) Goodby summ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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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항상 받습니다♡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로 글이 엉망이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Bohemian Heal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