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Tuesday3
회색빛 하늘에 물결치는 검푸른 바다.
그 빛깔을 보면 겨울 바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바람이나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아 짐작이 어렵지만 왠지 무채색 느낌이 강하게 들어 짐짓 겨울이라 생각이 들었다.
해변으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파도.
그 파도를 바라보는 한 사람이 보였다.
궁금증이 생겨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 사람과의 거리는 결코 좁혀지지 않았다.
액자틀에 넣은 사진을 바라보는 것처럼 전혀 다가갈 수 없었다. 그 모습 그대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모래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뒷모습이 외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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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접착체로 붙여놓은 것마냥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 뜨자, 환한 빛이 눈으로 달려들었다.
순간 눈이 부셔서 다시 감아버렸지만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빛에 적응을 하자 괜찮아졌다.
아침인듯 했다. 아니면 점심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것은 시계를 보아야 알 것 같다.
옆의 보조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디지털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9시 5분전이다.
햇빛은 창문에 달아놓은 쉬폰 레이스 커튼에 거치며 침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커튼때문에 그나마 눈이 덜 부셨던 것 같았다.
몸이 찌뿌둥했다.
무겁고 거북해서 몸을 쭉 펴서 스트레칭이라도 해야 좀 풀릴 것 같았다.
움직이려고 했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왜 이러지?
누가 밧줄로 꽁꽁 묶어놓은 것처럼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자유로운 손으로 눈을 비벼 완전히 잠에서 깨고 내 몸을 꽉 싸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굵은 팔뚝과 큰 손이 보였다. 그 손은 무척 낯익은 것이었다.
"아..."
그 순간, 지난 밤의 행위가 떠올랐다.
무척이나 정열적이고 서로를 탐하고 탐했던 밤.
몹시 선정적이고 그 밤이 아니었다면 몰랐던 고통을 알게 되었던 밤.
그 밤에 맺었던 쑨양과의 섹스가 아주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순차적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비디오를 되감기한 후 재생해서 다시 보는 것처럼 반복되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무슨 정신으로 한 것인지, 지금 생각을 해봐도 알 수 없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쑨양과의 섹스.
같은 동성과의 성교는 일반적인 남녀의 성교와 많이 달랐고 고통도 잇따랐지만 행복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따뜻함을 찾아 여러 여자들과 사귀며 관계도 가져봤지만 이렇게 충만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포근함은 마치 엄마의 품같아서 좋았지만 마음의 공허함은 채울 수 없었다.
고통만 안겨주었지만 그 대신, 쑨양은 많은 것을 나에게 주었다.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 하지 않은 상냥한 배려,
배려에도 고통스러움은 어쩔 수 없었지만 편안했고 행복했으며 공허함도 채워주었다.
손으로 그의 팔을 쓸어보았다.
하얀 피부가 햇빛으로 더욱 하얗게 보였다. 반짝반짝 빛날 것 같다.
후후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들어 뒤돌아 보았다.
붉은 꽃이 차오른 내 몸과 달리 깨끗한 그의 가슴이 보였다. 좀 더 올려보니 쑨양의 턱과 꾹 다문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고 숨결이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느껴졌다.
하얀피부와 달리 붉은 입술에 키스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쑨양의 힘쎈 팔뚝때문에 꼼짝할 수 없었다.
자면서도 이렇게 힘을 줄 수 있는지 신기했다. 마치 힘을 빼면 누가 달아날까봐 붙잡는 것처럼.
한참동안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보다가 목이 말라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몸에 두른 쑨양의 팔을 힘을 주어 치워냈다.
치워내기가 참 힘겨웠지만 쑨양의 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아래쪽에서 찌릿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악!!!"
순간 비명이 튀어나올 만큼 찌릿한 통증은 생각보다 몹시 아팠다.
눈물이 핑 돌았다.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아릿한 허리를 부여잡았다.
아픔때문에 다시 드러누울 수 밖에 없었다.
내 비명이 컸는지 옆에서 자고 있던 쑨양이 벌떡 일어나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왜, 왜 그래요?"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어리둥절함과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뒤섞여 더듬거리는 쑨양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푸하핫...으윽!"
그러나 찌릿하고 둔한 통증때문에 이내 웃음을 거두고 끙끙 앓았다.
쑨양은 그런 나를 보고 잠이 홀딱 깼는지 커다란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나를 품에 안았다.
"아파요?"
"응...움직이지 못하겠어요."
"미..안해요."
동물의 귀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축 처진 것은 보일만큼 낑낑되는 쑨양이 참 귀여웠다.
그가 간밤에 휘두른 거대한 분신덕분에 몸저 누울 사정에 처한 나를 보며 즉답으로 사과하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카락을 휘젓듯이 쓰다듬었다.
그리고 괜찮다며 빙긋 웃어보였다.
"괜찮아요.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그래도..."
"괜찮다니까."
괜찮다는 나의 말에도 기운을 회복하지 못하는 쑨양을 보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었다.
"후. 쑨양."
"...네?"
"그럼...미안하면 물 좀 갖다줄래요? 목 말라요. 크흠."
밤새도록 신음을 흘리며 소리낸 덕에 내 목소리는 갈라져서 마치 목감기 걸린 환자같았다.
메마른 목을 축이기라도 하면 조금 더 나아질 것 같았다.
나와 달리 목소리가 조금 쉰 쑨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 놓고 서둘러 부엌으로 뛰어갔다.
아침부터 뛰면 아랫층 사람들이 싫어할텐데.
큰 키에 많이 나가는 몸무게는 아니지만 아이들도 아니고 일반 성인 남자가 뛴다면 무척 거슬리는 소음이니까.
그 점을 지적하기 전에 쑨양은 부엌으로 갔고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
물은 쑨양 옆 보조테이블에 놓아 둔 주전자와 물컵을 주면 되었는데 쑨양은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나보다.
차마 수고스럽게 부엌과 침실을 왕복한 쑨양에게 말할 수 없어 그가 가져다 준 물을 고맙게 마셨다.
찌릿찌릿 올라오는 둔한 통증때문에 제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나를 안아 물을 마시기 편하게 해주었다.
뼛속까지 페미니스트이었다. 쑨양은 정말.
그 대상은 여성이 아니라 남자인 나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쑨양은 안마셔도 괜찮아요? 목 안말라요?"
"괜찮아요. 안마셔도."
나를 편하게 해주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다정한 그의 미소를 올려다보며 나 또한 마주 웃었다. 그리고 달콤한 주문도 겯들였다.
"모닝 키스는 안해줘요?"
"에에?"
평소의 신사적인 모습과 달리 꽤나 야성적이던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지난 밤과 달리 순진한 표정을 짓는다.
쾌락에 취해 몹시 선정적이던 간밤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왠지 짖궂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쑨양을 바라보던 시선을 옆으로 내리깔며 조금의 탄식을 섞었다.
"밤에는 참 뜨겁더니."
차분하게 지켜보면 놀리는 것이 다분한데 쑨양은 나의 짖궂은 장난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곁눈질로 쑨양을 바라보니 그의 얼굴은 하얀 뺨뿐만 아니라 귀와 목덜미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밤의 늑대는 어디로 가고 순한 양 한마리가 섞여들었을까?
내 말투가 힐난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어쩔줄 몰라했다.
강간을 한 것도 아니고 서로의 합의하에 사랑을 나누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 모양새를 하는지 궁금했다.
이 귀여운 남자를 어쩌면 좋을까.
무척 다정한 신사의 그와 몹시 선정적이던 늑대의 그와 순해빠진 순한 양의 그.
다양한 그의 모습은 카멜레온 같았다. 의도하지 않은 모습이라 더욱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쑨양."
"네. 네."
내 부름에 두번이나 대답하는 우를 범한 그가 참 귀엽다.
이 모습을 매일 보았으면 좋겠다.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에 내 가슴이 피멍이 들고 우울해졌다.
이내 소모적인 감정을 떨쳐내었다.
이미 끝난 사항이다. 그따위 못난 감정에 휩싸여서는 안되었다.
조금 욕심내어 나를 위해 행복한 추억을 더 갖고 싶었다.
"쑨양. 키스해줘요. 내가 하고 싶지만 허리가 아파서 못하겠으니까."
웃음이 담긴 나의 부탁에 얼굴을 붉힌다.
그리고 조금 삐죽이던 입술을 펴고 환하게 웃는다.
그래. 웃어요. 난 쑨양의 웃는 얼굴이 가장 좋아.
내 심장이 행복해지니까. 웃어줘요.
"Good morning. Tae-Hwan.(좋은 아침이에요. 태환.)"
"Me, too. Sun Yang.(나 역시 그래요. 쑨양.)"
쑨양의 입맞춤을 받으며 아침의 시작을 했다.
그와의 키스는 간밤의 뜨거웠던 열락 속의 키스처럼 여전히 달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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륜입니다.
전편의 베드씬을 독자님들이 전부 예쁘게 봐주셔서 좋았습니다.
망작이면 어쩌지 걱정도 좀 했는데
모자람없이 좋게 써진 것 같아 기뻤어요.
이야기 도중에 또 나올 씬도 빼지 말고 써도 좋을 것 같네요^^
이번 이야기는 밤새 **를 하고 아침에 깨어난 이야기만 했습니다.
쓰다보니 이런...=ㅂ=;;; 이야기 진전이 참 느리죠?
1인칭으로 태환의 생각을 중심으로 쓰다보니 이러네요.
혹시 빠른 전개를 원하시면 좀 더 빨리 진행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