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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C


빌라를 개조해서 만든 건물에서 살았습니다. 동거인은 성인 남성 다섯 명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그 외에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김남준, 김석진, 박지민, 김태형. … 전정국. 알고 계시는 그 다섯 명과 살았습니다.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입니다. 당신들이 조사한 것들이, 당신이 들고 있는 그 서류에 있는 것들만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더 이상 답하지 않겠습니다.











.....................

동 거 인 들

분옥

.....................











◀ REWIND


초겨울의 바람은 칼날과 같았다. 온 몸을 베는 듯, 스치고 지나간 자리가 살갗이 까지고 벗겨져 붉은 피가 엷게 배여 나왔다. 육신을 가린 옷은 곧 끊어질 것 마냥 가느다란 끈 하나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가늘게 파인 틈 사이를 계속 악착같이 비집고 들어온다, 시린 바람이. 그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 황량한 가슴에도 시린 바람이 분다. 차게 식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뼈마디를 억지로 눌러 두 손을 맞잡았다. 울지 않으려 꼭 붙여 닫은 입술 사이로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두 갈래 흩어지는 입김이 흐릿하다.


스물, 꽃 피는 나이.

누군가 그렇게 말했었다. 비록 내 나이 스물은 아니지만, 그 말 대로라면 나는 활짝 필 준비를 마친 꽃송이였을 것이다. 수줍게 꽃잎을 펼쳐 보이며 바깥으로 얼굴을 드러냈을 것이다. 세상 최고로 아름답고 제일 가는 향기를 가지진 못했을지라도 누군가에겐 그런 꽃이 되리라 바랐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대학에 입학해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싶었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 연애도 가슴 저밀 정도로 애절한 이별도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어둡고 퀴퀴한 차 말고 조그마한 경차 하나 사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운전도 하고 싶었다. 혼자 사는 자취방에는 인디안 핑크의 암막 커튼을 드리우고 하얀 벽 맞은편에 하얀 침대를 놓고 그 옆엔 키보드 건반을 세워놓고 싶었다. 지루한 날이면 창문을 열어놓고 봄의 왈츠를 연주하고 싶었다.


문득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구름 속에 숨은 해는 얼굴을 보여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손가락은 무릎 위에서 봄의 왈츠를 추었다. 암흑의 시간 속에 가녀린 선율이 흘렀다. 음소거. 도망치듯 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나무들. 내 마음과 같이 텅 빈 도로엔 무채색 하늘과 무채색 구름, 무채색 나무만 가득했다. 나는 그 모양을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았다. 시야가 흐려지며 풍경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와중에도 잠이 오는지 눈꺼풀이 무겁게 아래를 내리눌렀다. 꾹, 감았다. 암흑.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을 떈 온통 뒤로 쏟아지는 흐름을 거스르고 튀어나오는 자동차 한 대가 있었다. 서서히 다가와 달리는 속도를 같이 했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왠지 그것이 신기해 어깨를 돌려 이마를 창에 붙였다. 그러자 그쪽의 창이 열리고 활짝 웃는 얼굴이 하나 나타났다. 그 옆으로 커다란 손이 쑥 올라와 인사하듯 가볍게 흔들린다. 나도 모르게 문을 더듬어 창을 열었다. 달리는 속도만큼 거센 바람이 얼굴을 덮쳤다. 창문 닫아! 앞쪽의 고함이 귀를 때렸다. 나는 창가를 붙든 채 눈을 찌푸리고 버티고 앉아 있었다.






" 안녕! "

" …. "

" 안전벨트 했어? "






건너온 소리는 바람 때문에 작게 들렸지만 표정 만큼이나 붕 뜬 목소리였다. 손을 더듬어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가슴팍을 단단히 안은 벨트를 쥐곤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렸다. 그러자 남자는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곤 손가락으로 오케이 표시를 만들어 보였다.






" 이 미친년이, 문 닫으라고 했지! 빨리 안 닫아? 도로에 얼굴 한 번 갈려봐야 정신 차릴래, 어? "

" … 닫으면 되잖아요. "






여전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를 향해 한 번 시선을 던지곤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지이잉, 하고 창 올라가는 소리가 거슬렸다. 닫힌 창, 뿌옇게 얼룩진 그 너머로 남자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았다. 닫힌 입이 천천히 열린다. '조심해.' 비슷한 모양으로 뻐끔대던 입. 이내 그쪽에서도 문을 닫았고 속도를 높여 내가 탄 차를 앞질러 갔다. 뭘 조심하라는 걸까. 안전 조심? 다시 앞을 보고 등을 등받이에 기대었다. 대각선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여전히 씩씩대고 있었다. 저 년 몸값이, 데려오라는 말만 아니었으면, 처죽일, 같은 말들을 중얼거리며. 살이 통통하게 오른 어깨와 배가 들썩였다. 그 옆으로 얌전히 제자리에 매달려 있는 안전벨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 달리 답답할 정도로 내 몸을 옭아맨 벨트를 양 손으로 쥐어 잡았다. 그때였다. 콰앙, 하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덮쳐온 강한 밀림에 몸이 오른쪽으로 확 쏟아진 것은. 순간적으로 숨을 확 들이마신 탓에 입 밖으론 어떠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었다. 내가 탄 이 차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저 그것만 알 수 있었다. 어지러워, 어지러워. 도로 위로 바퀴가 비틀리는 소리, 당황함을 잔뜩 담은 비명소리. 이를 문 채 눈을 힘주어 감았다.


멈춰. 아무나 제발 멈춰줘요.

제발.

이 상황을 멈춰줘요.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멈추었다. 내 시야가 반쯤 틀어져 있다는 걸 제외하면 모든 게 평화로운 것도 같았다. 머리로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게 지금 졸린 건가. 이렇게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졸림은 처음인데. 몸을 옭아맨 이 끈이 빨랫줄이라면 나는 빨래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손끝 발끝 심지어 벌어진 입을 닫기 위해 힘을 싣는 것 조차 힘들다. 그냥 힘들다.






" … 니까… ! "

" 운전을… 던가… "

" 죽은… "

" …  아냐 … ? "

" … 상관… "






이대로 잠들고 싶다. 조금 쉬고 싶어. 저 시끄러운 소음들, 점점 가까워지는 흐릿한 발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나 힘들었잖아. 고생했잖아. 반쯤 뜬 눈을 눌러 감았다. 무겁게 닫혀 열리지 않게. 입 안에 고인 숨을 뱉어냈다. 그 상태로, 감각의 정전.






" 데려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






종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천국의 종인지, 지옥의 종인지는 모르겠지만.















늦었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분옥입니다.

먼저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이 여름이었고, 겨울이 되어서야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잘들 지내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입시를 비롯한 여러 사적인, 골치 아팠고 누가 밀치면 그대로 떨어질 것 같았던 일들.

지금은 괜찮지만요, 네. 입시도 나름 성공적이라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었습니다. 응원해 주신 분들 덕분이에요.

주절주절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답 달아드리지는 못했지만 찾아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그리고 기다려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첫 장편 무의미하지 않게 재밌게 쓸 수 있도록 열심히 할게요.

본편은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아 조금 늦게 보여드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림만 드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눈도 오고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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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안녕하세요 작가님 이번 글 분위기가 너무 좋네요. 처음 편부터 아주..제 마음을 가져갔네요..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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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도 한 명의 독자이지만 또 작가로서 최근 몇 달 힘든 일을 겪고 그 후에는 힘이 빠져 게으름만 피우고 있어서 그런지 작가님이 그저 반갑기만 합니다. 늘 작가님 글 잘 보고 있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좋아합니다.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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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안녕하세요 작가님 언제나 작가님께서 쓰시는 글은 분위기가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오랜만에 이렇게 보니 진짜 아 느낌도 새롭고 전에 쓰셨던 글들 다시 또 읽어야겠다 싶어요 작가님 글은 언제나 너무 좋아요 언제든 읽어도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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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드디어 분옥님 오셨다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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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분옥님 언제 오세요?ㅠㅠㅜㅜ
9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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