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타다가 갑자기 생각난 카디조각.
그래서 제목도 허접하게 커피임.
이건 뭘까.
Coffee
퇴근 후 들어온 방안은 깜깜했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겐 아니었다. 무섭다며 집안에 불을 다 켜놓고 나를 기다리던 너 때문에, 어둠이 익숙치가 않았다. 문소리가 들리면 달려나와 품에 안겨야할 너 때문에, 나는 닫았던 문을 다시 열어닫았다. 아무도없다. 그런데, 나는 또 네 이름을 부르며 넥타이를 풀고 옷걸이를 찾아 자켓을 걸었다. 마치, 너가 아직도 나와 있는 것처럼.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한잔과 독서. 너가 떠난 후로 줄곧 그래왔다. 너가 있는 동안은 너가 커피를 만들어 주었지만, 이제 혼자 만드는 게 제법 익숙했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는데 눈을 몇 번 깜빡여야했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너가 소파에 앉아 생글거리며 나를 보고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것은, 금방 사라졌다. 그래서 어깨가 또 힘없이 늘어졌다.
설탕을 잔뜩 부은 커피가 달고 맛있다며 티스푼을 입에 물던 너가 생각나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던 손이 멈췄다. 속에 돌을 하나 놓은 것처럼 무겁고 답답했다. 버튼을 누르면 항상 두 번째 서랍안에 있는 티스푼을 꺼내들고 탁자 위에 놓았다. 그 다음엔 냉장고 옆 작은 장식장을 열어 가장 밑칸에 있는 커피를 꺼내고 뚜껑을 열었다. 한스푼, 또 한 스푼. 짙은색의 가루가 머그컵 밑바닥에 깔렸다. 이때쯤이면 물이 끓는다. 버튼이 탁- 하고 꺼지면 펄펄 끓는 물을 컵의 중간까지 채워넣는다. 수증기가 컵안에서 모여 밖으로 새어나오면 설탕이 들어있는 조그마한 통을 집어들었다. 네스푼, 너는 항상 네스푼을 넣어야한다고 했다. 커피가루를 두 번 넣었으면 그에 맞게 두배를 넣어야 맛있는 거라고. 그래야 적당히 달고 맛있다고. 너는 웃으면서 항상 네 번쯤 티스푼을 움직였다.
냉장고 안에 우유가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우유밖에 남지않았다. 텅텅 비어버린 냉장고 안을 눈으로 대충 훑다가 남은 우유를 집어들고 문을 닫았다. 문밖으로 새어나온 찬공기에 마음이 시렸다. 설탕을 푸던 손이 세 번째에서 멈췄다. 오늘은 왠지 세 번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우유를 컵끝까지 채워넣으며 맑아지는 물색깔에 흥얼거리던 너가 생각났다. 오늘은 반쯤만 채워넣기로 했다. 이렇게 너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쓴 커피를 마시기로했다.
‘커피중독같아.’
‘누가. 내가?’
‘아니. 내가.’
‘김종인 너 닮아가나봐.’
솜털이 보송보송 나있는 볼이 실룩거리며 움직였다. 네 미소는 은은하고, 부드러운 게 꼭 시럽을 가득 머금은 것 같았다. 비어버린 페트병을 구석으로 밀어넣고 서재로 발을 옮겼다. 유일하게 너가 생각나지 않는 공간이 서재였다. 업무가 밀린 날이면 항상 곧바로 서재로 들어와 정신없이 서류를 뒤적거리는 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서재만큼은 들어오지 않던 너였다. 간신히 끝낸 일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면 너는 혼자 소파에 누워 잠이 들어있었다. 매일같이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다 지쳐 잠든 너를 안아들고 침대에 눕히면 너는 조금 뒤척이며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내가 프스스. 바람빠진 웃음을 흘리면 눈을 비벼대며 내게 안겨왔다. 오늘은 조금 더 늦게까지 서재를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너는 원래 커피를 싫어했다. 카페인 덩어리라며 손을 휘젓던 너는 매일같이 마시던 나로 인해 너 또한 중독이 되어버렸다. 아니, 떠나기 전에는 나보다 더 커피를 찾았다. 마시지 않으면 내가 빠져나가 버릴 것만 같다고 했다. 너는, 도경수에게 커피는 김종인이라고 했다. 달고 중독적이라고.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내게 커피는, 그저 쓰디쓰고 무언의 해소일 뿐이었다. 내게 그 말을 하며 예쁘게 웃던 네게 나는 마주 웃어줄 수밖에 없었다. 대꾸는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높은 책장에서 책한권을 꺼내 의자에 몸을 묻듯이 앉았다. 의자에 먹혀 사라졌으면 좋겠다. 바보같았다. 너는 책을 좋아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울었고, 사람이 죽어가는 것에 몸을 떨며 내게 바짝 붙어앉았다. 무슨 내용인데? 호기심삼아 물어본 내게 너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작고 둥근 손가락을 허공에 저어가며 장황하게 설명했고, 그것이 예뻐서 또 나는 어제 읽었던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네가 내겐 책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주는데 뭐하러 책을 읽겠어. 빤히 바라보며 말하자 잠시동안 멍하던 얼굴이 짧게 아-. 하며 붉어졌다. 새초롬한 체리처럼, 혹은 탐스러운 사과처럼.
‘…헤어지자.’
‘종인아.’
‘그만하자. 그만….’
먼저 이별을 고한 건 나였다. 우는 것도, 나였다. 너는 울지 않았다. 마주앉은 카페 안에서 나는 입을 막고 울었다. 힘이 들었다. 게이라고 회사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었다. 회사는 꽤 좋은 직장이였고,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근데, 모두가 나를 경멸했다. 더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그 시선을 이기지 못했다. 부모님이 알게되고 누나까지 알게되자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 어머니는 쓰러졌고, 아버지는 물건을 던져가며 다시는 얼굴도 비추지 말라 호통했다. 누나는 아무말 하지않았다. 그저, 방안에서 나오지도 내게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그게 끝이였다.
‘…그래.’
‘.......’
‘그만하자…. 그렇게 해… 너가 원하는 거면 나는… 다할수있으니까.’
너는, 그날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시럽하나 넣지 않은 그 쓰디쓴 것을 다 마셔낸 후에야 비로소 자리를 떴다. 먼저 갈게…. 그 한마디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경수야, 나는 내가 게이란 게 증오스러워. 내가 너무 더러워. 그렇다고 너가 더럽다는 게 아니야.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끔찍해. 세상의 시선에 져버린 김종인이 역겨워. 도경수를 버린 내가… 내 자신이… 토나올정도로 싫어.
뒤돌아서 카페문을 열던 너는 힘이 없어보였다. 애써 담담하게 미소짓던 너를 잊을 수가 없었다. 카페 문이 닫을 때까지 홀로 앉아, 바닥나버린 너의 찻잔을 보며, 그렇게 울었다.
그 후로 2년이 지났다. 잘 읽혀지지 않는 책을 덮고 제자리에 넣었다. 눈이 뻑뻑했다.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가 식어있었다. 잘 마셔지지 않았다. 마시면 썼고, 그게 속을 게워내 잊고있었던 너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2년 동안 나는 커피를 단 한번도 마시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았다. 너는, 내게 쓰다. 한번에 삼켜내지 못할 만큼 너무 쓰다.
집안의 불을 하나씩 끄고 컵을 씻어 건조대에 올려놓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그 뒤로 가족과는 연락이 끊겼다. 거의 내던져진 자식으로 여겨졌다. 물론 나도 본가는 들어가지 않았다. 도경수를 버리고 잘 살수있을거라 생각했었다. 바보같았다. 어리석고, 무능했다. 이별을 먼저 고한 건 나였고, 운 것도 나였다. 근데, 후회를 했다. 어떻게든 너를 지켜냈어야 했다. 그러지못했다. 너를 먼저 보내버리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오늘도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문을 열었다. 꿈일까. 눈앞에 너가 서있었다. 밖에 비가 오는지 몸이 흠뻑 젖은 너가 젖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봤다. 2년만에 보는 너는 내가 생각했던 도경수 그대로였다. 종인아…. 정말 꿈만 같아서 늘 그랬듯이 눈을 감았다떴다. 그대로였다. 정말 미쳤나보구나. 허탈한 웃음이 비죽거리며 새어나왔다. 그런데, 너가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천천히 가슴에 고갤 묻었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촉에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정말… 너야…? 도경수… 너야?
“…죽고싶었어.”
“....”
“…보고싶어서…너무…힘들어서….”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던 너의 입을 정신없이 맞댔다. 2년만에 닿은 입술에서 짙은 커피향이 맴돌았다. 조그마한 머리를 잡고 힘껏 끌어당겨 너를 안아들었다. 곧장 침실로 들어가 너를 눕히고 정신없이 몸을 섞었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우는 네 눈물을 핥았다. 달았다. 나는 단 걸 먹지 못했다. 혀가 녹아내리는 기분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근데, 이젠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수야….
“미안해….”
“......”
“사랑해. 도경수.”
사랑해. 사랑해. 몇 번이고 말하는 내 입에 이번엔 너가 입을 맞대왔다.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화면에 가득 찬 문구에 너는 금방이라도 울 듯이 나를 안았다. 받아…. 안받아. 받어 얼른…. 싫어. 고집을 부리는 나를 밀어내며 너는 액정화면을 밀고 내 귀에 핸드폰을 댔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잘지냈니. 누나의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경수도 그랬다. 숨소리마저 죽인 채 내 팔만 붙들고 떠는 그를 보며 마음이 굳어졌다. 나는… 너 없이는 못살아 경수야….
“전화하지마.”
‘너 헤어졌다며…’
“안헤어졌어. 지금도, 앞으로도. 안헤어질거고.”
그 말에 너의 큰 눈이 더욱더 커졌다. 너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어 던지자 구석에 떨어진 수화기 너머로 소리치는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듯 눈을 굴리는 너의 얼굴을 잡고 아까보다 더 짙게 입을 맞췄다. 너 또한 눈이 감겼고, 우린 좀 더 농밀해진 혀를 섞었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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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그냥 아무생각 없이 타먹는 거인가봄.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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