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은 지금 제 방 창문 바로 앞에 서서 바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장마철이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시간 대가 초등학생 아이들이 마치는 시간대라 그런지 아파트 단지에는 분홍, 하늘색 우산들이 둥둥 떠다녔다. 백현은 창문의 방충망을 열었다. 엄마가 보면 벌레가 들어온다고 기겁할 테지만 지금 그깟 벌레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뛰어내릴까. 백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문제의 메시지창을 켰다. 씨발. 몇 마디 안되는 대화창을 보다가 백현이 울상을 지었다. 다시 창 바깥을 봤다가, 채팅창을 봤다가, 창 바깥을 봤다가 조용히 방충망을 닫았다. 죽을 용기는 없었다.
그러니까, 사건의 발달은 이러했다. 요번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된 녀석이랑 말싸움이 붙었는데, 귀가 병신인건지 뇌가 병신인건지 백현은 "개새끼"라는 말을 "게이새끼"라고 들었던 거였다. 개새끼나 게이새끼나 둘 다 욕인데 무슨 상관이냐고? 백현에게는 아주 중요했다. 왜냐면 변백현은 정말로 게이였으니까. 그 한 끗 차이로, 백현은 스스로 아웃팅을 했다.
용기를 내어 백현은 녀석에게 "야, 내가 게이인걸 어떻게 알았는진 몰라도 게이새끼라고…" 라고 메세지를 보냈더랬다. 그런데 아뿔싸! 녀석은 "개새끼" 라고 한 거였다. 백현은 좌절했다. 아놔, 이 귀병신. 너는 게이들의 수치야, 씨발! 백현은 녀석이 보낸 "니 게이?" 라는 메세지에 답을 하지 못했다. 난 이제 망했어. 내일 학교에 가면 다 소문이 나있겠지? 그럼 난 학교도 못 다닐꺼야. 백현이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대었다.
그 때, 핸드폰이 울렸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수신자를 확인했다. OMG. 녀석이었다. 한동안 답이 없자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백현은 한참을 망설였다. 한 번, 전화가 끊어지고 다시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끈질긴 새끼. 백현이 수화기 모양 버튼을 꾹, 눌렀다.
"너 게이?"
씨발놈. 녀석은 백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저딴 망언을 해댔다. 다시 한번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탓에 눈 앞이 잔뜩 흐려졌다. 폭발 직전이었다.
"게이야? 진짜?"
녀석의 이 말을 듣자마자 백현은 폭발했다. 흐어엉! 어린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나 게이야! 어쩔래! 흐아아아앙─!" 백현의 화산처럼 터지는 울음에 녀석은 꽤나 당황한 듯 했다. 녀석이 말이 없는 틈을 타서 백현은 따발총처럼 말을 쏟아냈다.
"니가 나 게인데 뭐 보태준 거 있어? 씨발노마…. 그리고 넌 내 스타일도 아니야!"
"…."
"씨바알, 너 때매 다 끝났어! 죽어, 죽어!"
"…."
"소문 내! 소문 내, 씨발! 죽어! 죽을거야!"
변백현은 반쯤 미쳐있었던 게 분명했다. 녀석은 백현의 반응에 놀랐는지 어벙하게 "변, 변백현." 하고 백현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미쳐 날뛰던 백현은 녀석의 물음에 한 순간에 사그라들었다.
"정말 소문내?"
"당연히 아니지, 씨발노마."
백현은 그 한 마디에 이성을 되찾았다. 녀석은 백현의 말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벼엉신." 말의 허리를 길게 늘어뜨려 말하는 걸 보아하니 녀석은 지금 한껏 기고만장해서 백현을 깔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약점을 잡았다, 이거지. 백현은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이 변백현 님의 핵주먹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저가 을의 입장이었다. 남양유업같은 새끼. 백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소문 내?"
'아니! 아니!"
한껏 기고만장해진 녀석의 목소리를 들으려니 마음 깊숙한 곳에서 마그마가 샘솟아 오르는 듯 했다. 화↗가↗난↗다↗! 백현은 눈을 감으며 숨을 쉬었다. 명상을 하자, 명상. 나는 지금 숲 속에 있다. 새가 재잘거리고….
"너 나한테 뭐해줄래?"
새가 녀석의 굵직한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씨발. 백현은 감았던 눈을 떴다. "뭐, 뭐가 받고 싶은데?" 백현이 따지듯 묻자 녀석은 한껏 신이 난듯 낄낄거렸다. "뭐 할까? 너 내 빵셔틀할래?" 녀석의 말에 백현은 다시금 속에서 불이 활활 붙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기, 119 좀 불러주세요. 내 속에서 불이 나고 있잖아요. 어디서 타는 냄새 안나요? 제 마음이 타고 있잖아요.
"싫어? 아, 종대 번호가 어디있더라…."
"아냐! 해! 한다고!"
김종대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촉새였다. 좋게 말하면 정보통. 백현은 종대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굴복했다. 김종대가 이 사실을 아는 순간 하루도 못 가서 전교생이 백현이 게이라는 걸 다 알 게 안 봐도 비디오였다. 백현은 빵셔틀을 하겠다고 굴복하고는 치욕의 눈물을 흘렸다. 옛날 경술국치 때도 이랬을 거야. 위대한 고종황제 폐하 만세.
"내일 학교에서 보자, 변셔틀."
녀석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백현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뛰어내릴까. 백현은 방충망을 열었다가 다시 오 분 정도 뒤에 닫았다. 아까도 그랬지만 뛰어내릴 용기는 여전히 없었다. 씨발, 난 평생 빵셔틀이나 해야지. 백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모기향이나 피워야 겠다. 백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
백현은 초등학생 때 개학 전 일요일 밤에나 하던 상상을 했다. 개콘 클로징 음악을 밴드가 연주할 때, 출연진들이 나와 허리 숙이는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나올 때, 엄마가 그만 자라고 텔레비전 전원을 끌 때. 그 시절 초등학생 백현이는 갑자기 하늘에서 운석이 쉬웅─, 하고 떨어져서 학교에 떨어져서 불바다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 뒤로 약 십여년이 지난 지금, 백현은 이불을 덮고 누워 그 상상을 했다. 씨발. 그럴리가 없었지만.
당연하게도, 백현의 자기 직전에 했던 바램과는 달리 세상은 평화로웠다. 어제 추적추적 내리던 비도 그쳐있었다. 아, 나 빼고 다들 평화롭구나. 백현은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딛고 생각했다.
"밥 먹어!"
아침을 먹으라는 엄마의 말도 무시한 채 백현은 곧장 학교로 향했다. 녀석이 아침 일찍 까톡을 하나 보내왔다. '나 아침으로 샌드위치랑 주스 좀.' 씨발 새끼. 집 밥이나 먹을 것이지. 백현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편의점에 들어섰다. 뭔가가 아이러니했다. 난 아침을 굶었는데 그 새끼 아침을 '내 돈'으로 사다니. 백현은 진열되어 있는 샌드위치들을 둘러보다 제일 싸고 맛없어 보이는 '에그야채 샌드위치'를 골랐다. 것도 유통기한이 당장 오늘인 것을 골랐다. 소소한 백현의 복수였다. 그리고 주스는 토마토주스로. 왜냐면 토마토주스는 백현이 제일 싫어하는 주스였으니까!
학교에 도착한 백현은 녀석의 책상 위에 샌드위치와 주스를 올려놓았다. 괜히 애꿎은 샌드위치를 손으로 찰싹, 쳤다. 이게 녀석의 뺨이라고 생각하면서 찰싹, 찰싹. 녀석이 꺅, 꺅! 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아서 잔뜩 신난 백현은 헤헤, 웃으며 샌드위치의 양면을 번갈아 골고루 찰싹, 찰싹 때려주었다.
"뭐하세요?"
샌드위치의 귓방망이를 때리고 있는 백현을 보고 녀석이 다가왔다. 씨발, 좆됐어. 백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 "너 지금 내 샌드위치 쳤냐?" 녀석의 살벌한 말에 백현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녀석은 백현의 멱살을 쥘 것만 같았다.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키가 제일 큰 녀석은 키에 걸맞게 손도 존나 컸다. 저 솥뚜껑만한 손으로 멱살을 움켜쥐면 곧장 골로 갈게 뻔했다. 백현은 얼른 평소에 잘 쓰지도 않던 머리를 굴려 핑계를 찾았다. 어디서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치면 빵이 더 찰져진대."
"그럼 니 뺨도 찰지게 해줄까?"
시발. 고작 생각해 낸 핑계가 저 따위였다. 녀석은 백현의 핑계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곧장 손을 치켜들며 대꾸하는 녀석의 무서운 말에 백현이 화들짝 놀라 손바닥으로 제 뺨을 감쌌다. "아, 아니!" 백현이 제 뺨에 손바닥을 가져다댄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녀석은 손을 휘휘 저었다. 썩 꺼지라는 거였다. 백현은 녀석을 아무도 모르게 노려보고서 제 자리로 돌아갔다.
"아나, 토마토 주스!"
녀석이 굵직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백현은 녀석 몰래 헤헤, 웃었다. 쳇, 맛없는 토마토 주스나 먹으라긔. 백현이 입술을 샐쭉거리며 얄밉게 중얼거리고는 가방을 벗어 가방 걸이에다 걸었다.
"내가 토마토주스 존나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씨발."
녀석의 말에 백현의 손이 미끄러졌다. 좋아하다니. 백현이 슬그머니 뒤를 돌아봤다. 정말로 좋아하는 지 녀석은 토마토주스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어지간히 급하게 마셨는지 입에서 토마토 주스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게 꼭 피 같아서, 백현은 섬뜩해졌다. 녀석은 백현을 보며 씩, 웃었다. 저, 저기 토마토 주스나 닦으시지. 백현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헤헤, 하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뭘 웃어, 씨발."
씨발, 남양유업같은 새끼. 녀석의 말에 백현이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돌렸다. 아오, 하필 걸려도 저런 새끼한테 걸려가지고! 백현이 잔뜩 성난 얼굴로 제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난 병신이야, 난 귀병신이야! 벼엉신! 백현은 애꿎은 엄말 원망했다. 엄만 아들이 귀가 그렇게 안좋은데 병원에도 안 데리고 가고 뭐하셨담! 백현이 한숨을 쉬며 책상에 엎어졌다. 뒤에서 녀석이 저를 보고 낄낄거리며 비웃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백현은 책상에 엎어진 채로 하느님께 말했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운석 하나만요…. 백현은 하느님, 부처님부터 마틴루터킹까지 어렸을 적 읽었던 전집에 실린 위인들 한 명, 한 명에게 기도를 하다 곯아떨어졌다.
백현의 꿈 속에선 정말로 운석이 나왔다. 하느님이 먼저 녀석에게 주먹만한 운석을 떨어뜨렸고, 그 다음은 부처님이 얼굴만한 걸, 종국에는 마틴루터킹이 지구만한 운석을 들고나와 녀석에게로 던졌다. 그런데 이게 왠걸. 녀석은 그 지구만한 운석을 용케 받아들고 다시 백현에게로 던졌다. 으아아! 운석이 다가온다! 운석이!
"운석!"
백현이 운석을 외치며 잠에서 깨어났을 땐 한창 지구과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아이들의 시선이 전부 다 백현에게로 쏠렸다. 씨발, 이건 꿈일거야. 백현의 얼굴이 토마토 주스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운석이 뭐?" 선생님이 낄낄 웃으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백현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그래도 작은 체구가 더 쪼그라들었다. 선생은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잔뜩 쪼그라든 백현의 어깨를 보며 녀석이 낄낄거렸다. "씨발, 운석이래." 백현은 여전히 어깨를 움츠린 채로 뒤를 돌아보고 녀석을 째려보았다. 뭘 봐, 씨발. 녀석이 입모양으로 벙긋거렸다. 백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어찌됐건 녀석은 갑의 입장이었다. 이게 바로 갑의 횡포. 에휴. 뉴스나 신문에서나 나오던 걸 직접 경험하고 있는 백현이 한숨을 쉬었다. 앞일이 캄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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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거 뭐냐구요?
![[EXO/찬백] 강제 커밍아웃 당한 백현이 上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b/6/2/b629d413ca389281230ab7c50175c360.png)
이거 보고 필 받고 쓴거에요ㅋㅋㅋㅋ
예전에 써뒀던 건데 폴더 정리하다 발견해서 올립니다.
물론 끝까지 다 쓰진 않았는데 묵혀두기 아까워서...
남양유업 얘기 나오는 것만 봐도 아시겠죠? 이거 쓴지 꽤 된거에요...;ㅅ;...
암만 봐도 여기 찬백이들은 심하게 발랄한거 같아...
그래도 뭐 그런게 찬백 매력이니깐요..ㅎㅎ
패션패션은 오늘 쉬는 걸로~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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