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랩몬스터 (방탄소년단) - Like a star
그 때가 언제였더라.
꽤나 더운 여름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가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오랜 사녹으로 인해 더위에 지친 나는 조금이라도 더위를 식히려 비상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었다.
후덥지근한 대기실과 복도와는 다르게 비상구는 선선하게 바람도 불고 방송국에서 그나마 제일 시원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때 처음 그녀의 모습을 봤었다.
처음본 그녀는 비상구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혼자 울고 있었다.
우는 소리가 혹시나 밖으로 샐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로 축 처진 어깨를 들썩이며.
무명 아이돌도 연애한다
07 (그의 이야기)
w. 복숭아 향기
처음에는 그녀의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했었다.
그저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그녀의 머리색만 기억할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의 이름도 그룹 명도 알 수 있었다.
인터넷 기사 덕분 아니 때문이었다.
혹평으로 가득했다. 무대가 무대가 맞냐는 댓글도 있었고 또 어느 듣보잡이 데뷔를 했냐는 댓글도 있었다.
우리가 처음 데뷔했을 때 반응과는 사뭇 달랐지만 그래도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하긴... 요즘 신인들이 워낙에 많이 쏟아져나오기는 했다.
그 뒤로 그녀에 대해 그다지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바빴으니까. 정말 바빴다. 윤기 형의 작업실에 놀러갈 시간도 부족할 만큼.
윤기 형은 우리와 함께 데뷔를 준비했던, 그러니까 나와 같은 연습생이었던 그런 형이다.
춤을 추던 중 발목 부상으로 더이상 춤을 추지 못하게 될 거라는 진단을 받자마자 형은 쿨하게 연습실 문을 박차고 나갔었다.
우리가 돌아오라고 아무리 찾아가도 형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때 아마 형이 그랬었지.
[나 바빠. 춤 출 시간 없어.]
그런 형의 뒤를 따라 김남준도 같이 연습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너는 왜? 내가 붙잡자 김남준은 아무런 높낮이 없는 억양으로 나에게 말을 했었다.
[나도 바빠.]
그 때는 그 바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었지. 병신같이.
알고보니 김남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순정남이었다. 윤기 형이 데뷔를 못하는데 나만 해서 뭐해. 뭐 이런 마인드.
두 사람은 내가 걱정을 했던 것이 후회될 정도로 지지고 볶고 잘만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춤연습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살것만 같다는 것이었다. 또 그렇게 원하던 프로듀싱만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나 더 있지. 죽고 못사는 애인이 바로 옆에서 깨를 볶아주고 있는데 안행복하겠어.
김남준은 그런 사람인 줄 알았지만 윤기 형은 정말 의외였다. 알고보면 윤기 형이 김남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어쨋든 오늘 드디어 그나마 시간이 비는 그런 날이었다.
연습도 없었고 스케줄도 없었다. 사실 행사 스케줄 하나가 있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취소 되었단다. 아무렴 어때. 꿀맛같은 휴가인데.
나는 망설임없이 가방을 챙겨 윤기 형이 있는 작업실로 향했다.
정국이와 태형이는 아직 자고 있었고 석진이 형은 오랜만에 부모님을 보러 간다고 집으로 갔으며 지민이는 그런 석진이 형의 뒤를 따라가고 숙소에서 말짱하게 깨어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왔냐."
역시나 윤기 형은 나를 반기지 않았다.
아니. 나를 반기기에는 너무나도 바빠보였다. 늘 복잡해보이는 형의 컴퓨터 화면은 오늘따라 더욱 더 복잡해보였다.
이게 뭘까 처음에는 많은 의문이 들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조금 배우면 알 수 있는 그런 형의 수많은 작업곡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왔는데 반겨주지도 않고."
"그러게 누가 바쁠 때 오래?"
"남준이는요?"
"준이 자."
언제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호칭이었다. 준이라니... 준이라니...
나는 닭살이 돋은 두 팔을 손바닥으로 문질러댔다. 뭐 씨발. 윤기 형은 괜히 찔렸는지 욕설을 내뱉으며 헛기침을 했다.
그런 애정표현은 내 앞에서 말고 김남준 앞에서나 하라고... 나는 절대 밖으로 꺼내지 못할 말을 속으로 투덜거리며 형의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렸다.
형의 아이패드는 정말 말 그대로 보물이었다.
가끔 형이 마음에 드는 곡을 만들었을 때 가장 먼저 옮겨놓은 곳이 바로 이 아이패드였으니까.
혹시나 괜찮은 노래 있을까 형 몰래 뒤져보려 했는데 인터넷 검색창에 형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검색어 기록이 하나 남아있는것을 발견했다.
OOO 성이름
"형. 이거 뭐에요?"
"뭐가."
"검색어."
"아. 씨발."
듣자마자 바로 욕부터 하는 걸 보아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따가 담요라도 갖다줘야 하는 걸까... 이미 틀린 것 같았다. 윤기 형은 계속해서 씨발씨발을 내뱉으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었다. 형이 본 유투브 기록에도 그녀의 이름이 남아있었다.
-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그 동안 우리 방탄소년단은 음악방송에서 1위도 했고 콘서트도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머릿속에서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성이름 하면 떠오르는 게 그저 밝은 갈색 머리카락인 정도?
뭐... 그정도였다.
그리고 또 간만에 찾아온 공백기였다.
오늘도 역시 나는 일어나자마자 윤기 형이 있는 작업실로 향했다. 놀러간 거는 아니고.
이번에는 진짜 일하러.
나도 형 따라서 조금씩 작업도 하고 믹스테잎도 만들고 뭐 그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거지? 잠깐 화장실이라도 갔나?
컴퓨터랑 아이패드가 모두 켜져있는 것을 보아 아주 나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형이 앉아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뜨끈한 걸 보면 진짜 나간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다.
"오늘은 뭐가 있으려나..."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형의 아이패드를 뒤적거렸다. 원래 음악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곡을 함부로 보는 걸 싫어한다는데 형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너는 들어라. 나는 내 꺼 할란다. 뭐 이런 마인드인 것 같았다.
어라. 그새 못보던 폴더가 하나 있었다.
폴더 이름부터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 썅년 -
...
누구 주려고 만들었길래 폴더 이름부터 썅년이야...
아니면 진짜 썅년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랜가. 그나저나 여자? 여자라고?
지금까지 형이 만든 노래들은 남자들이 부르기 좋은 뭐 그런 노래들이 대부분이었다. 워낙에 형이 쑥맥인 것도 있었고 김남준이 옆에서 하도 철벽을 치는 것도 있었고.
어쨌든 형이 여자 노래를 만든 건 내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형을 알게 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몰래 폴더를 꾹 눌렀다.
사실 몰래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뭔가 몰래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 처음으로 만든 여자 노래라서 그런가?
괜히 자꾸만 형이 들어올 문 쪽을 힐끔거리는 나였다.
"..."
헐. 미친.
노래가 꽤나 많았다. 한 4곡 정도.
한 곡을 만드는데 형이 얼마나 많은 날을 밤새는지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진짜 누구 주려고 만든거지? 형이 노래 만들어서 누구 주고싶다 라고 생각한 적은 우리 말고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얼른 노래를 틀어보았다. 역시나. 역시나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또 역시나 노래는 좋았다.
아직 가사는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는지 허밍으로 대부분 노래가 이어졌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거 가이드 부른 사람은 누굴까.
가이드 부른 사람이 음원 내도 꽤나 좋은 성적을 거둘 것 같았다. 또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 노래를 들어보려고 할 때
"야! 씨발!"
윤기 형이 문을 열고 들어와 득달같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얼굴을 보니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있는 것을 보아... 역시나 이 노래는 비밀스럽게 만든 노래가 맞았다.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던 윤기 형의 약점 하나를 드디어 잡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누구 주려고 만든거냐니까요?"
"있어. 썅년."
"그니까 그 썅년이 누군데. 형이 노래 주고 싶어서 만든 사람이면 진짜 노래 잘하는 거 아니에요?"
"노래는 잘하는데... 존나 썅년이야."
"자꾸 그러면 김남준한테 일러요."
"이르던가. 어차피 알아."
젠장. 김남준이 알고 있을 줄이야.
속으로 절망을 하는 것도 잠시. 다시 한 번 의문이 솟아올랐다. 김남준이 알고 있다고?
형이 편의점 알바생이랑 대화하는 것도 싫다고 끙끙 앓으면서 혼자 술퍼먹다가 우리 숙소에서 퍼질러 자고 갔던 김남준이?
알고 있다는 거는 별 말을 안했다는 거고 그럼 김남준이 아는 사람이면서도 윤기 형도 아는 사람이라는 거네?
연예인인가? 나는 더욱 형에게 고개를 들이밀며 물었다. 아무리 싸가지 없는 말투로 틱틱 욕을 하는 형이지만 은근히 간이 작은 그런 형이었다.
조금만 더 물어보면 대답해줄 거야.
"그니까 누군데요."
"있다고. 그런 사람이."
"되게 바쁜가봐요. 형이 노래도 줄 시간이 없는 걸 보면."
"그건 아닌데. 존나 한가할걸? 이거 가이드도 걔가 한 거라."
나이스. 걸렸다.
이럴 때 보면 진짜 눈치가 빠른 윤기 형이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가끔 궁금해지기도 했다.
누구 때문이겠어. 끼리끼리 만난다는데...
"씨발..."
"안바쁘다는 거 보면 연예인이고... 가이드 할 정도면 가수거나 연습생. 둘 중 하나겠네요? 맞죠?"
"악! 너 존나 짜증나."
"그니까 누군데요."
진짜 말하기 싫었는지 형은 머리를 긁적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참동안 씨발씨발을 내뱉던 형은 그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걔 있잖아. OOO에 성이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이름이었다.
-
지난번에 너 왔을 때. 그 전날인가 전전날인가 준이랑 햄버거 먹고 있었거든. 근데 그 날따라 애새끼가 발정이 났는지 존나 구석자리 앉아서 자꾸 손잡고 싶네 뭐하고 싶네 지랄을 하더라고. 그 날 내가 술을 마셨나... 피곤해서 그랬나... 먹고 떨어져라 이런 생각으로 애새끼 입에다가 감자튀김 몇 개 쑤셔넣었거든.
근데 그 모습을 그 썅년이 본 거야. 보기만 한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말이며 행동이며 다 봤으니 내가 슈가라는 것도 김남준이랑 이러쿵 저러쿵하는 사이인 것도 다 봤겠지. 더 빡치는 건 이 썅년 그니까 성이름이 바로 고개 홱 돌려가지고 지 마실 커피만 사가지고 나가는 거야. 어떻게 걔가 성이름이라는 걸 알았냐고? 존나 팠거든.
옷 입은 걸 보니 가수는 맞고 보자마자 이름 떠오르는 건 아닌 걸 보면 그다지 유명하지 않거나 신인이거나 둘 중 하나니까 말이야. 존나게 미친듯이 파면서 그 년 약점이고 뭐고 다 잡아서 기자들한테 뿌리려고 했어. 어디 가서 입 잘못 놀리면 나도 나지만 김남준 이새끼 존나 매장이잖냐.
아무 일도 없었다는게 함정이고 생각했던 것 보다 그 년 목소리가 좋았다는게 함정이지만 말이야.
그냥 걔 생각하면서 만든 거야. 김남준도 같이. 그냥 그렇다고.
...
"와..."
윤기 형의 말을 듣고 와서 찾아본 그녀의 동영상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가끔 올라오는 무대 영상과 정말 극소수의 팬들이 찍은 듯한 직캠 몇 개 정도. 다 합쳐서 10개가 조금 넘을까 말까 한 그런 정도였다.
또 전혀 그녀의 목소리를 알 수가 없었다.
무슨 AR을 얼마나 깔아놓은 건지 그녀의 목소리는 커녕 파트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고음을 지르는 것 같은 한 멤버의 목소리만 나름 깔끔하게 들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멤버는 윤기 형이 말한, 그리고 내 기억속의 그녀가 아니었다.
"뭐야..."
형은 무슨 영상을 보고 목소리가 취향이라고 했던 걸까.
잠깐 나오는 한 소절만 듣고 그렇다고 말할 형은 아니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유투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알고 싶었다. 윤기 형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던 그 목소리를, 그리고 내가 그냥 스쳐지나갔던 그녀의 뒷모습을 기억하는지를.
"..."
찾았다. 아니. 찾은건지 모르겠다.
동영상 제목은 영어로 쓰여있었고 그녀의 이름도 제대로 쓰여있지 않았다.
언뜻 동영상 미리보기로 보이는 여자의 머리카락도 검은색이었으며 무대화장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근데 묘하게 그녀와 비슷해보였다. 윤기 형이 봤던 영상이 이건가... 나는 윤기 형의 아이패드를 누를 때 그랬던 것처럼 조심스레 핸드폰 화면을 꾹 눌렀다.
동영상 속 여자는 그녀가 맞았다.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고 그 때 봤을 때보다 조금 더 볼살이 통통해보였지만 확실히 그녀는 맞았다.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사진이며 동영상이며 다 찾아본 내가 분명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 좋았다. 형식적으로 하는 말 말고. 정말 듣기 좋은. 윤기 형이 왜 좋아하는지 한 번에 이해가 가는 그런 목소리였다.
나는 동영상을 보고 또 봤다.
10번도 넘게 본 것 같았다. 내가 춤을 추고 난 후에 모니터를 할 때처럼 어쩌면 그보다 더 열심히 그녀의 동영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OOO가 무대에 섰을 때 가장 맨 앞에서 그러니까 센터에서 고음을 지를 때 나오는 그 목소리.
그 목소리 주인 역시 성이름이의 것이었다.
-
그 때부터였다.
그녀에 대해 내가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한 것은. 또 윤기 형을 볼 때마다 그녀에 대해 물어본 것은.
가이드 녹음을 한 이후로 친해진 건지 윤기 형은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눴던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OOO의 무대 뒤에 깔리는 AR은 대부분 성이름이 부른 것이 맞았었다. 왜 그런 바보같은 퍼주는 일을 하는지는 형도 모르겠다고 그랬다.
[근데 왜 그렇게 캐묻는데?]
[왜요. 안돼요?]
[그건 아닌데 이상하니까 그러지. 너 성이름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목소리가 좋잖아요. 팬심이야. 팬심]
오늘도 나는 대기실에서 티비 화면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는 야속하게도 그녀의 얼굴은 잘 보여주지 않고 그 센터에 서있는 한 멤버의 얼굴만 미친듯이 비춰주고 있었다.
카메라 감독 누구야. 그녀의 소속사에서 어떤 전략으로 팀을 이끌어가는지 대충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미간이 절루 찌푸려졌다.
"홉이 형 덕후질 시작했다."
"그러게."
"그렇게 좋아요?"
"아주 티비 화면으로 뚫고 들어가지 그래."
"쟤 저러다가 진짜 데쉬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아니거든요."
웃음기 섞인 듯한 석진이 형의 말에 나는 짧게 대꾸를 던졌다. 데쉬라니.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
또 그녀는 내가 그녀를 이렇게까지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어폰과 핸드폰을 들고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내 핸드폰에는 그 동영상에서 음성만 따온 그녀의 목소리가 저장되어있었다. 이정도면 나 진짜 덕후 맞나봐.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를 덕질하는 건 행복한 인생이라는 증거니까! 사실 인터넷 댓글로 봤던 말이었다.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상구 쪽으로 향했다.
늦여름을 넘어서 이제 가을이 되어가는데도 날씨는 더웠다. 멤버들의 깐족거림을 들으니 더 더워지는 것 같았다.
혼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비상구 계단 위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감상시간을 방해하는 사람은 또 누구야?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 위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그녀였다.
그녀는 물을 마시는 지 꿀꺽꿀꺽 소리를 내고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기자들에게 온갖 혹평을 받았던 그 노래. 그녀의 데뷔곡이었다.
연습을 많이 했던 건지 아니면 혼자 부르고 있는 거라서 그런건지 그녀의 목소리는 훨씬 안정되어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울림이 좀 많았지만 괜찮았다. AR로 깔린 것이 아닌 온전한 그녀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노래를 듣고 싶었다.
길게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노래를 그다지 많이 부르지 않았다.
다음에 또 사녹이 있는 건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나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이미 그녀는 비상구 밖으로 나갔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계단 위에는 그녀가 놓아두고 간 듯한 물병과 휴지 조각 뿐이었다.
휴지 조각에는 검은색 마스카라가 묻어있었다. 또 울었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물병과 휴지조각을 집어들었다.
스토커 아니다. 버리려고 집어든 것이다. 어쨌든 그녀에 대해 오늘 하나 또 알아낼 수 있었다.
눈물을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으려 몰래 숨어서 흘린다는 것. 뭔가를 알아냈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그게 그녀가 울었다는 사실이라는 것은 기쁘지 않았다.
-
컴백을 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연습을 하다 부상을 입어버렸다.
병원에서는 무조건 입원을 해야한다고 나에게 말을 했다. 저기... 저 무대 해야해요. 라고 소심하게 반항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왕 병원에 온 김에 지금까지 쌓인 피로까지 풀어야한다며 안그래도 과로네 뭐네 몸이 말이 아니라며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매니저 형이 한숨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만 긁적일 뿐이었다.
사실 좀 피곤하긴 했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우리 활동도 빠르게 마무리가 되었다.
멤버들 반응을 보아서는 쉴 수 있으니 매우 행복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던 무대인데 혹시나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반응을 보아하니 전혀 그런 기색은 없는 것 같았다. 역시 우리 멤버들 다웠다.
발목이 다친거지 다른 곳은 멀쩡했던지라 조금씩 몸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늘 이리저리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멤버들과 장난을 치는 걸 즐겨와서 그런지 가만히 있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핸드폰이나 볼까... 오늘은 무슨 영상이나 사진이 올라올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
웬일인지 그녀의 이름이 검색어 1위에 올라있었다.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가요계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건 스캔들로 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에요.]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사이트에는 온갖 기사가 잔뜩 올라와있었다. 대부분 그녀가 본드 테러를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데뷔한지 벌써 3년이 되어가는 나도 악플을 보면 손이 떨려오기 일수였다.
그녀의 기사에 달린 악플들은 평소에 달리는 그런 것들의 수준을 넘어있었다.
당사자도 아닌 내가 이렇게 부들부들 떨리는데 이걸 그녀가 보게된다면 어떨까.
쾅!
그 때. 어디선가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물건을 던진 듯한 그런 소리였다. 누구지. 뭐야.
병원에 입원해있는동안 그런 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방금 봤던 기사에서 한 문장이 스쳐지나갔다.
그녀가 입원해있는 병원. 그 병원은 지금 내가 입원해있는 이 병원이었다. 설마. 설마... 나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도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몰랐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가 이 악플들을 보고 핸드폰을 집어 던진 거 일수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비상구... 비상구 쪽이 어딜까.
붕대를 감은 다리를 이끌고 복도를 걸어다녔다.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걷기 좀 불편할 뿐.
퍽
"죄, 죄송합니다..."
바빠 미치겠는데 누군가 내 어깨에 부딪혀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환자복을 입은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도 머리색과 같았다. 일으켜줘야지. 생각을 하며 손을 내밀자 여자의 손이 바들바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저기... 괜찮아요?"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꾸만 뒷걸음질을 치기만 했다. 걷어올려진 환자복 아래로 보이는 여자의 하얀 팔뚝에서 피가 방울방울 맺혀있는 것이 보였다.
링거도 없이... 이게 무슨 일이야. 피... 피... 나는 중얼거리며 여자에게 다가갔다. 어릴 때부터 피를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나였다.
저 여자 역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요. 피나잖아."
발버둥을 치던 여자가 그제야 얌전해졌다. 나는 내 환자복으로 여자의 피를 꾹꾹 눌러 닦아주었다. 내 옷에 검붉은 자욱이 묻어났다.
근데 어디서 많이 봤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여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성이름?"
그녀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 자욱이 가득했고 그나마 남아있던 말랑해보이던 볼살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조금 더 세게 그러쥐었다. 꽉 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그녀의 손목을 꽉 그러쥐면 정말 아스라질 것만 같았다.
그정도로 지금 그녀의 모습은 약해보였다.
또 다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러내리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윤기 형과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근데 왜 그렇게 캐묻는데?]
[왜요. 안돼요?]
[그건 아닌데 이상하니까 그러지. 너 성이름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목소리가 좋잖아요. 팬심이야. 팬심]
형.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그녀의 눈물을 보게되자 나는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치가 없는 편은 절대 아닌 나는 당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단순한 팬심이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체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고. 아니. 좋아한다고 말이다.
-
[암호닉]
짐니야 짐잼쿠 망개야 낑깡 망개지미니 침맘 93 수야 청춘 호석이향기 뜌 슈민트 치즈 이구역호석맘 핑쿠몬 새벽 마녀님 요거프레소
지팔 주황색 구오즈들 밍꾸이 마늘 슈민트 태꾹망개 boice1004 삐용 카라멜마끼야또 모찜모찜해 솜블 흑슙흑슙 전국정국
세상에 샐리 쟈몽 찐슙홉몬침태꾹 0418 망개 동동 슈크림 몽쉘통통 인생배팅 희망빠 인천 꽥꽥 모히또 응앜 씽씽 두둠칫 0221
여러분들이 기다렸을지 모르는 호석이 번외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내용이 들어간 거 같아요. 공지사항에 물어봤던 것도 어느정도 대답이 조금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아직 질문들 다 못봤어요...ㅎㅎ
다음편부터는 다시 여주의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암호닉 진짜 어려운 거 같아요ㅠㅠ 제가 기억력이나 이런 게 좀 달려서 맞춤법을 틀리거나 이름 빼먹거나 가끔 하는 거 같은데 정말 죄송해요ㅠ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