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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김원식] 블라인드 24 | 인스티즈


빅스 - Maze


24


똑- 똑- 똑-


그 노크 소리에 원식은 허공에 멈췄던 제 주먹을 꽉 쥐고는 이내 천천히 내려놓았다.

윤설은 문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원식이 있는 쪽을 응시했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이야기했다.


"가봐야겠어요"


원식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소파에 떨어진 머리끈을 발견하고는 그걸 주워들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이내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했다.

윤설은 붙잡힌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문득 날카로운 느낌에 그녀는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보지 못한 원식은 그녀의 손 위에 머리끈을 올려놨다.


"머리 끈"

그가 말했다.


그녀는 한 쪽 손을 들어 제 오른쪽 눈을 꾹 눌렀다.

요새 들어 자꾸만 시큰거리는 느낌이 잦아 기분이 묘했다.

가끔 어둠이 덮이듯 눈앞이 새카맣게 변하는 날이 있었지만,

이렇게 자주 고통을 동반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날은 없었기에 괜히 신경 쓰였다.

하지만 곧 괜찮아질 거라고 윤설은 생각했다.

아주 무던하게 익숙해져버린 이 고통이 그녀를 불감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고마워요"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일어나는 윤설을 원식은 앉아서 쳐다보다 이내 자신도 몸을 일으켰다.

속삭이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그녀는 알기나할까?

그 목소리로 하여금 그가 얼마나 많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지.

어느 날은 저주가 되었고 또 오늘 같은 날은 찬사가 되어버린 네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 바느질하듯 수를 놓고 있다는 것을

과연 네가 알기나 할까?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그녀의 손을 원식은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스크린에는 비어버린 화면만이 윙-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가는 대로 이끌려 걸어가는 그녀의 발걸음.

그 한 발 한 발은 원식은 눈에 새기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에는 그가 바른 곳으로 인도할 거라는 무언의 믿음이 담겨있는 듯했다.

그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게 할 거라는 믿음.


문 앞에 다다른 원식은 손을 뻗어 문고리를 돌렸다.

쇳덩이가 문득 아주 차가워서 조금 놀랐다.

안으로 열리는 문에 그녀가 조금 뒷걸음질 치자 원식은 손을 놓고는 가볍게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문 앞에는 상혁이 서 있었다.


아무 말없이 서 있던 상혁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그녀의 허리에 올려진 원식의 손을 잠시 응시하던 상혁은 이내 고개를 들어 윤설을 바라봤다.

윤설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이상하게도 가슴에 맺혀 상혁은 하마터면 한숨을 내뱉을 뻔했다.

상혁은 얼른 눈을 돌리고는 원식을 바라봤다.

원식은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는 이내 삐딱하게 서서 상혁을 응시했다.

상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영화는 재미있게 보셨습니까?"


"네, 재밌.."


"글쎄 잘 기억이 안 나네, 다른 거 보느라"


상혁의 물음에 대답하는 윤설을 아랑곳 않고 원식은 말했다.

상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윤설에게 손을 뻗었다.

원식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부드럽게 그녀의 팔을 잡는 그의 몸짓.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도 천천히 그에게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

원식은 괜히 짜증이나 눈알을 굴렸다.


"윤설씨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하던데..."

문득 상혁이 입을 열었다.


원식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그래?" 한 마디만 던졌다.


"저도 다음에 봐야겠네요"

상혁이 말했다.


"조금 우울할 수도 있어요"

윤설이 상혁의 팔을 잡았다.


"그래도 같이 영화 얘기하면 재밌잖아요"

상혁이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죠"

윤설이 웃었다.


원식은 그런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발걸음을 움직였다.

괜히 속이 타서 물 한 잔이라도 삼켜야 할 것 같았다.

상혁은 그렇게 지나치는 원식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쓴 숨을 삼켰다.

문득 후회가 됐지만 그래도 차라리 후회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윤설은 조금 더 섬세하게 대해도 되는 여자였다.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하면 더 예쁘게 피어날 사람이었다.

그걸 원식은 모르는 것 같아 상혁은 기분이 나빴다.

나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윤설은 원식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상혁을 올려다봤고 이내 다시 한 번 얕은 웃음을 지었다.


"삐졌나 보다"

그녀가 소곤거렸다.


상혁은 그런 윤설을 바라봤다.

그녀의 웃음이 문득 처음 만났을 때의 싱그러움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일하자"

그가 말했다.


계단을 올라가려 상혁은 윤설과 함께 발을 뗐다.

살짝 부은 듯 발그스레 한 그녀의 눈 주변이 신경 쓰였지만 이내 언제나 그랬듯 그저 속으로 삼켰다.

원식과 윤설 사이가 가까워지는 것에 상혁은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이내 채 정리 못한 마음에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았다.

상혁은 자신의 그들 사이에서 감정의 촉매 혹은 질투의 유발자 정도밖에 되지 않겠다고 이미 마음 먹의 뒤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원식이 그녀를 조금이나마 더 살갑게 대할 수만 있다면,

원식이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거면 충분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말이다.


"거실에서 해"

문득 들리는 그 낮은 목소리에 계단 앞의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원식은 손에 커피 잔을 들고는 부엌 문지방에 기대서 그 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이 잘생긴 이마에 흩어져 있었다.

상혁은 가만히 원식을 바라봤다.


갑자기 원식이 몸을 바로 했다.

천천히 커지는 그의 동공을 보며 상혁은 놀라 숨을 죽였다.

원식의 눈이 윤설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탁자에 커피 잔을 내려놓더니 이내 성큼성큼 다가왔다.

상혁은 눈을 돌려 제 곁의 윤설을 바라봤다.


툭- 툭-


바닥에 뜨뜨미지근한 액체가 떨어졌다.

윤설은 코밑이 따끈 거리는 걸 느꼈는지 그제야 손을 들어 코와 입술 사이를 만지작거렸다.

끈적하고 비릿한 액체가 손에 잔뜩 묻어 나왔다.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은 느낌에 윤설은 미간을 찌푸렸다.


원식이 체 그녀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상혁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입가에 대고 꾹 눌렀다.

놀랐는지 작은 신음이 윤설의 입가에서 새어 나왔다.


"만지지 마, 코피 난다"

윤설의 어깨를 살짝 움켜쥐고 상혁이 말했다.


"으..."

윤설은 피가 묻어 축축한 제 손을 들고는 작은 칭얼거림을 뱉어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괜찮아"

상혁이 말했다.

그가 윤설의 어깨를 토닥였다.


원식은 한 발자국 뒤에 멈춰 서서는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원식은 마른 세수를 하더니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다 이내 한숨을 뱉으며 메이드를 불렀다.


"따뜻한 물수건"


그의 목소리.

작고 낮은 그 목소리.

목 막힌 듯 꽉 메어버린 그 목소리.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에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


따뜻한 물수건을 코에 대고 소파에 앉은 윤설이 맞은편에 앉은 상혁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 예쁜 입술을 가리고 있는 이제는 얼룩덜룩 해진 천조각 덕에 그녀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울려 나왔다.


"상혁씨 손수건 더러워져서 어떡해요"

미안하다는 듯 윤설이 얘기했다.


"괜찮아요"

상혁은 책장을 넘기며 대답했다.

"오늘 일해도 괜찮겠어요?"


"네"

윤설이 웃으며 대답했다.

"고작 코핀데요 뭘"


원식은 가만히 서서 둘을 번갈아 보다 이내 윤설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소파가 한쪽으로 꺼지자 조금 놀란 그녀의 몸도 함께 기울었다.

그녀의 어깨가 그의 어깨에 닿았다.

상혁은 잠시 그걸 바라보다 이내 책장으로 눈을 돌렸다.


원식은 천천히 손을 뻗어 물수건을 쥐고있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윤설은 그대로 눈을 돌려 그의 실루엣을 응시했다.

그의 향기가 맴돌고 있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그의 향기가.


"멎었나 보자"


그녀의 손에서 물수건을 뺏어들며 원식은 말했다.

윤설은 가만히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이내 피가 멎은 그 주변을 원식은 깨끗한 쪽으로 살짝 닦아내더니 물수건을 잘 접어 메이드에게 건넸다.

그녀는 축축하다 이내 차가워지는 그 느낌에 손을 들어 코를 만지작거렸다.

원식은 그런 그녀의 손목을 꼭 잡았다.


"건드리지 마"


그 소리에 윤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낮게 웃는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더듬더듬 손을 뻗어 책을 집어 들었다.

원식은 소파에 몸을 묻고는 턱을 괴었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책을 읽는 상혁의 목소리가 온 거실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 소리에 맞춰 눈을 꼭 감은 윤설의 손가락도 부드럽게 움직였다.

원식은 이내 눈을 감았다.

새끼손가락에 닿은 그녀의 옷자락이 내심 부드러워 꽉 움켜쥐고만 싶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아 달디 단 술처럼 나를 취하게 하는 너의 그 목소리.


원식은 눈을 살짝 뜨고는 제 옆의 그녀를 응시했다.

꼭 감은 두 눈, 부드러운 입술.

유영하듯 책장을 쓰다듬는 손가락과,

한 시도 가만히 놔둘 수 없는 그녀의 존재.


원식은 상혁에게로 눈을 돌렸다.

상혁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어디 틀린 곳은 없는지,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원식은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무릎을 쓰다듬었다,

흠칫 놀란 듯 윤설은 가만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손을 뻗어 하지 말라는 듯 원식의 손을 꾹 눌렀다.

원식은 웃음이 나오는지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는 그런 그녀의 손을 바로잡아 깍지를 꼈다.

작은 숨소리가 윤설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문득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설은 고개를 들고 상혁의 실루엣을 응시했다.

원식도 이내 눈을 떴다.

나른한 그 눈동자가 상혁을 향했다가 이내 다시 마주 잡은 손으로 돌아갔다.


"다음 거는 천천히 하죠"


윤설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상혁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고마워요 상혁씨"

그녀가 말했다.


상혁은 슬쩍 웃더니 시계를 확인하듯 손목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가 원식에게 말했다.

원식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목례를 한 상혁이 이번에는 윤설을 바라봤다.

"이따 저녁에 봐요"


그 목소리에 윤설은 살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살갑게도 이야기했다.


"잘 다녀와요"


상혁은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겉옷을 입고 신발을 신으니 괜히 마음이 쓸쓸해졌다.

바깥공기가 유난히도 차가운 것 같아서 상혁은 얼른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입술 사이로 하얀 김이 연신 뿜어져 나왔다.


"아-"

문득 그가 짜증스러운 탄식을 흘렸다.

"외로워 죽겠네"


한참을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있던 상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예약전화, 오늘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는 것을 상혁은 잊지 않았다.

아까 그 붉은 피가 생각나서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영화 제목이 '블라인드'라고 그녀가 말했던 것 같았다.


블라인드.


블라인드.


그녀의 눈동자.


----------


윤설은 책을 덮고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오른쪽 눈에 먼지가 낀 듯 부분부분 까만 점이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윤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꾹- 꾹- 눌렀다.


원식은 여전히 나른한 눈으로 소파에 파묻혀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종이를 정리하는 그녀의 손등 위로 샹들리에 불빛이 내려앉았다.

한참을 부스럭거리며 탁상을 정리한 그녀가 이내 가만히 손을 모았다.

원식은 제 앞에 놓아둔 커피 잔을 바라봤다.


"일부러 그랬죠"

윤설이 말했다.


"뭘"

원식이 고개를 젖히며 물었다.


"방해했잖아요"


천장을 응시하던 그가 이내 눈을 꾹 감았다.

"...내가 그랬나"

그가 중얼거렸다.


"응"


문득 짧아진 그 대답에 원식은 얼른 고개를 들고 윤설을 바라봤다.

윤설은 원식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하...!"

그가 웃었다.


불현듯 원식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숨을 들이마실 틈도 없이 윤설은 그에 품에 안기듯 끌려들어 갔다.

원식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꼭 안고는 어느새 제 가슴팍에 기댄 윤설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려 애를 쓰는 그 몸부림은 아주 가볍게도 무시해버렸다.

윤설도 이내 포기했는지 그저 새근대는 숨소리를 내며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문득 그의 심장소리가 아주 잘 들린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반말하는 거야?"

반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원식이 물었다.


"해도 돼요?"

덤덤하게 윤설은 말했다.


"..."

슬쩍 자세를 고쳐앉으며 원식이 속삭였다.

"안돼"


윤설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식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참 알 수 없는 여자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느 날은 전혀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딱딱하게 굴다가도,

또 다른 날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분고분한 그녀가 

원식은 꽤나 어렵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누굴 길들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말 잘 듣네"

그가 말했다.


"난 원래 당신 말은 잘 들었어요"

대답이 없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원식은 몰래 숨을 삼켰다.


"글쎄"


윤설은 천천히 자세를 고쳐앉았다.

자신 앞의 그의 실루엣을 천천히 그려가며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바로 닿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윤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숨소리가, 따뜻함이 언뜻언뜻 입술에 스친다는 것을.


"잘 생각해봐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윤설이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한 말들 중 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한 적이 있는지"


원식은 나른한 눈으로 윤설을 바라봤다.

지금 꼬이고 있는 게 누군지 굳이 답을 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순수하고 작은 고백과 그와 상반되게도 섹시하게만 보이는 모든 움직임.

무의식적으로 그를 홀리고 있는 그녀의 언행들.

아니,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홀리고 있는 그의 자아.

원식은 그녀를 바라보며 제 아랫입술을 핥았다.


한 번이라도 그녀가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서재에서 꼭 감은 두 눈을 억지로 뜨라고 말했을 때에도,

애먼 밤을 자신의 방에서 두려움에 떨며 보내라 했을 때에도,

그리고 자신에게 어디 아픈 덴 없냐 물으라 했을 때에도.


단 한 번도 그녀는 그의 말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아니, 단 한 번도 그녀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 이 얼마나 자비로운 여자인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


"그러게, 없네"


원식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듣기 좋은 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바람처럼 새어 나왔다.

윤설은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내리깔다가 이내 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어지러워"

그녀가 말했다.


원식은 웃음을 거두고 그런 윤설을 가만히 바라봤다.

아까 코피를 많이 쏟아서 그런지 조금 창백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파?"

그가 물었다.


"아니요"


그는 그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약한 척해보는 거예요"

윤설이 말했다.


"왜"

원식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그녀는 눈을 살짝 감았다.

"당신이 내가 약한 걸 좋아하니까"


원식은 마른침을 삼켰다.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그녀에게 한 적이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지,

어디서 그런 것을 느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분이 묘했다.

괜히 들킨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가 물었다.


"...그냥..."

윤설은 말끝을 흐렸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어요"


원식은 한참 동안 윤설을 빤히 바라봤다.

꼭 감은 두 눈, 그리고 그 검은 속눈썹을.

원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윤설도 이내 눈을 뜨고 그에 맞춰 몸을 일으켰다.

꽤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윤설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식은 자리를 뜨려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제 무릎 위에 앉혔다.

그녀가 일어나려는 듯 손목을 비틀었다.

언제나 그랬듯 별로 소용없는 짓이었다.


소파에 눕듯 원식은 다리를 올렸다.

기다란 소파가 차고 넘칠 것만 같았다.

원식은 윤설을 바라보며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녀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윤설은 몸을 굳혔다.


한참의 뒤척임이 끝나자 원식은 제 허리 위에 앉아있는 윤설을 바라봤다.

그녀는 내려가고 싶은 듯 계속 몸부림쳤지만 별로 성과는 없어 보였다.

원식은 민망해하는 그녀를 꼭- 잡고는 놔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를 내려다보는 게 윤설은 처음이었다.


문득 그가 그녀를 잡아당겼다.

헉- 하는 소리가 놀란 윤설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그녀의 두 손이 그의 가슴팍에 닿았다.

윤설이 얼른 손을 떼자 원식은 다시 한 번 그런 그녀의 팔을 끌어당겼다.

이번에는 어깨에 닿은 그 팔을 윤설은 차마 떼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소파 팔걸이에 비스듬히 기댄 채 앉아있던 원식은 윤설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소녀인지 여자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게끔 선을 넘나드는 윤설이 그는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무거워요"

그녀가 말했다.


"그래 조금 무겁네"

그가 대답했다.


문득 그녀의 콧등을 찡그린 것 같았다.


"내려갈래요"

윤설이 다시금 몸을 뒤척였다.


"가만히 좀 있어-"

그가 그녀의 다리를 꾹- 누르며 말했다.

"흔치 않은 기횐데"


"...뭐가요"

윤설이 물었다.


"네가 내 위에 있는 거"


"...그게 뭐야"

그녀가 중얼거렸다.



달아오르는 윤설의 얼굴을 바라보며 원식은 입을 열었다.


"...약한 척 안 해도 돼"


"..."


"그냥 너면 돼"


윤설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끔 차갑고"

그가 말했다.

"가끔 아파도"


"..."


"솔직하고"


"..."


"부끄럼 많고"


"..."


"말 잘 듣는..., 알겠지?"


"..."


"대답 잘 안 하는 게 흠이야"

원식이 말했다.


"알았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근데 나 말 잘 들어주는 거예요, 말 잘 듣는 게 아니라"


"알아"

원식은 씩- 웃었다.


잠깐의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매웠다.

원식은 그걸 쪼개고 쪼개서 그녀의 눈에 쏟아부었다.

그 검고 멀어가는 두 눈에.

문득 그가 제 아랫입술을 핥았다.


천천히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로 향했다.

은밀한 그 움직임에 윤설의 눈이 흔들렸다.

원식은 그걸 다 보고 있었다.


"자..."

문득 그가 입을 열었다.

"키스해줘"


"아..."

작은 탄식이 윤설의 입술 사이로 걸어 나왔다.


원식은 몸을 조금 일으켰다.

둘 사이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또 한 번의 덜컹거림이 그녀의 몸을 흔들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그의 어깨 위에 있었다.


"착하지..."


그의 목소리.


그녀를 흔드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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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공이에요ㅠㅠㅠㅠ흐엉......얘네 왤케 달달해ㅠㅠㅠㅠㅠ달달보스ㅠㅠㅠㅠ기먼식ㅜㅜㅜㅜ역시 김다정ㅠㅠㅠㅠ작가님 진짜.....더럽♡ 나 이 글 보길 잘한거같아여ㅠㅠㅠ 근데ㅠㅠㅠ설이 눈 ㅠㅠㅠㅠㅠㅠㅠ병원가야할텐데ㅜㅜ
8년 전
무지개
이공! 블라인드도 읽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8ㅅ8
8년 전
독자2
헐 헐 헐 헐 헐 헐 헐 헐 헐 헐
8년 전
독자3
와 세상에 저 여주처럼 코피터질뻔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겁나 설레 세상에 김원식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렐기세.... 아니 이미 설레여....... 9ㅅ9
8년 전
무지개
김다정씨가 다하셨지요 9ㅅ9
8년 전
독자4
세상에 마상에....진짜 둘이 이렇게 갑자기 달달해지면 저 죽잖아요...ㅠㅠㅠㅠ김원식 민간인 심장 후려치는게 취미인가ㅠㅠㅠㅠㅠㅠㅠ근데 설이 눈 많이 아픈건가ㅠㅠㅠㅠㅠㅠ병원가야하는거 아니에요??ㅠㅠㅠ설아 아프지마ㅠㅠㅠㅠ
8년 전
무지개
김원식 고소해야해요 8ㅅ8 이 죄많은 사람 8ㅅ8ㅅ8
8년 전
비회원222.150
나라세~(라 쓰고 이제야 돌아와서 댓글 쓰는 반역자)
와... 저도 착할 수 있는데... 와.... 둘다 사랑스럽다

8년 전
무지개
나라세! 다들 착한 별빛이 되어요 우맄ㅋㅋ
8년 전
독자5
흐어.........ㅠㅠㅠㅠㅠㅠㅠㅠ오늘도 잘 읽고갑니다ㅠㅠㅠ 왜이리 섹시한건지ㅠㅠ 설이도 식이도 너무 달달해서 좋네요. 설이 점점 더 아파지는건ㅠㅠ너무 슬픈데ㅠㅠ
8년 전
무지개
읽어줘서 고마워요! 슬퍼질까요 8ㅅ8??
8년 전
독자6
세상에 설이 코피가 터지는건지 내 코피가 터지는건지........................................ (사망)
8년 전
무지개
심폐소생술!
8년 전
독자7
무지개님 두이입니당...놓친 너그눈 메일링도 독방에서 잘 받았어용 사랑해요ㅠㅠㅠ이번 편도 사랑햐요 잉 작가님 내가 사랑하는거 아는지 모르겠어 무슨 배운 변태처럼 매 화마다 저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세요ㅜㅜ작가님 덤덤하게 표현하실때마다 달달함이 더 달게 느껴져요ㅠㅠㅠ작가님 날 가져요
8년 전
독자8
아니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렇게 섹시해서야 원시가ㅠㅠㅠㅠㅠㅠㅠ
8년 전
독자9
아아 좋은 삶이였다... 김원식...김다정씨ㅠㅠㅠㅠ 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ㅠㅠ 저렇게 달달터지는 원식이와 설이라니ㅠㅠㅠㅠㅠㅠ
8년 전
독자10
아나........우이상혁이는 그냥 제가업어갈게여......이렇게 착한남자를 봤나ㅜㅜㅠㅠㅠㅠ근데 설이 왜케 사망플래그? 다침플래그? 걸을거같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이잉 마음아프지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마음을 아프게 하는 글은 대단한 그ㄹ이지요....저도 숨못쉬게써....크으으....
8년 전
독자11
ㅜㅜㅜㅡㅠ저도외로운데상혁이제가......
8년 전
독자12
아진짜이런살떨리는로맨스..사랑해요ㅠㅜㅜ진짜감사합니다ㅠㅜ너무좋아여ㅠㅜ계속보게되는매력이있어요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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