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을 믿었어요"
"..."
"주위에서 누가 뭐래도 난 널 믿었다고, 근데 결말이 이게 뭐야? 널 믿어준 내게 대체 왜 이러는건데"
옆집 남자 02
Write. 옆집 남자
“어어 그건 여기다가 두시면 돼요!”
“아가씨 이거는?”
“냉장고 바로 앞에다가 둬 주세요”
꼭두새벽부터 이사를 시작했다. 엄마는 겨울이라서 해가 빨리 진다며 잔 말 말고 아침부터 이사를 하라며 내게 압박을 줬고 난 어쩔 수 없이 아침부터 이사를 했다.
주인이 없는 자취방은 처음 본 모습보다 더 넓고 깔끔해보였고, 여기서 살게 된다는 기대감에 더 부풀어 즐거운 마음으로 이사를 진행했다.
텅 비어있던 하얀 백지 같았던 공간에 하나 둘씩 내 흔적을 새겨가는 모습을 보는건 언제나 즐겁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고 재밌게 이사를 시작한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싫증이 나 버렸다.
아, 이걸 언제 다 해. 귀찮아.
박스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땀이 흥건해지신 업체 아저씨들께 토마토 주스를 한 컵씩 드리고 집 안을 둘러봤다.
“...아가씨 이걸 어쩌지? 미안해”
아저씨께서 날 부르는 것 같은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붉은 색의 토마토 주스가 바닥에 묻어있다. 아, 토마토 주스 엎지르셨나보네.
지금 닦지 않으면 또 이상한 찐득거리는 느낌이 내 맨발에 와 닿을 걸 알기에 박스에서 걸레를 하나 가져와 붉은 빛의 토마토 주스를 닦았다.
이제부터 짐 정리 좀 해 볼까
*
*
*
짐 정리를 열심히 하다가 허리가 아픈 느낌에 잠시 서서 스트레칭을 하며 밖을 봤더니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아,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된거지. 밥은 또 뭘 먹어야해
남은 짐들을 쭉 둘러보니 상자가 두 세 개 남은 것 같다. 거의 다 끝내 기쁜 마음에 다시 짐 정리를 하려고 허리를 숙였을까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나 하나 있는 조용한 집에 초인종 소리가 울려서 그런가 평소보다 더 크게 들린다.
오히려 너무 크고 잔잔히 울려 퍼지는 초인종 소리가 무서웠다.
누구지 나 찾아올 사람은 없는데.
문을 열어보니 저번에 봤던 그 남자가 서있었다
“오늘 이사했다면서요?”
전과 같이 웃어 보이는 얼굴. 진짜 하얗다. 이런 사람이 내 이웃이라니 너무 좋다.
이제 이런 얼굴을 매일 볼 수 있는건가
“짐 정리 도와주려고 했는데, 거의 다 한 것 같네요”
머리를 문 안으로 집어 넣다가 빼더니 짐을 가르키며 거의 다 한 것 같다고 한다. 들어오고 싶다는 신호 같아서 나는 별 의심 없이 남자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짐 정리 조금 남은 거 계속하고 저랑 밥 먹어요. 괜찮죠?”
아, 이 남자. 매너있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지. 여자 여럿 울리고 다녔을 것 같은 스타일이다.
짐정리가 끝나고 시켰던 짜장면이 오자 둘은 식탁에 마주보고 앉았다.
“오늘 불쑥 찾아와서 심란한 이삿날 더 폐가 된 건 아닐지 모르겠어요”
“에이 설마요. 덕분에 짐 정리도 빨리했고, 밥도 맛있게 먹는걸요?”
“나중엔 더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아, 시간이 늦었네요. 다 먹은 거 이제 제가 정리할게요”
“아니에요. 사주신 것도 감사한데 제가 치워야죠. 늦었는데 어서 들어가세요”
“그럼 다음에 봐요”
이 남자와의 대화에서 알아낸 것은 얼마 없었다.
이름은 민윤기, 나이는 24살 그리고 유명한 대기업에 다닌다는 것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남자였나보다 정말. 매너도 좋던데, 아 왜 내가 다 좋고 부끄러운 거지
그리고 난 그 날 남자의 따뜻한 배려와 새로운 집에 대한 설렘에 밤잠을 설쳤다.
조용한 밤에 들려오는 비명 소리는 이어폰 소리에 묻혔고, 처절한 어떤 이의 외침은 설렘에 빠진 그녀에겐 들리지 않았다.
*
*
*
“내가 밥 먹고 오는 동안 닥치고 있으라고 했지”
“...살려주세요”
“근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을 쳐?”
“죄, 죄송해요 그러니까...”
“죄송? 허, 그래 죄송하겠지.”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갔고 남자가 다가올수록 여자의 몸은 더 떨린다.
계속해서 사시나무처럼 떨던 여자에게 다가간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들어올렸다.
“내가 닥치라고 했지”
머리채를 들어올리자 갑자기 전해져오는 아픔에 여자는 소리를 질렀고, 남자는 혹여나 소리가 새어나갈까 여자의 입을 청테이프를 사용해 막았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놓은 뒤 사정없이 구타했다. 머리, 배, 다리 어느 한 곳도 빼놓지 않고 밟거나 차거나 때렸다.
“앞으로 우리 조용히 살자고, 응?”
“...”
“자꾸 이렇게 소란스러우면 나도 어쩔 수 없어”
“...”
“우리 조용히 살자? 응? 오래 살고 싶잖아 학생”
남자는 힘이 다 빠진건지 떨고있는 여자의 눈높이에 맞춰 앉은 뒤 말을 했고, 잔뜩 헝크러진 머리와 곳곳에 피가 묻어있는 여자의 꼴을 보고 소름끼치도록 웃은 뒤 방을 빠져나갔다.
텅 빈 방에 자신이 흘린 피 위에 앉아있던 여자의 눈에선 두려움과 떨림의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고, 여자의 피는 묽어져 검붉은 빛이 아닌 붉은 빛을 냈다.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여기서 빠져나가게 해 주세요
여자가 마음속으로 몇 백번이고 했던 말이지만 하늘은 그런 여자의 바람을 무시했다.
오늘 밤은 누군가에겐 설렘에 누군가에겐 두려움에 잠을 설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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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집 남자의 사담 |
1화부터 많은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낮에 글을 올린지라 시간이 남아서 2화도 벌써 들고 왔네요 암호닉 신청은 지금도 받는 중이니 비회원 분들도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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