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손가락 마디조차 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 전 낯선 남자가 나를 가볍게 들어 올리고선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남자의 어깨너머로 편의점을 막 빠져나온 태형이 보인다. 뛴다. 비는 이때다 싶었는지 더욱 거세게 내린다. 그리고 태형이 빠른속도로 달려오는 검은 차에 부딪히는 걸 보고 있어야만 했다, 난. 방금까지 걸어 왔던 구불구불한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한 건물로 들어섰다. 흐리멍텅해지는 시야로 겨우 정신을 다잡았다. 수정이네 아파트다. 나를 들고 한참을 뛰던 남자가 건물에 들어서선 주춤거린다. 갑자기 오른쪽 현관에서 도어락이 열리며 문고리를 내리는 소리와 동시에 남자가 빠르게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얘는 어디까지 갔길래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수.."
겨우 힘을 내어 쥐어짜 낸 목소리는 도로 들어가고 만다. 함께 내 정신은 결국 아득해졌다.
D-40
감긴 눈 위로 밝은 빛이 느껴진다. 따스함이 내 몸을 감싼다.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내 시야에 가득한 노을은 온통 절망 속 유일한 빛인 마냥 밝았다. 온몸이 쑤신다. 갑자기 절로 기침이 난다. 여기저기 후끈거리는 게 감기가 분명하다. 입을 벌려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제야 숨통이 트인다.
"어 일어났네?"
눈을 뜨고서 아직 먹먹한 귀에 처음으로 박힌 음성은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곧이어 내 시야에 불쑥, 웃는 얼굴이 가득 찬다.
"난 또 너무 안 깨길래,"
"......"
"죽어버린 줄 알았지."
웃으며 말을 하던 남자는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김여주. 스무살. 명문대 경찰행정과."
"......"
"듣기론 뭐... 경찰 집안이라고?"
"존나 웃기네."
순간 모든 장면이 단번에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끝은 빠르게 달리는 차에 치인
"김태형..."
"태형? 아. 그 키 큰 경찰 형아?"
"...김태형 어쨌어."
"어쨌냐고? 음 너무 직설적이다."
남자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붕대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선 내 볼을 쓰다듬는다. 순간 독하게 매운 냄새가 올라 온다. 파스인가?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던 난 손길을 뿌리치려 몸을 일으키다 양손에 느껴지는 갑갑함에 손발이 묶여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흥미로운 표정을 짓기 시작한 남자가 내 위로 올라타 나를 내려다본다. 덜컥 숨이 막혀온다.
"빨리 말해!!"
"진정해. 죽이진 않았으니까."
나도 원치 않지만 어느샌가 스멀스멀 기어오는 공포심에 숨이 가빠진다. 남자가 내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더니 뒤로 휙, 물러난다.
"재밌는걸."
"......"
"지금 이 상황이 무서워?"
"...아니."
"몸은 그렇게 벌벌 떠는데 거짓말할 거야?"
눈물이 흐른다. 김태형은 어떻게 됐으며 이 남자는 누굴까.
"40일. 너랑 나한테 주어진 시간."
"......"
"네가 이 집에서 도망쳐 나가거나. 도망치려던 흔적이라도 보이면 그 즉시-"
"......"
"김태형은 물론 친구, 가족까지 모두 죽는다."
말을 마친 남자가 일어나 식탁 의자에 걸쳐진 검은 재킷과 검은 모자를 손에 들고서 현관 쪽으로 걸어나간다.
"어디 한 번 버텨보자. 40일."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실내가 조용해진다. 40일.
"정신 차리자 김여주."
주위를 둘러보니 일반 가정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부엌에 티비에 소파 그리고 선반 위를 장식한 액자들. 실내 구조를 보니 내 착각은 아니었나 보다. 정신을 잃기 직전 이 건물에 들어 왔을 때 수정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기는 수정이가 사는 아파트다. 겨우 상체를 일으켜 불편한 자세로 앉았다.
선반 위 액자엔 다양한 사진이 걸려있다. 그중 하나엔 가족사진인 듯싶은 사진도. 형제인 듯싶은 어린 남자아이 두 명과 부모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 누가 보아도 단란한 가족. 아마 아까 그 남자의 어릴 적이겠지. 우리집은... 이런 흔한 가족사진도 한 장 없는데. 옆 장식장 속에는 온갖 메달과 상장이 가득하다.
"합기도?"
나도 합기도 했었는데. 금, 금, 은, 금,.. 다양도하다. 거의 온통 금빛이긴 하지만.
"최우수상 오오... 전.. 정현?"
그 남자 이름이 전정현인가.
벌써 어둑어둑한 창밖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납치된 것치고는 꽤 침착한 내 행동에 곰곰이 생각해 본다. 분명 김태형이 날 구하러 올 거라는 확신에 차 있어서인 건가.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한숨을 쉬며 옆에 놓인 리모컨을 겨우 붙들었다. 손이 뒤에 묶여있는 탓에 손가락을 더듬거리며 전원버튼인 듯한 동그란 버튼을 눌렀다. 틱, 소리를 내며 티비 화면이 켜진다.
'이번엔 진한 그룹 아닌 20대 초반의 일반인 여성이 **구 연쇄 살인범에게 인질로 잡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진한 그룹에 원한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며...'
티비가 켜지자마자 시작되는 내 소식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발. 인질은 무슨 그냥 납치구만."
근데 그 거지 같은 폼의 남자가 진한 그룹에 무슨 용건이 있는 걸까. 갑자기 진한 그룹의 막내아들 차인승이 살해된 당일 나와 골목에서 부딪혔던 남자의 옷차림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주위를 휙휙 둘러보다 베란다 빨랫줄에 걸린 검은색 후드집업이 눈에 띈다. 맞다. 그때 내가 마주쳤던 피를 한가득 묻히고 경직되어 뛰어가던. 그럼 지금 여기가 진한 그룹 사건 범인의 집. 손끝부터 소름이 돋아오른다.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도 나, 꽤 침착하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 감도 오지 않는다. 40일. 갑자기 덮쳐오는 공포심에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눈물이 목선을 타고 주륵 흘러 내린다.
"김태형..."
이 순간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태형이다. 괜찮을까. 그렇게 빠른 속도에 부딪혔는데. 많이 다쳤을까. 또 괜히 자책하고 있겠지. 날 지켜주지 못 했다고. 고개를 들어올려 눈물을 멈추려는 순간 현관이 열리며 주황색 센서등이 켜졌다. 그러고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아까 그 남자, 아니. 범인이 한 쪽 손을자켓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다리를 비틀거리며 내 쪽으로 오다 그만 넘어지고 만다.
"씨발!!!!!!!"
남자가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나는 눈물이 범벅된 상태에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과연. 정말. 내가 보고 있는 이 사람이 그토록 잔인하게 세 번의 살인을 저지른 사람일까?
"아버지..."
코 끝으로 진하게 풍겨오는 술내와는 모순되게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쏟아내는, 아버지를 애타게 찾으며 내 품에 기대오는 이 남자가.
"어이."
내 등을 툭툭 차는 발길에 억지로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 후각을 자극하는 라면 냄새에 위가 요동친다. 얼마나 굶은걸까...
"먹어."
힘 없이 누워있던 나를 억지로 일으켜 식탁 앞에 앉힌 건 다름 아닌 그 남자였다. 날 납치한. 세 명을 죽인 연쇄 살인범. 어제 밤 술에 절어 어린애처럼 아빠를 찾으며 울던.
"...배 많이 고플 거 아냐."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뒷통수를 긁적이다 이내 내 앞에 있던 접시를 들고 라면을 옮겨 담아준다. 그러고선 민망한 듯 헛기침을 두어번 한다. ..정말 이 사람이 살인을?
"떠먹여줘야 돼?"
"아. 잘 먹을게...요."
말 뒤에 따라붙은 '요'에 젓가락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텅 빈 눈동자로 나를 쳐다본다. 젓가락을 물고 있던 내가 고개를 슬며시 들어 눈이 마주치자 곧 바로 시선을 피한다. 조용한 집 안에는 후루룩거리는 소리와 젓가락질 소리만 들린다.
"근데..."
"뭐. 말해."
"떠먹여주셔야 될 것 같은데..."
"미쳤냐?"
"이거요."
식탁 위로 노끈에 꽁꽁 묶인 내 양손을 옅게 흔들어 보였다. 내 제스쳐에 멍한 표정이던 남자는 이내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부엌 서랍을 열고 잠시 뒤적거리는가 싶더니 커다란 식칼을 꺼낸... 식칼? 그걸 들고선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온다. 당황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 하고 점점 얼굴이 굳어간다. 곧이어 남자가 칼을 휙 들어올렸을 때 눈을 질끈 감았다.
"...뭐하냐?"
"아..."
칼을 집어든 남자는 내 손을 알차게 묶은 노끈을 질겅질겅 끊고 있었다. 이 새끼가 날 놀리려고...!!
"아! 아..."
"헐 미, 미안!! 야, 약..."
칼이 잘 안 드는지 신경질적으로 끊을 끊던 남자는 내 손목을 실수로 옅게 베고 만다. 길게 베여 따끔거리는 살에서는 피가 빠르게 뚝뚝 흐른다.
장식장 밑에 달린 서랍장에서 급히 구급상자를 꺼내 온 남자는 노끈을 급하게 풀더니 소독약을 내 상처에 주르륵 흘린다. 따끔거리는 손목에 붙어 오는 밴드를 보고 있자니 얼마 전 넘어져서 다친 무릎을 치료해주던 김태형이 떠오른다. 거 더럽게 보고 싶네.
"감사..."
"......"
밴드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든 나는 생각보다 너무 가까이 있는 남자의 얼굴에 당황한 채 굳어 버렸다. 마찬가지였는지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 눈을 마주치는 남자다. 어색한 상황에 애써 웃음 지으며 뒤로 돌아 젓가락을 집었다.
"먹, 먹읍시다!"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앉은 남자가 냄비 속 라면 국물에 떠 있는 계란을 집어 내 그릇에 옮겨 주었다. 맞을까...
"이름이 뭐예요?"
"...전정국."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리며 이름 석 자를 작게 중얼거리는 이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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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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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챠밍 라블 동도롱딩딩 판도라 꿀호빵 핑콩이 밤식빵 힘다 ㅈㄱ 따슙 꽃잎 0207 바밤바 첼리 눈침침이 양장피 지민이와함께라면 준아 전정꾸기S2 김태형에인생베팅 다섯번째계절 덩율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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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브금이랑 글은 잘 어우러졌는지요ㅠㅠ 참 어제 제가 올린 단편 사극물이 반응이 더 좋더라구요...(씁쓸)
다음엔 사극물로 가겠습니다ㅋㅋㅋㅋ 이건 소설이니까 여주가 저 상황에서 좀... 침착해도 이해해주세요ㅋㅋㅋㅋ
그리고 독자님들에게 한가지 부탁이... 답글이나 이렇게 끝에 짧은글 남길때는 띄어쓰기 맞추기 귀찮으니까 보기싫어도이해해주세요♥
어제 브금문의해주신 분이 계셨는데 어제 브금은 싸인ost Pawn's Mask 입니다.
그럼 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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