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발을 만들어 층층이 쌓인 책들 사이에 끼여 삐죽 튀어나온 주황색 다이어리를 집어들었다. 그러고선 아무 것도 없이 휑한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아 다이어리의 표지를 한 번 쓸어내렸다. 그리고선 첫 장을 넘겼다. 고등학교 때 쓰던거니까... 진짜 오래된 거네. 몇 장 더 넘기다 보니 사진 한 장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허리를 굽히고 손톱을 세워 사진을 집어들고 뒷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2012년 3월 4일. 마구 휘날리는 연분홍색 꽃잎 사이에 남색 교복을 가지런히 입은 나의 피터팬이 서 있다. 여전히 내가 사랑한 그 모습 그대로, 눈이 부시도록. 한 없이 맑은 얼굴로 나를 향해 미소 짓는 나의 피터팬.
"선생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빨리 갔다 와!!"
"하, 쌤...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기다리지 않으셔도 돼요!!"
저거 또 저런다.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입꼬리를 들썩거리며 반 문을 힘차게 열어재꼈다. 계단을 다다다 내려간다. 도저히 못 참겠는 걸 어떡합니까. 이건 생리 현상 보다 급한 거라구요. 2학년 6반의 내 자리 바로 옆에는 창문이 있는데, 3월 초. 한창 벚꽃 잎이 휘날리는 시기라 운동장 옆 산책로는 온통 꽃잎에 뒤덮혀 보기만해도 기분이 나른해지는 풍경이 연출된다. 꽃잎을 하나 잡고 올라타 날아다니고 싶은 기분이랄까.
이건 진짜 담어야 해. 거 참... 꼴에 숨긴다고 숨기긴 했는데.., 불룩 튀어나오게 조끼 속에 넣은 카메라를 꺼내어 목에 걸었다. 산책로를 걸으면서 고개를 한껏 재쳐들고 하늘을 본다. 하늘이 분홍색이야-
"와 진짜 이쁘다-"
뒤로 돌아 천천히 뒷 걸음질을 하며 여유로이 벚꽃을 감상하는 찰나, 내 등에 뭔가 묵직한게 툭 하고 닿았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자 보이는 노란색 명찰. '김태형' 시야에 가득 차는 이름 석자에 멍하니 굳어있다 콧잔등을 스치는 분홍 꽃잎에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해."
웃는다.
입꼬리를 잔뜩 들어올려 아랫니까지 훤히 드러내며 맑게 웃는다.
미소가 연분홍색 배경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피터팬이다, 내가 그토록 바래오던.
넌 나와 많이 닮아있었다. 너와 나는 사교성이 좋아 주변에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닿을 수 있는 친구가 없었고, 그런 너는 그런 나에게 항상 먼저 다가와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내 진심, 내 모든 것이 되었다. 아, 내 모두가 되어주진 않았다. 되었을 뿐이지 되어주진 않았다. 깨달은 순간, 나는 날개를 잃은 팅커벨이 된 기분이었고, 웬디가 될 수 없단 걸. 나는 너의 모든 것이 될 수 없단 걸 알아차렸다.
먹을 때 입가에 묻는 부스러기를 꼭 혀로 핥는 버릇, 양치를 하고선 꼭 칫솔의 물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번 털어내는 버릇. 꼭 우유에 초코가루를 타먹어야 하는 인스턴트 식성, 야채를 골라내고 고기만 쏙쏙 잘도 빼먹는 재주. 너의 모든 것. 그래도 좋았고 그래서 더욱 좋았다. 여전히, 너는 나의 피터팬이었다.
<피터팬의 모든 것>
"너 어렸을 때 피터팬 읽었었어?"
"당연하지!"
"넌 피터팬에서 누가 제일 좋았어?"
"나는.., 팅커벨!"
"...왜?"
"그냥... 멋있잖아. 팅커벨이 없었으면 피터팬도 없었을 걸?"
나의 피터팬, 태형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내 시야를 가득히 메우는 석 자 '김태형'.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방탄소년단/김태형] 피터팬의 모든 것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1/01/22/8c61ae007bae3c2bbb688f150074a684.gif)
![[방탄소년단/김태형] 피터팬의 모든 것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12/30/0/1d972f75033b30cb87ea7b4960cc91be.gif)
차은우 식탐 진짜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