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부가 아프다 할정도로 따가웠던 햇살이 싱그럽기만 했던 것 도
지겹게도 쏟아지는 소나기가 한 줄기의 단비같이 느껴졌던 것 도
이제와서 생각 해보니, 내 기억속의 니가 꼭, 여름을 닮았었기 때문이 아니였나 싶다.
아, 넌 여름이였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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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덥네. 오늘 이 말만 대체, 몇번 째 입밖으로 꺼내는 건지 모르겠다. 쨍쨍하게도 내리쬐는 햇살과, 귀가 아파올 만큼 시끄럽게 울어 대는 매미 소리들. 아무리 많은 선풍기와 에어컨을 하루종일 틀어 놓아도, 이 막강한 더위를 깨끗하게 물리칠 수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아 안되겠어. 정수정이 아칩부터 내 앞에서 계속 얄밉게 자랑하던 저 앙증맞은 1인용 선풍기를 문방구든 어디든, 기필코 찾아내서 오늘 안에, 꼭 사고야 말것이니라.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아 미친 눈 감기는 것 봐 ”
와씨, 더우니까 이제 혼잣말도 막 나오네. 인간적으로, 이 무더운 여름에, 그것도 점심먹고 바로 다음이라 안그래도 나른해 죽을 것같은 5교시에 수학수업을 들으라는건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선생님 대답해 보세요! 차마 밖으로는 꺼낼수 없는 소리없는 아우성을 속으로 외치며, 나는 혼자 씩씩 열을내었다. 아무리 잠이 쏟아지고 눈이 저절로 감기는 수학시간이라 해도, 내가 여태껏 있었던 수학시간 동안 절대 잠을 자지 않았던 이유는 딱 하나, 선생님이 엄청 무섭기 때문이였다. 조금만 멍 하게 있거나, 조는 티를 내기만 하면 벌점을 주거나, 벌점을 주거나, 혹은 벌점폭탄을 선물 해 주시니…벌점을 왕창 받아서 교내 봉사를 할 바에는 차라리 잠을 참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항상 내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까지 졸음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곤 한다.
근데 오늘은 뭔가 느낌이 쎄한게…너무 졸려. 아니, 그니까 내 말은…그냥 존나 졸리다고.
“ 야 000! ”
“ …느예? ”
아 지져스. 결국 선생님께 이름이 불리고야 말았다. 망할, 어떡하지.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급하게 깬 날 보며 반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어대기 바빴다. 아니 니네는 졸리지도 않니…? 어쩜 그래…? 어쩔줄몰라 하며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날 보며, 선생님은 엄청 화가나신 건지 곧 칠판을 탕탕 치시면서 말하셨다.
“ 000, 너 이거 못 풀면 벌점 10점이야 ”
“ 예…? 아 너무해요 쌤! ”
“ 잔말 말고, 대답해 답 뭐야? ”
저게 뭐야…아니 그래서, 루트가 대체 몇개죠?…길게도 늘어진 수학문제를 보고 있자니,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나도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아 저걸 어떻게 풀어. 날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시는 선생님 때문에, 일단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속으로 푸는 척을 하기는 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문제의 답 때문에 나는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었다. 제발 나 좀 살려줘 수정아! 하는 표정으로 은근슬쩍 고개를 돌려 정수정을 쳐다보았지만,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자기도 저 답을 모른다며 손으로 엑스자를 보이는 행동 때문에 나는 더 식은 땀을 흘릴 뿐이였다. 아, 그냥 눈 한번 딱 감고 벌점 받아? 교내봉사 해? 막막한 마음에 입술만 뜯으며, 손을 가만 두지 못한 채 책상을 두드리는데,
“ 3 ”
짝꿍이, 내 손을 덥썩 잡아 왔다.
“ 어? ”
“ 답 3이라고 ”
“ 아…근데 이거 ㅅ, 손… ”
“ 책상 두드리지마 ”
“ … ”
“ 거슬려. 엄청 ”
학기 초 부터, 이제 껏 단한번 말한번 섞어 보지 못한 짝꿍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심히 당황했다. 아니 그니까…아까 보다 더 식은 땀이 나는 것 만 같았다. 기분탓인가.
“ ㅅ,선생님 혹시 답이 3인가요…? ”
“ 용케 풀었네, 앉아 ”
“ 하하… ”
“ 00이 너, 이따 끝나고 교과서 검사 할거야 ”
네, 라고 대답 한 뒤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진짜 저 선생님은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네, 오늘 같이 더운 날 한번쯤은 좀 넘어 가 주시지 좀…별 시답지도 않은 말들을 궁시렁 거리며 이 깨끗한 교과서를 어떻게 채우나 싶어, 머리를 쓸어 넘기기만 했을까.
갑자기 내 옆으로 쓰윽 넘겨진. 내 수학교과서와는 확연히 다르게 수많은 필기들로 빽빽히 채워져있는 수학교과서를 따라, 곧 짝꿍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뭐지?
“ … ”
“ 뭘 봐 ”
“ …너, 뭐해? ”
“ 너 도와주는 중 ”
*
“ 그래서, 또 걸렸냐? ”
“ 어. 근데, 진짜 졸렸다니까? ”
“ 아까 정수정이 얘기하더라, 너 엄청 졸았다고 ”
역시, 쉬는시간에는 초코우유지! 매점에서 사온, 달달한 초코우유를 마시며 아까 있었던 수학시간의 이야기를 해주니, 그걸 또 언제 정수정한테 들은건지 날 잠만보라며 얄밈게 놀려대는 최민호의 어깨를 아프지않게 때렸다. 아니, 아프게 때릴 걸 그랬나. 이새끼는 맞는 것도 좋은건지 오히려 실실 웃으며 날 더 놀리기 바빴다. …한번 병원을 가야 하는걸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 근데, 오늘 이상한 일 있었음 ”
“ 뭔데 ”
“ 너 이진기 알아? ”
“ 전교1등? 알지 ”
“ …걔 전교1등이야? ”
헐 이제 알았어. 마시고 있던 초코우유를 떨어뜨릴 뻔 할 정도로 놀란 나는, 한손에는 초코우유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벌려진 입을 막으며, 더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최민호를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보며 최민호는, 혀를 차더니, 제발 학교에 관심 좀 가지라며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어쩐지 맨날 조용하고 공부만 하는게 예사롭지 않다 했는데…미친놈. 존나 범생이였잖아?
“ 근데 걔가 왜 ”
“ 아, 아무튼…걔가 나한테 답 알려줘서 나 간신히 살았잖아 ”
“ 뭐? 이진기가? ”
“ 응. 걔가. 왜? 문제있음? ”
살짝 아이러니 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최민호 때문에, 나도 같이 심각해져 표정을 굳혔다. 무슨 문제라도 있냐며 마시던 초코우유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물어 보니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처럼, 미간을 좁히며 날 바라보기만 하던 최민호가, 이내 표정을 사르르르 풀고는 곧 씨익 하고 웃었다. 뭐야.
“ 걔가 너 좋아하나 보다 ”
“ …? 뭐래 ”
“ 널 도와줬다매. 걔 그런 성격 절대 아니거든 ”
“ …ㄱ, 그거 가지고 어떻게 알아 ”
“ 좋아하는 거 아니여도 살짝 호감은 있을ㄱ…아! ”
별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최민호의 말이 어이가없어 절대 아니라며 헛웃음을 치기는 했지만…아까 수학시간에 덥썩 내 손을 잡은 이진기의 행동과, 말투, 그리고 표정이 다시금 머리속에 떠올라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아 최민호 진짜, 겨우 잊고 있었는데…! 그 새를 놓치지 않고, 니 얼굴 지금 토마토 같다며 한대 치고 싶을 정도로 얄밉게 놀려대는 최민호 때문에 더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 들어 평소보다 더 최민호의 어깨를 팍팍 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작스레 날라온 축구공에 등을 맞은 최민호가 작은 탄식을 내었다. 뭐야, 누군데, 하며 최민호의 옆으로 살짝 나와 축구공의 주인을 확인하자니…
좋지 못한 표정으로, 우리 앞에 서있는 이진기를 발견 할 수 있었다.
“ 뭐냐 이진기, 축구공 뭔데 ”
“ … ”
“ …? 이진기? ”
“ …같이 축구 하자고 ”
“ 말로 하면 되지, 축구공을 던지고 지랄이야 ”
이진기의 행동이 그저 웃겼던건지 그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보이던 최민호가, 곧 바닥에 떨어져 있던 축구공을 집으며 먼저 가 있으니 나오라며 이진기의 어깨를 탕탕 치며 운동장으로 향했다. 아니 저새끼, 먼저 가버리면 어떡해…! 점점 작아지는 최민호의 뒷통수를 아련하게 바라보며 소리없이 최민호의 이름만 외치는데,
“ 야 ”
“ ㅇ, 어, 어? ”
“ … ”
나를 부르는 이진기의 낮은 목소리에, 너무 깜짝놀라 돌 마냥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
“ … ”
“ 너… ”
“ …ㅇ, 응? ”
“ …아 미친 ”
“ 너 거슬려 ”
“ … ”
“ …아, 짜증나 진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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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진기가 보고싶었지만 글은 넘나 못쓰는것...여러분 사랑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