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uto.
BGM - Lucia [느와르]
W. 너의 온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공기를 가르고 들려오면 저 멀리서 그가 걸어온다.
'Pluto’
마을의 사람들은 그를 pluto, 저승의 신이라 불렀다.
그가 실제로 신(神)이나 영(靈)의 존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들보다 약한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그 누구보다 악한 사람이었다.
-
오랜만에 그를 따라 종이와 잉크를 사러 책방을 향했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해가 비추는 날이었다. 그에 저도 모르게 들떠 열심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장을 지나쳐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제야 수근 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힐끗하는 눈초리가 느껴졌다. 갈 길을 잃은 저의 눈동자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사람들의 행동은 개의치 않다는 듯 그저 묵묵히 앞을 바라본 채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소리에 귀를 조금 더 기울이고 있자니 아마 저기 아이를 등에 업고 손에는 바구니를 든 여자들은 나를 pluto에게 영혼이 팔린, 그리고 부모에게 버려진 불쌍한 여자라고 칭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듯 했다. 영혼이 팔린 불쌍한 여자라...
"술... 어디 있어!! 네년이지 네년이 내 술을 숨긴 거야 이 망할 년"
가난과 술에 미친 제 홀아비는 하루 종일 술을 마셨고 그마저 떨어지면 저에게 폭언과 폭행을 붓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술을 숨기다니.. 저기 부엌에 있는 쌀 바구니는 한 달이 넘도록 비어있었다. 쌀을 살 돈도 없는데 술이 집에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술이나 찾아대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으니 귀신같이 제 웃음을 발견한 아버지라는 사람은 술 한 방울 남지 않은 빈 병을 손에 든 채 비틀비틀 저에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이 미친년이 어디서 지애비를 보고 쳐 웃어 웃기는"
욕을 퍼붓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방방 대던 그의 손이 높이 처 들렸고 동시에 저의 눈이 질끈 감기었다. 그때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지난밤부터 내리던 비가 들어왔다. 팔뚝에 닿는 차가운 비에 몸을 조금 떨고 문을 바라보자 그가 서있었다.
Pluto
그의 소문은 빨래터의 여인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녀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저승의 신이라고 불릴 만큼 악하고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의 깨끗한 영혼을 빼앗아가는 눈동자를 가졌다고 했다. 난데없는 Pluto의 등장에 소란스럽던 분위기와 몸이 굳고 정적만이 방안에 남았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술이 필요한 거면 나와 거래를 하지"
"나는 당신에게 평생을 마셔도 남을 술을 주겠어. 대신“
그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여자의 영혼을 가져가게 해줘"
그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저의 눈동자가 아버지를 향했다. 아무리 술에 미친 사람이어도 방금까지 저에게 술병을 들었던 사람이어도 그는 저를 낳은 부모였다. 설마... 하고 바라본 그의 눈도 나를 향하고 있었고 그의 입이 열렸다.
"저년의 영혼을 가지든 말든 난 상관없어 술은 어디 있지?"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는 그의 영혼을 술에게 팔아넘긴 것처럼 저의 영혼을 그에게 팔았다.
“레아”
“책방은 이쪽이야.”
여자들이 떠드는 소리에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다 보니 그와의 거리가 멀어졌었나보다. 나즈막이 그가 저의 이름을 불러왔다.
레아는 저의 본명이 아니었다. 저는 분명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있었지만 그는 저의 홀아비에게서 저를 데려가던 밤, 우산을 씌어주며 말했다.
"레아"
얼음장처럼 차갑던 그의 얼굴과 비바람에 굳어있던 저가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이야."
굳어있던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
그의 집에서의 하루는 전과 많이 달랐다. 아주 좋은 쪽으로
차갑다 못해 시린 새벽공기에 웅크리고 자던 몸을 펴 일어나 밤새 난동을 피워 잔뜩 널브러진 깨진 술병조각들을 쓸어 담은 뒤 몸에서 눅은 술내를 풍기며 잠이든 아비를 뒤로한 채 지난 밤 마무리한 삯바느질을 내다주고 얻어온 빵조각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고 나가 마을입구의 빨래터에서 아낙들의 일을 돕고 다시 차갑고 어두운 밤이 되면 날아드는 술병을 피해 달빛을 이불삼아 잠이 드는 게 하루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젠 아니었다.
그의 집에서는 시린 공기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자지 않아도 되었다. 따뜻한 벽난로 옆에서 편안하게 해가 저를 깨울 때까지 늦잠을 자기도 했고 잠에서 깨면 식탁위에는 따뜻한 빵과 우유 그리고 스프가 놓여있었다. 식사를 하면 제게 눈길을 한번 주고는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는 그도 있었고 그런 그와 가끔은 책방으로 산책도 나섰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여유 있고 고요한 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
처음 그의 집에 와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웠던 그 때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그를 경계했었다. 그는 제 아비에게 했던 말과는 다르게 저의 영혼은커녕 저에게 털 끝 하나 건들지 않았고 그렇다고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맘 편히 있을 수는 없었다. 처음 만난 그 밤부터 쭉 그의 표정은 한결같이 웃음, 슬픔, 분노 모든 감정이란 게 사라진 사람 같았기 때문에 그가 나에게 언제 무슨 말을 할지 어떤 행동을 할지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 아니 저만 불편한 생활이 일주일 쯤 되었을 때 나는 두려움과 답답함에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제 영혼을 가져가지 않아요?”
“...”
“분명 제 영혼을 가져간다고..”
입을 닫고 있던 그가 제 말을 가로막고는 말했다.
“영혼을 가져간다고 했지 네 영혼을 빼앗겠다고 하진 않았어.”
그게 그 날 그와 한 대화의 전부였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 몇 마디 나누지 않은 대화로 그와 나의 사이는 전보다 편해졌다. 빼앗겠다고 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이 저에겐 마치 그러니 편하게 지내도 된다. 쯤으로 들렸을까 걸음소리 조차 눈치를 보며 도둑고양이걸음을 걷던 전과 다르게 편안한 걸음으로 걸을 수 있었고 식사시간이 되면 부엌에 가 제가 먹을 음식과 그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고 나른한 오후엔 어두운 그의 집에서 그나마 햇빛이 비추는 창가 옆 의자에서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또 일주일이 지났을 때 즈음엔 그가 덮어줬을 게 분명한 담요가 햇빛과 함께 저를 감싸고 있었다.
계속되는 똑같은 하루에 어느 날은 책방을 가는 그에게 저도 데려가 달라며 답지 않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그의 옷소매자락을 손에 쥐었다. 사실 저를 데리고 가달라고 한 뒤 저의 심장은 긴장감에 꽤나 떨었었다. 그와 저의 사이가 편해졌음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저에게 함께 어딜 나가자는 말을 한 적이 없었고 저는 그런 그의 반응에 딱히 별 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저의 외출을 싫어한다고 생각해 외출을 금기시 했다. 그래서 데리고 가달라는 저의 부탁에 그의 기분이 상하진 않았을 까. 그에게 혼나진 않을 까. 그가 나를 다시 그 시궁창 같은 집으로 돌려보내진 않을 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답지 않게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저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던 내 손을 떼어내고 저의 겉옷을 건네주고는 문을 나섰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랜만의 외출에 어린애마냥 신이나 건네받은 겉옷을 걸치고는 그의 뒤를 좇아 열심히 걸었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그답게 책방은 숲 입구의 그늘 진 곳에 홀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저씨(책방의 주인)가 그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고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그늘 진 곳에 홀로 있던 책방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여기저기의 나라에서 온 흥미로운 책들로 벽이 가득 차 있었다. 책을 이렇게 많이 본 것도 처음인데다가 갖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종이들과 많은 색의 잉크를 보고 괜히 기분이 들떠서 정신이 팔린 채 책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책의 표지도 제목도 딱 보기에 재밌어 보이는 책을 발견하고는 시선을 멈추고 꺼내 읽으려 하는 순간 그가 가자고 손짓하는 바람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괜히 토라져서 먼저 책방을 나서니 그가 뒤늦게 따라 나왔다.
집에 도착해 겉옷을 내려놓고 방에 들어가려는 찰나 저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걸음을 돌려 그의 서재로 향하니 그의 책상에는 방금 전 책방에서 제가 읽고 싶어 하던 책이 놓여있었다.
“어. 그 책 당신이 사온 거 에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말을 해 쳐다만 보고 있지 말고”
“전 그냥 책이 재밌어 보이 길래..”
“내가 네게 새로운 이름을 준 건 새로운 네가 되라는 뜻 이였어. 전처럼 쳐다보고만 있지 말고 가지려고 노력하라는 말이야.”
“노력할게요. 책은 고마워요. 나가 볼게요”
별 말도 하지 않으면서 그 별로 되지 않는 말들조차 날카롭게 한다. 그렇다고 그에게 반박조차 할 수 없다.
그의 말이 맞기에.
그는 내게 레아라는 새 이름을 줌과 동시에 새 집, 새 옷, 새 신발 ,새로운 생활을 주었지만 그에 반해 저의 행동과 말투는 전의 집에서 덮고 자던 낡고 헤진 담요처럼 변함이 없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아니라지만 저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했다.
“...”
“그러고 보니까 나 정말 애같이 굴었구나.”
그 날 밤 평소와 달리 유난히도 차게 느껴졌다.
답답함을 안은 채 잠에 들었던 몸을 일으켰다. 어제 그에게 한소리 들었다고 해서 풀이 죽어있거나 눈치를 보면 그의 말대로 레아가 아닌 예전의 모습 그대로인 저 일 것이었다. 변화를 미룰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어제의 아침과 같은 행동, 표정으로 부엌으로 가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재가 아닌 식탁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그가 있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저의 눈치를 보는, 입가에 우유가 묻은 그가 있었다.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아랫입술을 물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다른 생각을 하자 다른 생각...
“미안”
저의 눈이 동그래져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잘못 들었나.
저의 귀를 의심했다.
“어젠 내가 한 말은 네가 미워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제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알아요. 날 위한 말 인거.”
“근데 그거 알아요?”
그가 입을 다물고 내 눈을 응시했다.
“입에 우유 묻었어요.”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그가 벙 찐 얼굴을 하더니 곧장 손수건을 꺼내 입 주위를 닦는다.
“당신답지 않네요.”
저의 입가에 참았던 웃음이 번지고 그런 저를 본 그의 입가에도 아주 미세하지만 웃음이 번진 듯 했다.
그 날 아침이후 그도 저도 많은 게 변했다. 생각해보니 그의 집에 온 후로 변한 게 많았다. 저의 생활, 행동, 말투 모든 게 변했다. 이렇게 변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뀐 저였지만 이래도 되나 싶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저와 함께 그도 변했다. 늘 어두컴컴한 그의 옷차림은 그대로였지만 그는 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고 해봤자 몇 마디 안 되는 대화였지만 그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식사는 뭘 할 건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바람이 좋다든지 장터에 나가자던지 극히 일상적이고도 일상적인 그럼에도 평화로운 그런 대화가 오가고 계절이 지나 겨울이 될 때 까지 그와 저는 마을사람들에게 플루토가 여자를 만나더니 변했다는 귀여운 소문이 돌 정도로 많이 변했다.
겨울이 끝을 바라보고 이별의 슬픔에 더 거센 바람을 불어주고 눈을 내려주어 뼛속까지 시리디 시린 차가운 날씨가 계속 될 때 쯤 그는 또 변했다. 이렇게 자주 변하는 사람이었나..
이번엔 좋은 방향이 아니었다.
-
안녕하세여
너의 온기입니다.
뜬금없는 Pluto라니 놀라셨져.
이건 제가 여자저차 기회가 생겨서 책을 만들 뻔 했던 그 때
썼던 글이에여
지금 보니까 많이 부족하고 답이 없네요
(먼 산)
그럼에도 이 글을 보여드린 이유는
이제 연말도 끝났겠다 여유로울 줄 알았는데
연달아 잡히는 약속과 자격증시험때문에
자꾸 늦고 지각하는 저 좀 봐주십사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죄의 의미로 보여드려요.
글에 대한 피드백과 애정담긴 사랑은 언제나 감사하고 감사드립니다.
암호닉 텍파나눔은 마감했구요. 금방 보내드리도록 할게요.
늘 말씀드리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
+ 독자님들 브금 추천 해주세여
잔잔하고 고요한 그리고 담담하면서 아픈 그런 노래들 사랑합니다
퇴폐퇴폐 돋는 거 매우 사랑해요
아, 발랄한 노래도 사랑해요 오빠친구 지민이랑 남편 태형이 브금으로 쓸 수 있거든여!
애정해용
++ 포인트가 높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글이 너무 모자라서 보여드리기 무서워서요...
댓글을 남겨주시는 독자님들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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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고윤정 자기 외모의 대한 생각 너무 웃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