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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아이들 전체글ll조회 1358
새로 왔다는 의사 선생님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었다. 매사 뚱한 표정으로 직접 링거를 갈아 주고는 했는데, 그럴 때면 꼭 묻고는 했다. 그러니까... 

 

- 아파요? 

 

이렇게 물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 

 

- 그럼 참아요. 

 

... 하고 담담히 대답하는 식이었다. 뭐 이런 의사가 다 있나, 하곤 했던 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사람들이 바다로 떠날 동안 내 세상은 이 병원 안에서 펼쳐지고는 했다. 하루, 또 이틀. 멀쩡히 흘러가는 시간이 항상 무료했던 나한테, 의사 선생님은 대뜸 와서는 머리를 쓰다듬고는 했다. 

 

- 권순영. 넌 언제 나가냐. 

 

- 내가 형이잖아, 김민규. 

 

스스럼 없이 이따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 김민규의 취미는 내가 침대 위에 앉아 창틀만 멍하게 바라보면, 다짜고짜 와서는 하얀 게 하얀 걸 입으니까 예쁘다고 한다던가. 뭐 이런 것들로 바뀌고는 했다.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스물의 젊은 의사 선생님. 진짜 안타깝게도, 환자복과 휠체어가 전부였던 스물 한 살의 내 첫사랑은 그가 되고 말았다. 

 

첫 눈이 내린 날, 심장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둘째로 눈이 내린 날, 심장이 두 배로 빠르게 뛰었다. 

 

셋째로 눈이 내린 날, 심전도기가 급박함을 알렸다. 

 

인공호흡기를 달아 희뿌연 숨을 뱉고 삼킬 때마다, 김민규는 착잡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는 했다. 회진을 돌 때에도, 밤에 와 조용히 내 머릴 쓸어 줄 때에도 그 애 어깨 위로 무겁게 내가 앉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고는 했다. 시야가 자꾸만 흩어져서 손으로 왜곡된 세상을 그러쥐며 울 때에는, 내 어깨를 끌어안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의사 선생님이 울면 어떡하냐고, 나는 금방 차분해져 꽤나 형아인 것처럼 너를 토닥였었던 것도 같다. 

 

- 환자분, 푹 자고 일어나시면 다 끝날 거예요. 

 

한두 번 누워 본 게 아니라지만, 수술실 침대는 정말 따뜻했다. 헛된 생각을 하며 간호사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내 심장 소리에 얽힌 발자국 소리에 눈길을 돌리자, 굳은 얼굴의 네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저 바보, 왜 또 잔뜩 굳었대. 분명 집도를 시작해야 할 텐데, 제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며 입술을 깨무는 김민규는 여전히 어리게만 보였다.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는데, 입술을 달싹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눈으로 웃어 보였다. 따라 불안하게 웃더니 제 얼굴을 살그마니 쓰다듬는 손에 눈을 감았었다.  

 

천천히, 또 빠르게 제 몸 속으로 들어오는 마취약이 느껴졌다. 얼핏 귓가에, 다시는 불리지 않을 제 이름과 함께 사랑한단 말이 맴돌았던 것도 같다. 

다급함과 붉게 물든 수술실 안,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지는 심전도 소리. 제 몸을 엄습하는 네 울음과 마지막 손길을 그대로, 숨을 쉴 줄 알았던 때의 기억의 끝. 첫사랑을 알게 되고 눈을 감을 수 있어 나는 좋았다고, 정말 즐거웠다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전하고 싶었던 널 향한 말들이 강물 위로 흩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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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엉엉 순영이또죽었쪄ㅜㅜㅜㅜㅜㅜ 괜찮아순영아.. 그래도이번엔생각보다달달했어.. 민규의사가운이라니.. 진짜잘어울린답.. 내사랑.. 우리순영이잘부탁해민구야..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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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아이들
언젠간 안 죽는 걸 데리고 오겠다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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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헐 순영이... 아련해... 작가님ㅜㅜㅜㅜㅜㅜㅜㅜㅠ.우리 수녕이ㅠㅠㅠㅠㅠㅠㅠ죽이지 마세여ㅜㅜㅜㅜㅜㅜㅜ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순영아ㅠㅠㅠㅠㅠㅠㅠㅠ아ㅠㅠㅠㅠㅠㅠㅜ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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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아이들
사실 민규는 순영이가 가망이 없단 걸 알면서도 고집을 부려 수술 날짜를 잡았던 거였어요. 이걸로라도 위로가 될까요...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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