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이 쌓였다. 낡은 벽시계, 키가 큰 장식장, 낮은 서랍장도 예외는 없다. 모두 암막이 둘러진 것처럼 까맣다. 기대앉은 소파에도 먼지처럼 내려앉은 어둠이 한기를 일으켰다. 포근하던 촉감은 싸늘하게 식은 지 오래였다. 텔레비전은 그 위로 그림을 그린다. 각진 화면에서 퍼지는 빛은 여기저기 얼룩을 남겼다. 화면이 움직일 때마다 색색의 빛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길 반복했다.
……○○군 ○○면에 거주하, 째깍, 는 50대 이 씨가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입, 째깍, 니다. 언어장애, 피부 괴사, 부, 째깍, 분 마비, 안구충혈을 동, 째깍, 반하는 이 증상은 흔히, 째깍, 말하는 좀비와 외형이 비슷해 충격을 자아, 째깍, 내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깊어진 시간에 예민해진 감각은 자극을 마구잡이로 받아들였다. 데스크에 앉은 아나운서의 똑 부러진 음성과 초침이 꺾이는 소리, 창밖에서 옅게 울리는 빗소리까지 귓속에 둔탁하게 박힌다. 무릎을 끌어안고 소파에 반쯤 파묻힌 자세를 하고 있던 나는 속수무책으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소리들에 찔렸다. 쿠션을 집어 들어 무릎에 얹곤 얼굴을 묻었다. 오로라처럼 아른거리던 빛이 모습을 감춘다. 그렇게 완전한 어둠에 닿았을 때, 빛과 소음에 밀려났던 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네가 왜 '용의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지. 대체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잠시 멎었던 생각이 다시금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추락사라고 했다. 김태형네는 1층이고, 뉴스에서는 9층이라고 했으니 그곳은 박권혁의 집이었을 것이다. 단둘이서 만났을까? 아니, 박지민과 전정국이 함께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둘만 남겨졌을지도…. 그리고 박권혁은 본드에 손을 댔겠지. 독한 냄새에도 인상 하나 망가지지 않고 되레 소름 돋는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그다음엔, 또 소리를 질러댔을까. 여긴 비정상적인 것들로만 가득 차 있으니 나가야겠다고, 또다시 그런 말을 했을까.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자 뛰어내리려 했을까?
김태형은, 너는 거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정말 네가 박권혁을 창밖으로 밀어내기라도 한 걸까.
네가, 왜?
회전하던 사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턱턱 막혔다. 김태형이 베란다에서 사람을 밀어버릴 정도로 잔인하게 변했는지, 여전히 양심을 운운하며 '죄를 짓고는 못 산다'는 가치관을 간직하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박권혁과 김태형이 진짜 친구 사이였는지 아닌지조차 모른다. 무언가 원한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난 아무것도 몰랐다. 김태형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게 언제였는지도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툭하면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대화를 나누던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루마다 쌓여가는 일들을 풀어놓았던 그때와는, 전혀. 너 역시 변했겠지. 매끄럽던 우리의 관계가 급작스럽게 변질된 것처럼 김태형 역시 정반대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대상에 대한 무지는 의심을 불러들인다. 변한 게 너든, 나든, 상황이든 간에 이미 의심은 시작됐다.
금이 간 수조에선 물줄기가 질질 흘렀다. 추잡스럽게. 탄탄했던 벽면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억센 수압은 요란하게 틈을 벌렸다. 다신 아물지 않을 것처럼. 모든 물을 다 비워낼 것처럼.
수조엔 물고기가 살았다.
그것이 깨지기 직전까지 말이다.
2
옷을 갈아입고 우산을 챙겨 들었다. 놀이터에 가볼 생각이었다. 무작정 김태형에게 뛰어가 캐묻고 싶었다. 떨쳐지지 않는 생각이 자꾸만 목을 졸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심'이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몸집을 키우며 압박해오는 그것에 견딜 수 없이 답답해졌다. 집 밖으로 나오자 흙냄새가 섞인 차가운 비 냄새가 났다. 우산 위로 빗방울이 꼬라 박혔다. 투둑, 툭, 하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이어졌다. 의식을 두드리는 잔잔한 소음이 귀를 스쳤다.
놀이터에 김태형이 있으리라 생각한 건 아니다. 일종의 습관이었다. 불쑥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놀이터로 향하는 습관. 예전에는 이 바람이 때마다 실현되곤 했었다. 미끄럼틀 계단이나 초록색 그네에 앉아있던 네가 보이면 그 옆에 앉아 원래 약속했던 사람들처럼 말을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비까지 내리는 탓에 앉아있을 곳이 없다. 축축하게 젖은 모랫바닥과 기구들은 어린아이들도 가까이하지 않았으니까. 투명한 빗줄기가 꽤 굵었다.
"……."
그런데도, 김태형은 있었다. 우산도 없이 초록색 그네에 앉아 진흙이 되어버린 모래에 발끝을 툭툭 쳐대고 있었다. 우산이 흔들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손이 떨렸다. 족쇄라도 채워진 마냥 발이 묶였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운동화가 온통 흙빛이었다. 진한 색으로 물든 옷과 이마에 늘어붙은 까만 머리칼. 그 위로 비가 내리꽂혔다. 볼과 턱선, 콧대를 타고 쉴 틈 없이 흐르는 물방울이 눈물을 연상케 했다. 우수가 서린 시선은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처진 어깨가 김태형을 한없이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놀이터를 꽉 채울 정도로 커 보였던 네가 다시 작아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모습에서 가장 밝았던 우리를 환기했다.
언젠가 김태형이 친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곳이라며 사격장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입구엔 '명예의 전당'이라는 이름의 게시판이 있었다. 우드 보드에 압정으로 줄줄이 걸린 표적지는 김태형의 오기를 끌어내기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단 한발이 중심에 박힌 표적지. 전 사격 국가대표의 싸인이 담긴 그것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너.
'……멋있다.'
그날을 시작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사격장에 들렀다. 퍽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소총부터 시작해 권총으로 백 점짜리 표적지를 만들어야겠다며 한 발을 쏠 때마다 표적지를 확인하는 행동에 웃음이 터졌었다. 그전까지 또래 남자애들이 죽고 못 산다는 온라인 총 게임에도 손대지 않았던 김태형이 왜 사격에 그렇게까지 꽂혔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간에, 김태형은 사격장에 가는 날이면 꼭 날 데려갔다.
'다른 애들이랑 가면 되지.'
'안돼. 내가 오늘 백 점 쏘면 어떡해.'
'쏘면 좋은 거지, 왜.'
'너 보는 앞에서 맞출 거야!'
왜냐고 묻는 말에는 너랑 처음에 같이 갔으니까, 네가 날 못 믿을까 봐, 네가 표적지를 걸어줘야 한다, 친구가 없다는 둥 이상한 이유만 잔뜩 내밀었다. 말은 틱틱거렸지만 실은 나도, 김태형과 사격장에 가는 게 좋았다. 사격은 처음 간 날에 공기소총 몇 번 쏜 게 끝이고 그다음부턴 김태형을 쳐다보는 게 전부였지만. 장난스러운 표정을 걷어내고 오른팔을 쭉 뻗은, 등허리를 곧게 펴고 선, 왼쪽 눈을 질끈 감은, 마디진 손으로 권총 손잡이를 쥔, 오직 표적지에만 신경을 몰두한 김태형.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사르륵 흐트러지는 머리칼에 정신을 차리곤 했다.
'백 점! 백 점이다!! 와, 나 진짜.'
김태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하게 한가운데 구멍이 뚫린 표적지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직원은 일반인 중학생이 권총으로, 그것도 선수 자세로 만점을 채운 건 처음이라며 놀랐다. 표적지를 들고 한참을 방방 뛰어다니던 김태형은 내게 표적지를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종이를 받아들었다. 큰 눈을 반달처럼 접고 광대가 동그랗게 솟은 채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린, 아이처럼 해사한 얼굴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비슷한 표정이 지어질 때쯤 김태형이 입을 열었다.
'걸어줘야지. 은재야.'
그날 김태형은 소원을 이뤘다. 나는 한참 붙들고 난리를 친 탓에 조금 구겨진 채로 게시판에 붙은 표적지와 사격장을 나와서도 맑게 웃으며 좋아하는, 눈 내리는 날 강아지 같은 너를 보며 생각했다. 참 깨끗하고 순수하구나. 어느 누구는 중학생 때부터 비행을 일삼고 또 누구는 비관적인 사고를 고집할 때, 많은 시람들과 어울리면서도 때 타지 않고 맑고 아이 같은 기쁨을 간직하고 있구나. 그 모습이 좋았다.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여 빛나는 눈이 좋았다.
그와 대비되는 오늘.
해는커녕 달조차 구름에 가려 찾을 수 없는 밤, 장대비를 그대로 맞던 네가 그네에서 일어났다. 물에 절은 몸이 무거워 보였다. 나는 김태형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면서도 반대쪽 출구를 향해 걸어가는 김태형을 잡지 않았다. 따가운 빗소리에 발소리가 묻혔다. 나는 김태형의 순수함을 동경했다. 그래서 두려웠다. 네가 죄악에 물든 범죄자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자체가. 의심을 품은 눈으로 되레 상처를 입히거나, 백색을 잃은 내막을 들여다보곤 절망하거나. 전자든 후자든 어느 하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처진 어깨가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감췄다. 그제야 나는 김태형의 걸음 소리를 감춘 물 커튼 사이로 들어설 수 있었다. 네가 앉아있던 초록색 그네.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차갑기만 한 그네에 앉았다. 그제야 나는 질책의 손가락질을 인지할 수 있었다. 우산 위로 부딪히는 질타. 산발적인 마찰음이 음성으로 변화해 귓전을 울렸다. 이기적인 년, 하고.
타인의 감정을 통찰하고 어루만지기엔, 아직도 어리다. 어리다는 변명 뒤에서 이기적인 내면을 숨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장례식장에서 눈물로 부르짖는 작은 소년을 마주했을 때, 품에 안겨오는 동년배들에 비해 작고 왜소한 몸뚱이를 가만 받아내던 나. 축축하게 어깨를 적시는 투명한 액체와 더 큰 울음을 터뜨리는 네가 낯설어 말이라곤 꺼내질 못했었다. 네게 한 마디라도 건넸어야 했는데. 가끔,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말을 꺼낼지 상상한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지만, 하다못해 덜덜 떨리는 등을 마주 안아 주는 것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김태형은 그로부터 한참을 앓았다. 사방에서 몸을 두드리는 침울한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고. 나는 네가 이겨내기만을 바랐다. 다시 날 보면서 웃어줬으면. 그 일이 있기 전처럼 해사하게….
너는 고작 열여섯이었는데.
김태형이 다시 기운을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집에서 키우던 애완견이 세상을 떠났다. 전부터 잦았던 병원출입에 어느 정도 예상하였던 터라, 아기자기한 용품들이 사라져 휑한 집안을 보곤 놀이터에 갔었다. 입구에 들어섬과 동시에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이 안을 훑었다. 그러다 벤치에 걸터앉은 김태형을 발견했고, 시야가 흐려지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발을 움직였다. 너는 모래에 질질 끌리는 발소리를 듣고선 고개를 들었다.
'신은재. 울어?'
'태형아. 방울이, 방울이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아챈 김태형은 내 볼가에 양손을 갖다 대고 엄지로 눈가를 닦아주며 연신 눈을 맞추다가, 팔을 뻗어 제 품으로 당겼다. 몇 음절 뱉지 못하고 자꾸만 끊기는 음성에 문장을 전달하길 포기한 나는 네 체온을 받아들이며 울음을 멈추려 애썼다. 얼마 전까지 칠흑 속을 헤매던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따듯했다.
'괜찮아.'
'…….'
'울어도 돼.'
성장통.
'김태형…….'
나는 네가 암흑 속에서 허덕이던 그 날들을 성장통이라고 정의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어깨가 커지고, 팔다리가 길어지고, 품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마저 버거웠던 나를 달래주던 커다란 손과 낮은 목소리. 놀이터가 꽉 채워진 듯이 아늑하게 감싸주던 품. 위태롭게 나를 끌어안았던 어린 몸과는 분명하게 달랐다. 그리하여 나는 둘을 묶어 정의했다. 열여섯짜리 소년의 아릿한 성장통과 열여섯짜리 김태형이 겪은, 깊은 암흑기.
'응. 나 여기 있어.'
그 기다란 뼈마디가 어떤 고통을 먹고 자랐는지는 생각조차 않았지. 나는 그저 돌아온 네가 조금 더 커지고 조금 더 따듯해졌다고 생각했다. 그 아픈 성장통이 비단 육체만 키운 것이 아니구나. 어둠 속에서 너를 갉아먹었을, 온몸이 비틀리도록 괴로웠을, 간당간당한 숨통을 붙들고 흔들었을, 나와는 빗대어 보지도 못하게 컸을 통증이 네 품을 단단하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했다. 차마 그것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너를 괴롭히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우산이 손아귀에서 멀어졌다. 나를 힐난하는 손가락이 몸 전체에 내리꽂혔다. 깊숙하게 파고든 손가락들은 한데 뭉쳐 과거의 나를 찾아낸다. 그리곤 목을 조른다. 죄를 회개하라 외친다. 머리 위에 떨어져 얼굴을 핥아내리는 무색의 액체는 일깨웠다. 너를. 김태형을. 김태형의 부재를. 김태형이 여직 떼어내지 못한 고통을. 네 입을 틀어막은 이기적인 나를. 과거의 김태형까지 어지럽히는 추잡한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를.
내리는 폭우를 여과 없이 맞았다. 빗줄기가 전신을 긁어댔다. 씻을 수 없는 것들을 떠내려 보내고 싶었다.
그럴수록 더러운 찌꺼기들은 처절하게 달라붙어 아우성쳤다.
나를 달래던 달콤한 음성과 따듯한 품은, 내가 아니라 네게 필요했던 것들이었는데.
너는 얼마나 그것들을 갈망했을까.
| Q. 태형이 언제 나오나요? |
A. 다음편부터 현재 시점입니다. 김태형 아닌 김태형이 나올 거예요. 본격적인 막장 판타지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말도 안되는 판타지+좀비물이라는 거 알고 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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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애인이랑 헤어졌는데 애인 어머님한테 톡으로 마지막인사 남기는거 에바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