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반존대를 써요/채셔
당황해 지민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지민은 이미 자리를 벗어난지 오래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남준을 밀쳐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다 망했어. 너 때문에, 내 첫사랑도 지금 사랑도 다 망했어. 남준의 표정이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민을 당장이라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남준의 손이, 지민을 따라가려는 내 손목을 꾹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거 놔, 하고 말했으나 남준은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결국 남준의 작업실로 남준을 끌고 들어왔다. 아직도 그 얼굴에 상처가 가득했다. 내 말이 남준의 마음을 찢고 헤집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 사랑에 충실하기도 바쁘니까, 남준의 상처 따위 봐줄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 너 내 첫사랑이야."
"……."
"근데 첫사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남준은 고개를 떨궜다. 상처가 벌어지고, 그 안으로 피가 고이는 것이 보인다. 누구보다 남준을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 적도 있으니, 그것쯤은 아주 쉽게 보이는 것들이었다. 전혀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으려고 하는 모습도,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 중 하나였다. 상처 줘서 미안해. 나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 소용돌이 치는 질문들은 온통 지민을 향해 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
"모른 척, 해주면 되냐. 그래, 그깟거면 해줄게. 그게 뭐라고."
"……."
"그래, 아니. 그래요, 김여주 씨."
남준의 목소리에는 반항기가 가득했다. 그득 차올라 있는 눈물을 문득 닦아주고 싶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미안해, 라는 말을 꿋꿋이 삼켜내고 나는 가만히 남준을 바라보다, 작업실을 나섰다. 왠지 모르게 공기가 바뀐 듯한 기분이었다. 온갖 시선들이, 그리고 온갖 사람들이 내뿜는 공기가 나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괜히 두 손으로 소매를 쓸었다. 내가 향한 곳은 바로 옆의 지민과 윤기가 쓰고 있는 작업실이었다. 하지만 지민은 없었다. 윤기 선배만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민 씨…는요."
"……갔어."
"어딜…."
"아프대, 조퇴했어."
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미 늦은 걸까. 사랑에는 골든 타임이 있다던데. 가만히 선 내게 윤기 선배가 천천히 다가왔다. 괜찮냐. 윤기 선배의 짧고 묵직한 한 마디에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윤기 선배는 나를 따라 앉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여기는 회사니까 참으려고 했는데 자꾸 눈물샘이 밀어대는 눈물들을 어떻게 참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울음을 토해내는 내 어깨를 윤기 선배는 토닥였다. 랩몬이 네 첫사랑일 줄은 몰랐다, 야. 윤기 선배의 말에 난데없는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는 입술을 꼭 물었다. 있어 봐. 나를 제 소파에 앉힌 선배는 곧 작업실을 나섰다. 나는 가만히 몸을 둥글게 말았다. 어디에선가 지민의 체취가 난다. 가만히 눈을 감아 거기에 집중해보았다.
"현세 누나한테 말했으니까."
"……."
"너도 조퇴해."
현세 누나도 알았다고 했고. 잠시동안 자리를 비웠던 윤기 선배가 돌아와 내게 일러주었다. 지금 윤기 선배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윤기 선배는 내 옆에 앉아 소파에 제 등을 기댔다. 가만히 앉아 있다 휴지를 건넨 윤기 선배는 이내 다시 자리를 비웠다. 휴지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고 있는 중에 다시 들어온 윤기 선배는 내 자리에 있던 옷과 가방을 들고 온 모양이었다. 대충 챙겼으니까 얼른 집 가서 쉬어. 윤기 선배의 말에 나는 가방을 받아들었다. 고마워요, 선배. 그 말에 다시 울음기가 딸려 들어오자, 선배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일 다시는 없어야 해. 여기 회사야. 하나하나 사정 다 봐줄 수도 없는 곳이고, 또 그래서는 안 되는 곳인 거, 너도 알잖아. 윤기 선배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긴 회산데. 사회도, 연애도 다 서툴기만 한 나를 미워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갑자기 침입한 남준을 미워해야 하는 건지.
나는 윤기 선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바로 회사를 나섰다. 아직 낮이었다. 나는 택시를 잡아 타 바로 집으로 향했다. 지민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어느 얘기부터 해야 맞는 걸까. 어제 얘기를 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오늘 두 명이나 상처 받지 않았을 텐데. 나는 눈을 감았다. 차 특유의 웅웅거리는 엔진 소리가 귀를 가득 채운다. 머릿속이 혼잡해서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다. 택시 기사에게 대충 현금을 주고, 잔돈도 받지 않은 채로 나는 집으로 뛰었다. 계단을 한 번에 두 칸씩 올라 지민의 집으로 향했다. 다짜고짜 벨을 여러 번 누르기도 하고, 주먹으로 문을 쾅쾅 치기도 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온 이는 지민이 아니었다.
"지민 씨는……."
"지민이 회사에 있을 걸?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아……."
"…울었어?"
태형의 말에 나는 서둘러 지민에게 전화를 했다. 수십 번을 전화해도 '전화기가 꺼져 있어…'라는 문구만이 반복되었다. 어쩔 수 없이 카카오톡으로 지민에게 어디냐는 메시지를 몇 번씩이나 보내었지만 역시나 읽지도, 답을 보내오지도 않았다. 어디 간 거야, 도대체…….
(번외) 첫사랑은 누구나 그렇듯, 잔인하다
남준은 힘없이 소파에 누웠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제까지 달려온 게 누구 때문이었는데. 머리가 지끈거려서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 회사에 왔을 때부터 거슬렸다. 여주의 옆에 붙어 있는 지민이라는 남자가. 그리고 홍보 팀에 제가 소개될 때도 지민은 여주의 옆에 서서 온갖 끼를 다 부리고 있었다. 항상 여주만을 보고 있던 남준에게 여주를 향하고 있는 지민의 애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말도 되지 않는 거였다. 그래서인지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제 팬이었고 친해지고 싶다며 눈을 반짝이는 지민의 얼굴에, 남준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친해질 수 있는 사이일까.
남준과 여주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랩 음악을 한다며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었다. 사실 왕따를 당하는 것에 이유는 별 게 없었다. 그저 갖다 붙히면 그것이 이유가 되곤 했다. 뭣도 모르고 일진 놀이를 하던 애들은 남준의 음악을 쓰레기라고 지칭했었다. 그럴 때면 그저 무시하면 됐다. 그러나 그 태도에 더 열이 뻗친 쪽은 남준 쪽이 아니라 일진 애들 쪽이었다. 무표정이 그들을 자극한 건지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되었을 때 남준은, 소세지 빵을 사기 위해 매점으로 가고 있던 여주와 마주쳤다. 처음에는 무서워 그냥 도망 치는 줄 알았더니…. 다시 등장한 여주는 선생님과 함께였다. 결국 아이들은 선생님께 끌려 갔고, 그 이후로 남준과 여주는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왜 나 도와줬어?"
"나도 몰라. 그냥 선생님 불러왔어."
여주와 남준은 따돌림을 당해도 상관이 없었다. 서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둘이 친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아무 감정도, 어떤 생각도 없던 0%의 여자친구가 100%의 여자친구로 변모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럴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가면 갈수록, 남준과 여주를 향한 차가운 시선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서로에게는 서로 밖에 남지 않아서. 서로가 서로를 담는 것은 아주 간단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아주 태연하고 천연덕스럽게 서로는 서로의 첫사랑이 되었다.
그러나 첫사랑이 첫사랑으로 남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남준은 전학을 간다고 말했다. 당연히 여주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겠지만 이미 정해진 일이라 어떻게 해볼 수도 없었다. 음악을 더 배우고 싶었고, 제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기에 제게 찾아온 언더 랩 크루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왠지 어떤 기회도 없을 것 같다고. 여주가 눈에 걸렸으나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게 문제였을까. 제가 가면 여주가 혼자가 될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남준은 제 음악을 버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더 큰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더 멋진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겠다고 말했다.
"그래, 가."
"…정말 가도 돼?"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잖아."
서운한 티를 내지 않기에 남준은 제 생각이 맞다고 자위했다. 이해해주는 것이라고. 사실 알면서도 모른 척 했다, 그 말 끝에 묻어나오는 울음기를. 성공해서 네 앞에 나타날게.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이렇게 너를 혼자 두는 만큼, 네가 힘든 만큼 성공해서 나타나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다. 마음대로 해. 여주는 남준에게 그렇게 말한 뒤 미련없이 뒤돌았다. 그때 작게 떨리는 등을 안아줬어야 했다. 이렇게 기약 없이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 했다. 제가 제 자신을 성공했다고 생각할 때까지 숨어서 지켜보지 않았어야 했다. 그냥 그 때 안아줄 걸. 그냥 그 때 널 떠나지 말 걸. 후회는 후회의 꼬리를 문다. 꼬리가 잘려도 살아남는 빌어먹을 도마뱀인 양 죄책감과 후회는 그대로 남준의 마음을 세게 파고들었다. 그 때 떠난 결과가 지금의 이 결과라면 남준은 백 번, 천 번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너한테 보여주려고 다 참아냈는데. 남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여주의 마음은 떠나버렸다. 남준은 그 사실에 절망했다. 아직 성공한 걸 다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첫사랑은 늘 잔인해서. 어쩌면 제가 여주에게 줬을 아득한 상처들이 제가 이제껏 하고 있던 첫사랑을 두 동강 내버려서. 남준 저는 아직 여름에 있는데, 여주는 이미 여름이 한참 지나버린 겨울에 앉아있어서. 그리고 그런 여주를 지민이 안아주고 있어서. 남준은 입술을 꾹 깨물고, 주먹을 꽉 쥐었다. 제 손바닥으로 익숙한 피멍의 느낌이 났다. 참 익숙한 고통이었다. 첫사랑도, 피멍도. 이내 남준은 웃음을 흘렸다. 체념의 웃음이었다.
♥이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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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삐들 안녕하새오 채셔애오 갑자기 댓글이 늘어서 당황해써오 이렇게 망작을 조아해조서 고마어오ㅠㅠㅠㅠ 얼른 짐니가 풀려야 할 텐데 8ㅅ8 다음 편도 찥통이에오 요즘 찌통 글만 쓰는 것 가타오... 찌찌통통 엉엉... 갑작스러운 찌통 미안해오 사실 찌통도 귀엽게 스려고 했는데8ㅅ8 제 필력의 한계인가봐오 텍본은 더 고급지게 준비할게오ㅠㅠㅠ 그나저나 시즌1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네오 원래 준비했던 시즌1 내용은 20화 정도까지였거든요 엉엉 그래도 시즌2는 더 달달할 거다ㅏ 캬야캬컁캬야ㅑ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