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미의 이야기-------------------------------
20xx년 2월 6일
오늘은 졸업식이야. 다른 사환들은 TH로 들어가거나 다른 계열사로 발령을 받았대.
나는 윤기도련님이 나중에 뭘 할지 알려주겠다고 했어.
그래서 기다리는 중인데 오늘까지 아무 소식도 없었단 말이야?
일단 학교 강당에서 졸업식 보려고 앉아있는 윤기도련님께 축하한다고 말씀드렸지.
"졸업식 다 끝나고 여기서 기다려."
"네...?"
"넌 아직 소속 안정해졌잖아. 나한테 딱 붙어있어야지 이제."
내가 무슨 말을 덧붙이려고 했지만 그 순간 졸업식을 시작하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모두 식장에서 빠져야 했으므로 말을 건네지 못했어.
윤기 도련님을 따라가면 전정국의 근황을 알 수 있을까?
졸업식에는 사진을 많이 남겨두니까 사환애들 모두 단체사진 찍는데 가서 사진찍는걸 돕고 있었는데, 나는 체육관에 남아 청소를 하고 있었어.
사실 나도 운동장에서 사진 찍어드리는게 더 편한 일이라 그 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왼손이 이래서 카메라를 양 손으로 들고 찍어 드릴 수가 없어....ㅋㅋㅋ
졸업식 행사장 뒤처리를 하면서 다른 사환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
대부분 TH그룹 일가의 경호쪽으로 빠졌다고 하더라고.
여자 사환들은 TH본가에 들어가서 고용메이드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전정국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성적이 나오던 어떤 여자 사환 한명만 TH 임원 비서실로 채용됐다고 하더라구.
다들, 그리고 나조차도 나는 어떻게 될 지 궁금해했어.
"아미야, 너는 뭐하고 싶어?"
"나도 그냥 너희처럼 TH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데..."
"너는 윤기 도련님이 그렇게 아끼시는데 겨우 우리처럼 대접해주겠니?"
"특별대우는 싫은데..."
"얘, 복에 겨운 소리하지마. 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윤기도련님한테 자유를 달라고 말씀드려봐!"
"야...말도 안되는 소리야..."
여자 사환들이랑은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어. 다들 연애에 대한 로망도 있더라구. 사실 TH에 들어가면 연애나 결혼이나 모두 허락을 받아야하거든.
그래서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갈망이 약간씩은 있는데, 지금까진 자유로운 일상을 즐기게 된 사환이 없었잖아.
나도 기대 안했어.
"너도 경호원으로 가는거야?"
"응. 내일부터 본가로 출근이야."
"그렇구나...혹시..."
"응? 뭐?"
"전정국 어떻게 됐는지 아니? 연락 돼?"
"연락은 안되는데, 아마 걔 쫓겨났을걸."
"응 아마 그럴거야. 한아미 너도 찾지마 이젠."
"왜.....?"
"너는 잘 모르겠지만, 너가 학교에 없던 그 시간동안, 정국이 그 놈 엄청 고생했어"
".....계속 말해줘."
"하루가 멀다 하고 민윤기도련님 경호원들한테 죽어라 맞고, 여기저기 끌려다니고, 사진 찍히던데? 그 사진은 왜 찍는거였지? 암튼, 전정국 몸은 몸대로 상하고 마음은 마음대로 찢겼을걸. 너가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걔는 지옥일거야."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다른 사환들을 보면서 나는 충격을 받아 눈물도 나오지 않았어.
그 사진들이 모두 조작된 사진이라니.
"민윤기 도련님이 그러실 분이 아닌ㄷ.."
"아니긴 무슨. 너 전정국 맞는 소리만 들어도 그 말 쏙 들어갈걸.....얼굴은 사진찍어야 되니까 멀쩡해야 된다고 얼굴에 비닐봉지 씌워두고 막 때린 적도 있다니까..."
"전정국 교실에서 맞는거 봤냐? 나는 걔가 어디 한군데 안부러진게 신기하더라."
"내가 정호석도련님한테 들었는데, 전정국이 의대 수석으로 붙었는데, 민윤기도련님이 취소시켰대."
전정국이 합격한 의대를 윤기 도련님이 취소를 시켰다고......?
남자사환들이 너나할 것없이 나에게 말해주던 충격적인 소식을 넋을 놓고 듣다가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청소하던 도구들을 다 내팽겨치고 윤기도련님을 찾으러 갔어.
도련님이 마침 밖에서 기숙사쪽으로 가고 계시더라구.
"도련님."
"어. 왔네. 이리 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눈물을 꾹 눌러 참고 윤기도련님을 따라갔어.
"그동안 수고 많았다."
"도련님...여쭤볼 게 있어요."
"말해봐."
"정말....정말...전정국...의대..합격 취소시키신건가요?정말..정말 그러셨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내렸어.
거의 엉엉 울면서 윤기도련님한테 원망의 목소리를 냈어.
"왜 그러셨어요? 전정국이 그렇게 아등바등 살면서 겨우 하나 이뤄낸 걸 그걸 그렇게 만드셔야 속이 후련하셨어요? 그리고 그 사진, 다 조작된...흐흑...애를 그렇게 때리고 끌고다니면서 사진찍은거 제가 몰랐으면 어쩔 뻔했어요? 저는 바보 맞아요. 그래서 허술하게 속이셔도 다 속아넘어가요. 그렇다고 똑똑한 애마저 바보만드시면 안되시는거였어요..저는 건드려도 그 친구는 그렇게 하면 안되는 애였다구요. 왜 쫓아내셨어요. 단지 저랑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정국은 저를 아예 모른 척 했어요. 제가 찾아가 매달려도 끄떡 없었다구요. 그게 다 도련님이 지시한 폭행때문에 두려워서 외면한건줄 모르고 그저 저는 그 애를 원망만 했단 말이예요."
나는 주저앉아 울고, 민윤기도련님은 아무 말 없었어.
한참 울었어. 잠시 그쳤다가도 윤기도련님 얼굴만 보면 다시 눈물이 쏟아졌어.
전정국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것도 눈치 못 챈 내가 바보같아 원망스럽기도 하고, 암튼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이 자꾸 나를 눈물나게했어.
한 한시간쯤 지났으려나, 눈물이 더이상 안나오더라구.
"다 울었냐"
"....흡.."
훌쩍거리기만 하고 있었어.
"내 얘기도 한번 들어줘."
"...."
"갑자기 나한테 형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어린 나이에 충격이었어."
"..."
"그 새끼가 나랑 같은 피가 섞여있는 것도 짜증나는데 내가 눈독들인 너랑 친한게 더 짜증났을 뿐이야."
"...."
"그리고, 난 비교되기 싫어. 그런 새끼랑. 전정국 수능 만점 받고나서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 그 성적은 내꺼였어야해."
소름이 돋았어. 내 옆에 윤기도련님같은 사람이 있다는게 너무 무서웠어.
제 잘못을 알지 못하고 끝까지 전정국탓만 하는 도련님이 싫었어.
"도련님은...정말 나쁜 사람이예요. 전정국, 여기 TH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거 아니예요. 자기 보는 앞에서 어머니가 죽임을 당했고, 협박받아 끌려온 애라구요."
윤기도련님이 피식 웃었어.
"전정국이 그러디? 지 에미 뒤졌다고?"
"도련님!!!!!!"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그게 무슨....."
"전정국 에미가 전정국 우리 아버지한테 돈받고 팔아넘긴거야. 아들이고 친권이고 다 내줄테니 제발 돈 좀 달라고 해서 아버지가 대충 몇푼 쥐어주고 전정국 데리고 온거라고."
"...."
"데리고 가라고 해서 데리고 왔더니 골칫덩이인거지. 그래서 사환으로 집어넣은거고."
"...."
"그 새끼도 지 에미는 쪽팔렸나보지? 그런 되도 않는 거짓말로 속이다니."
"도련님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거예요. 정국이가 그렇게 말 지어내는 애는 아니잖아요."
난 끝까지 믿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민윤기도련님이 전정국의 어머니와 통화를 시켜주면서, 결국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어. 왜인지 모르지만, 전정국이 나를 속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