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것은 훨씬 더 슬프다.
- Miguel de Unamuno
신세계,
01
탕-.
몇 발의 총성이 오가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주위는 상대방이 던진 환 때문에 연기로 가득차 있는 상태였지만 그것은 오가는 탄환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 맞춰 키워진 늑대와도 같았다. 민첩하고, 정확했다.
본부에 남아 모니터로 상대의 얼굴을 파악중이던 윤기의 손이 순간 멈췄다. 연기가 이동하면서 아주 살짝 보인 상대편의 얼굴은 말을 잃게했다. 떨리는 손으로 무전을 가까이 한 윤기가 다급하게 지민을 불렀다.
"사격중지. 딴지! 카잇한테도 전해. 사격 중지!"
"네?"
"지금부터 한 발이라도 쏘면 다 퇴출이야."
윤기의 엄한 목소리에 지민이 연이의 팔을 붙잡았다. 카잇, 사격중지 명령이야. 자신을 붙잡는 지민을 흘긋 쳐다보고는 인상을 쓰던 연이 총구를 내리고 몸을 낮춰 지민을 응시했다.
"무전기 끼우고 있어. 슈가가 사태 파악 중인 것 같아."
"이유가 뭐야. 상대는 하나고 우린 둘이야."
"이유 불문."
탕-.
어깨를 으쓱이며 지민이 말을 마치자 마자 연이의 총에서 탄환이 나갔다. 여전히 연기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형체가 지민과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지민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았고 연이는 다시 한 번 총을 겨눴다. 연이의 귀에서 빠져있는 무전에서는 윤기의 소리침이 다급했다. "카잇, 사격 중지. 연아! 쏘지마! 너 후회한다. 전정국이야, 정국이라고! 딴지, 뭐해. 빨리 연이 막아!" 무전을 듣고있던 지민이 떨리는 손으로 연이의 총구를 막았다. 조준을 하던 연이 지민을 쳐다본다.
"카잇, ...시걸이래... 전정국이래."
연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흔들림없는 대지인줄 알았던 연이는 아직 돌을 맞아본 적 없는 호수일 뿐이었다. 정국의 이름은 연이에게 너무 큰 돌이었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연이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형체를 더 괴로운 눈으로 보다가 빠르게 다가갔다. 쓰러지듯 주저앉은 정국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정확히 정국의 대동맥을 관통했던 총알이 이번에는 연이의 심장을 파고드는 듯 했다. 살을 에는 고통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직접 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란, 그런 것이었다. 어째서 네가 거기있는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돌아오지 못할 대답이 듣고싶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야 했다.
"왜, 네가 왜. 전정국 네가 왜 여기있어. 왜!"
희미하게 웃음짓는 정국을 안고 아파 울부짖는 연을 위로하듯 쏟아지는 햇살도, 그 햇살을 뚫고 기어코 퍼붓는 비도, 처참한 광경에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지민도, 모니터를 보며 허망한 웃음을 짓는 윤기도 모두가 아픈 밤이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도 연이의 볼을 어루만지던 정국의 하얗고 얇은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카잇, 네가 나올 줄 알았어. 아, 이렇게 적어놨는데 네가 아니면 어쩌지? 그럼 되게 민망하겠다 그치? 음, 그럼 이 편지 본 사람은 이 편지 좀 카잇한테 전해주세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카잇만 봤으면 해요. 카잇, 네가 너무 보고싶었어. 내가 마지막으로 볼 사람이 너라면 좋겠는데... 가능하겠지? 어차피 죽을 목숨 네 손에 죽는게 제일 편하기도 하고 혈선 최고의 저격수 총에 맞아 죽다, 뭐 제일 거창해보이고 좋잖아? 슬퍼하지말라는 말은 못하겠다. 너까지 슬퍼하지 않으면 나 진짜 너무 안쓰러울 것 같아. 딱 3일만 슬퍼하다가 다시 너 갈 길 가. 미리 귀띔해주지 못한거 미안해. 비밀 같은거 없기로 했는데. 마음껏 원망해. 그리고 가슴에 묻어도 돼. 묻고 잊었다가 너 나한테 올 때 쯤에만 꺼내봐줘. 있잖아 카잇, 뜬금없지만 너는 피아노칠 때가 제일 예뻐. 진심이야.'
하고 싶은 말을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해 어색한 편지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연아, 사랑해. 몇 번이고 지웠다 쓴 흔적이 가득 남은 마지막 문장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끌어안았다. 왜 너는 너를 가슴에 묻지도 못하게 하냐고, 왜 너를 가슴 깊이 안고 가지도 못하게 하냐고, 왜 너는 돌아갈 때 마저 나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고 마냐고. 내가 어떻게 너를 묻어. 닳고 닳아서 묻어두지 않은 걸 후회할 때 까지 나는 너를 보아야하는데. 어떻게 너를 원망해 내가.
~
"카잇,딴지,슈가 그대로 배치될겁니다. 알엠이 새로운 팀원으로 들어갈 예정이구요."
"그래서."
"네?"
"우리더러 또 희안을 맡으라고?"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입니다."
"상부에 연락해. 내가 직접 얘기할게."
나만의 상처가 아니었다. 자칫하면 잘 지내고있는 지민과 윤기의 상처도 끄집어낼 수 있는 문제였다. 다시는 희안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아직 정국을 따라 희안으로 넘어간 혈선 사람들이 남아있을 것이었다. 3년이라는 시간은 그리도 짧았다. 강산은 커녕 소수의 사람들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따를 수 없습니다. 상부에서 왜 저희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건지 알고 싶은데요."
"카잇, 이건 명령이야. 네 멋대로 할거면 나가. 명령은 항상 이유불문이야."
"...마스터가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마스터의 지시입니까?"
"카잇."
"아직 잊지않았습니다. 마스터는... 시걸을 죽였어요. 다 알면서, 교묘하게 저를 이용했다구요."
"마스터께서는 배신자를 처단한 것 뿐이다. 그게 마스터의 일이야. 마스터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면 희안으로 가. 너도 시걸처럼 죽음을 당한다해도 상관없어."
"...시발. 정도껏 해요. 나랑 딴지, 슈가만 없으면 혈선도 무너지는거 한 순간이에요. 시걸을 잃었을 때부터 혈선은 흔들렸어. 모르는 척 했을 뿐이야."
시걸, 카잇, 딴지, 슈가. 전정국, 도연, 박지민, 민윤기. 명실상부 최고의 팀원으로 꾸려진 최고의 팀이었다. 능력 면에서도 팀워크 면에서도 그들은 최고였다. 시걸을 잃고 팀 전체가 흔들리면서 혈선도 희안의 손에 넘어갈 뻔 한것을 슈가의 뛰어난 판단력으로 간신히 붙잡았던 것이다. 겨우 정예요원 4명으로 무너질 약한 조직은 아니었지만 그만큼이나 넷의 힘은 막강했다. 시걸 없이 다시 세명으로 꾸려진 팀은 희안의 신생 스나이퍼와 노련한 서포터를 상대로 맞서야 했고, 멀리서 본 결과는 훌륭했으나 가까이서 본 결과는 참혹하기만 했다. 그 신생 스나이퍼가 혈선을 무단 탈출한 정국일줄이야 조커를 제외한 모두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마스터가 정국과 연이의 묘한 관계를 몰랐다 하더라도 그들은 목숨을 같이 한 팀원이었고 아무리 배신자로 몰린 상황에서도 정국을 그들 손으로 처단하게 해서는 안되었다. 절대로.
"팀원들과 상의 후 다시 연락드리죠. 마스터께 전해요.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을거라고."
마스터에 대한 끝없는 분노와 배신감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몇 년을 마스터 하나를 믿고 복종해왔던 그들을 변하게 만든 건 분명 3년전 마스터의 어리석은 지시에 대한 댓가였다. 죽을 위기에 내몰렸던 그들을 살려준 은덕을 모조리 잊지는 않았기에 그래도 아직은 혈선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쓸데없는 의리와 충성심때문에.
지민과 윤기에게 연락을 취하려 휴대전화를 꺼내든 순간 빠르게 옆으로 지나간 남성에 연이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본부 꼭대기 층은 정예요원조차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방금 그 남자의 얼굴은 분명 낯선 것이었다. 빠르게 총을 꺼내 그의 뒤통수를 향하게 했다. 총을 장전하는 소리에 멈춰진 빠른 발걸음에 살짝 인상을 쓴 연이는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아챘다. 대충 쓱 훑어도 보이는 다부진 체격과 미세한 총소리도 눈치채는 발달된 청력, 불리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 판단력 어느 부분을 보건 그는 분명 꾸준한 훈련을 받아온 조직원이었다.
"코드네임."
"알면 놀랄걸."
"농담 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뷔."
"뭐?"
"못들어봤나? 혈선은 소식이 좀 느린가보네. 희안 에이스잖아. 코드네임 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다. 그가 뛰어내린 창문 밑을 쳐다봤지만 총은 이미 주머니에 꽂혀진 상태였다. 그를 쏠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가 뷔라면. 마스터가 그들을 다시 모은 이유였다. 시걸을 맞이한지 얼마 안되서 보내야했던 그들이 시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독하게 기른 개새끼. 아무리 짧아도 족히 5년은 걸릴 줄 알았던 희안의 개새끼 양성이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이뤄진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혈선의 내부까지 침입한 꼴을 보아하니 헛소문은 아닌 듯 싶었다.
"슈가,딴지 응답해."
[응.]
"슈가는."
[어.]
"지금 회의실로 모여. 긴급소집."
[캬, 우리 카잇 리더 다 됐네.]
"장난칠 때 아냐, 딴지. 오면서 알엠도 불러와."
카잇의 기억이 맞다면 뷔의 목에 걸려진 팬던트는 시걸의 것과 같았다. 아니 시걸의 것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직접 만든 팬던트가 세상에 2개 이상 존재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시걸이 죽었을 당시, 허전했던 시걸의 목을 똑똑히 기억했다. 정국이 뷔에게 준 선물일까, 그렇다면 그 때도 뷔가 정국과 사이를 가까이 할 수 있을만큼 유능한 요원이었나. 카잇은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쓰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카잇, 지각이야."
"시끄러. 다 모였어?"
"그럼. 누구 명령인데."
"중요 사안만 간단히 말할테니까 잘 들어. 우리한테 임무가 주어졌어. 알엠은 미리 들었겠지? 상대편은 희안 에이스 뷔야."
"뭐?"
"희안? 카잇 미쳤어?"
"이번 임무 만큼은 강요 안 해. 명령도 아니야. 부탁이라고 생각해. 빠질 사람은 지금 빠져.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 무조건."
***
암호닉 신청은 감사하게 받을게요. 혹시 암호닉 숨기기 기능은 어떻게 하는건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기계치라... :)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댓글 하나만 부탁드려요 ~
#
카잇 (Kite)
본명: 도연
소속: 혈선
포지션: 스나이퍼, 팀 내 리더
특징: 장거리 저격수
직업: 피아니스트
시걸 (Sea-gull)
본명: 전정국
소속: 구 혈선 현 희안
포지션: 스나이퍼
특징: 장거리 저격수
직업: 대기업 이사
뷔 (V)
본명: 김태형
소속: 희안
포지션: 스나이퍼
특징: 단거리 저격수
직업: 작곡가
슈가 (SUGA)
본명: 민윤기
소속: 혈선
포지션: 서포터
특징: 최소 천재
직업: 해커
딴지
본명: 박지민
소속: 혈선
포지션: 스나이퍼
특징: 단거리 저격수
직업: 플로리스트
알엠 (RM)
본명: 김남준
소속: 혈선
포지션: 멀티
특징: 주포지션 스나이퍼
직업: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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