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군지정(戀君之情)
임(임금)에 대한 그리움과 변함없는 사랑
밤을 꼬박 샜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벌써 밖은 부지런한 상인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승철.. 그 마음을 어찌하려고.. 그리고 어찌하여 그것을 티내는 것인지. 분명 신료들이 알게 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었다. 이것은 신탁에 없던 일인데.. 이럴 땐 작국(鵲國)의 신녀인 언니가 부러워진다. 비교적 자주 신탁을 받던 언니이기에, 그 높은 능력이 부러워진다.
복잡해져 오는 머리에 눈을 감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대로 아득해지고 싶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정갈한 두드림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나의 들어오란 대답 후 궁녀가 들었다.
"기침하셨습니까?"
나의 끄덕임에 궁녀는 젖은 수건을 건네주며 앞으로 있을 중요한 일정에 대해 일러주었다.
"이 주일 후에 3국 수뇌회담(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아, 벌써 그리 되었군요."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윤년, 윤일. 4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는 2월 29일은 3국의 수뇌회담이 있는 날이다.
시간이 벌써 그리되었나.. 아마, 승철이 집권한 후 2번째를 맞이하는 수뇌회담이었다. 물론 나는 처음 접하는 자리였다. 아, 그럼 오국의 황제와 만나겠구나. 오국의 황제가 집권하고 처음 하는 수뇌회담인 만큼 온몸이 긴장되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둘의 관계를. 그렇기 때문에 더 긴장되었다.
오사국(烏蛇國)이 이국(彲國)으로 국명이 바뀔 때 이것을 반대하던 세력이 있었다. 허나 국명을 바꾸자는 세력이 너무나도 강력해 그대로 가자던 세력이 추방을 당하였는데, 오사국의 기를 이어받자고 하며 그들이 새롭게 나라를 세웠다. 그것이 오국(烏國)이었다. 추방당했다는 것 때문인지 그들은 날로 포악해져 갔고 전쟁은 번번이 발발했다. 그렇게 994년 동안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쟁들이 발발했었는데 후에 대전쟁이라고 불리는 정말 큰 전쟁이 그 해에 발발했다. 이로 인해 그간 한 번도 없던 현왕이 타계(他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이국의 황제였고, 그는 승철의 아버지였다. 현왕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급하게 그의 아들, 즉 최승철이 즉위했다.
오국의 잦은 침입으로 지친 이국의 백성들이나 전쟁을 하도 많이 치러 더 이상의 병력이 남지도 않은 오국의 백성들이 994년 대전쟁을 기점으로 하나의 신녀가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가 작국(鵲國)이었다. 이 신녀가 내가 그리도 부러워하는 언니다. 어디서 본 적도 없는 어리디 어린 황제를 앞세워 나라를 세웠으나 그 견고함은 능력이 좋은 언니 덕분에 유지되어와 작국은 평화롭기까지 했다.
너무나 갑자기 찾아온 대전쟁과 현왕의 죽음. 승철은 994년 그 후부터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그는 전 왕이 되어버린 자신의 아버지가 타계했던 그 날의 정확히 1년 후 오국을 기습으로 쳐들어가 미친 듯이 들쑤셨고 그로인해 오국의 현왕이 타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국 또한 현왕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그의 아들이 급히 즉위했다.
이것이 지금 이곳의 현실이었다. 헌데, 이런 줄타기 같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3국 수뇌회담을 개최한다..?
---
"네. 개최합니다."
승철은 단호히 대답했다. 사적으로는 처음으로 그의 사정전(국정 업무를 보는 곳)에 갈 정도로 난 긴장되어 있는데, 승철은 나른히 눈을 감았다 뜨며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말하였다.
"무슨 생각이십니까,"
"어디까지 할 것인가 봐야지요."
"저는,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이 이국이 되었던 그 때부터 행해지던 회담입니다."
단지 그것 때문이 아닌 것 같다. 그의 눈에 언뜻 보이는 그 살기는 그저 관습을 따르는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주일 후에 있을 수뇌회담에 제발 오국의 황제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야겠다.
"지수님!"
"하하, 그건 또 무슨 호칭이더냐."
"오라버니는, 혼인을 할 수 없다 들었습니다!"
"혼인이라니, 너와 나의 나이차를 보아라."
"저는 꼭 지수님과 혼인을 할 것입니다! 나이차 까짓것! 전 괜찮아요! 제가 성년이 되는 15살까지 3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얼굴을 보았다. 그 잔상이 쉽사리 잊히지 않고 뇌리에 맴돈다. 휘어진 눈꼬리와 도톰한 애교 살, 사내답지 않게 곱게 뻗은 콧날, 기분 좋게 올라간 입꼬리. 전체적으로 고운 분위기를 풍기던 그를 다시 떠올렸다. 몽글몽글, 또 기분 좋은 느낌이 나를 휘감았다.
어찌하면 좋을까, 꿈속의 사내가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꿈을 적고 두루마리를 말아 서랍 속에 넣었다. 몽글몽글한 느낌에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불규칙한 심장 뛰는 소리마저 몽글몽글하다. 그런 나의 기분을 방해하듯 흔들거리던 등불이 꺼졌다. 닫힌 창문 탓에 희미한 햇빛만이 방을 채웠다. 아, 신의 전언이다. 신탁이 오고 있다. 급하게 내려놓았던 붓을 다시 들었다. 빈 두루마리를 하나 펼쳐 눈을 감고 신의 전언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손이 멈췄다. 눈을 뜨고 서랍에서 성냥을 꺼내 등불을 밝혔다. 밝아진 시야 덕에 신탁이 보였다.
[소중한 것을 숨겨라.]
비교적 간단한 그 신탁은 전에 비해 양호했다. 서랍에 있던 두루마리들 속에 파묻힌, 혼자서 구겨진 두루마리를 꺼냈다.
[역사를 잊고, 전쟁에 무뎌진 자들은 그들의 똑같은 수법에 다시 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전해야겠지. 그것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정갈한 두드림이 들려왔다.
"황제폐하께서 드십니다."
어쩜 저렇게 딱 맞춰 오시는지.. 여전히 문이 닫히기 전까지 움직이는 않는 황제에게 내가 먼저 다가갔다. 신탁이 적힌 두루마리를 보는 그의 눈엔 반가움이 서렸다.
그간 그도 마음고생이 심했겠지.
"오랜만이네요."
"송구하옵니다."
"아니요, 신녀님을 탓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앞으로 온 나의 머리를 쓰다듬은 그는 여전히 내 머릿결이 걱정되는 듯 미간을 좁혔다.
"방법이, 없을까요..?"
"저는 괜찮습니다."
"신녀님도 신녀이기 전에 여인이지 않습니까.. 꾸미고 싶으실 터인데,"
"지금의 저는 신녀입니다."
단호한 나의 말에 승철은 나의 눈을 보았다. 곧 작은 한숨을 내어 쉬며 내가 들고 있던 신탁을 받아들었다.
"이것은 내 사정전으로 돌아가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시지요. 근데, 어인일로 이곳까지.."
"내가 뭐 일이 있어 오더이까."
내가 다 놀라 승철을 보았다. 어쩐지 개구지게 웃는 그는 지금 나와 농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농 치고는 짓궂으십니다."
"한 나라의 황제가 신녀에게 짓궂다는 말도 다 듣는 군요."
"아, 소, 송구하옵니다."
"하하, 농입니다. 이것이, 농입니다."
개구지게 웃던 그의 얼굴이 굳었다.
승철은 돌려 말하고 있었다. 전자가 진심이고 후자가 농이라고, 그리 돌려 말하고 있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이렇게 가다간 신료들이 눈치를 채고 말 것이었다. 그리되면.. 처참한 끝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감은 눈에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 예민해진 감각은 현재 그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음을 일러주고 있었다. 그의 숨결이 나의 바로 앞에서 느껴진다. 그가 나즈막이 속삭인다.
"내가, 이 나라의 황제입니다."
그런 그에게 나도 두려움에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 나라의 신녀입니다."
.
.
.
3국 수뇌회담이 개최되었다. 3국의 중심이 되는 이국의 변두리에서.
이국으로 넘어오는 국경선에 오국의 황제가 타고 있는 마차가 들어섰다. 마부가 마차를 잠시 멈추고 국경의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마차 안엔 오국의 황제가 누구 보다 편하게 앉아 있었다. 곧 자세를 바로 한 오국의 황제는 휘파람이나 불며 제 앞에 신녀를 살폈다. 그녀는 검은색 베일을 쓴 채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해?"
"황제님은 말해도 몰라요."
"하, 또 그 소리야. 지겹다 진짜."
지겹다며 고개를 저은 오국의 황제는 마차에 나 있던 창을 열었다. 열린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이국의 모습에 그의 날카로운 눈이, 가늘게 찢어진 눈매가 곱게 접어진다. 곧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소리 내어 키득키득 웃었다.
"썩어빠진 냄새가 나는 군. 곧 망할 징조이지."
---
약간은 어두운 실내. 그 가운데 육각형으로 된 하나의 큰 책상에 작국의 황제, 이국의 황제, 오국의 황제가 둘러앉았다. 각 황제의 뒤로 얇은 천이 쳐져 있었는데 그 안에 각국의 신녀들이 앉아있었다. 신녀들은 나라에서 황제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이기에 신변을 철저히 감추고 있다. 하여 신녀들 사이사이엔 칸이 쳐져있어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런 그녀들의 앞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 위엔 빈 두루마리들과 붓, 먹물이 있었다. 목소리 또한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궁녀를 통하여 황제에게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3국 수뇌회담,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서기가 붓을 잡으며 말했다. 사실상 이게 수뇌회담이라고는 하지만 오국과 작국은 황제들은 처음이라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해하는 정도 또한 달랐다. 다만, 오국의 황제는 조금 다른 생각으로 수뇌회담을 이해한 듯싶었다.
이국의 황제를 도발할 수 있는 장소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시간만 때우다 갈 생각이던 이국의 황제, 승철이 차가 담긴 컵으로 손을 뻗었다. 오국의 황제가 그런 승철을 바라보며 비소를 머금었다. 그 작은 소리가 승철의 귀에 들려왔다. 컵으로 가던 손을 멈춘 그가 고개를 돌려 오국의 황제를 보았다. 비소를 감추지 않는 오국의 황제였다.
어린놈의 새끼가, 패기 있네.
매번 쳐들어올 때부터 싹수가 노랬어.
그저 어린 황제의 도발 정도로 생각한 승철은 다시 컵으로 손을 뻗어 차를 마셨다. 황제답게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둘의 신경전에 어쩌지, 라며 고민하던 작국의 황제에게 작국 신녀의 전언이 왔다. 그것을 펼쳐 읽어보는 작국의 황제는 곧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미동 없이 차를 마셨다. 꿀꺽대는 소리가 조용하던 실내에 울렸다.
[신경 쓸 필요 없으십니다. 황제답게 행동하세요.]
각 나라의 황제들이 개성 있네요.
참고로 황제들은 다 세븐틴 멤버지요.
누군지 맞추시면.. 제 엄지를 드립니다bbb
저, 암호닉.. 그거.. 감사합니다..♥
정말.. 울뻔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예쁜 사람드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