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달달한 향이 맴도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승관, 권순영과 웃으며 떠들고 있던 이석민이 나를 발견하곤 쪼르르 달려 나왔다.
대뜸 내게 손을 내미는 아이를 이상하게 쳐다보자 뻔뻔히 자신의 초콜릿은 어디 있냐며 내게 물어왔다.
"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한다 또, 너 내가 미칠 거면 곱게 미치라고 했지? "
" 뭐야, 칠봉. 내 초콜릿 없어? "
" 너 나 말고 받을 애 많으면서 왜 이래? "
" 아 걔네들 초콜릿은 네가 주는 게 아니잖아! "
" 내가 주면 뭐 별다른 거냐? 바보냐, 어? "
울상을 지어가며 이상한 논리로 내게서 초콜릿을 요구하는 이석민을 밀어내고 자리로 가니 부승관과 권순영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간단히 손을 올려 인사를 받은 다음 가방을 열어 교과서와 필통을 꺼내는 순간 투덜거리며 내 앞에 앉은 이석민이 보였다.
그래도 거의 죽마고우와 다름없는 친구들... 그래 친구들을 위해 집에서 집어온 abc 초콜릿을 하나씩 던져주니
부승관과 권순영은 그 초콜릿 하나를 머리 위로 들고 복도를 활보하고 다녔다.
복도에서 울리는 나도 여자한테 초콜릿 받았다!!!!!라는 외침은 가뿐히 무시한 채 앞을 보면 여전히 뚱한 이석민이 보였다.
" 야 네 초콜릿은 상했냐? 아님 벌레라도 나왔어? 왜 그렇게 뚱해? "
" ... "
" 뭐야, 진짜야? 아닌데... 내가 가져올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
이석민의 손에 쥐여져있는 초콜릿을 뺏어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며 모르겠단 표정을 지으니 이석민이 말문을 열었다.
" 야, 칠봉. 너 진짜 몰라서 물어? "
" 너 솔직히 말해봐. 너 이석민 말고 이석순이 진짜 이름이지? "
" 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 그럼 네가 여자도 아닌데 왜 자꾸 돌려 말해!! "
" ... 허, 아니 그러니까! "
" 그래, 그러니까 뭐! "
" ... 됐다, 됐어. 초콜릿 정말 고맙다 그래. "
" 뭐야... 왜 이래 진짜... "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던 이석민은 이내 몸을 돌려 칠판을 향해 앉았다.
오늘따라 이상한 이석민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미처 다 하지 못한 숙제로 눈을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쉬는 시간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떠들어댈 이석민이 무슨 일인지 수업을 끝까지 조용히 들었다.
부승관과 권순영도 떠들다 무언가 이상한 걸 눈치 채고 이석민에게 농담도 던지고 장난을 걸었지만 이석민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심각성을 깨닫고 부승관에게 슬쩍 물어보니 부승관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이마를 밀었다.
" 아 왜! "
" 니네가 무슨 세븐틴 유치원 천사 반 이세요? 왜 이렇게 다들 어려? "
" 그게 또 무슨 개소리야! "
" 알기 싫으면 그냥 가시던가~ "
" 와 정말 얄밉다... "
어찌나 얄밉던지 옆에서 관전하던 권순영이 얄밉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부승관은 다시 본론으로 넘어왔다.
" 너네 혹시 감정고자니? "
" ... 감정고자? 그건 또 뭐야. "
" 왜 너네는 자기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하냐 이 말이야, 어? "
" 아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해봐! "
" ... 후 릴랙스, 릴랙스 상대는 감정고자야 승관아. 자 들어봐 칠봉. "
" 알았으니까 빨리 얘기나 해봐. "
" 너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1초 만에 대답해, 그리고 모든 대답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알았냐? "
" 아 알았다고! "
" 오늘 발렌타인데이라는 걸 알았을 때 누가 제일 먼저 떠올랐냐? "
" ... 이석민? "
"그러면 평소에 널 제일 많이 챙겨주는 애는? "
" ... 이석민. "
" 너네가 진짜 그냥 저스트 프렌드라고 생각하냐? "
" ... "
" 대답. "
" ... 응. "
" 그러면 이석민이 여자친구 만들어도 되겠네? "
" ... "
허가 찔린 것처럼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부승관은 그런 내 머리 위로 손을 올려 천천히 쓰다듬었다.
" 감정이란 거 모른 척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야, 그렇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 "
" ... "
" 다시 물을게, 이석민이 여자친구 만들어도 돼? "
" ... 아니. "
" 그럼 너 이석민 좋아해? "
" ... 응. "
내 대답이 나오자 햇살같이 웃던 승관이는 이내 나를 돌려세워 이석민에게로 보냈다.
여전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는 이석민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려워 뒤를 힐끗 쳐다보면 내게 파이팅이라며 입모양을 만드는 권순영이 보였다.
사실 많이 헷갈렸다, 이게 그냥 정이라는 것이 잘못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이석민을 위해 초콜릿을 사곤 미쳤다며 볼이 붉어져 얼른 가방에 쑤셔 넣었던 아침 등굣길이 스쳐 지나갔다.
가방 문을 열어 보이는 초콜릿을 들어 마이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석민의 어깨를 톡톡 치곤 따라 나오라며 손짓을 했다.
아이들이 조금은 드물게 다니는 복도 한 구석에 마주보고 나란히 섰다.
예전 같았으면 없었을 알 수 없는 미묘한 기류가 우리 사이에 흘렀다.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그 아이의 시선과 올려다 보는 나의 시선이 맞닿았다.
한동안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고 있으면 이석민은 내게 왜 불렀냐며 물어왔다.
" 아... 저 그게... "
" 그게 뭐? "
" 아니 어, 그래 너 오늘 아침 밥 뭐 먹었냐? "
이미 내 입을 거쳐 나간 말을 다시 담을 수 없었다.
붉어진 볼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이니 이석민은 한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있다가 피식 웃으며 내 고개를 잡아 올렸다.
" 죄지었어? 왜 고갤 숙이고 그래. 그게 궁금한 거면 그냥 묻지 그랬냐, 교실 가자. 곧 종 쳐. "
내 마이 끝자락을 잡고 끄는 이석민의 행동에 당황해 그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이 역시 당황했는지 나를 빤히 바라봤다.
" 아, 아니 그게... "
" 왜, 또 무슨 할 말 남았어? "
" ... "
계속 마이 끝자락만 붙잡고 고갤 푹 숙이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눈치도 센스도 없는 이석민이 야속한 마음이었을까?
이석민은 내가 훌쩍이자 놀란 듯 내 눈물을 서둘러 닦아냈다.
나는 그 행동에 어느새 초콜릿 녹듯 녹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당황한 아이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냈다.
왜 너는 초콜릿 달라고 끈질기게 말을 안 하냐며 터무니없는 투정을 부려가며 이석민의 어깨만을 치고 있으니 내 손을 잡곤 예쁘게 웃어보이는 아이였다.
" 그게 그렇게 속상했어, 봉아? "
" ... 알면서, 자꾸 묻지 말라고... "
이런 내가 자신의 눈에는 마냥 귀여워 보이는지 이내 호탕하게 웃는 아이를 노려봤다.
그러자 아이는 웃음을 겨우 그치고 내 앞으로 다시 손을 내밀었다.
" 초콜릿, 초콜릿 줘. "
" ... 네가 달라고 해서 주는 거야, 정말이야. 알지? "
" 알았어, 그러니까 얼른 줘. "
안주머니에서 꺼낸 초콜릿을 조심스럽게 아이의 손에 올려놓았다.
아이는 아이같이 해맑게 웃으며 기뻐했다.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있던 나도 어느새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아이는 그러던 와중 갑자기 탄식을 뱉더니 자신은 초콜릿을 준비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괜찮다며 그렇게 얘길 했는데 마음이 풀리지 않는지 계속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아이였다.
그러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내가 준 초콜릿을 카메라로 한 번 찍더니 그 다음은 포장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 인증샷은 남겨야 하지 않겠어? "
그렇게 말하며 포장을 다 깐 아이는 입안에 초콜릿 한 알을 집어넣곤 바로 내게 넘겨줬다.
놀라 두 눈만 깜빡이고 있으면 아이는 또 해사하게 웃더니 내게 말했다.
" 이제 됐다, 나도 초콜릿 준 거다? "
" ... 아 이석민! "
" 왜, 봉아~? "
" ... 갑자기 그렇게 막 그러면... "
" 뭐 어때, 나 이제 안 참을 건데? "
" 아 뭐래! "
여느 때와 다름없이 투닥거리며 우리는 복도를 거닐었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꼭 맞잡은 두 손이랄까.
" 야 부승관, 너 괜찮냐? "
" ... 칠봉 행복해 보이잖냐, 그럼 됐어. "
" 미친놈... 내가 봤을 땐 네가 제일 바보야. 알아? "
한심한 듯 혀를 차며 승관에게 어깨동무를 한 순영은 매점으로 향했다.
" 사랑에 실패한 자여, 이 형아가 오늘 쏜다. 다 골라라! "
" 네가 무슨 형아야, 오늘 네 지갑 털어도 되는 거냐? "
이제야 조금 밝게 웃는 승관을 보며 순영은 안쓰러운 마음을 삼켜야 했다.
2년간 짝사랑한 여자가 다른 남자도 아닌 자신의 친구를 좋아하는데 그걸 당사자가 아닌 승관이 먼저 알아챘다.
원래부터 눈치가 빠르던 승관은 자신이 눈치가 빠른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본래 정말 사랑한다면 보내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승관은 그렇게 봉이 행복하길 바라며 석민에게 보냈다.
어른이 되어 본다면 어쩌면 10대의 가벼운 사랑일지도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좋아하고 또 보고 싶어 했던 승관의 사랑은 그렇게 이루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다.
사랑은 언제나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
결론적으로 이루어진 사랑이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없다면 이루어질 사랑 또한 없을 것이다.
어찌 됐건 이루어진 사랑이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던 당사자가 괜찮다면 모두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실패했다 하여 인생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말하지 못하고 묻혀가는 고백들을 위로하며, 이만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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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봉봉들!
지난 5일간 저는 참 바쁘게 살았어요ㅠㅠ 13,14일은 서울에서 15,16일은 전주에서 17일은 학교를 가고...
너무 피곤해서 글을 쓸 생각을 못 했는데 봉들이 넘나 보고 싶어서 왔어요ㅠㅠㅠ
저 첫콘... 갔을 때... 너무 고생을 해서 감기 몸살 득템...
아 그리고 나눔을 못 받으신 봉봉들이 많아요ㅠㅠㅠㅠㅠㅠ
넘나 속상한데 제가 좌석 바꿔드린 분이 알고보니 봉봉이었다는!
권순영을 좋아하는 이유를 제일 좋아하신다며, 제 글을 보고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고 팬이라며 간식을 한 움큼 쥐어주신
어느 봉봉ㅠㅠㅠ 너무 ㅠㅠㅠㅠㅠㅠㅠ감사합니다ㅠㅠㅠ
직접 이렇게 봉봉을 만나고나니 실감이 나더라구요, 아 내 글이 사랑을 받고 있구나...
앞으로 더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늦었지만 해피 발렌타인~♥
암호닉 신청, 신알신 모두 다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봉봉이들 명단♥
♥[뿌존뿌존/순제로/비둘기/원우야/유현/흰둥이/슈오/세하/고양이의 보은/무기/명호엔젤/수녕하트/들국화
뒷구름봉/코코팜/지유/뿌씅꽌/규애/이과민규/천상소/뿌라스/세봉아 사랑해/ 토마토/한라봉/봄나무/별/윤/경상도/지하/원우야밥먹자/아이닌/너구리
쎄봉/0526/봄지훈/가방님/바나나에몽/붐바스틱/또렝/챠밍/돌하르방/나붕/로운/담요/♡세봉부인♡/☆☆☆투기☆☆☆/키시/우정승/가나다라
피카츄/흰색/부산]♥
혹시라도 빠진 봉봉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