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p de Foudre 15
(부제: 너랑 나)
"......진짜 삐졌어?"
"......."
"삐진 거지? 그렇지?"
"......아닌데."
세 살배기 어린 애를 어르고 달래는 게 더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전원우 달래는 거 보다는 그게 천만 배는 더 나을 것 같다! 정말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냐구!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라고!
"......아니, 삐졌으면 삐졌다고 말을 해!"
"그냥 회사 안 다니면 안 돼?"
"......."
"아, 짜증나. 도대체 왜 외근을 보내? 회사에서 일 하면 안 돼?"
전원우가 왜 저러냐면, 오늘 부장님이 외근 관련해서 나랑 이석민을 시켜서 그러는 거다.
정말 눈만 마주쳤다 하면 서로 으르렁 거리는 사이인데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는 지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삐진 건 확실하다.
회사에 나가지 말라느니, 외근 날 아프다고 뻥을 치라느니, 정말 오만가지 얘기들을 늘어놓는 전원우였다.
물론! 나도 전원우가 딴 여자 사람이랑 외근을 나간다고 하면 마음에 불이 나겠지만! 정말 나와 이석민은 싸우기밖에 안 한다고요!
"......진짜 짜증나. 안 그래도 둘이 얘기하는 것도 싫은데."
"나 정말로 일만 하다 온다니까! 평소에도 봤잖아."
"그냥 다른 남자랑 얘기하는 거 자체가 싫어."
"......그래서 지금 삐진 거잖아."
"그래. 삐졌다, 삐졌어."
저 질투에 눈이 먼 남정네를 봤나.... 정말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른 남자랑 얘기하는 거 자체가 싫다고 말하는 전원우가 애 같았다.
전원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지금 하루 종일 내 눈도 제대로 안 마주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냐고, 이 사람아!
"부장님이 시키셨는데 어떡해."
"......그럼 나랑 약속해."
"무슨 약속?"
선심 쓴다는 표정의 전원우였다. 무슨 약속.
"핸드폰 꺼 놓지 말기."
"......응."
"연락 자주 받기."
"......응."
"그리고 졸리다고 차 안에서 잠든다거나. 그런 거 하지 마."
"졸리면 그럴 수도 있지, 왜!"
"나만 볼 거야."
이석민이 전원우가 이러는 걸 알면 기절 초풍할 거다. 이석민 씨가 얼마나 본인 여자친구에게 열심인지 모르시는군요?
이석민 여자친구도 분명히 내가 싫겠지? 그렇겠지? 갓 스무살 된 딸내미 통금시간 정하는 엄마마냥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아낸 전원우가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나 정말 정말 정말 일만 하다 올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진짜거든?"
"내가 못 산다. 진짜."
"......."
"연락 안 받기만 해 봐. 진짜 혼나."
"혼내긴 무슨...."
내가 이렇게 잡혀 살아요.... 혼낸다고 하는 전원우의 말에 입을 쭉 내밀고 뭘 혼내냐고 하자, 전원우가 주변을 살피더니 갑자기 피식 웃었다.
아니, 왜, 왜 그러고 웃어! 너가 그러면 나 굉장히 불길한 거 알아?
"그 날에 잠 자기 싫으면 그래도 되는데."
"......야!"
*
"......안 춥기는. 너가 무슨 무적이야?"
"......."
"누가 그 한파에 코트만 입어? 참나. 세상에. 열 오른 것 좀 봐."
"......아씨."
"씨?"
오늘 오랜만에 전원우랑 만나려고 했더니만, 잘 안 늦는 전원우가 늦길래 전화를 걸어 보니까 목소리가 장난이 아니였다.
그래서 버선발로 집에 와 봤다니 감기 몸살이란다. 누가 그렇게 춥게 입고 다니랬어, 어? 조심성 없는 남자 같으니라고!
전원우한테 잔소리만 듣던 내가 잔소리를 퍼붓자, 전원우 귀가 빨개지더니 나를 등지고 누웠다. 혹시.... 지금 부끄럽니?
"병원은 갔다 왔어?"
"......오늘 토요일인데."
"아, 내가 못 살아. 밥도 안 먹었지?"
"......응."
"밥 안 먹고 약 먹으면 속 버리니까 일단 뭐라도 좀 먹어. 죽 쒀 줄게."
무슨 다 큰 성인 남성이 본인 몸관리도 제대로 못합니까, 네? 술담배 잘 안 한다고 해서 몸관리 잘 하는 거 아니거든요?
어딘가 모르게 휑해보이는 집이었던 터라 혹시 몰라서 집에서 감기약을 챙겨왔었는데, 안 가져왔으면 큰일날 뻔했다.
자취남 집에 그 흔한 해열제 하나 없으면 어떡하자는 거냐고. 끙끙 앓으면 누가 상 준대?
"식탁에 앉아서는 못 먹겠다. 그치?"
"......응."
"기대서 누워 봐. 갖다 줄게. 잠깐만."
내가 못 살아, 진짜. 그릇에다가 죽을 옮겨 담고 수저랑 물이랑 쟁반에 담아서 방으로 들고 왔다.
열 때문에 벌겋게 상기된 전원우의 얼굴이 보였다. 그 와중에 또 희미하게 웃고 있는 게 어이가 없어서 나도 웃었다.
"아- 해 봐. 아."
"......내가 먹을 수 있거든."
"이거 좀 보게. 아픈 사람이면 아픈 사람답게 좀 수발 들어주는 거 고맙게 받으세요."
"......네."
약간 낯간지럽긴 하네. 너도 인정하지? 뜨끈뜨끈한 죽을 좀 입김으로 식힌 다음에 전원우한테 먹여 줬다.
안 먹을 것처럼 그러더니 넙죽넙죽 잘 받아 먹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죽 쒀 보는 건 처음이거든! 나는 사 먹어서.... 맛은 보장 못 하겠다.
"너 되게 엄마같다."
"엄마가 어렸을 때 해 준대로 해서 그렇지 뭐."
"......."
"왜. 어렸을 때 생각 나?"
나 아팠을 때 엄마가 이랬거든. 엄마 같다는 전원우의 말에 어렸을 때 생각 나냐고 묻자 전원우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내가 뭐 실수했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당황스러웠다. 왜 그래?
"......내가 뭐 실수한 거 아니지?"
"아니."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전원우가 애 같았다. 근데 평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의 눈빛이, 외로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나를 보고 슬쩍 웃는 전원우의 미소에는 형언할 수 없는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누가 아팠을 때 돌봐준 적이 없었어서."
"......."
"아플 때 혼자 아픈 적은 많았었거든."
"......."
"그냥, 고마워서."
짧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지어보이는 그 티 없이 맑은 웃음이,
그렇게 많은 느낌을 줄 줄은 몰랐다.
"나 원래 뭐든지 혼자서 잘 했는데."
"......."
"혼자 있는 것도 잘 하고. 외로운 것도 잘 몰라."
"......"
"근데 너 만나니까 이제 혼자 있으면 허전해."
"......"
"밥도 혼자 잘 못 먹겠어."
"......"
"병인가."
아니, 그거 병 아니야. 너가 없으면 허전하다는 말, 너가 꼭 있어야겠다는 말.
별거 아닌, 흔히 연인들이 주고받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전원우가 하는 말은 뭔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진심이 묻어있는 말만큼 힘 있는 말은 없을 것 같다. 병인가, 픽 웃으면서 말해오는 전원우를 그냥 말 없이 안았다.
*
"어휴, 김세봉 씨 그만 좀 마셔. 지난 번에 보니까 완전 가더만."
"아뇨! 저 완전 말술인데요오! 더 주세요!"
김세봉이는 정말 내가 안 챙기면 안 될 것 같다. 그렇게 술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더니만 오늘도 정말 넙죽넙죽 잘 받아 마신다.
그나마 오늘이 좀 받는 날인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필름 끊기고도 남았을 거다. 저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근데 요즘 팀장님이랑 부쩍 붙어다니던데."
"......저기요. 근데요!"
평소에 내가 좀 불편해하던 여사원이 별로 곱지 않은 말투로 세봉이한테 말을 걸어 왔다.
또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 같아 헛기침을 했는데, 김세봉이 테이블에 박고 있던 고개를 들더니 그 여자랑 눈을 맞췄다.
"그 쪽은 뭔데 자꾸! 어? 우리 원우한테! 찝적거려여? 왜 그래?"
"......네?"
"아니이! 전원우한테 자꾸 그러지 마요! 나 짜증나니까!"
"......."
"본인이 엄-청 예쁜 거 알아요? 예쁘니까 더 질투난단 말이야...."
술김에 흘러나오는 말들답게 필터링 하나 되어 있지 않았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그 여자를 울먹이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김세봉이었다. 아, 귀여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상승 곡선을 그렸다.
나는 신경 하나도 안 쓴다니까 그러네. 세봉이의 폭탄 발언에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뭐야. 김세봉 씨 전 팀장이랑 사귀어?"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맨날 붙어다녔는데, 모를 리가.
나한테 괜한 피해 갈까봐 숨기고 싶다던 김세봉이의 걱정 어린 표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괜찮다니까 그래. 유한 분위기 속에서, 김세봉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같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완전 오래됐는데! 모르셨어요오?"
"와, 축하해! 사실 다들 알고는 있었지. 어림짐작으로."
"1년 동안 그래도 잘 숨겼네! 이제는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다녀."
봐봐. 너가 생각하는 그런 반응 하나도 안 나오잖아. 쏟아지는 좋은 반응들에 안심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몸이 제 기능을 다 한 건지.
세봉이의 머리가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술 못 마시게 해야겠어. 저러다가 몸 상할라.
"세봉씨 완전 뻗었는데. 원우 씨가 잘 케어해야겠네."
"아, 네. 먼저 일어날게요."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못 산다. 이게 몇 번째야. 김세봉을 등에 업고 차까지 걸어갔다. 바람이 참 찬 것 같다.
"원우야아. 나 오늘 말했다! 사귄다구!"
"그럼 이제 눈치 안 봐도 되나."
"아니이. 그래도오.... 회산데. 너가 짱이라구 막 그러면 안 돼!"
"마음에 안 드는 짓 할 때마다 뽀뽀할 건데."
".......그럼 앞으로 맨날 다른 남자랑 말해야지!"
예상치 못한 폭탄 발언에 입꼬리가 미친듯이 올라갔다. 오늘도 잠 자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에 파묻혀 산다. 보기만 해도 좋다는 거, 먹는 거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거.
그런 말들이 전혀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당연한 명제인 양 받아들여진다.
정말 너가 없는 나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매번 든다.
"비밀번호."
"......네 생일!"
"바꿨어?"
"응!"
비밀번호 같은 거 잘 까먹는다고 1234로 해 놓는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내 등에서 내려온 김세봉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원우야아."
"응?"
내 넥타이를 잡아당기더니 멋쩍게 웃는 김세봉이었다. 서 있기도 힘든 것 같은데, 말 한마디 한마디 힘줘서 말하는 게 귀여웠다.
다른 사람이 내 이름 부르면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데, 네 입에서 나오면 그게 또 좋더라.
다섯 살 짜리 애 같은 게, 평소에는 어른인 척 하다가 술만 마시면 어린 여자가 된다. 무장해제 된다고 해야 하나.
"...그냥 갈 거야?"
"......내일 금요일인데."
"......응?"
"아침에 피곤할텐데."
"뭐래!"
언행불일치로는 김세봉 따라올 사람 없을 거다. 김세봉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피곤하다고 찡찡대는 거 없다. 내 목에 팔을 감아 오는 김세봉이, 참 예뻤다.
꺼졌다 켜졌다 하는 비상등 아래, 자꾸 비밀번호를 틀리는 김세봉이었다.
내가 누를까, 해서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시상에, 이게 무슨 일이여?"
"......."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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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어 2주 만인가요ㅠㅠ늦어서 죄송해요ㅠㅠ
사실 핑계 같지만 그동안 좀 바빴어요...ㅎ...콘서트의 여파로...네...할일이 쌓이구...
개학이 가까워지니 방학 숙제도 몰아서 하구...^^...네ㅠㅠㅠ그렇습니다...
콘서트 넘나 좋았던 것.... 특히..... 이석민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원우ㅠㅠㅠㅠㅠㅠㅠㅠ내 마음을 넘나 떄리는 거슈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세븐틴 사랑해오 인생 배팅 각~!^^,,울 아덜래믇ㄹ....
그리고 저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남자는 누구일까요?
(힌트: 시상에!)
맞추시면 아재개그 워더권을 드립니다.
(암호닉은 정리 중입니다!ㅠㅅㅠ 다음 화에 올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