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홍일점]
이터널 선샤인 (4/5)
내가 세븐틴이자, 김 가온으로 살아온지도 어느새 사흘째가 되어간다.
처음엔 이질적으로만 느껴졌던 숙소 안의 내 방은 어느새 세상어디보다 편안한 나의 안식처가 되었고,
승관과 순영, 민규가 시도때도 없이 걸어오는 장난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김 가온으로서 무대에 서는 첫번째 날.
"오빠"
"응"
생방송을 하러가는 차 안, 떨리는 마음에 옆에 앉아있던 순영에게 말을 걸었다.
"나 조금 떨려"
"갑자기 왜. 원래 무대 설때마다 좋아했으면서.
저번에 연습하다가 쓰러진것 때문에 그래?"
"..........그런것 같기도하고"
"걱정하지마. 리허설 한번 하고 나면 다시 감 찾을걸?
내가 장담한다. 나 호시야-"
잔뜩 거들먹 거리며 말하는 순영에 한숨을 푹, 내쉬고
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차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카메라.
분명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난 저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을 보며 히히덕거렸었는데.
이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언제까지 김 가온으로 살 수 있을까?
내가 숨쉬고 있는 이 공간은 어디인건지.
+
터벅터벅 걸어서 도착한 방송국,
그리고 우렁차게 외치는,
"Say The Name! Seventeen!
안녕하세요 세븐틴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의 목소리에 환호로 답해주는 팬들,
가온아, 넌 늘 이런 따뜻한 응원들과 함께했구나.
메이크업을 받으며 멍하니 바라보는 거울 속의 내 자신.
진한 아이라인, 일자 눈썹, 투톤 헤어, 붉은 입술
어디 하나 진짜 나같은 구석이 없다.
"야, 김세봉. 너 진짜 예쁘네-"
내 표정을 읽곤 괜히 장난스레 말을 건네는 찬.
고마워, 고마워 찬아.
"세븐틴 곧 리허설 들어가실게요-"
소파에 앉아 대기하고 있자 들려오는 작가님의 목소리.
후, 그래도 현재에 충실하자. 충실하자 세봉아.
+
떨리는 발걸음으로 오른 무대.
짧은 치마와 높은 구두.
지훈과 찬의 가운데 서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우리 승관이는 여전히 기분좋아보이고,
명호는 몸을 풀고있고, 준휘는 몸을 까딱거린다.
모두들 기분이 좋아보여,
한숨을 푹푹 내쉬며 머리칼을 베베 꼬자, 옆에 서있던 지훈이.
"야, 너 괜찮은거 맞지? 얼굴이 좀 창백한데?"
"메이크업했잖아"
능숙하게 맞받아치는.
근데, 사실 지금 좀 긴장 돼.
"시작합니다-"
들리는 작가님의 목소리,
그리고 흘러나오는 전주.
아래로 가라앉는 멤버들, 팔을 힘차게 돌리는 순영.
내 자리를 찾아야해. 지금의 난, 난 김 가온이야.
춤을 한참 췄을까, 드디어 내 파트다.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부르는,
응원구호를 외치는 팬들.
나와 눈을 맞추며 미소짓는 멤버들
안정되는 마음
그리고 이내 번쩍이는 조명.
또 다시 들리는 이명, 휘청하는 몸.
위험하다
+
정신없이 춤을 추다보니 어느새 리허설이 끝나고
생방송이 30분 앞으로 다가와있었다.
아까 내가 휘청, 하는 걸 본건지 슬쩍 다가온 승철.
"가온아, 너 진짜 괜찮아?"
"그럼"
"너 저번부터 불 깜빡거릴때마다 그러는거지. 왜 그래.
진짜 어디 아픈거 아냐?"
"오늘 무대 끝나고 병원 가볼게"
사실 병원을 갈 생각은 없다.
내 몸이 휘청거리는 이유는 내 몸이 여기 있어선 안되기 때문이겠지.
근데 어떡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를뿐더러,
어떻게 돌아가는지 찾기 싫어.
그러니까 어지러워도 참아야 해.
+
시작된 생방송, 무대 앞을 가득 채운 팬들.
그리고 들려오는 엠씨들의 소개 멘트.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히 올라간 무대.
흘러나오는 음악
아까보다 더 절도있어진 멤버들의 춤,
평소에 보던 것과는 달라진 멤버들의 표정
그래, 이게 프로란거구나.
난, 난 아닐텐데.
한참 춤을 추자 드디어 돌아온 내 파트,
들리는 팬들의 함성소리,
그리고 그때,
깜빡이는 조명, 삐-하는 이명,
크게 휘청이는 몸.
눈이 마주친 놀란 표정의 승철,
이젠, 돌아가나봐.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
크게 흔들리는 몸, 짙게 풍기는 땀냄새,
힘겹게 눈을 뜨자, 보이는 땀에 젖은 검은 머리칼.
난 지금 승철에게 업혀있어.
내가 왜 여기에.......?
"............승철 오빠?"
내 조그마한 부름에 갑자기 멈춰선 승철,
뒷편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들.
날 조심스레 내려놓고 눈을 맞춰오는 승철,
".........세봉아 괜찮아?"
떨리는 승철의 목소리.
"...나 왜 여깄어?"
내 물음에 더 커지는 울음소리.
"너 무대하다가 쓰러졌잖아...! 이 바보야, 아프면 아프다고 하라고!"
물기어린 승관의 목소리.
훌쩍거리는 멤버들.
그제서야 기억 난 아까 전의 상황.
나때문에, 사람들이 아프다.
내가 여기에 있어서.
김 가온이 아닌 김세봉이 여기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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