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컨택
by Re.Ong
10.
* * * * * * *
'뜻모를 평화로움이 가장 무서워. 그 뒤에 뭐가 올지 모르거든.'
*
"정확히 14일이야."
"뭐가-."
"너가 담배를 핀게 14일째야."
"그런가?"
별걸 다 세네. 종인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담배비닐 포장을 딱지로 접던 세훈이 아프지 않게 주먹을 날렸다.
장난스럽게 종인의 어깨를 내려치고선 다시 딱지접기에 몰두했다. 빳빳한 비닐은 겹쳐져서 이젠 더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세훈은 반듯하게 접혀진
딱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 가지고 후- 불었다. 가볍지 않은 무게때문인지 쉽게 날라가질 않는다.
"뭐하냐."
"딱지불기."
"담배 하나만 더 줘봐."
"벌써 다 폈어?"
"응. 줘봐."
"그러다 폐썪어."
"너보단 깨끗해. 임마"
종인이 구겨진 꽁초를 흔들어보이자, 세훈은 바지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꺼냈다. 열어보니 몇개 남아있지 않았다.
세훈은 하나를 집어 종인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열심히 펴라. 그 말이 웃겼는지 불을 붙이던 종인이 실실 웃는다. 뭘 또 열심히 펴. 담뱃불을 붙인 종인은
한모금 깊게 빨아들이고 그대로 삼켰다. 요즘 이 맛에 들려버렸다. 탁한 담배연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폐속을 가득 채우는 느낌은, 최고다.
가슴 속에 안개가 뭉친 느낌이다. 곧 그것이 흩어져 사라지면, 다시 안개가 들어선다. 종인은 몇번이고 담배연기를 삼켰다.
"야. 그거 안좋아. 뱉어."
"나만의 방식이야."
"독특하네. 난 그건 못하겠더라. 많이."
"그래?"
"응. 근데 너 요즘 왜 그래?"
"왜."
"풀죽었어."
"......"
"풀이 죽었다. 접착력도 떨어지고-."
"개그냐?"
"아니. 너 요즘 진짜 장난아니게 다운됬어. 솔직히.."
"솔직히?"
"좀 많이 무서워."
"무섭다고? 나 항상 이랬잖아. 이 표정으로 살았고."
"표정은 똑같은데.. 분위기가 달라. 먹구름 낀것 같다."
먹구름이라.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지. 종인은 세훈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선 다시 한모금 깊게 빨았다.
요즘 수업도 제대로 안 듣는다. 허구헌날 자기만 하고, 쉬는시간이든 야자시간이든 항상 오세훈이랑 붙어 다닌다. 태도가 불량해졌다느니, 많이 변했다느니,
선생들에게 그런 말도 많이 듣게 되었다. 나름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당하게 된 오세훈과도 붙어다니는 모습이 많이 포착되자 선생들의 시선도 많이 나빠졌다.
하지만 뭐, 성적에 변화는 없으니깐 곧 아무말씀도 하시질 않는다. 그분들에게 중요한건 숫자니깐.
종인은 다시한번 천천히 한모금 깊게 빨았다. 아직 대낮이다. 어두운 밤이 아니다.
그래서 자꾸만 담배연기를 삼켰다. 어둠만이 가득한 배경위에 담배연기가 솟아오르는게 보고싶었는데, 그럴수 없으니깐 계속해서 삼켰다.
"안 들어가?"
"이것만 피고."
"점심시간 다 끝났는데..."
"갑자기 수업 걱정을 하네?"
"수업걱정이 아니고... 나 배고파."
"뭐?"
"밥 안 먹었어. 배고파."
"먹어야지. 왜 안 먹었어."
"너가 불렀잖아. 개같은 놈아."
"아-."
"매점가자!"
세훈이 종인의 입에 매달린 담배를 뽑아냈다. 담배연기를 길게 느러뜨리는 부분을 슬리퍼로 지그시 밟아 뭉갰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지
아주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다, 똑 끊긴다. 종인이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자 세훈이 그를 일으킨다. 담배는 적당히 펴야 맛있는거야. 세훈이 종인의 팔을 이끌며 말했다.
종인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다 세훈의 하복바지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주었다. 병신. 대체 뭘 묻힌건지 회색의 가루들은 도저히 세훈의 바지에서 떨어질 기미를 않는다.
세훈은 자신의 바지를 털어주는 종인의 손길을 밀어내고선 바지를 탈탈 털었다. 그러자 먼지들이 조금 떨어져 나갔는지 하복바지는 원래 색깔로 돌아왔다.
"참 지 바지도 주인같아요."
"꺼져!"
투닥투닥 거리며 내려오던 세훈은 아이들의 웅성거림에 복도로 시선을 돌렸다. 꽤나 많은 아이들이 한곳에 몰려있었다. 아니, 거의 그 층에 있는 반아이들이 모두 튀어
나온것 같았다. 모두들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엄청난 환호소리와 욕설소리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멍이 사라진 광대부분이 욱신거렸다.
녀석들은 또 화젯거리를 찾은게 분명하다. 세훈은 천천히 손을 들어 욱신거리는 곳을 쓰다듬었다.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가 점점 커진다. 세훈의 손놀림도 점차 빨라졌다.
그때 종인이 세훈의 팔을 잡아 내려주었다. 뭐해. 종인의 조그만 속삭임 소리에 세훈이 고개를 내렸다. 그때 생각나서.
녀석의 풀이 죽은 목소리에 가슴이 아프다. 종인은 조심스럽게 녀석의 손목을 감싸쥐었다. 얇은 손목은 종인의 한손으로 잡기에 충분했다.
이거 놓치마. 세훈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종인의 손을 들어올렸다. 그 말에 종인은 고개를 끄떡이고선 천천히 복도로 걸어들어갔다.
"와-! 야 대박대박!"
"아- 비키라고! 시발! 머리 비키라고!"
"아 졸라 웃겨. 미친. 야 영상 찍어라."
"존나 웃기네!"
그새 운동장에 뛰고 왔는지 땀에 흠뻑 젖은 녀석들은 그걸 말릴생각도 안하고 서로의 틈으로 파고들어갔다. 종인은 세훈의 손목을 그러쥔 손에 힘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들어갔다. 아이들이 몰린곳이 보였다. 익숙하다.
종인의 반이였다.
소란스러운 아이들 틈을 뚫고 들어갔다. 뭐야! 종인이 한 녀석을 밀치자 그 녀석이 화가난듯 뒤돌아선다.
"헐...김종인."
녀석의 한마디에 군중들은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아직도 뭔지 모르는 앞쪽의 녀석들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른다.
조용해진 녀석들의 시선은 모두 종인에게로 쏠려있었다. 녀석들은 동그래진 눈으로 한동안 종인을 쳐다보다, 그 입꼬리가 기괴하게 움직였다.
웃고는 싶은데 꾸욱 참는게 눈에 보였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 입꼬리였지만, 녀석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종인의 눈치를 살피다 반 안을 들여다보다
종인의 눈치만 살폈다. 귓가에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들린다. 녀석들이 웃음을 참는게 눈에 뻔히 보인다. 종인이 슬며시 인상을 쓰자 그 웃음소리가 차차 잦아들었다.
아직도 소란스러운 앞쪽의 아이들 사이로 눈길을 돌렸다. 무슨 일이지? 종인이 조금 더 사이를 파고들자, 화젯거리의 주인공이 보였다.
유 진.
항상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인데다가 꽤나 이쁜 얼굴로 남자아이들이 정말 많이 좋아한다. 근데 그런 그녀가 화제의 중심거리에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새빨갰고, 퉁퉁 부어있었다. 자신의 앞에 선 누군가를 보며 뭐라뭐라 외치고 있었다. 악에 받쳐서 소리지르는 모습이 단단히 화가난게 틀림없었다.
종인은 서둘러 자신에게 뒷모습만 보인채 서있는 누군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 순간 종인은 저도 모르게 세훈의 손목을 놔버렸다.
너무도 익숙한 뒷모습. 유진만큼이나 단정하고 깔끔하게 지내던 녀석.
하복을 입어서 가는 팔뚝이 더욱 잘보이는 녀석.
하얀 하복이 잘 어울리는 녀석.
변백현.
종인은 저도 모르게 아이들을 밀어내고 반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환호성 소리가 미친듯이 울려펴졌다.
와- 대박! 김종인 납셨다!
그 말 한마디에 아이들의 눈동자가 더욱 세차게 빛났다. 영문을 모른 종인은 그저 그 둘을 쳐다만 볼뿐이였다.
그때 사방에서 아이들이 외친다.
"야! 김종인 두고 호모랑 유진이랑 싸운다!"
"푸하하하! 대박!"
"야! 김종인! 축하한다. 개 인기남이네."
"김종인이 호모들의 취향이였나봐?"
사고가 정지했다. 뭐라고? 종인은 서둘러 녀석들의 말을 다시 머리에 담아 계속해서 돌렸다. 뭐라고?
녀석들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금 누가 누구랑 누굴 두고 싸운다고? 종인은 울고있는 유진과 눈이 부딪혔다.
유진은 종인을 보자마자 눈물방울들을 더욱더 쏟아낸다. 그녀는 앙증맞은 손을 동그랗게 말아 눈가에 가져다댔다. 엉엉 우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들이 소리지른다.
변백현, 꺼져! 시발! 변태새끼!
호모새끼!
꺼져라! 꺼져!
울고있는 유진이 고개를 푸욱 숙인다. 종인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빠르게 고개를 돌린 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종인과 눈이 마주친 백현의 눈가가
금새 붉게 달아오른다. 그의 고개가 죄인처럼 숙여졌다. 종인은 그 둘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녀의 손에 무엇인가가 들려있었다.
구겨진 편지와 커피캔.
그게 다였다. 종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잡아당겼다. 옆을 보니 모르는 여자애들이 서있다.
분명 유진의 친구인게 틀림없다. 인상이 구겨진 그녀들은 무섭게 백현을 쳐다보고 종인의 귀에 속삭였다.
"쟤가 유진이꺼 갖다 버렸어."
"뭐?"
"변백현이 유진이가 가지고있던 거 버렸다고."
답답해죽겠다. 무슨 말이야? 종인은 계속해서 머리를 돌렸지만 대체 그녀들의 말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저 호모새끼가 유진이 선물 다 버렸다니깐! 그녀들이 한번더 외치자 그제서야 이해할수 있었다.
하지만 왜?
대체 왜 변백현이 유진의 것을 버렸는걸까. 종인은 백현에게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뭐한거야, 너. 종인의 낮은 음성이 들렸는지 백현의 고개가 더욱더 푹 숙여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더욱더 커졌고, 녀석은 작아졌다.
"종인아."
울먹이는 유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시뻘개진 그녀는 계속해서 눈물을 뽑아내고 있었다. 하얀 그녀의 손안에는 편지와 커피캔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 안에 있던 편지를 종인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가 배로 커졌다. 와! 고백한다!
편지를 받아선 종인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졌다.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세상에 홀로선 것 같다. 온 세상사람들이 몰래카메라를 하는것 같다.
종인은 구겨지고 먼지와 더러운 잔여물들이 묻은 편지봉투를 내려보았다. To.김종인. 이라고 쓰여진 글자가 동글동글하다. 유진의 글씨였다.
종인은 그것을 아무말없이 손에 쥐었다. 유진이 종인의 교복 끝자락을 잡고있었다. 그녀의 얇은 손가락이 보이는 순간
이상하게 구역질이 난다.
"나 너 좋아해."
"...."
"너 커피주려고 했던거 기억나?"
"......"
"그때 그거 없어지고, 또 담날에 올려놨는데 너가 모르더라고."
".........."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넘겼어. 넌 나한테 잘해줬으니깐 누가 실수로 치웠는 줄 알았어."
"..............."
"근데 내가 오늘도 올려놨는데... 또 없어진거야....."
그녀가 말을 하기 힘들었는지 뒷말을 잇지 못한다. 그저 커다란 눈물방울만 쏟아내자 그녀의 지원군들이 옆에서 이야기를 한다.
유진이가 너 주려고 책상에 올려놨는데 또 사라졌어. 그래서 우리가 범인 찾으려고 애썼는데
저 호모새끼가 그랬더라구. 소각장까지 갔어, 쟤. 저거 버릴려고. 그래서 우리가 잡았지. 쟤 전에도 저랬어.
그녀들은 말을 마치고 백현을 무섭게 쳐다본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백현은 미동도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그저 주먹이 허옇게 질릴정도로 꽉 쥐고만 있을뿐,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종인은 자신의 손 안에 들린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백현을 다시 쳐다보았다.
여전히 종인의 옷을 잡고있는 유진은 놓을 생각을 않는다. 그녀의 친구들은 무섭게 종인과 백현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이렇게 시끄럽고 추잡스럽고 정신차리기 힘들었지만 머릿속을 누군가가 지우개로 지우듯이, 깨끗해졌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종인은 편지를 든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자 구겨진 자국이 여기저기 남겨진 편지는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일제히 유진과 그녀들이 고개를 든다. 눈물이 크게 맺힌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종인아? 그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힘없는 가지가 되어 부러졌다.
종인은 그녀의 손을 떼어놓았다.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모두들 종인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종인은 유진과 그녀들을 빙 둘러보았다.
"더러운 호모라고 하지마."
"......"
"나도 호모니깐."
" !"
입을 턱 벌린 유진은 그 입을 자신의 손으로 틀어막았다. 동시에 백현의 고개가 마법처럼 들어올려졌다. 녀석의 동그래진 눈에는 물이 일렁거렸다. 곧 그것은
쳐진 눈가를 타고 내려온다. 종인은 충격에 휩싸여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그녀들을 무심히 쳐다보고선 백현의 손목을 잡았다.
입 조심해. 그녀들에게 톡 쏜 종인은 그녀들처럼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가만히 서있는 아이들을 하나둘씩 치워냈다. 그들은 곧 백현과 종인을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
아니. '위해서'라기보단 너무도 놀래서,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줬다.
복도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백현과 종인의 뒷모습이 계단너머로 사라져버리자 그 순간 일제히 목소리들이 팡- 하고 터졌다.
녀석들의 화젯거리는 옮겨졌다. 김종인을 두고 싸우는 유진과 호모가 아닌,
호모 김종인으로.
* *
오늘은 정확히 수요일.
항상 수요일 점심시간 이후 5교시에는 양호선생이 각 반에 성교육을 하러 가신다.
세훈이 그것을 알려줬기에 종인은 조용한 양호실로 피신했다. 얇은 손목이 느껴졌다. 아무도 모를 편안함과 풍족함이 온 몸을 채운다.
종인은 여전히 우는 백현을 소파에 앉혀놓고선 문을 닫았다. 양호실 안은 고요하다. 서둘러 안을 살펴보니 침대위엔 아무도 있지 않았다.
슬쩍 여자쪽을 살펴보니 역시 아무도 없었다. 다시 제자리로 왔다. 소파에 앉아 우는 백현의 맞은 편에 털썩 앉았다.
"왜 그랬어?"
"...."
"그걸 왜 버려."
"그냥."
"뭐?"
"그냥 버렸어. 니가 그거 볼까봐."
"봐도.... 상관없잖아."
기다란 침묵만이 공기에 내려앉았다. 백현은 얼굴을 뒤덮은 눈물자국들을 모조리 쓸어냈다. 손바닥으로 그것들을 비벼냈다.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지만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백현은 종인과 눈을 마주쳐온다. 굳게 닫힌 입술이 열린다.
"내가 싫어."
"...."
"내가 싫다고."
"백현아."
"내가 싫어서 버렸어. 내가 싫어. 내가 못참아."
"백현아."
"오세훈만으로 족해. 신경쓰이는건."
"....."
"난 솔직하게 말했어......"
"......"
"도와줘서 고마워."
벌떡 일어서려는 녀석을 잡아챘다. 녀석은 아무말없이 시선을 맞춰온다. 뭣 때문일까.
왜 이렇게 녀석은 성장해있었을까.
비록 눈물로 뒤덮였지만 눈은 빛나고 있었다. 앙다문 입술은 무언갈 끊임없이 참고있었다.
녀석은 강해졌다. 하지만 종인은 그렇지 못했다.
손목을 잡아챈 종인의 손에는 힘이 없었다. 종인은 가슴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녀석의 시선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담배연기처럼 가슴속을 꽉 채운 녀석이 없어지려고 한다.
흩어지려고 하기에, 잡았다.
"너라서.."
"..."
"너라서 그렇게 말한거야."
"..."
"도와준거 아니야."
"...."
"사실이야."
"....어?"
"나 남자 좋아해."
시선이 흔들린다. 그 맑은 눈위로 다시 눈물들이 덮인다. 크게 모인 것들이 또 떨어지려고 하길래 종인이 손으로 훔쳐버렸다.
손가락 끝에 뜨거운 것이 닿았지만 털어냈다. 녀석은 입을 벌린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 알수없는 감탄사를 내뱉은 녀석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녀석은 내려만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래. 너 세훈이 좋아하잖아."
"....뭐..."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변백현."
"그래도 이렇게 쉽게 인정할줄은 몰..."
"변백현!"
"......"
"나 오세훈 안 좋아해."
안 좋아해. 안 좋아해. 고장난 테이프처럼 되풀이했다. 혀가 테이프선처럼 꼬일것 같았다.
늘어질것 만 같아서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녀석의 쳐진 눈가가 보인다. 왠지 이제야 위로해줄수 있을것 같다.
"나 너 좋아해."
"....뭐?"
"좋아해. 정말로."
"에...헤.....거짓말."
"정말이야."
"거짓말하지마. 안 웃겨. 무슨 소리야."
"좋아해, 변백현."
"이상한 소리하지마. 거짓말하지마. 나 거짓말 하는 사람 제일 싫어해."
"좋아해."
"웃기지마!"
녀석이 버럭 소리지른다. 손목을 뿌리치려하길래 끝까지 잡았다. 왜 이래? 녀석의 얼굴을 들여보며 속삭였다. 정말이야.
그러자 녀석이 또 운다. 대체 이 눈은 도저히 쉴 생각을 않는것 같다. 거짓말. 조금 갈라진 목소리가 얼굴에 닿았다. 녀석은 나를 못 믿고 있다.
어떻게 해야 나를 믿을까? 키스라도 해야하나? 꼭 안아줘야하나? 정말 뭘 해줘야하지?
그 순간 녀석의 볼을 쓰다듬었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조금 붉어진 얇은 입술이 보였지만 어떻게 해야될까. 키스를 하면 내 마음을 알아줄까?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종인은 녀석의 가는 턱을 잡아세웠다. 녀석이 고개를 흔든다.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백현이 종인을 거부했다.
싫어. 무섭게 잡아오는 종인의 손길을 뿌리쳤다.
말도 안돼. 백현이 중얼거렸다.
"너 나 안좋아해. 장난치지마."
"왜 안 믿는거야."
"아- 싫어. 싫어.잡지마."
"백현아."
"넌...너....거짓말쟁이....."
"변백현. 왜 그래."
"너가...너가 그랬잖아! 너가!"
거세게 종인의 손을 뿌리친 백현이 뒤로 물러섰다. 눈물범벅이 된 그가 악에 받혀 소리를 질렀다.
"박찬열이 그랬어!!! 너가 갈색머리를 좋아한다고 했어! 그래서 염색도 했어!
답답한 사람은 싫어한다고 했어! 그래서 막...막 귀도 뚫고.. 일부러 교복도 구기고... 별 짓 다했는데....
니가 담배를 핀다고 했었어!! 박찬열이. 그래서 나도 폈어. 근데... 너 그 냄새 싫어한다며. 너 그때 나 그렇게 쳐다보고선
너도 피더라.... 담배피는 사람 싫다면서...왜 오세훈은 옆에 있는거야? 왜 나는 그렇게 쳐다본거야?!"
"........."
"박찬열한테 물었어! 왜 난 안되냐고... 박찬열이 그랬어... 성적 좀 떨어지면 관심좀 가질거래...
그래서 일부러 답 다 피해갔는데... 관심은 커녕, 넌 나를 더럽다는 식으로 쳐다봤어..."
"야,변백현. 잠깐만..."
"진짜 짜증나... 별 짓 다해봤는데... 관심은 커녕... 근데 지금 와서 좋아한다고?!
그렇게 쳐다봐놓고선 좋아한다고?! 오세훈이랑 키스했으면서 내가 좋다고?!"
"백현아.."
"껴안기까지 했잖아.. 좋아서."
녀석의 말에 대답할수가 없었다 . 대체 박찬열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한걸까. 대체 그 새끼는 변백현한테 뭐라고 한걸까.
종인은 부들부들 떠는 백현을 감싸주려고 했다. 다 오해야, 오해. 녀석의 귀에 속삭여주고 싶었다.
녀석이 알고 있던건 다 정반대다. 박찬열 그 새끼가 거짓말한게 틀림없었다. 종인은 백현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오해야.
녀석의 귀에 속삭여주었다.
그 순간, 진짜 데자뷰인걸까.
복도의 서늘한 냉기가 순간 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간다. 악몽처럼 그때가 떠올려졌다.
세훈에게 고백받았던 날, 양호실 안에서, 그때의 시선.
근데 이제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고개를 들었다.
"...세훈아...."
오세훈은 변백현과 달랐다. 녀석은 문을 완전히 열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녀석만이 나를 보고 있었다. 백현의 어깨를 감싸쥔 종인의 손에 힘이 모래처럼 흩어졌다. 백현도 뒤돌아섰다.
세훈과 백현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세훈은 아무말없이 백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은 광대근처에 머물러있었다. 아픈지 계속해서 그곳을
매만지고 있었다.
"내가 내 손 놓치 말라고 했잖아..."
"..."
"왜 놓쳤어."
"....."
"다시 잡아줘."
세훈이 손목을 들어보였다. 녀석이 한발자국 다가오자, 백현이 나를 뿌리쳤다.
그 순간 마주친 눈에는 알수없는 감정들이 나를 찔러대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녀석은 끝까지 나에게 눈물만 보이고 뛰쳐나갔다.
변백현!!!
잡아야 한다! 녀석을 잡기위해 달려나섰다. 양호실 문을 거칠게 닫은 녀석의 뒤를 쫓아 문에 손을 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온다.
"가지마!"
"잠깐만...세훈아. 잠시만."
"싫어. 싫어."
세훈이가 비록 나보다 말랐지만, 녀석에게도 체격이란건 존재했다. 꽤나 비슷한 키에 녀석의 힘을 완벽하게 뿌리칠수가 없었다.
종인을 문에 몰아세운 세훈은 종인의 손을 꽉 쥐었다. 양호실 문을 잡은 종인의 손을 떼어놓기 위해 세훈은 종인의 손을 뜯어냈다.
발버둥을 치며 종인은 세훈을 밀어내려고 애썼다. 세훈아-. 녀석을 달래듯이 말했지만 몸은 급했다. 허둥지둥 녀석의 손을 뿌리치려고 하는데
녀석이 내 멱살을 잡아 힘껏 밀친다. 쿵 소리를 내며 양호실의 문이 흔들렸다. 세훈의 손을 떼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세훈아. 제발. 잠시만. 종인은 녀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싫어."
"아..잠시만. 세훈아. 오세훈. 잠시만 놔봐."
"싫다고 했잖아. 개새끼야!!!"
세훈이 주먹을 휘둘렀다. 쾅 소리가 난 지점은 양호실 문이였다. 세훈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문에서 떼내었다. 벌개진 주먹은 꽤 아파보였다.
세훈은 씩씩 숨을 몰아내쉬고 있었다. 멱살을 쥔 손이 풀어지자, 구겨진 와이셔츠 깃은 엄청나게 엉망이었다.
"내가 말했지. 나 건들지 말라고 했지."
"..."
"근데 너가 건드렸어. 분명히 너가 먼저."
"세훈아."
읍. 그 순간 세훈이 종인의 목을 휘감았다. 뜨겁게 맞물린 입술은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세훈은 담배맛이 남아있는 종인의 혀를 빨아올렸다.
종인은 갑자기 달려든 세훈을 밀쳐냈다. 녀석은 발악을 하며 물러나질 않는다. 입 안에 담긴 세훈의 뜨거운 혀가 너무도 부드러웠다. 세훈은 종인의 입안을
열심히 헤집었다. 종인의 목을 감싸던 손은 이제 종인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가지마. 종인에게서 잠시 입을 뗀 세훈이 중얼거렸다. 가지마.
다시 맞물려진 입술은 뜨거웠다. 종인의 입술을 열심히 핥던 세훈은 벌려진 종인의 입안에 혀를 집어넣었다. 종인은 세훈의 혀를 밀어내려고 애썼다.
그 순간, 볼 근처에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눈을 살짝 떴다.
세훈의 속눈썹이 흥건히 젖어있었다. 그 밑으로 뜨거운 것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세훈은 종인의 입술근처에 속삭였다. 제발 가지마. 세훈의 흐느낌이 온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지마 종인아. 어깨가 들썩거린다.
세훈은 종인의 가슴에 천천히 기댔다. 제발 제발 가지마. 코훌쩍이는 소리까지 내며 세훈은 종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내가 너를 이렇게도 괴롭혔었구나.
종인은 세훈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미안해...."
종인의 말에 세훈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바람에 볼을 타고 내려가는 눈물방울이 더욱 커졌다.
무서워.
김종인의 말이 너무 무서워.
세훈은 갑자기 자신을 벗어날것 같은 종인의 품을 더욱더 졸라맸다. 무서워. 종인의 허리를 안은 손에 깍지를 꼈다. 종인이 못 빠져나가게.
"뭐가 미안한데.... 나한테? 아니면..."
방황하는 너의 마음이?
김종인은 끝까지 대답이 없었다.
-
b
안녕하세요 레옹입니다
제가 일주일동안 소식이 없었죠.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사실
그래서 글을 쓸 시간도 없었고 쓸려는 마음도 좀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오래만에 글을 쓰려고 하니깐 어색하네요
제 시간이 많이 흐른듯, 소설안에서도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셋 사이가 더 나빠졌네요
이를 어쩌나.
어쨋든 항상 좋게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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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왜 일본에서 미모 원탑으로 자주 거론되는지 알겠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