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일주일동안 머물러있던 이 아이들부터.
146편의 다음 날. 이 편을 좀 더 가깝게 느끼고 싶으시다면, 146편을 다시 한 번 읽으시는 걸 추천해드립니다.
정국 - Nothing Like Us (COVER) (저스틴 비버 - Nothing Like Us)
결국 그 날 사진정리는 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윤기는 붉어진 눈가로 손을 내려 구겨진 사진을 억지로 펴냈으면 좋겠다.
그 날 저녁도,
저녁을 먹은 뒤의 시간도,
잠에 들려고 침대에 누운 시간까지도
남준이와 윤기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소와 같은 시간, 같은 행동, 비슷한 대화를 공유하면서도
지금 둘의 감정은 평소와 같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남준이는 평소보다 더 말없이 윤기를 끌어안았고,
윤기는 저를 감싸오는 온기를 마주 안지 못하고 그저 기대고 있었으면.
잠을 취하기 위해 누웠으면서 둘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 한참 늦어서야 겨우 옅은 선잠에 들었으면 좋겠다.
아침도, 점심도 똑같은 나날.
혹은 똑같아 보이는 나날.
조금은 대화가 없어도, 조금은 더 무거운 침묵이 흘러도 그 또한 자연스럽게 흘려보낸.
그런 하루를 보내다가 윤기가 저녁을 다 먹고 늦은 시간에 신발을 우겨신었으면 좋겠다.
잠시 나갔다 오겠다고,
먼저 기다리지 말고 자라고 남준이에게 말했으면.
남준이는 현관에 선 채로 그런 윤기를 빤히 보다가 그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으면 좋겠다.
빨리 와야 돼.
응. 다녀올게.
어디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다만 홀로 너무 아파하다 오지 않기를 조용히 빌었으면.
제 연인이 자신의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홀로 그 눈물을 삼키는 것을 선택했다면,
조용히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남준이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윤기가 홀로 간 곳은 포장마차였으면.
평소 즐기지도 않던 술을 홀로 마시면서, 시켜놓은 안주는 손도 대지 않고 한없이 투명한 액채를 눈물마냥 삼켰으면 좋겠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은 딱 지금 들이키는 이 술만큼 쓸 것이라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삼켜냈으면.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이 모노톤으로 칠해진 것마냥 흐릿해졌으면.
가끔가다 꺼내드는,
빈 갤러리를 가득 채운 내 강아지,
내 연인.
물감이 묻은 종이는 어떠한 것으로 씻어내려도 이미 짙게 스며들고 물들어버려서 그 색이 흐릿해질언정 빠지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삶에 네 색을 물들였으면 끝인 것을 왜 모르는지 따져묻고 싶었다고,
도대체 뭘로 지워야 하는지 그 방법이라도 알려주고 그런 말을 하라고 외치고 싶었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를 잡아냈으면 좋겠다.
식은 안주들을 가만히 내려보던 윤기가 비틀비틀, 느릿하고 어지러운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으면.
도어락을 몇 번이나 틀린 후에야 겨우 풀고,
신발을 벗다가 주저앉아 버리고,
멍하니 불이 켜진 거실을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제 머리를 헝클였으면 좋겠다.
나 술마시면 기분 엄청 좋아졌는데.
오늘은
안 그러네.
몇 번의 헛손질과 헛발질을 하다가 신발을 벗어내고 비척비척 일어났으면.
그리고 불이 꺼진 침실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불이 켜진 거실과는 다르게 오로지 어둠만이 내려앉아 옅은 밤의 빛이 새어들어오는 그 곳에,
남준이가 침대에 앉아있다가 고개를 돌려 윤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왔어?
응...
술 많이 마셨어?
준아.
응, 주인아.
남준이는 웃는 얼굴로 윤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윤기는 느릿한 걸음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갔다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걸음이 올곧게 변했으면 좋겠다.
남준이의 볼을 감싸고 허리를 숙여 입술을 맞대었으면 좋겠다.
오로지 입술만으로 체온을, 여린 살결이 부벼지느라 느껴지는 간질거림을, 그리고
틈새로 얼핏 스며오는 아린 맛을 나누었으면.
그런 이야기가 있어, 준아.
어떤 이야기?
반려견이 먼저 죽고나면, 그 뒤에 주인이 죽었을 때... 반려견이 마중을 나온대.
응.
너는, 반려견이 아니라... 그냥 반려지만. 그래도, 강아지잖아. 내 강아지.
응.
그러니까, 네가 먼저 가 있어. 그리고 나 기다려. 꼭, 기다려. 내가 미처 놓쳤던 기억까지 모두 가진 채로.
...
그러면, 내가 갈게. 네가 먼저 간 길을, 뒤따라 내가 갈게.
그렇게 하면
우리
평생 헤어지는 거 아니잖아.
또 만나는거야, 준아.
윤기는 느릿하게 제 진심을 뱉어냈으면 좋겠다.
술김에 하는 소리가 아닌 것을 강조하듯이 풀린 눈을 억지로 잡아 남준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으면.
남준이는 그 말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윤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윤기는 손을 뻗어 남준이의 마른 눈가를 쓰다듬었으면.
나는... 네가 했던 부탁, 안 들어줄거야. 못 들어줘.
주인아.
이미 넌 내 모든 것을 다 물들여서, 어딜가나 네가 보인단 말이야. 그래서 못 해.
주인아.
나는, 너를, 사랑할거야. 계속. 평생 사랑할거야. 그냥, 그렇게... 함께 하자. 사랑.
...
사랑해,
준아.
두 시선이 마주했을 때, 윤기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빤히 윤기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윤기의 뺨을 감쌌으면 좋겠다.
그리고 윤기의 말랐지만 단단한 어깨를 그러쥔 뒤에 천천히 손을 내려
허리를 감싸고 윤기의 품에 얼굴을 묻었으면 좋겠다.
사랑해.
다시 한 번 들리는 윤기의 목소리에 남준이의 고개가 느릿하게 끄덕였으면 좋겠다.
마중나와 줄거지?
윤기의 물음에 남준이의 고개가 또 한 번 끄덕였으면 좋겠다.
잠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은 채 윤기가 남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잘게 떨리는 등과 어깨를 감싸줬으면 좋겠다.
울지마,
준아.
남준이의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윤기를 끌어안고있는 손 끝이 하얗게 물들여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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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예쁜 글씨와 귀여운 그림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하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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