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인듯 한 편아닌 한 편같은 2화.
그나저나 공지가 무색하게 왜 이렇게 글이 쓰고 싶고, 시간도 있는지 행복해 죽겠네요. 앗싸.
러브래빗 - Bubble Love
그 날도 요란한 핸드폰 벨소리에 태형이가 눈을 번쩍 떴으면 좋겠다.
이 새끼는 잠도 없나봐, 형...
핸드폰을 끄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련하게 윤기를 부르며 낑낑대는 태형이가 보고 싶다.
태형이 너는 오늘은 뭘 사오라는 문자가 똑딱 울리면 왜 오늘은 어제 미리 사둔 초코롤이 아니라 슈크림이냐며 화를 냈으면.
결국 편의점을 다녀와 문이 열리자마자 정국이의 품에 또 봉투를 안겨주고,
빵 하나를 수고비라며 받고,
같이 앞 뒤로 걸음을 옮기다 유치원 앞에서 헤어지는 나날을 반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종종 태형이와 정국이가 퇴근길에서까지 만났으면 좋겠다.
그런 날은 정국이가 축구부 연습을 하는 날이었으면.
원래 저녁연습을 늦게까지 하지는 않았는데, 시합 하나가 다가오면서 연습시간이 늘어났고
그게 우연히 태형이의 퇴근시간과 딱 떨어졌으면.
처음 태형이는 퇴근길에서까지 나타난 정국이를 보고 처음에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빽 소리를 질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을 귀신 취급을 했다는 명목하에 항아리 바나나 우유를 정국이에게 반강제로 사줬으면.
옆에서 따라서 바나나 우유를 산 태형이가 노란 빨대를 콕 찔러 꽂고 바나나 우유를 마시며 걸어갔으면 좋겠다.
태형이와 정국이는 어느새 나란히 걸으며 투닥투닥 다투었으면.
노을이 짙게 내려오다 못해 어두워질 즈음,
가로등으로 비추어진 두 그림자가 살짝 짤막하게 늘어나 둘의 투닥거림을 담은 채 졸졸 태형이와 정국이를 따라갔으면 좋겠다.
정국이가 태형이를 한참 약올리고,
태형이는 씩씩거리면서 하나하나 반응하다가 결국 발을 들어 정국이의 정강이를 차려 발길질을 하고,
잽싸게 정국이가 피하고,
덕분에 헛발길질을 한 태형이가 약이 바짝 오른 채 정국이를 보며 이를 가는
시끄럽지만 익숙한 일상을 보냈으면.
그러다가, 어느 날은
둘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앞에서 태형이는 뜻밖의 인물을 만났으면 좋겠다.
옆에서 제게 장난을 걸려는 정국이를 무시한 채로 달려가
자신의 오피스텔 앞에서 종이 한 장을 들고 서성이던 인물을,
윤기를,
꽉 끌어안았으면 좋겠다.
윤기 형!
아씨, 놀래라.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형. 형.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남준씨랑 온거예요?
아니. 나 혼자. 걔 오늘 급하게 부모님 댁에 갈 일이 있다고 하더라고. 심심해서 놀러와봤어.
그랬어요?
아이들과 있을 때는 환하게 웃긴 해도 어른스러웠던 태형이가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 마냥 배실배실 웃으며 윤기의 어깨에 얼굴을 부볐으면.
그리고 윤기는 익숙하게 태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쟤는 누구야?
응?
저기. 눈으로 레이저 쏘고 있는 애.
윤기의 말에 고개를 돌린 태형이가 그제야 교복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서서
저를 바라보는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으면 좋겠다.
태형이는 왜 그러냐는 듯 입을 오므렸다가 금방 상관없다는 듯 오랜만에 보는 윤기를 데리고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 뒤를 정국이가 따라갔으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로비부터 엘리베이터가 멈춰 내려 보이는 복도까지
오로지 들뜬 태형이의 목소리와, 못지 않게 반가움과 다정함을 담은 윤기의 목소리만이 울렸으면 좋겠다.
조금은 무딘 날이 서있던 정국이와 태형이의 대화와는 사뭇 다른,
잔잔한 대화가 계속 이어졌으면.
집에 도착하고 나서는 태형이가 여느 때와 같이 내일 아침에도 심부름 시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려 고개를 돌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태형이의 시선이 항상 정국이가 서있던 곳에 닿았을 즈음에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
띠리릭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만이 정국이 대신 자리에 남았으면 좋겠다.
쟤는 왜 또 심사가 뒤틀렸지.
고개를 갸웃거린 태형이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윤기의 손에 퍼득 놀라 고개를 돌렸으면 좋겠다.
신경쓰여?
응?
그 남자애.
내가? 쟤를?
... 아니면 말고.
윤기가 빤히 태형이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으면.
태형이는 이상한 소리 한다면서 다시 윤기의 등을 밀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으면.
윤기는 자신을 거실에 앉혀놓고 분주하게 짐을 내려놓으면서 계속 말을 거는 태형이에게 답해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점점 정국이의 험담으로 이어질수록 더더욱 고개를 갸웃거렸으면.
이상하다.
싫은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치고는
표정이 너무 부드러운데.
한참 갸웃거린 윤기가 태형이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놀라 편하게 내놓고 있던 토끼 귀를 바짝 세웠으면 좋겠다.
그날 밤은 정국이에게 메세지 하나도 오지 않았지만,
태형이는 윤기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느라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기가 하룻밤 자고 간 뒤로 정국이의 심부름이 더 잦아졌으면 좋겠다.
딱, 하루만 조용했고 주말에는 별로 오지 않던 문자가 수시로 오기 시작했으면.
[슈크림 빵 하나.]
[깜박했다. 이번엔 딸기 우유로요.]
[음료수. 과일 주스 말고 탄산으로.]
[고무장갑에 구멍이 나버렸네?]
[편의점 간 김에 팝콘 과자도.]
똑딱. 똑딱. 똑딱. 울리는 문자에 태형이가 계산 하다말고 신경질을 부렸으면 좋겠다.
괜히 제 눈치를 보는 알바생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정말 인사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우렁차게 치고 편의점 밖을 박차고 나갔으면.
씩씩거리면서 정국이의 문을 손으로 쾅쾅쾅 두드리고, 정국이가 느긋하게 문을 열면
봉지를 앞으로 내밀어 정국이의 가슴팍에 밀어넣으면서 외쳤으면 좋겠다.
나 잘거야! 잘 거라고!
지금 오후 3시인데요?
주말에 낮잠도 못 자냐? 나 잘거야. 깨우지 마.
언제까지 자려고요.
평생.
정국이가 태형의 대답에 어이없어 하는 사이 태형이가 자신의 집으로 얼른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핸드폰 배터리를 분리해버리고
침대에 드러누웠으면 좋겠다.
정국이는 빤히 태형이가 스쳐간 자리를 멍하니 내려봤으면.
집으로 들어가 핸드폰을 들어 태형이에게 혹시 몰라 전화를 했다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제가 원했던 목소리보다 훨씬 상냥한 목소리에 한숨을 내쉬었으면 좋겠다.
몇 개씩이나 쌓인 편의점 봉투 옆에 새로운 봉투를 하나 더 올려두면서 제 머리를 헝클였으면 좋겠다.
이런 거 아니면 잠깐이라도 볼 명목이 없으니까 이러지.
그 뒤로 다시 조용한 집안을 울리는 한숨소리에는
서툰 한 남자의 답답함이 그대로 녹아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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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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