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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여왕은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요즘 들어 유난히 까칠해진 신하들을 상대하느라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처음엔 그저 지나 가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쉽게 풀릴 것 같진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답이 금방 나왔다. 저들은 지금 심술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부군들 중에 귀족 자제라고 할 만한 이가 세 명밖에 없으니,

귀족인 자신들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짐작하는 것이 뻔했다. 신하들이 보기에 남작이나 후작 지위는 귀족 측에 끼지도 않았다. 여왕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여왕은 몇 번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다 가까이 놓인 책을 들췄다. 귀족 가문의 명부가 적힌 책이었다.

***

줄리안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마시고 있던 핫초코 잔을 놓칠 뻔했다.

"여왕님께서 스눅스 가에 청혼을 넣으셨다고요?"

기욤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스눅스 가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 공작 지위를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 귀족 세력들은 끽 소리도 못하겠죠, 아마."

타일러는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아니, 라쉬 대공! 게다가 패트리 대공까지! 왜 다들 놀라지 않는 거예요? 여왕님께선 지금 부군만 여덟 분이시라고요! 왜 갑자기......"

"신하들을 진정시키려고 그런 거겠지.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나?"

기욤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줄리안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달디 단 핫초코가 쓰게 느껴졌다.

또 자신을 비롯한 기욤과 타일러의 신분 탓이다. 줄리안은 잔을 꽉 쥐었다. 타일러는 그런 줄리안을 슬쩍 보곤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스눅스 가는 어떤 가문이죠? 이름만 들었지 자세한 건 잘 모르는데요."

"그럴 만하지. 워낙 유별난 가문이라...."

줄리안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유별나요? 게다가 라쉬 대공이 모르는 가문이라니,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문제는 없고, 그냥... 유별나지. 스눅스 가 사람들은 말이야, 좀 다가가기 힘들게 생겼거든."

"다가가기 힘들어요?"

"문신 때문이지. 그 가문 사람들은 열 살 정도만 되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목에 문신을 해."

"예에? 여자도요? 대체 뭘 새기는데요?"

"나비. 스눅스 가의 문장이지. 날개를 활짝 편 나비. 10살 때는 몸집에 맞게 작게 하는데, 그 후로는 계속 몸이 자라는 것에 맞춰서 문신 크기를 키우거든. 목에 커다랗게

나비 모양이 있는데, 다가가기 쉬운 인상일 수가 없지. 본인들은 아무런 상관 안 하지만....."

"세상에, 정말 특이하네요."

타일러가 입을 크게 벌렸다. 줄리안은 뭐 그런 짓을 다 하냐는 표정이었다. 기욤은 그저 여왕이 신하들에게 재치 있게 맞설 수 있는 정도가 됐다는 사실이 기분 좋을 뿐이었다.

***

다니엘 스눅스는 자기 방의 침대에 누워서 몇 시간째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벌써 내가 결혼이라니!'

청혼의 내용이 담긴 편지가 성에서 왔을 때, 스눅스 공작과 부인은 좋아라 하며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자신에게 조언으로 위장한 잔소리를

몇 십분 동안 퍼부어댔다. 누나들은 걱정 반 놀림 반으로 또다시 다니엘을 붙잡고 여러가지 얘기들을 쏟아냈다. 자그마치 세 명이나 되는 누나들의 얘기를 차례로 듣고

난 후에야 겨우 자신의 방으로 갈 수 있었다. 다니엘은 방문을 열자마자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 후로 쭉 이 상태였다. 수많은 얘기를 한꺼번에 들은 탓에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게다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탓에 걱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억울함이 컸다.

"아니, 결혼이라는 게 이렇게 벼락처럼 정해지는 게 어디 있어? 자기들은 항상 결혼은 신성한 거다 뭐다 하더니......"

어릴 때부터 부모와 누나들에게 애지중지 길러져 온 그였다. 스눅스라는 성을 유일하게 지킬 귀한 아들이란 점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그가 막내였기 때문이었다.

스눅스 공작과 부인은 다니엘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나이일 때도 서로 업고 안는 탓에 어느 날은 발이 땅에 단 한 번도 안 닿았던 적도 있었다. 그 탓에 또래보다

걸음걸이를 배우는 게 더뎠음은 물론이다. 누나들은 가끔씩 짓궂기는 했지만 종종 간식도 잘 갖다 주면서 그를 아껴주었다.

"그런데 결혼 소식이 들어오자마자 날 보내려고 난리를 치다니!"

다니엘은 야속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베개에 어굴을 묻고 울려다가 그만두었다.

'이 꼴을 보면 또 누나들이 몇 년이고 놀려 먹겠지.....'

몇 년 전, 지금은 쌍둥이 엄마인 첫째 누나의 결혼식 날 펑펑 운 적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아직도 누나들에게 놀림감이 되고 있었다. 다니엘은 얼굴을 흔들면서 눈물을 참았다.

일단 몸을 일으켜서 팔짱을 꼈다.

"좋아, 이럴 때는 차분히 생각해야 돼. 차분히! 차! 분! 히!"

계속해서 차분히, 를 외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잡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결국 그는 팔짱을 풀고 다시 침대에 늘어졌다.

"아, 못해 먹겠네! 그나저나..... 여왕님께서 그렇게 예쁘시다는데..... 진짜인가? 진짜 예쁘셨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진짜 너무 억울하 것 같단 말야."

다니엘은 혹시 여왕이 못 생겼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성에 가는 날 아침, 온 집안이 그를 제외하고 들썩거렸다.

스눅스 부인은 하녀들이 무릎을 꿇고 말렸음에도 직접 요리를 하겠다며 주방을 뛰어다녔고, 스눅스 공작은 아들이 신을 구두를 고르느라 몇 시간째 신발 보관실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누나들은 새벽부터 방에 들이닥쳐 다니엘을 억지로 깨우고는 옷장에서 각자 옷을 꺼내 수북이 쌓아놓고 그에게 이것저것 대 보았다.

결국 다니엘은 평소라면 절대 입지 않을 목이 빳빳한 셔츠에 최대한 점잖아 보이는 겉옷을 걸쳤다. 그의 누나들이 최대한 그가 마냥 어려 보이지 않게 머리를 맞대고

골라준 옷차림이었다. 안타깝게도 허사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

성에 도착하자 다니엘은 한층 더 긴장이 되었다. 옷도 그의 긴장에 한 몫 했다. 처음 입는 옷인데다 풀을 먹인 듯 빳빳하지 않은 데가 없어서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옆을 흘긋 보니 아버지인 스눅스 공작마저 살짝 긴장한 듯했다.

'으, 불편해 죽겠네. 집에 가면 이 옷부터 벗어야지. 그나저나 여왕님은 언제 만나는 거야? 진짜 못생겼으면 그 자리에서 소리지를 것 같은데. 아니, 진짜로 소리를 확 지르고

나와버릴까? 그럼 뭐 저런 게 다 있나, 하면서 결혼이 취소될지도...,?"

다니엘이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상상에 한참 빠져 있을 즈음, 시종이 도착했다.

"여왕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아, 알겠네."

시종을 따라가 여왕이 있는 방에 도착했다. 닫힌 문 앞에 그는 심호흡을 한 번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다니엘은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왕좌에 앉은 여왕은 은회색에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팔목 길이 정도의 소매를 가진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엷은 미소와 어우러져 우아함의 절정을 찍고 있었다.

적당히 화려한 진주 목걸이가 그 아름다움을 한층 강조했다.

"여왕님을 뵙습니다."

다니엘의 목소리는 스눅스 공작의 목소리에 거의 묻히다시피 했다. 너무 크게 말하면 말을 더듬을 것 같아 목소리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청혼을 넣었는데, 많이 놀랐겠군요."

다니엘에게 던진 말이었으나, 그가 할 말을 못 찾고 입을 벙긋대자 스눅스 공작이 얼른 대신 대답했다.

"아닙니다, 여왕님. 여왕님께서 저희 스눅스 가문을 알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데, 청혼을 거절할 이유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다니엘의 얼굴은 이 와중에 어느새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여왕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빳빳한 옷에 여린 얼굴선, 버벅대는 말솜씨에다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태도에 옆의 부군들은 일제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경, 안 써도 되겠다.'

 

 

비단결과 솜털로 짠 연단을 들어올려

모피와 보랏빛으로 물든 천을 걸어두어요

비둘기와 석류, 백 개의 눈을 가진 공작새를 조각하세요

잎사귀와 백합 문양으로 둘러싸인

금빛 은빛 포도도 새겨보아요

나는 새롭게 태어났으니까요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크리스티나 로제티, '생일' 中

 

 

***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린데만 대공과 이름이 같은데도 하는 행동이나 태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물론 얼핏 보기에는 목의 커다란 나비 문신 때문에 꽤 위협적으로

보였으나, 속은 서투르고 어렸다. 덕분에 다른 부군들은 다니엘 앞에서는 별다른 경계없이 대화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니엘은 정치 따위 개나 줘 버려라는 주의였다.

그래도 여왕은 자신을 향한 다니엘의 소년다운 사랑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왕을 마주칠 때면 아직도 눈만 겨우 마주치는 정도였다. 이 상태를 벗어나는 데 자그마치

1달이 걸렸다는 사실은 그에 대한 다른 부군들의 경계를 더욱 풀게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니엘은 자연스럽게 성 안의 잡다한 얘기들을 우연히 주워듣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다른 부군들이 모르는 그의 자산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세 명의 누나들과 함께 자란 덕에 기른 눈치, 그리고 지루함을 못 참는 천성이었다.

빠른 눈치는 다니엘에게 항상 남의 눈빛을 확인하는 버릇을, 그의 천성을 다니엘로 하여금 성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게 했다. 그 덕에 성에 대해서 아는 것을 따지면 부군들

중에서 기욤과 맞먹을 수준이 되었다.

지금은  아무 쓸모 없을 것 같은 두 가지가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은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ㅠㅠㅠ 안녕 글 읽어주는 천사정들ㅠㅠㅠ 사실 내가 중대발표하려고..... 크흡 사실 다음주면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샌애기야

그래서 글이 이번 달처럼 자주자주 못올라올 수도... 내가 마지막 부군까지 쓰고 대학 생활 시작할라 그랬는데 ㅠㅠㅠㅠ 미안해ㅠㅠㅠㅠ

게다가 프롤로그 글이랑 첫번째 첫사랑 글 올리기 전에 세이브 원고가 15편 정도 있었어 근데 그 세이브 원고가 다 떨어졌어....

가뜩이나 지금 글이 너무 안 써져서.. 일단 최대한으로 써볼게ㅠㅠㅠㅠ 앞으로도 많이 기다려줘ㅠㅠ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내가 글잡으로 옮길게ㅠㅠ

사랑해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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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흐앙ㅜㅜ 순욱이 ㅜㅜ 순욱이다.작품에서보는건 되게 오랜만이야ㅜ
순욱이 실제(?)모습이 보이는것같기도 하고ㅎㅎ
투덜거리던?순욱이가 여왕님 보고 반한것도 귀엽당

8년 전
글쓴이
ㅋㅋㅋㅋ 호다는 애긔애긔한 캐릭터지롱!
8년 전
독자2
세상에... 제목보자마자 이건 호다다!!!!!!!!!!!!!하면서 들어왔어 허윽 내 심장... 허쥬어린이들이 최애라서 너무 기쁘다ㅜㅜㅠㅜㅠㅜㅠㅠ
8년 전
글쓴이
ㅠㅠㅠ 읽어줘서 고마워유유ㅠ유유ㅠ 열심히 써서 블레어까지 달릴게ㅠㅠ 기둘려줭
8년 전
독자3
사랑해ㅠㅠㅠㅠ 난 1년이 지나도 기다릴수있어!!!!
8년 전
글쓴이
아아아ㅠㅠㅠㅠ 너무 고마워유ㅠ유ㅠㅠㅠ (오열)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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