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집합해서는 버스를 다시 타고 성산일출봉으로 갔어
배에서 멀미한 여파가 컸는지
종대는 찬열이한테 기대서 자고
종인이는 다시 눈을 감고 의자에 파묻히고
나도 좀 피곤해서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는데
백현이가 자기어깨를 툭툭 두드려
-아까는 내가 기댔으니까, 이제 니가 기댈 차례.
-…나 머리 무거운데.
내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니까 백현이가 웃어
아..창피해..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는데 백현이가
손을 뻗어서 부드럽게 내 머리를 자기 어깨에 기대게 해
-도착하면 깨워줄게.
그리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에 들었어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눈을 떴는데
앞자리가 텅텅 비어있어
-어..뭐지?
놀라서 백현이를 보니까 백현이도 잠들었는지 내 어깨에 기대 있었어
-…아.
여전히 두리번 거리는데 뒤를 돌아보니 앉아서 나를 보는 종인이와 눈이 마주쳐
-…뭐야?
-도착한지 한 오분 지났어. 이제 변백현 깨워라, 나가자.
-응.
나는 백현이를 흔들었어
백현이가 조금 얼굴을 찌푸리더니 눈을 떴어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 사태가 파악됐는지 그제야 좀 민망한지 웃어
-내가 기대라고 해놓고, 내가 자버렸네.
아! 귀여워!!
나는 나도 모르게 외치려던 입을 굳게 틀어막고 괜찮아, 하고 웃었어
-야, 안내려?
찬열이가 버스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고 물어서
나랑 백현이랑 종인이가 버스 밖으로 나왔어
-얘네는 왜 안올라가?
성산일출봉으로 오르기 시작하다가 백현이가 주위에 그냥 앉아서
휴대폰 하는 얘들을 보고 물었어
그러니까 찬열이가 입을 열었어
-낭만이 없어서 그래, 낭만이
-낭만?
-응. 저기 올라가서 사진찍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찬열이는 그렇게 말하고 백현이와 내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어
찬열이가 문득 뒤를 돌아서 종인이를 봤어
-야, 김종인 속은 좀 괜찮냐?
-왜? 어디 아파?
백현이가 전혀 몰랐다는 듯 종인이를 돌아보며 물었어
나도 종인이가 아픈 줄 몰라서 좀 놀랐는데 종인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내저어
-안아파.
-개뿔. 너는 촌스러워서 차, 비행기, 배, 버스 같은 거 타면 다 멀미하잖아.
-….
-쟤 별명이 김멀미야, 김멀미.
-….
나는 그동안 종인이가 자는 줄 알았던게 실은 종인이가 아파서 그랬다는 걸 깨닫고
좀 미안해졌어 그래서 종인이한테 다가가서 물었어
-진짜 괜찮아?
-응.
-진짜?
-응.
이따가는 선생님한테 멀미약이라도 타와야겠다 생각하는데
갑자기 앞으로 엄청난 계단들이 펼쳐져.
-…설마 이거 다 올라야 하는 거 아니지?
종대가 믿기 싫다는 듯이 묻는데 찬열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어
-맞지.
-….
-….
-….
우리는 그 다음부터 묵묵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어
말도 없어지고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둘씩 포기하는 아이들을 비집고
올라가다 좀 쉬려고 옆으로 비켜섰어
이따 뒤따라 가야겠다 생각하고 숨을 내쉬는데 누군가 물을 내밀어.
-마셔.
백현이였어. 나는 얼결에 물을 받아들었다가 백현이의 시선에 결국
물을 마셨어. 백현이는 내가 마시는 걸 보고 있다가
다 마신 후에 물을 마셨고.
(같은 물병으로....)
-너도 마실래?
뒤에 서있던 종인이에게 백현이가 내밀었지만 종인이는 고개를 젓고는
먼저 올라가기 시작했어
-쟤, 허리도 안좋아서 무리하면 안되는데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며 백현이가 말했어
-종인이 허리 안좋아?
-어, 뭐. 전에 춤추다가 넘어져서 좀 다쳤거든.
-춤을 열심히 추는 구나.
-응. 열심히 추기도 하고, 잘추기도 하고.
-부럽다.
-뭐가?
-넌 노래를 잘하고, 종인인 춤을 잘추고.
난 잘하는 것도 없는데.
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백현이는 갑자기 말했어
-순둥이 너는 착하잖아.
-….
-나는 착한 여자가 좋은데.
백현이가 씨익 웃으면서 말해서 나는 또 홀린듯 백현이를 보다가
다시 계단을 올랐어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고 싶어질 무렵 끝이 보이기 시작했고
미리 올라가서 기다리고 있는 종대가 우리를 불렀어
-가자.
막판 스퍼트라며 내 뒤를 백현이는 장난스럽게 밀어주었고
나는 그덕에 조금 힘을 내서 끝까지 오를 수 있었지
맨 위에서 땀을 식히고 앉아있다가
종대가 옆반 아이에게 휴대폰을 건넸어
-우리 사진찍자.
찬열이는 나를 끌어서 맨 앞에 놓았어.
-우리 홍일점은 가운데에 서시고.
나의 뒤로 애들이 섰어
내 바로 뒤는 백현이랑 종인이였는데
종인이는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백현이는 나랑 얼굴을 붙이고 브이를 그렸어
나는 사진찍는게 좀 어색해서인지
좀 인위적인 미소를 지었는데
사진찍는 애가 찍어주고 나서
종대가 사진을 받자마자 웃음을 터뜨렸어
-OO아, 너 증명사진찍냐?
-아 진짜 다시 찍어달라 그럴까?
찬열이랑 종대가 웃어서 좀 무안하려는데
백현이가 말해
-난 좋은데?
귀엽기만 하구만. 이제 가자.
백현이의 말에 그런가, 하며 종대와 찬열이 종인이가 내려가기 시작하고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한, (귀엽다는 말은 전혀 나와 어울리지 않으므로) 채로 서있다가
가자는 백현이의 손에 이끌려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어
한창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같은 반 남자애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OO아, 조심…!
백현이가 말을 하고 곧이어 나는 뒤에서 누군가가 부딪히는 충격으로
앞으로 그대로 넘어져 버렸어
-….
아아. 넘어질때 삐끗했는지 발목에서 저릿한 통증이 느껴지는데
뒤에서 백현이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
-내려갈 때 누가 장난 치래?
그 남자애도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나한테 괜찮냐고 물었어
나는 백현이가 화를 내는걸 처음 봐서 조금 놀랐어.
-응, 괜찮아.
내가 답을 하는데 백현이가 무릎을 굽혀서 나를 봐.
-정말 괜찮아?
-어, 괜찮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목이 시큰거려서 얼굴이 조금 찌푸려졌지만
아주 못걷진 않겠어서 남자애한테 다시 한번 괜찮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어
-절뚝이잖아. 봐봐.
몇계단을 못내려가서 다시 나를 멈춰세운 백현이 내 발목을 살펴
백현이 목소리 때문인지 돌아본 종인이와 종대, 찬열이가 내곁으로 다가와
-뭐야, 다쳤어?
-…잠깐 나와봐.
종인이의 말에 백현이가 옆으로 비켜섰어
그동안 종인이는 춤을 추면서 다친 적도 많고, 다친 걸 본적도 많아서인지
몇번 만져보고 살펴보더니 말했어
-삐었네.
-삔거야?
-응. 찜질해야겠다.
백현이는 종인이의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내 앞에 엎드렸어
-업혀.
-…아니, 나 걸을 순 있는데.
-무리하다 잘못되면 어쩌려고, 얼른 업혀.
어쩐지 백현이가 화가난 게 좀 무서운 것 같아서
하지만 절대 무거운 내 몸을 백현이에게 얹을 수는 없어서
우왕좌왕하는데 종인이가 한쪽 팔을 잡아
-변백현, 저쪽 니가 잡아.
-왜, 업자니까.
-여자애가 퍽이나 남자애 등에 업히고 싶겠다.
양쪽을 백현이와 종인이가 부축해서 내려가는데
종대가 자기가 더 아프다는 표정으로 나를 봐.
-OO아, 괜찮아?
-응. 괜찮아.
-밀친 애 누구냐. 말만해라.
찬열이가 굳은 얼굴로 물어봐
그런데 어쩐지 모두 나를 걱정해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
-OO아, 울어?
놀란 종대가 말하고
백현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게 느껴져서
나는 고개를 숙이는데 백현이가 손으로 내 뺨을 쓸어줘
-아, 밀친새끼 누구냐!
찬열이는 이제는 진짜 찾으려는 듯 앞으로 가고
종인이는 말없이 나를 부축해주다가 말해
-울보네, 울보.
숙소에 도착해서 의무실에 들려 치료를 받고
다시 방으로 가는데
몇몇 여자애들이 괜찮냐고 물어봐.
-응, 나 괜찮아.
괜찮다고 답을 하자 다행이라고 말하더니
하나둘씩 연예인 얘기, 드라마 얘기, 남자 얘기 같은 걸 해.
너도 와서 하자고 해서 나도 끼긴 했는데
사실 해야할 말도 없고, 말할 기회도 오진 않았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밖으로 슬쩍 빠져나왔는데
복도에서 말소리가 들려.
-어, 그러니까 이것만 돌리면 된다고?
-응. 남자애들 숙소에 돌려주면 돼. 근데 진짜 내가 해도 되는데.
-됐어. 시커먼 놈들 있는 곳에 여자혼자 오면 못써.
이 목소리는….
반장과 백현이가 서서 대화를 나눈 것을 보았어
반장은 백현이의 말에 웃으며 백현이의 어깨를 두드렸어
백현이도 반장에게 웃어주고.
어쩐지 기분이 좀 이상해져서 밖으로 나와 앉아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 건드려
-너 여기서 뭐해?
-아, 종인아.
-발목은?
-괜찮아.
종인이는 옆에 앉더니 나한테 말해
-야.
-응?
-변백현 아무한테나 그렇게 잘해주는 놈 아냐.
-…?
-그러니까…. 아, 됐다.
-….
-밤에는 바람 차, 들어가.
종인이 그렇게 말하더니 일어섰어.
아무한테나 잘해주는 놈이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이지?
우리 백현이를 디스한거야?!
이런 생각중이었는데 누군가 내 옆에 털썩, 하고 앉아
-순둥이, 여기 있었네.
-…백현아.
-간식 들어왔는데, 안먹어?
나는 고개를 저었어 그러니까 백현이는 고개를 끄덕였어
-안추워?
-별로.
-그래도 감기 걸릴지 모르니까
백현이는 자기가 걸치고 있던 가디건을 나한테 덮어주었어
그리고 문득 하늘을 보며 말했어
-여기 오니까 별 많이 보인다
-정말.
-예쁘다.
백현이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자
검게 펼쳐진 하늘에 별들이 떠있는 것이 보였어
-OO아.
-응?
내가 고개를 돌려 백현이를 봤는데 백현이가 말했어
-아까 왜 운거야?
-….
-아파서 운 건 아닌 것 같아서.
-…고마워서.
별 때문이었는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어쩐지 조금 꿈을 꾸는 듯한 기분에 나는 나도 모르게 평소에 하고 싶던 말을 털어놓았어
-늘 고마웠어. 종대도 찬열이도 종인이도 너도.
-….
-아무것도 아닌 나를 친구로 받아주고 잘 대해주고….
-….
-남자애들하고 친해진다는 거, 전엔 생각도 잘 못했던 일인데 막상 친해지니까….
재밌고, 즐거워. 내가 말을 하자 백현이가 놀라는 것 같았어
한번도 그런 말 안해봤으니까 그런 것 같았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백현이의 얼굴에 손을 뻗어서
손가락을 살짝 갖다댔어
백현이는 내 손가락이 닿자 스륵, 하고 웃더니
내 손을 잡아 자기 뺨에 얹었어
-나 뺨 좀 때려봐.
-어?
-꿈인지 확인하게.
백현이가 장난을 치는가 싶더니 크고 긴 손을 뒤집어
내 손을 잡았어
-늘 말없던 순둥이가 그런 말 까지 다하고.
-….
-제주도 진짜 좋다.
-….
-네가 밝아져서 기뻐.
-….
-오래 네가 즐거웠으면 좋겠어.
-…정말?
내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물으니까 백현이가 웃어
-정말.
-왜?
-….
백현이는 한동안 말이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곧이어 점호를 하겠다는 방송이 나오고
나를 부축해 방앞까지 데려다 준 백현이가
들어가라고 말하고 돌아서 가다가 문득 돌아보았어.
-넌 내 소중한 친구니까.
-
이거... 사실은 수학여행이 두편짜리였는데
뭔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 같은 느낌이네요
이래서 사람은 계획적이어야 하나봐요..
늘 일등찍어주시는 내사랑 됴경스님
암호닉마저 좋은 긍정이님
그만 좀 우세요 도리님
종인이를 좋아하는 동네북님
정주행해주신 딤첸님
빠른 덧글의 주인공 유후님
부족한 글 칭찬해주셔서 늘 감사한 미어캣님
내가 아끼고 사랑하고 힘낼 내사람 핫바님
뭔가 스파이의 냄새가 나는 집착녀님
내삶의 비타민 비타민님
그 외에도 늘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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