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지난 3월 모의고사 때였다. 학교 시험에도 모의고사에도 미련이 없었고, 나아가 대학 진학에 미련이 없었기에 공부에 열의를 두지 않았다.
때문에 남들이 특정한 사탐 과목과 과탐 과목을 정해두고 공부를 할 때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그리거나 잠을 자거나 할 뿐이었다.
작년 모의고사 사탐 때 생각 없이 고른 결과 문제를 푼 과목과 마킹한 과목이 달라 최악의 점수를 받은 후 적어도 내가 푸는 과목이 뭔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가 이럴 줄은 몰랐지만.
오전 내 병든 닭처럼 졸고 농구를 위해 점심시간을 허비해 다시금 시체처럼 의자에 기대 있자 저 멀리서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리며 교실 문이 열렸다.
모의고사 점수가 나왔다는 말과 함께 연신 대박사건을 외치는 탓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늘 받는 성적표가 뭐 그리 대수라고 대박사건을 외치나 했더니 등수를 확인하느라 모든 성적표를 한 번씩 훑었단다. 그걸로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진짜 핵쩐다니까? 우리 반에 사탐 전교 1등이랑 9등급 있음."
전교 1등은 늘상 하던 김남준일 테고 9등급은 드디어 공부를 놓고 나와 함께 음악에 올인한 전정국이리라 생각하던 찰나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신이시여. 페이지가 연속으로 붙어 있던 한국 지리와 세계 지리를 고른 것이 죄였던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마킹을 좆같이 하지 않은 것이 죄입니까.
무슨 바람이 들어 짧은 시간 동안 집중을 해 문제를 풀었던 걸까.
"민윤기 한지(=한국 지리) 전교 일등. 근데 세지(=세계 지리) 9등급. 지리지 않냐? 핵 돌았어 저새끼. 교무실각."
타이밍이 좋았던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뒤늦게 들어온 김남준은 내 성적을 듣고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교무실에서 담임이 내 성적을 보고는 한숨을 쉬는 덕에 이미 3학년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을 비롯해 교무실에 있던 애들에게까지 퍼졌단다.
곧 담임이 부를 거라는 말과 함께 내 어깨를 쥐고 큭큭 거리고 웃는 김남준을 보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어 정강이 냅다 차고는 교실을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교실을 나서는 순간 여기저기서 나를 아는 이들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고 종국에는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교무실에서 찾는다는 방송까지 알려주었다.
도착한 교무실엔 대단하다는듯한 눈빛의 선생님들과 복잡한 담임 선생님이 계셨고 꾸벅 인사를 하자 이리 와 앉으라는 손짓을 하셨다.
"윤기야 혹시 학교 다니기 싫어? 아니면 혹시 한지는 남준이가 풀고 세지는 정국이가 풀었니?"
시험 안 봐 시발.
*
안녕하세요 1등이자 9등급인 하이스입니다 저 전국 2퍼예요 실화예요 네 그렇습니다
대학에 큰 미련이 없어서 모고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보는데요 변태들은 하나 알아야 해요
저는 작년에 윤사를 배웠고 지금은 사문과 동아시아사를 배웁니다
한지랑 세지는 배운 적도 없고 배울 일도 없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계 지리 쉽다고 같이 하자고 한 사람 나와
1번 답이 4번 베트남인 거 말고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한지도 사실 학교에서 응시자가 얼마 없어서 1등이지 저 점수로 1등 못 해요
수치스러워서 점수랑 학교 응시자는 가렸어요
저건 그냥 제가 1등과 9등급을 한 번에 받았다는 거 인증용
학교 12년 다니면서 9등급 한 번은 받아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ㅎ
이왕 받는 거 1등이랑 같이 받아야지
학교 망해라 진짜ㅎ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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