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ould Give You Love
05
그렇게 예뻤나?
" 박지민이 너희집 문을 딱 여는데 무슨 살인사건 난 줄 알았잖아. 핏자국이 거실부터 욕실까지 막. "
" ...하... 미치겠다 진짜...... "
" 자기가 정리하고 싶지만 니가 싫어할꺼라고 나한테 부탁한다 하더라. "
" 고맙다 조수연... 박지민이 했으면 진짜 수치플이야. "
" 이게 끝이 아님. 걔가 너 발견한 거잖아. 니 잠옷 꼬라지는 봤니? "
조수연은 병실의 옷장을 열어 내 잠옷 하의를 꺼내들었다. 온통 울긋불긋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무 쪽팔려서 팔을 붕붕 휘두르다가 팔에 꽂힌 링거 바늘이 빠질 뻔해서 간호사 언니한테 엄청 혼났다.
내가 오늘 새벽부터 오후까지 꼬박 반나절을 자다가 눈을 떴을 때는 병실 침대 위였고 내 옆을 지키고 있던 것은 조수연이었다. 조수연이 말하길, 아침부터 박지민에게서 페북으로 연락이 왔는데 내가 병원에 있으니 좀 도와달라 했다는 거다. 박지민은 자기 친구 한명을 더 불러서 내 옆에 붙여놓고 (...도대체 몇 명이나 부른건지 모르겠다.) 집으로 가 조수연에게 청소를 부탁했다고 한다. 졸지에 청소부가 된 조수연이 우리집 바닥을 닦고 소파 커버를 세탁하고 정리하는 내내 박지민은 아파트 복도에 서있었다고 했다.
얼굴이 뜨겁다. 이유는 두가지다. 박지민에게 이런 험한 꼴을 보인게 첫번째 이유고, 두번째는... 눈을 뜨자마자 새벽에 박지민이 내게 입맞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보통 드라마 같은데선 여주가 기억을 잃지않니...? 근데 왜 난 눈을 뜨자마자 떠오르는건데? 그것도 생생하게!!! 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꾸...꿈인가? 얼굴에 다시 열이 확올랐다. 하...... 더워.......... 우아아ㅏㅏㄱ차거?! 갑자기 무언가가 볼에 차갑게 닿았다. 기겁하며 올려다 보는데 처음 보는 남자애가 어느새 병실에 들어와선 내 볼에 음료수를 대고있는 거다.
" 더워? "
" 아니? ...요? "
" 너 또 쓰러지면 안된다. 박지민이 나 불러낸 대신 치킨 다섯마리 쏘기로 했거든. 걔 텅장되면 어떡함? "
" 아...? 예... "
박지민 통장을 걱정하는 남자애는 정말이지 2D처럼 생겼다. 나를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근하게 대하는지 당황하기도 전에 너무 잘생겨서 얼굴을 구경했다. 그 남자애는 자기 이름이 김태형이라고 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김태형이 너 소개시켜달라고 했다'느니 '민윤기 친구가 김태형의 형'이라느니 하던 박지민의 말들이 떠올랐다. 아, 김태형이 얘였구나... 하도 이름만 주구장창 등장해서 나도 모르게 원래 아는 앤줄.
뭐... 혹시 내가 김태형과 엮이려나 싶겠지만 그럴 일은 전혀 없어보인다. 왜냐면
" 음식 뭐 좋아하세요? "
" 아, 저는 라면 좋아해요. "
" 헐 우와... 저도 라면 좋아하는데! "
" 우와아 신기하다! "
야. 라면은 나도 좋아하고 전국민의 90프로가 라면 좋아하거든...? 존나 누가 쟤네들 좀 끌어내! 환자를 앞에 두고 소개팅을 하는 조수연과 김태형은, 나 주려고 사왔다는 음료수와 과자를 지들이 다 쳐먹고 있었다. 혹시... 너구리?! 동시에 말하더니 둘이서 꺄르르거린다. 자꾸만 귀 뒤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조수연과 허세가 잔뜩 들어간 제스쳐를 선보이는 김태형이 같잖아서 나는 이불을 휙 집어던지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박지민은 왜 안 오는거야, 저 또라이들만 놔두고!!! 링거대를 끌며 투덜투덜, 병실 문을 열어재끼-려 했는데 문이 스스로 열렸다.
문 앞에는 소원대로 박지민이 서있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뒤돌아 도망갈뻔 했지만, 초인적인 의지로 발걸음을 땅에 붙였다. 박지민이 나를 보더니 옅게 웃었다.
" 일어났네? "
" 어...응... "
아 어떡해 눈을 못보겠어. 왜 하필 이렇게 마주치지. 어제 그 꼴을 보인 것도 너무 부끄럽고 또... 꿈인지 뭔지 모를 키스도 부끄러워. 심장이 정신없이 쿵쾅쿵쾅 나댔다. 좀 더 오래 쳐자지 않은 과거의 나 자신을 원망하는데, 박지민이 손을 뻗어 링거대를 자기 쪽으로 조심스레 끌어갔다. 그러곤 내 어깨에 손을 두르며 병실 밖으로 당기길래 나는 진심으로 남사친 여사친끼리는 머리 쓰다듬기 혹은 어깨에 팔 두르기를 법으로 금지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선량한 피해자가 생기잖아. 존나 선을 그어놔야 해...
" 나여주 밥 먹으러 가자. "
" 배 안고파. "
" 밥 먹을래, 나랑 살래. "
" 아씨 드라마 놀이 작작해. "
" 밥 먹을래, 나랑- "
" 아악!!! 먹을게!!!! "
저 다음 대사는 분명, 분명 밥 먹을래 뽀뽀할래일거야!!!!!!!! 박지민이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 사실 입맛이 없었다. 입 안은 온통 텁텁하고 까끌했다. 그치만 병실에 있는 또라이들은 빼놓고 박지민과 있을 생각을 하니까 밥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병원 건물의 죽 전문점에 앉아서 죽을 깨작깨작 떠먹으며 박지민을 관음했다. 쟤 정말...... 너무 평온하다. 박지민은 죽을 거의 드링킹했다. 어떠한 고민도, 켕기는 것도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키스는 꿈이었던 것 같다... 기대한건 아니지만 조금은 기대했고 그치만 기대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복잡한 마음으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들이키고 있는데 박지민이 나를 보고있어서 사레들릴 뻔했다.
" 너 그- 약, 안 챙겨먹은 거지? "
" 응. 까먹었어. "
" 밥 먹는건 안 까먹으면서 어쩌자고 그런걸 까먹냐. "
그건 말야. 너 때문에 까먹은 거야 이 샛기야!!! 해주려다 너무 중요한 걸 까먹은터라,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챙겨먹을 날짜에 폰 알람을 해놓던가. 도구를 이용해 도구를, 박지민이 잔소리를 했다. 나는 그 애를 소심하게 흘겨보다가 문득 새벽에 박지민이 어떻게 집에 온건지 궁금해서 입을 열었다.
" 근데 니가 나 병원 데려온거 맞지? "
" 응. 무거웠어. "
" 됐고. 너 집에 간 거 아니었어? "
" 응 갔지. 갔는데- "
갔는데? 말 끝을 흐리는 박지민을 멀뚱히 봤다. 집 가는 길에 화장실이 급해서 다시 돌아갔어. 너네 집으로 돌아가는게 빠를 것 같아서. 아씨 진짜..., 나는 죽을 뜨다 말고 도로 흘려보냈다. 그래~ 우리가 이렇지 뭐. 난 대체 뭘 기대한거지? 내가 구리구리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걸 본건지, 박지민이 푸스스 웃었다. 자꾸 그렇게 웃으면 고마워 지민아 나야 좋지 눈호강 하고. 눈이 접히는 웃음이 너무 예쁘다. 눈꼬리가 일자로 뻗고 앞광대가 볼록 올라오는데, 복숭아 같다고 생각했다. 저 애를 좋아하기 전에는 웃는걸 보면서 재수없게 착해보인다 생각했는데 콩깍지가 이렇게 무섭구나...
" 맞을껄? "
" 응? "
뜬금없이 박지민이 맞다길래 순간 콩깍지가 맞다는줄 알고 놀랐다. 뭐 맞긴 맞지만.
" 뭐가 맞다는 거야. "
" 니가 생각하는 그거. "
" ...엥? "
" 뽀뽀 생각한 거 아니야? 그거 현실 맞다고. "
????
나는 손에 쥐고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에 시끄럽게 부딪히면서 쨍그랑- 소리가 났다. 주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난 박지민 말고는 눈에 뵈는게 없었다. 그 애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 느리게 재생되는 듯했다. 지민이의 광대가 약간 올라간 것 같은데 머리칼이 흩어져서 눈은 잘 안보였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한참 눈을 깜빡거렸다. 박지민이 남은 죽을 휘휘 젓다가 눈을 올려 나를 봤다. 나를 보며 한 숟갈을 떠먹고는 또 웃는 박지민에 심장이 멎을뻔했다.
지...지금 나 놀리는 건가? 아니 근데... 뽀뽀를 하긴 했다는 거잖아!!! 왓?!!!!! 온갖 생각이 뒤섞여 계속 멍하게 그 애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박지민은 이내 시선을 내려 테이블 위에 두었다.
어제 돌아갔을 때 욕실은 물바다에 피에 넌 쓰러져있지 난리가 난거야.
너무 놀라서 일단 너를 건져내야겠단 생각만 했는데-
갑자기 니가 눈을 뜨더라고. 내 이름 부르면서.
...예쁘더라. 예뻐서 한 거야, 뽀뽀.
박지민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이 식당에 의자 등받이가 없었다면 나는 뒤로 넘어가 또 기절했을 것이다. 박지민의 입에서 나온 말이 믿기지도 않고 부끄럽고 당황스럽고 또 복잡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아련한 원숭이 짤처럼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내가 자기를 좋아할까봐 걱정하던 박지민의 모습이 분명 오래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될 수가 있지?
쟤 뭐지...? 아니, 내 문제인가? 내가 어제 그렇게 예뻤나? 막, 막 반하지 않곤 못 배길만큼?!(아님)
약간 붉어진 귀의 박지민이 계산 하고올게, 하고 자리를 뜰 때도 나는 얼어있었다. 손이 다 떨렸다. 쉼호흡을 해봤지만 멈춰버린 사고회로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키스가 현실이라는 것이 충격이었으며, 묻지도 않았는데 박지민이 직접 말한 것도 충격이었다.
예쁘더라. 예뻐서 한 거야 뽀뽀. -그 말도.
...그 날 이후의 상황은 가히 더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박지민이 그 일에 대해 다시 언급을 한다던가 어떠한 행동을 취해주길 기다렸다. 그런데 그 새ㄲ 아니 그 애는 아무런 말이 없는거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려 키.스.를 했는데도 예전과 다르지않게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 박지민은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웃통을 까고 내 집을 돌아다니고 샤워를하고 나가는데, 내가 오히려 그 애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잘침?] [ㅂㄹ] 존나 단답의 톡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우리의 톡이야 원래 이런식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물론 박지민도 마음이 복잡할 수 있다. 15년 친구가 누구집 개 이름도 아니고. 하지만 그 말을 먼저 꺼낸건 박지민이었다. 그 애는 나에게 고백하듯 말했다. 그거 때문에 요즘 내가 밤마다 이불킥을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내게 그 뽀뽀는 현실이라고 예뻐서 뽀뽀했다던 박지민의 달달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설레서 침대를 뒹굴뒹굴 구르다가도, 갑자기 [ㅂㄹ] 이따위의 톡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밀어서 박지민에게 당장이라도 전화해 이샛기야 쌍욕이라도 날려주고 싶은 마음에 자꾸만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내 오른손을 컨트롤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여튼 나는 이렇게 복잡하다. 복잡한데-
" ...아, 왜 자꾸 따라와요? "
" 너랑 밥 먹으려고. "
" 저 밥 먹었어요. "
" 너 원래 다섯끼 먹잖아. 한끼 더 먹어도 돼. "
...잘 아네. 나는 빠르게 걷던 걸음을 멈췄다. 안그래도 박지민 때문에 복잡한데!!! 또 갑자기 나타난 민윤기가 따라 붙는거다. 모의고사 쳐서 야자도 없겠다, 혼자 생각 좀 하며 걷고 싶어서 애들도 버리고 먼저 나온건데. 선배는 강의 없으세요? 혹시 아싸세요? 설마. 너랑 밥먹으려고 자체 휴강했지. 청자켓 소매를 둘둘 올리며 씨익 웃는 민윤기를 보다가 고개를 반대로 돌려버렸다.
기분이 별로다. 아무리 지금의 나는 괜찮다고 해도, 니가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닌 걸 알아도, 그 때의 시간이 사라질 수는 없는거다. 너는 나에게 상처 줬고 나는 분명 아팠어. 우리가 이런 시트콤 같은 장면을 연출할 사이는 아니지 않냐고 따지려했다. 넌 정말 내게 미안하지 않아서 이렇게 뻔뻔하게 구는 거냐고 묻고 싶어서 몸을 돌리는데 그 순간 거짓말처럼 교문 앞에 서있는 박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애는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채 민윤기와 나를 보고 있었다. 내 시선이 멈춘 곳으로 민윤기의 눈도 향했다.
" 어 지민이 오랜만이네. "
" 윤기형 안녕하세요. "
" 와- 근데 너흰 아직도 친구네.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해? "
" ...저흰 가능하더라구요. "
민윤기가 지민이의 어깨를 툭툭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예전에도 민윤기는 박지민을 예뻐했다. 지민이도 민윤기를 형 대접 하면서 꽤 가깝게 지냈었다. 하지만 그건 예전 일이고 우리의 관계는 그 때와 전혀 딴판이다. 친구가 가능하더라, 는 지민이의 말이 신경쓰였지만 난 저 애의 무표정이 더 불편하다. 박지민은 웃지도 않았고 불쾌한 내색도 하지않았다. 얜 지금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고 있는 거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그렇다고 박지민이 다짜고짜 민윤기를 한대 치거나 그러진 않겠지만, 제발 민윤기가 저 입만 다물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대로 셋이서 사이 좋은척하며 걸어가야 하는지 눈치가 보였다. 불편하다.
박지민의 마음은 알 길이 없고 나는 박지민을 좋아하며 민윤기는 자꾸만 나를 건드려본다.
이건, 흔한 삼각 관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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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러따놔따하는 박지민 2. 다음화나 다다음화에 윤기와 여주의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드디어 푸네요!!! 저도 답답해써요ㅠㅠ |
| 선예매+일반예매 후 |
(집 근처 강의 수온을 체크한다.) |
| 암호닉..있나?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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