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천사 민윤기 X 평범한 여고생 너탄 A
내 인생 열아홉번째 7월의 그 날은 지극히 평범했던 하루였다.
일주일이 넘도록 사정없이 내리던 장마가 점차 빗줄기를 끊어내고 흐린 먹구름 사이 햇빛이 고개를 내밀던 무더운 여름방학.
손부채질을 하며 읽어내려가던 영어단어장과 내 왼쪽부랄 정호석의 짜증섞인 투정까지.
끼이익- 탁, 타악-
몸이 붕-뜬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환상따위를 가졌던 때도 있었는데. 아니,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하늘을 날고 싶다는 얘긴 아니었어요.
등에 닿는 질척한 핏방울과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붉게 물든 내 얼굴을 가리키던 아주머니,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구급대원의 다급한 목소리.
죽음이라는 거, 정말 머나먼 얘긴줄 알았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 알았다면 존나 2년이 넘도록 끙끙 앓지 말고 김석진한테 미친 척 고백이나 한 번 해볼걸.
아침에 엄마랑 싸우고 나왔는데. 제대로 죄송하다, 아니 사랑한다고나 말한 적이 있었나, 내가.
내 하나뿐인 친구 정호석. 날씨도 더운데 빙수나 먹으러 가자 조르던 녀석을 따라갔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으려나.
아, 모르겠고
그냥 살고싶다.
.
.
.
.
.
'야.'
'..........'
'...김탄소.'
'......흐..'
'안 들리냐.'
'..........'
'꼴 사나운 척 하지말고 눈이나 좀 떠보지?'
'......아,'
귀를 꼭 막고 듣는 음악처럼 웅웅거리며 흐릿하게 들려오던 낮은 목소리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문제는 정신만 들었다는 거겠지.
눈 좀 떠보라는 목소리. 그래, 이제 눈만 뜨면 되는데. 눈을 떠야 하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뜬다는 느낌이 딱 이런 느낌이려나.
세상의 모든 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내 시야에 들어온 한 인영은,
내가 누워있어야 할 응급실이나, 하다못해 차가운 영안실도 아닌,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눈부시게 빛나는 날개를 가진
천사였다.
눈같이 하얀 피부, 하얀 옷, 옅은 금발. 영락없는 우리가 상상하고 꿈꿔왔던 천사의 모습이었지만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니, 그리고 천사가 뭐저리 입이 거칠어. 죽다 살아난 사람에게 꼴 사나운 척?
버려진 인형마냥 무심한 자세로 누워있던 내 얼굴을 손바닥으로 두어번 내저어보더니 한참 후 눈을 뜨는 내가 못마땅한걸까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천사의 모습은 꽤 묘한 모습이었다.
눈 앞의 천사를 찬찬히 살펴보며 경악을 금치 못해 뺨을 두어번 두드리는 내 손을 저지하는 또 다시 들리는 그의 목소리.
또 들어도 목소리는 좋다.
"이제야 정신이 드나보네."
".....누구, 누구세요?"
누구냐는 어리숙한 내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는 모양새가 무척이나 건방져 보였다.
진짜 천사맞아? 교회다 뭐다 딱히 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로 괴짜같은 모습이란 말이야?
서서히 돌아오는 정신에 덩달아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천사를 올려다보자 들리는 무심하지만 전보다 또렷한 목소리.
"니가 생각한 그대로."
"네?"
"말귀도 못 알아들어? 사고가 심하게 났나."
".....이봐요."
날 놀리는 듯한 그의 말투에 발끈한 내가 주먹을 쥐고 노려보자 언제 내 손을 낚아챈 건지 힘을 주어 쥐고 있던 주먹은 어느 새 힘이 풀린 채 그의 손 위에 붕 떠있었다.
당황함에 어버버 거리는 날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보던 그는 주문을 걸 듯, 어째보면 마약에 취한 듯 나즈막히 속삭였다.
"일단 내 손부터 잡아."
"네?"
"살려줄게."
".........."
"안 잡으면 얄짤없이 하늘로 올려보낸다?"
"........."
하늘로 올려보낸다며 협박을 하는 천사 아니, 천사의 옷을 입은 악마의 모습에 기가 찰 지경이었다.
아니, 잠시만. 살려준다고?
"현생에 미련이 별로 없나보네."
"........."
"딱 셋 센다. 하나, 둘.."
"....아아, 잡았어요! 잡았어!"
현생에 미련이 없긴 왜 없어. 우선 김석진 그 녀석을 내 남자로 만들어 놓고, 정호석이랑 누가 더 대학 잘가나 내기도 했는데. 그리고 베라 신상 아이스크림도 맛봐야하고.
꿈많고 평범한 열아홉살의 난 누구보다 간절히 살고 싶었고, 다시 숨쉬고 싶었기에 결국 그의 손을 덥썩 잡고야 말았다.
급한 마음에 꼭 쥔 두 손에서 식은 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바보같은 내 대답과 동시에 보이는 그의 미소에 이유모를 간지러움을 느끼고 있던 나였다.
"계약완료."
"ㅇ,예?"
"잘 부탁해."
"........."
"천사."
"........."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타락천사,려나."
자신을 타락천사라 소개하는 것치곤 꽤 당당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내비치는 듯 온 몸의 하얀 피부와 달리 귓바퀴는 붉게 물들어있었다.
평범함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평범 그자체 인간인 난, 참 어이없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인간세계가 아닌 하늘과 인간세계 그 사이 어느 곳에서 만났다.
그것이 타락천사 민윤기와 평범한 인간 여고생 나의 첫 만남이었다.
+작가
안녕하세요. 슈가한스푼입니다. 기다리시던 츤데레가 아닌 뜬끔없는 글이라 많이 놀라셨죠?
실은 예전부터 계속 쓰고싶던 소재가 있어서 제가 쓰차기간동안 이걸 한 번써봤는데 독방에서 반응이 생각보다 좋은 탓에 미리 올려봅니다!
그렇다고 츤데레를 버리거나 하는 건 아니고 어여 담판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독자님들 이 글은 어떠신지 한 번 읽어봐주십사 올린 거랍니다. 우리 독자님들이 댓글로 이 글이 차기작으로 어떤지 한 번 적어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은 아직 받지 않을게요!! 죄송합니다ㅠㅠ 다음화즈음에 받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