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이 없어 억지로 밥을 먹으면 다 토해냈다. 어지러운 두통이 심해졌다. 약을 먹어도 해결되질 않았다.
자꾸 몸에 힘이 빠졌다. 정신도 , 이상해지는 기분이였다.
나는 기약없는 기다림이 , 언제까지 될 줄을 몰라 무서웠다.
수면제의 힘을 빌려 잠이 들어도 , 꿈속에 자꾸 변백현이 나왔다.
"경수야.."
"젖은 목소리로 제 이름 불러 주신다면."
"잘자, 경수야. 내가 자꾸 말 걸어서 , 이젠 니 꿈에도 나오겠다."
결국은 김종인에게 물어 물어 변백현의 집을 찾아왔다.
"변백현!! 문 좀 열어봐!" 소리를 지르고 문을 당겼다. 잠겨있을 줄 알았던 문이 너무 쉽게 열려버렸다.
"야.."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는데 , 집 안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로 , 여기가 변백현 집은 맞는건지. 김종인이 내게 거짓말을 한 건지.
깨끗하게 정리된 집은 마치 , 이 곳엔 그 어떤 온기도 머물지 않았어요. 하고 말 하는 것 같았다.
침대 위의 이불마저 각이 잡혀있었다. 나는 변백현도, 나 처럼 아플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침대 위에서 끙끙 앓으면서 , 날 찾고 있진 않을까. 기다리진 않을까. 했는데.
그리고 책상을 돌아보는 순간 나는 숨이 멎을뻔 했다. 하얀 책상위에 , 익숙한 붉은 목도리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 젖은 목소리로 제 이름 불러주신다면.. " 하며 꿈에서 그가 내게 둘러줬던 목도리였다.
나는 손을 덜덜 떨며 그 목도리를 챙겼다.
문 앞에서 , 밤새도록 그를 기다렸다. 그 날은 첫 눈이 내렸다.
나는 , 이제 이 미안한 마음을 접겠다고 다짐했다.
생각해보면 꼭 나만의 잘못은 아니였다. 사과를 하고자 , 관계를 풀고자 찾아왔지만 그는 없었다.
난 할만큼 했다. 그러니 이제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저 파도가 한 번 쳤을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ㅡ
그렇게 마음 먹어도 내 몸은 좀 처럼 회복이 되질 않았다. 이유 모를 답답함에 나는 자꾸 짜증이 났다.
그 붉은 목도리를 매고 학교에 간 날 , 우리반은 전학생이 왔다.
우습게도 담임이 그 전학생을 내 옆자리에 앉혔다. 나와 김종인이 변백현 자리라고 버럭 화를 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 백현이가 안온지 한 달이 지났잖니 . 다시 돌아오면 그 땐 자리를 내어주자 얘들아. "
기가찼다. 담임이라는 사람이, 자기반 애를 챙기진 못할망정. 이 쓰레기같은 학교는 선생들을 무슨 조건으로 뽑은건지.
"안녕? 난 박찬열이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내 짝."
커다란 키에, 커다란 손 . 환하게 웃으며 그는 내게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녕?"
하고 소리내 웃으면서 인사했던 변백현이 , 내게 겹쳐보였다. 나는 붉은 목도리에 얼굴을 묻었다.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였다.
김종인 역시 힘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추운 겨울 우리는 얼어붙은 나무같았다.
"야, 기운 좀 차려."
김종인은 내 손에 율무차를 쥐어주기도 했다.
난, 율무차보다 코코아가 좋은데.
나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미안한 마음이 아니였다. 그럼 이게 뭐지?
익숙하던 변백현이 없어서 느끼는 공허함? 허전함? 그것도 아니면 …
눈 앞에 변백현의 일기가 펼쳐지는 느낌이였다.
우습게 4년이나 사랑타령을 적어뒀으면서도 그 흔한 내 이름은 한 번 적지도 못했던 그를 떠올렸다.
찬열이라는 전학생도 시끄러운 편이였다. 나는 등을돌려 엎드려 헤드셋을 끼웠다.
목도리 속으로 고개를 묻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떳을 때 , 변백현이 앞에 있었다. 웃는 얼굴도 , 우는 얼굴도 , 그 어떤 표정도 없이 서 있었지만 상관 없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엉엉 울며 그에게 달려가 안겼다.
"백현아.."
우느라 목소리가 자꾸 잠겼지만 나는 노력했다.
"미안해 백현ㅇ.. 백현아.. 내가 다 .. 내가 .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그러니까 이제 그만 돌아와 .. 주면. 안돼?"
그러자 백현이가 내 어깨를 잡고 날 밀어냈다.
"젖은 목소리로, 제 이름 불러주신다면.."
익숙하고도 , 지겹도록 꿈 속의 백현이에게 들은 말이였다.
"그대의 곁에 , 그 바람되어 머물겠습니다."
쿵. 하고 심장이 내려 앉았다. 그 뒤에 .. 그 뒤 문구가 저런 말이였던가?
그리고는 슬핏 웃어보이는 변백현의 눈동자가 , 붉은 목도리를 맨 나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안돼. 안돼 백현아.."
자꾸 눈물이 고여 눈 앞의 백현이가 흐려졌다.
" 안돼 백현아. 가지마 .. 가지마 백현아! "
그리고 눈물이 떨어진 후에 , 선명해진 눈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또 늘 꿈에서 그랬듯 , 따스한 바람이 내 모든것을 흔들어놨다.
눈을 떳다.
오늘은 , 백현이를 만난게 꿈이여서 다행이다. 하고 생각했다.
눈 앞에 백현이의 일기가 재가 되던 순간을 떠올렸다.
가슴에 통증이 자꾸만 심해졌다. 나는 , 엉엉 울며 깨달았다.
그것도 아니면…사랑.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