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만 보면 저렇게 해 맑게 인사를 해오는 변백현을 등지고 오늘도 나는 가방을 던져놓고 책상위에 엎드렸다.
딱히 싫어하는건 아닌데, 왠지 저 인사를 받으면 귀찮을 것 같다. 다른 애들이랑 말을 섞을 땐 조잘조잘 말이 많으니까.
"지겹지도 않냐 변백현, 받아주지도 않는데 인사를 그렇게 맨날 하고있네."
"야. 너도 좀 받아주지 그러냐. 그깟 인사 하나 받는게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래 안녕! 해주면 될 걸."
틱틱 하고 내 책상이 울리는걸 보니, 김종인이 왔나보다.
"아~~오늘도 여전히 도도하신 도경수학생은 , 등교하자마자 엎드려 주무시느라 못들었나~? 미녀는 잠을 좋아한다더니 .. 얘 혹시.."
오늘따라 유독 심기를 거슬리는 김종인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다.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김종인은 변백현이 데리고 나간 후였다.
조례시간이 다 끝나고 나서야 변백현은 교실로 돌아왔다.
"으으 추워라. 경수야 이거 마실래?"
하얀피부가 얼어 귀끝도 , 볼도 , 코 끝까지 빨개진 꼴이 너무 우스워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더니 저도 씩 웃으며 양손에 종이컵을 내게 내밀었다.
별로 말을 트고싶진 않아 가만히 보고있었더니 또 바보같이 씩 웃으며 말했다.
"코코아. 율무차. 뭐가 더 좋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코코아를 쏙 빼들었다.
"단거 좋아하는구나 ~"
그러던지 말던지 , 나는 코코아를 마시며 공책을 폈다.
귀찮은게 질색이라 학교에선 실어증 걸린 사람처럼 한 마디 안하는게 나였다.
물론 그런 날 보고 처음엔 친해지자고 손을 내민 애들도 많았지만 , 그것도 다 잠시뿐. 이렇게 집요하고 끈질기도록, 살갑게 대하는 애는 없었다.
하필 이런애랑 짝이라니. 참 귀찮다고 느꼈다.
뭐든 지나치면 독인데, 얜 왜 그걸 모르는걸까. 저 반 쯤 갈라진 목소리는 들을 때 마다 적응이 안된다.
ㅡ
"자 그래서 , 152p 는 ... 변백현?"
"……"
"변백현!!!"
"네?!"
"수업시간인데 뭐하니 백현아~? 빨리 그거 들고 나와."
"안돼!! 아니 저기 쌤. 잠시만요. 그래요. 150.. 어.. 그.."
"시끄럽고 빨리."
변백현은 책을 세워놓고 아래서 딴짓을 했나보다. 쌤통이네. 하고 있는데 김종인이 소리를 꽥 지른다.
"쌤!! 변백현 한 번만 봐주죠~~152 p 빨리 읽어 병신아!"
"병신?? 이것들이 진짜 문학시간에! 둘다 나가서 손.."
"그대가 !!저를!!! 바라볼 때!! 그 깊은 눈동자가 !! 좋습니다!!!"
문학의 말을 딱 끊더니 낭독회라도 연건지, 아주 변백현의 목소리가 떠나가라고 교실안을 울렸다.
우연히, 제 손에 스친 그대의 고운 손이 좋습니다.
달콤함 가득 머금은 그대의 향기가 좋습니다.
봄 햇살 머금은 듯 싱그러운 그대의 미소가 좋습니다.
그대가... 그대가.
잘 읽다가 문득 변백현의 목소리가 작아져 나는 고개를 돌렸다가 책이 아닌 나를 보는 변백현에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란것도 잠시, 나는 그 까만 눈동자에 홀리기라도 할 뻔 했다.
"언젠가 이런 제 마음을 , 떠나는 날..."
"그 줄 아닌데 병신아."
김종인이 또 받아친다. 이래서야 무슨 문학이야. 하루종일 책만 읽겠네.
"경수야. 니가 읽어. 니 짝지 상태 이상하네 오늘"
아씨. 내가 이래서 쟤가 귀찮고 짜증나고 지겹고 그런거다. 짝지라고 불똥튀어야 하는게 너무 싫다.
"그대의 빗방울 소리처럼 청량한 목소리가 좋습니다."
"처음 느끼는 간지러운 이 마음이, 그대를 향해 있다는 것 도 좋습니다."
"그대가 .. 그대가 언젠가 이런 제 마음을 떠나는 날 오시면 , 그 때는 이 마음 바람에 날리겠습니다."
"그 바람이 그대의 눈동자를 흔들고 , 그대의 손끝을 지나 , 그대의 향기를 날리고 , 그대의 미소를 스치고"
"마침내 젖은 목소리로 제 이름 불러주신다면 그대의 곁에 그 바람되어 머물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치는 종이 울렸다. 어휴, 뭘 더 안시켜 다행이지.
하고 자리에 앉았더니 변백현이 톡 어깨를 쳐왔다. 미안하긴 한가보지? 차마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 나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눈치없는 변백현.
"너 목소리 진짜 좋다. 이렇게 오래 들은거 처음인거같아."
나는 헤드셋을 찾기 시작했다. 어차피 교실 밖이 더 시끄러울거니까.
그런 내 어깨를 잡은 변백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마음을 바람에 날린댔는데 , 뒤에가서 바람되어 머문단건 무슨뜻일까?"
다음주 문학시간에 알아서 해석해 줄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건지. 귀찮아서 헤드셋을 끼고 엎드렸다.
"잘자, 경수야. 내가 자꾸 말 걸어서 , 이젠 니 꿈에도 나오겠다."
반주와 함께 그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울렸다.
알면 그만 좀 했으면. 나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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