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자꾸 기어올라요 w. 채셔
08. 네 번째 날, 고딩.
네 번째 날, 고딩. 날씨 …이상함.
주인이 한껏 치장하고 집을 나섰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잠결에 보았던 모습이 꽤나 공들인 화장에 원피스 차림이었으니. 참, 눈을 이리저리 비비며 식탁에 앉았을 때 나를 맞이하고 있던 노란 메모지도. 주인의 글씨가 삐뚤빼뚤 굴러가고 있던 그 작은 종이. '나 잠시 나갔다 올게요, 밥 해놨고 반찬도 있으니까 챙겨 먹어요.' …애 같은 게 제법 애어른 티를 낸다. 문득 왠지 콧물이 날 것 같아 코를 훌쩍거렸다. 주인 없는 집이 이렇게 조용했던가.
잠이나 더 잘까 싶어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주인은 누구를 만나러 간 걸까. 옷차림새를 보아하니 여자를 만날 차림은 아니었다. 아닌가, 내가 형들을 만날 때에는 그렇게 꾸미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어제 한참 자서, 더 이상 잠은 오지 않는다.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다 옆으로 돌아 누웠다. …베개에서 주인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향수와 비누의 경계선에 서 있는 냄새. 어쩜 주인은 제 냄새도 주인 같은 걸까. 복숭아 향보다는 여성스럽고, 벚꽃 향보다는 애 같다. 잘 모르겠다, 그냥 맡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향이다. 그래서 나는 베개에 코를 박고 한참을 킁킁거려보았다.
'엄마!'
'…엄마야! 악!'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왜 같이 자고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만 주인이 내 품에 안겨 자고 있었다. 의심하는 눈치로 주인을 흘겨보았지만, 주인에게는 그런 눈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내가 모르고 주인을 밀쳐버렸기 때문에. 비난을 할 수 있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잠들 땐 혼자였는데, 잠에서 깰 땐 둘이었으니까 얼마나 놀랐겠어. 그보다, 사실 이번에도 꿈에 주인이 등장했던지라 더 놀랐던 것도 있다. 어쨌든 그건 의도된 행동이 아니었다. 침대에 떨어지면서 바닥에 꼬리뼈를 강하게 부딪힌 건지 주인은 신음도 내지 못하고 끙끙댔다. 아, 근데. 굳이 바닥에서 끙끙대는 주인을 일으켜주지 않은 이유는. …그것대로 주인이 귀여워서였다. 울 것 같은데, 눈물을 꾹 참아내는 게 귀여웠다. 꼴에 어린 애는 또 아니라고, 울고 싶은 걸 꾹 참는 게 귀여워서.
'엄마야……!'
'미안, 주인.'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주인을 가뿐히 들어 제 침대에 놓아주었었다. 아마, 방에서 약간의 울먹임이 들려온 걸 보면 내 앞이라 꾹 참은 것 같기도 하다. 주인은 주인이고, 나는 고딩이니까. 그런 게 더 애 같다는 건 주인만 모르는가 보다. 어찌 됐든 고이 방문까지 닫아주고, 나와서 내 침대에 누워 있다 잠들어버렸고 지금 이 시간까지 자다 일어난 거다. 뭐 할 건 없고, 머리를 긁다 기타를 집어들었다. 독학을 해서 아직 소리는 예쁘지 않지만. 녹음이나 해야겠다. 지민이 형네 회사에서도 데모 테잎을 가지고 오라고 했으니까.
남자친구가 자꾸 기어올라요
"…주인?"
문에 퍽 박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비밀번호를 찍는 소리가 들리기에 밖으로 나섰다. 역시나 주인이었다. 주인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비틀거리며 들어와 갑작스럽게 내게 안겨들었다. ………주인? 엉거주춤하게 주인을 안아주자 주인은 딸꾹질을 하며 다시 제자리에 비틀거리며 섰다. 그것도 잠시 우욱, 하고 입을 막으며 쪼르르 화장실로 들어가 게워내는 소리가 들리기에 한숨을 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왜 이래. 앉아 주인의 등을 두들겨주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물론 주인은 입으로 다른 것을 하고 있었기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흐엉……."
토를 끝마친 주인은 변기에 팔을 대고 제 머리를 기댔다. 토를 한 게 슬펐던 모양이다, 울먹이는 걸 보니. 변기를 내려주고, 변기에 정확히 반쯤 걸쳐진 주인을 들어올렸다. 비틀거리며 서는 주인의 입을 물로 헹궈주고, 손도 씻겨주고, 이물질이 묻은 머리도 살짝 씻겨내준 뒤에야 화장실을 나왔다. 주인을 안아들어 침대 위에다 놓아주는데, 눈이 반쯤 풀린 주인이 '고마워, 고딩.'이라고 말하며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처음이네, 말 놓은 건.
"나, 나아… 서찐 선배랑, 밥, 아니, 아니, 술 먹어써."
"그래."
"서찐 선배랑 같이 연극도 보고, 술게임 하다가 스킨십도 해따?"
"아아."
"막 안겨써, 헤헤."
여자들은 참 이상한 존재다. 원래 여자한테 안겼다고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건가. 이번에는 쌍 엄지를 치켜세우는 주인을 내려다보다, 입맛을 다셨다. 물론 주인이 레즈일 수도 있는 거다. 아니, 그렇다기에는 주인 핸드폰에 남자 연예인 사진이 꽤나 많았던 것 같은데. 이 여자의 정체는 뭘까. 그래, 하고 손가락을 꼼지락대는 주인의 배를 토닥여주었다. 뭐, 친해지고 싶은 선배인가 보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주었다.
"어어."
나가려는데, 주인이 내 잠옷 허리 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덕분에 바지 안으로 집어넣어놓았던 잠옷이 삐져 나왔다. 주인의 손을 놓고, 잠옷을 다시 안으로 집어 넣는데 주인에게서 믿기지 않는 말이 흘러나왔다. 주인이 기분 좋게 웃다 냠냠, 하고 입맛을 다시며 내뱉은 말은 분명히……. 정, 국이. 나는 굳이 생각하지 않고 웃음을 흘려 보냈다. 참, 나. 이유 없이 웃음이 났다. 고딩이라는 이름이 아니라서 괜히 이상한 것도 있고. 뒤척이는 주인의 머리를 한 번 털듯 쓸어주고 방을 나섰다. ……잘 자, 주인아.
덧붙임
암호닉 정리는 9화와 함께...
늦게 와서 미안해요, 빨리 온다고 했는데.
너무 바빴다.
깜짝 선물 못 받은 이삐들, 울지 말아오.
깜짝 선물은 선생님, 나빠요 텍본이었고
나빠요 시리즈는 시리즈미 낭낭하게
<정국 + 태형 + 석진 (곧 올릴)>로 묶어서 텐본으로 만들 예정이에요.
참, 폭군 제본에 대해 여쭤보신 분이 있었는데
제본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ㅇ0ㅇ
총대 분을 구하는 건가요? 아니면...? (동공 지진)
아직은 모르겠어요. (동공 팝핀) 제가 일단 방법을 알게 되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려드리겠슴다.
고마워요, 이삐들.
오늘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
+. 정국이 글은 일기 같은 글이라 조금 편수가 많을 것 같아요.
아직 4일 밖에 안 됐는데, 진도는 거의 LTE 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