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어찌 하실 생각이시옵니까.”
“황녀 말입니까.”
푸른 옷을 입은 남성이 여의주를 손바닥에서 굴리고 있는 황금 비녀를 꽂은 여인에게 물었다. 그녀의 앞에는 서로 다른 색의 옷을 입은 네 사람이 서 있었다. 붉은 비단으로 온 몸을 휘감은 여인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제는 말씀해주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황룡. 그런 그녀를 옆에 있던 푸른 옷의, 검은 옷의 그리고 하얀 옷의 남성들이 가만히 바라봤다. 손에서 여의주를 가지고 통통 튕기고 있던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가장 마음이 차가운 자에게 주려고 합니다, 황녀를.”
그녀의 말에 푸른 옷의 남성이 주저 앉았다. 황룡!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그는 떨리는 두 손으로 바다를 품어 푸르게 빛이 나는 자신의 여의주를 감싸쥐었다. 어찌하여 한번도 청목국에는 황녀를 보내지 아니하신단 말입니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붉은 옷의 여인 또한 자신의 머리를 장식하던 붉은 비녀를 쥐고 물었다. 홍화국에도 어찌하여 황녀를 보내지 아니하시는 겁니까! 하얀 옷의 그리고 검은 옷의 사내는 그저 가만히 그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번 화명제에서 결정이 날 터인데, 어찌 벌써부터 서두르신단 말입니까. 모두들.”
“…춘왕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다마다요.”
“허나, 어찌하여 기회조차 주지 않는ㄷ”
“춘왕은 이미 반 쯤 마음을 받지 않았습니까. 황녀와 함께 밤을 보낸 것을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을텐데, 어찌 제가 그 이상의 것을 주어야 한단 말입니까.”
푸른 옷의 남성은 멍하니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하룻밤의 시간이 저가 보살피는 인간의 베필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허나 황룡, 주왕은 마음이 차가운 사람입니다! 붉은 옷의 여인이 말하자 빛나는 여의주를 입에 넣어 삼켜버린 여인이 말했다.
“청목국 사람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요. 또 춘왕은 마음이 따뜻하고, 이미 마음을 반 쯤 가져간 상태고.”
“…황룡!”
“홍화국 사람들은 뜨거운 심장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그곳의 왕, 주왕은 뜨거운 사람이지요?”
“…하”
“그럼 내 선택은 백월과 흑사, 사이에서 나오겠군요. 화명제 그 첫날 밤에 다시 논의하도록 합니다. 그럼 이만.”
단장가인(斷腸佳人): 애끊도록 그린 미인
03
잠시 한 숨 자라는 호석의 말에 눈을 감았다 뜨니 이미 밖에서 꽃내음이 내 코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우와 역시 꽃축제가 열리는 곳이라 그런지 대단하다. 밖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았는지 창문을 열어준 호석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밖을 바라보자 쏴아아아 쏟아지는 꽃잎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마치 내가 영화에서 자주 보던 ‘왈츠’를 추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예뻐?”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호석이 웃고 있었다. 응 너무 예뻐. 내 말에 호석은 웃으며 답했다. 내 눈엔 너가 더 예뻐.
***
“내리자.”
“응.”
호석이 먼저 가마에서 내리고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머리 다치지 않게 조심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내민 손을 잡고 가마에서 내리자 나를 보고 웃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공주님 오셨어! 황녀님이래 황녀님! 물론, 웃음 뿐만이 아니라 나를 보고 공주다 황녀다 말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우선 청목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호석의 말에 웃었다.
“한상궁, 잘 부탁합니다.”
“…한상궁이군요. 알겠습니다.”
아 깜짝이야, 옆에서 아무런 소리도 없이 쓰윽 나타난 준씨를 보자 준씨가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히 오셨네요. 한상궁이라 불리는 여인을 따라 가자 — 내 뒤에서는 준씨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 잠시동안 머물 곳입니다, 라는 포스를 풍기는 궁이 나왔다. 저하께서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셨나이다. 한상궁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감사하다 전해주시지요.
“저는 그럼 뒷 방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황녀님.”
“준씨, 오라버니 괜찮겠죠?”
“…네?”
“아버지랑 또 대판 싸우는 거는 아닐까 싶어서 말이에요. 걱정은 좀 되네요.”
그런 나를 바라보던 준씨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황태자님은 무엇이든지 잘 하시는 분이시니까요.
***
“우와! 진짜 예쁘다!”
“처음오는 것도 아닌데 왜그래”
“어?”
“어렸을 적에 몇번 왔었잖아. 바보네 바보야.”
이미 처리해야 하는 서신들을 끝냈다며 나를 불러낸 호석을 따라 이곳 저곳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내 눈 앞에는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 곳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다보니 그 사람들은 어느샌가 호석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기서 너가 원하는 꽃 고르라고 하려 했는데, 알 거 같아. 너가 원하는거.”
“내가 원하는게 뭔데?”
“너가 옛날부터 좋아했던 꽃 있잖아.”
미안, 나는 21세기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온 여자라 그런 거 몰라. 황녀가 어떤 꽃을 좋아했는지 그런거는 모르겠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가서 꽃을 잔뜩 손에 품고 오는 호석이 보였다. 너가 좋아하는 꽃들인데 이런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어야 하나? 그가 건낸 꽃들을 보니 보라색, 노란색, 하얀색 등등 여러 빛깔의 꽃들이 나를 향해 수줍은 봉오리를 보이고 있었다.
“이건 뭐야?”
“뭐야 나무에서 떨어졌다더니 다 잊었어?”
“하… 아하하! 그런가봐! 아하하!”
“이거 그거잖아, 비비추.”
“이건?”
“냉이꽃! 이거는 물망초!”
“…이건?”
“호랑이꽃! 꽃다발은 토끼풀로 엮어서 만들려고 하는데 어때?”
미안, 나 진짜 꽃에 대해서 잘 몰라. 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여기로 나를 보낼 때 스마트 폰을 왜 손에 쥐어주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하나하나 내가 찾아서 맞아 그거 꽃말이 이거지? 하고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래, 준씨라면 알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호석이 고른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어 달라 하고는 침소로 돌아왔다. 물론, 호석은 자신의 방으로 가고 말이다. 나는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이미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고, 옷을 간편히 갈아입은 채로 멍하니 하늘의 별을 세고 있는 나에게 준씨가 다가왔다.
“어찌하여 침소에 드시지 아니하십니까?”
“…준씨는 꽃 잘 알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황태자님이 꽃을 좋아하시니 않으십니까.”
아하, 오라버니가 꽃을 좋아했구나. 그러니까 내가 꽃을 따다 주겠다고 하면서 난리를 치고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진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납득이 갔다. 불편한 것이 있으십니까. 걱정이 된다는 듯이 물어오는 준씨에게 그냥 궁금한게 몇가지 있는데 물어보고 싶어서요, 하고 답을 하자 준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만 하십시오, 하고 답했다.
“준씨는 꽃말도 잘 알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비비추는 꽃말이 뭐에요?”
“하늘이 내린 인연이요.”
“…냉이꽃은요?”
“내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맡긴다는 뜻이죠.”
“물망…초는요?”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라는 뜻이죠.”
이런거에 관심이 많으셨나봐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처럼 가슴이 쿵쿵 거리는 나를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내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몇개 더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라며 웃었다. 그에 미소를 지으려던 나만 입가가 아팠지.
“호…랑이꽃은요? 토끼풀은요?”
“음… 호랑이꽃은 나를 사랑해달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
“…”
“토끼풀은 내 사랑이 되어주세요, 라는 뜻이죠! 황녀님 이런거 관심 있으세요?”
…그러니까 정호석 너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꽃으로 꽃다발을 꾸민게 아니라, 너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꽃다발로 전하려던 거지?
***
“나야.”
침대에 누워서도 뒹굴뒹굴 거리고 있을 때, 정호석이 찾아왔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에게 웃으며 잠이 안와서 그러는데 같이 산책할래? 라고 물으며 말이다. 지금 너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겠어서 너를 보기가 약간은 겁이 나는데, 너는 어째서 나에게 더 다가오는 것인지.
만약에 너가 나의 신랑이 되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인지. 나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 그리고 너 말고는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낯설어 질 것만 같다. 이 나라에 와서 내 옆에 있어준 것은, 가장 오랜 시간동안 내 옆에 있던 사람은 너였으니 말이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가자, 라며 손을 뻗는 너의 손에 내 손을 얹었다. 너는 그 무엇보다 뜨겁게, 그리고 다정하게 내 손을 꽉 잡아쥐었다.
“가자.”
나를 먼저 이끄는 손길에 그의 뒤를 계속 밟다 보니 낮에는 보지 못한 풍경이 앞에 펼쳐졌다.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잎들과 취할듯한 꽃내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나보다. 한참을 가만히 꽃잎들을 내려다 보다 손을 뻗어 담을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이 원하는 만큼의 꽃잎을 한 웅큼 쥐었다. 여주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나를 가득 담은 너의 눈빛이 펼쳐지고, 너의 그러한 눈 속에서 나는 헤엄치고 있다.
“어?”
“예뻐서.”
그런 너의 말에 웃음이 나와 두 손을 펼치자 꽃잎들이 밤바람에 흩날린다. 이제 들어가자, 나 피곤해. 나의 말에 너는 웃으며 다시 나를 향해 손을 뻗고 나는 그 손을 잡고 일어선다. 아무도 없는 이 공간에서 — 밤하늘의 별과 달은 우리를 보고 있겠지만, 꽃향기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겠지만 — 너와 나 이렇게 둘이서만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내가 황녀인지, 황녀가 잠시 돌아온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만 지금 한가지 내가 아는 것은. 정호석을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열이 난다는 것 — 심장이 쿵쿵 거린다는 것.
“들어가.”
나를 들여보내고 뒤를 도는 너의 옷깃을 잡고,
“호석아”
너를 부르면, 너의 두 눈에 가득히 내가 담긴다.
“내 곁에 있어줘.”
내 말에 너는 웃으며 나의 방으로 들어와 나를 네 품에 가득 안고 꽃향기로 이 공간을 채운다. 아 아득해라, 우리에게 봄이 왔나봐.
***
“…하”
두 눈을 떠보니 호석이 옆에 없었다. 휘갈긴 붓체로 ‘먼저 갈께. 오늘은 좀 쉬어, 힘들었겠다. 미안.’ 하고 씌여있는 종이를 보자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화악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에 내 볼에도 열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몸이 뻐근하다 느낀 채로 가만히 누워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으아아악 소리없는 아우성. 아아아악 정여주 미쳤나봐! 내가 진짜 황녀라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내가 미쳤지 미쳤어!
“기침하셨습니까?”
밖에서 들리는 한상궁의 목소리에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으악, 옷이 헤집어진 채로 이불만 덮고 있었다. 이런, 내가 미쳤구나 정말. 종이 옆에 놓여있는 붉은 별모양의 꽃을 가만히 바라보다 한상궁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잽싸게 옷깃을 여몄다. 아 그러고보니 정호석이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가서 — 내 옷차림새만 그런 거였어 — 한상궁에게 찔리는 일은 없겠거니 싶었다. 종이를 조심스레 접어 손에 쥔 채로 들어오라 하니 새 옷을 가지고 고개를 숙인 한상궁이 보였다.
“오늘은 원하시는 대로, 쉬셔도 괜찮고, 궁을 구경하셔도 됩니다. 내일 아침에 *본국으로 돌아가신다고 서신을 미리 보내셨습니다.”
*본국: 황력국
호석이가 먼저 보내놓았구나, 싶은 생각에 한상궁이 가져온 새 옷을 바라보다 저 꽃은 무엇인가 싶은 생각에 물었다. 한상궁, 저 꽃은 무엇인가.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호석이가 가져온 듯한 꽃이 별처럼 빛나며 존재했고, 한상궁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유홍초라 하옵니다.
“유홍초?”
“예. 유홍초는 영원히 사랑스럽다는 말을 가진 꽃입니다. 황녀님을 애정하는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것이겠죠.”
정호석, 너 진짜…
난 진짜 황녀가 아니고 너의 진짜 친구가 아닌데,
자꾸만 너가 좋아지려 해.
***
“화명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죠?”
“그렇죠. 그런데 백월국에서부터 호왕이 직접 행차하시니. 굉장히 먼 거리인데도 행차하셨습니까. 어찌하여…”
“그냥. 둘러볼까 싶어서 말입니다.”
정국이 호석을 가만히 바라보다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호석이 정국의 말에 입가의 미소를 거두었다.
“찾아와 본거죠. 그냥 호기심이 생겨서 말입니다.”
정국은 웃으며 호석에게 그럼 전 이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하고는 인사하였다. 호석은 가만히 정국을 바라보다 황녀님이 어디 계신지는 아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고, 정국은 뭘 그런 것을 묻냐며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만나겠죠.”
“…”
“운명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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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3화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ㅠㅠㅠ 영화 보고와서 올리느라 ㅠㅠㅠ 죄송해요 ㅠㅠㅠㅠ
오늘 저는 마이펫의 이중생활을 봤어요! 재미있더라구요.
음... 3화입니다! 하하! 호석이랑 여주 그래 너네 둘이 살아.... 하...
그리고 새로운 인물, 정국이의 등장이네요! 4화에서 만나요 그럼 안뇽!!!!!!
@나만의 나비가 되어주실 분들@
멍뭉망뭉잉, ♡옥수수수염차♡, 민윤기천재애, 복동, 혜인, ♡율♡, 카모마일, 탄둥이, 공배기, 썰썰, 꽃님, 석진잇진, 블망, 1013, 파랑토끼, 꾸메석진, 달슈가, 꾹피치, 복숭아, 단가, 설하, 화연, 0310, 호비, 생생우동, 우유, 막꾹수, 호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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