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지워주는 병원
w.스프라이트 수녕
끼이익. 낡디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늘 그렇듯 한 남자가 병실에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덜덜 떨고 있는 여주에게로 걸어간다.
그가 입고 있는 의사가운 왼쪽에는 '이지훈'이라는 그의 이름 석자가 음각된 명찰이 달려 있었다.
여주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한번 내쉰 그가 여자의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댔다.
오늘도 악몽 꿨어요?
듣기 좋은 목소리가 작은 병실에 나직히 울렸고, 그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차츰 차츰 온 몸의 떨림이 줄어들었다.
이불을 조금씩 내리며 뒤를 돌아본 그녀는 지훈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목에 매달리며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울기 시작했고, 그는 천천히 그녀의 등을 토닥 거렸다.
내일은 더 일찍 올게요.
여주를 달래는 듯 차분한 목소리가 먼지 사이 사이로 스며와 가슴에 꽂혔다. 얼굴의 눈물자국이 그만큼의 아팠던 나날들을 보여주는 듯 했다.
지훈의 행동에 겨우 진정을 한 여주가 다시 침대에 조심 조심, 걸터 앉았다. 그리곤 지훈을 올려다 보았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
"나쁘긴한데 날씨가 좋아서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요..."
악몽을 꾼 것만 빼면 참 좋을텐데... 갈라진 목소리가 그녀의 눈빛만큼 위태롭게 흘러 나왔다.
갈 곳을 잃은 두 눈동자는 계속해서 병실의 구석을 좇고 있었고, 지훈은 그런 여주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여주의 턱을 살짝 잡아 돌려서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집중-"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손가락을 물어 뜯는 여주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지훈은 공기가 텁텁하다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쏟아지는 가을의 밝은 햇빛에 살짝 미간을 좁히던 그녀도 이내 맑은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하늘 참 맑다, 그쵸?
지훈의 질문에도 멍하니 밖을 바라보던 여자는 몇분이나 지나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주는 약 꼬박 꼬박 잘 챙겨 먹으면, 그러면 우리 다음주엔 밖에서 상담해요."
약속이고 부탁이고 명령이야. 알겠죠? 눈을 반으로 접으며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그녀가 조금 더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먹을게요... 꼭... 투명한 눈빛으로 지훈을 쳐다보는 표정이 꼭 아까와 같았고, 매일과 같았다.
슬픔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처지와 정 반대인 깨끗하고 푸른 하늘을 보는 듯한, 부러운 것 같기도하고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한 표정 말이다.
"약이 조금만 덜 썼으면 좋았을텐데..."
내 인생도.
조금은 덜 썼으면, 의사 선생님의 웃음 만큼만 달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여주가 눈물 방울을 뚝뚝 떨구었다.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그녀의 옆에 앉아서 평소와 같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는 그의 모습.
어렸을 때의 성폭행과 수많은 왕따의 경험으로 정신병에 시달리던 그녀에게 있어서 지훈은 주치의고, 친구고, 상담자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조금은 부럽고 조금은 고맙고 조금은 밉지만 조금은 사랑스러운.
그래, 너무도 많이 다쳐서 누군가를 품을 수도 없을 것만 같던 그녀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더 이상 자신을 해치지 않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여주가 눈물을 닦아내고는 지훈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손 끝에 닿는 촉감이 부드러웠다.
"의사 선생님... 선생님은, 왜 이렇게 부드러워요?"
목소리도, 피부도, 나를 대하는 태도 마저도. 모든 게 부드러워서, 소복하게 쌓인 겨울의 하이얀 눈 같아서, 사라질 것만 같아요.
여주가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지훈에게 말했고, 지훈은 착잡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다시금 여주를 꼬옥 끌어 안았다.
제 품 안에 가득 차도록,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도록, 오직 자신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채울 수 있도록.
"선생님, 떠나지 마세요. 날 싫어해도 좋고 다른 여자를 만나도 좋으니까, 여기서 오랫동안 제 의사 선생님 해줘야 해요. 알겠죠..."
"내가 어딜 가요."
"그 전에 여자 선생님도, 옛날의 그 남자친구도, 친구들도 전부 그랬어요. 어딜 가냐고, 곁에 있어 줄 거라고..."
"... 그 사람들은, 그 기억들은 다 잊고"
"....."
"내 옆에서 이대로만 유지해줘요."
상처를 아물게 하는 병원, 아픈 곳을 치료해주는 병원, 자신이 아픈 건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병원.
세상에는 많은 병원들이 있지만, 이 곳은 한 사람의 아픈 기억들을 지워주는 병원.
그 안에는 여주와 지훈이 있다. 아주 오랫동안이나 말이다.
| 스프라이트 수녕의 주저리 |
...저 이제 빨리 온다는 약속 안할 겁니다. 오랜만에 온 내용은 찌통? 아련? 이네요! 지훈이로 써보고 싶었는데... 다들 재밌다고 해주세요 얼른. 그럼 저는 다른 단편 쓰러 갑니다 빠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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