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니이…, 그냥. 너어. 여자 친구 생겼어?"
고개도 채 들지 못하고 조그만 목소리로 웅얼대는 경수의 질문에 종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 덥다. 더워!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재끼며 손으로 마구 부채질을 해대는 경수였다.
"뭐야, 겨우 이거 물어본다고 이렇게 뜸 들인거야? 난 또 저번처럼 또 집 나간다고 선언이라도 하는 줄 알았잖아. 씨발."
"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난 너의 보호자니까 저 정도의 알 권리는 있다고 생각해…."
근데 왜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는데? 고기를 질겅질겅 씹던 종인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괴고 맞은 편의 경수를 쳐다봤다.
"어땠으면 좋겠는데, 너는."
* * *
"응? 그야, 넌 아직 학생이구. 어…. 당연히 없었으면 좋겠지."
"없어."
"아, 그래? 그럼 됐……."
"그거 말고. 다른 이유는?"
진짜 심장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 건지. 경수는 자신의 눈을 1초도 피하지 않고 뚫어버릴 기세로 쳐다 보는 종인을 마주보고 있자니, 이건 절대….
"못 말하겠어."
응, 못 말하겠어. 절대….
"그럼 내 마음대로 생각해도 돼?"
에라, 모르겠다. 그래라. 시발! 이젠 경수도 모든 걸 내려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어."
경수의 저 대답 하나만으로 분위기가 굉장히 끈적해졌다. 왜지? 왜! 삼겹살 앞에 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이라니? 뭐랄까, 지금 경수의 맞은 편에서 눈에 버터+참기름+까르보나라+치즈 다 섞어 놓은 듯한 느끼한 표정을 하고 있는 종인의 모습은……. 어, 한 마리의 짐승과 같았다. 굉장하다. 음. 마치 가녀린 토끼 한 마리를 눈 앞에 둔 늑대랄까……? 한 동안 침묵이 계속 되었고, 경수는 눈을 어디 둬야 할 지 몰라 그저 도르륵 도르륵 눈을 굴려댈 뿐이었다.
"저. 할 말 없으면 나, 나 들어가 본다. 생각해 보니까 원고 수정할 게 있었…."
"잠깐만, 있어봐."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종인이 따라 일어나 경수의 손을 덥석 잡아챘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서로 손을 잡은 채 마주보게 서있는 꼴이 되었다. 당황한 경수가 뭐라 해야할 지 몰라 버벅대는 사이 종인이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 이렇게 너랑 계속 밀당할 생각 없어. 나 원래 그런 거 못하고 밍기적대면서 눈치 보고 지낼 그럴 참을성도 없어."
아니야, 이건 아니야! 분위기가 이상해져! 경수는 종인이 붙잡은 손을 일단 놓으려고 비틀어댔지만 종인은 그럴수록 경수의 손을 더 세게 휘감아 잡았다.
"무, 무슨 얘길 하는거야! 조, 종인아. 일단 진정…."
"어떤지 말해줘, 기분."
그 말을 끝으로 종인은 잡고 있던 경수의 손을 자기 쪽으로 휙 잡아 당겼다. 경수가 휘청거리자 종인은 빠르게 경수의 뒷머리를 두 손으로 붙잡고 얼굴을 확 끌어 당겼다. 그리고 둘의 입술이 맞닿았다. 놀란 경수의 벌어진 입 속으로 종인의 혀가 파고들었다. 경수가 거세게 종인을 밀어댔지만 거세게 몰아부치는 종인의 힘을 저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가운데 끼인 테이블 덕분에 허리를 많이 굽힌 자세를 유지하며 키스하던 종인이 불편했는지 경수의 허리를 잡고 자기 쪽으로 더 당겨왔다. 한참을 입을 맞대고 있던 둘은 허리가 지끈해져 오는 것을 느끼자 결국 입술을 뗐다.
당황한 듯한 큰 눈이 깊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이제 말해줘."
* * *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고통받던 세훈에게도 새로운 구원의 손길이 닿았다. 저번 주부터 친구의 추천으로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다니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 용서하는 거야! 하느님…. 그 둘을 사랑으로써 보살펴 주시옵소서…. 그래, 사람을 좋아하는 건 죄가 아니니까…. 아메엔.
그 날도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친구와 헤어진 뒤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 맞은 편에서 세훈 쪽으로 뭔가 낯익은 실루엣이 다가오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려 그 실루엣의 주인을 확인하고는 세훈은 잽싸게 바로 옆 가로등 뒤로 숨었다. 씨팔. 박찬열이다. 찬열이 점점 세훈에게 가까워질 수록 세훈의 심장이 요동쳤다. 제바알, 제발 그냥 지나가라! 하느님! 제발! 세훈이 성경책을 두 손에 꼭 붙들며 눈을 꼭 감고 기도했다. 제발, 제발요! 하느님.
이제 지나갔겠지…?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게슴츠레 뜬 세훈이 급하게 가로등 뒤에서 나왔다. 휴, 존나 다행이다. 이게 다 하느님 덕분이야…! 찬열이 없는 것을 확인한 세훈이 기분 좋게 집으로 가려는데….
그때 세훈의 어깨에 누군가가 손을 올렸다.
"으아악!"
"야! 너 뭐냐. 왜 나 피해? 씨팔. 왜 다 나 피하냐고! 도경수에 이어 너까지. 나 왕따시키냐?"
"하하하하, 저 그게. 집에 바쁜 일이 있어서…."
세훈이 찬열이 어깨에 올린 손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헤헤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찬열에겐 씨알도 먹히진 않았다.
"됐고. 야, 오해해서 미안하다."
"네? 오해…요?"
찬열은 정말 미안한 모양이었지 뒷 머리를 긁적이며 괜히 신발 앞 코로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툭툭 건드렸다. 세훈은 영문도 모른 채 빤히 그런 찬열을 쳐다보았다. 저런 찬열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김종인 너 좋아한 거 아니더라…. 김종인 도경수랑 사귄다길래. 음, 사실 이거 아는 사람 너랑 내가 끝이야. 김종인 말로는 너가 용기를 주고 많은 도움이 됐다는데…. 그래서 너한텐 말해도 상관 없다고 하드라. 씨발, 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인지도 모르고 니랑 김종인 뭐 있는 줄 알고 존나 오해했잖냐. 나도 듣고 한참동안 못 믿고 있…. 야…, 오세훈? 야. 듣고있냐?"
이건 또 뭔 개소리다냐. 씨발! 김종인 도경수 둘 다 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근데 서로 좋아하고 있었다고?
헐. 하느님. 사랑으로써 보살펴 달랬지 누가 둘을 사랑하게 해주랬어요.
* * *
이건 너무 급전개야.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서워서 가까이 가기도 꺼렸었던 놈이 지금은….
"아, 쫌. 움직이지 마. 골 울린다."
쇼파에 앉아있는 내 허벅지를 베개삼아 누워있다….
"야, 나 다리 저려어…. 너가 몰라서 그런데 나이 먹으면 이게 혈액 순환이 잘 안돼요…."
"어쩌라고, 아저씨야. 너가 나이 먹은 게 내 탓인가요~ 그럼 뽀뽀 한 번 해주면 깔끔하게 일어날게."
미쳤니…? 됐다. 그냥 이러고 있을래….
김종인은 정말 당황스럽도록 당돌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자기 표현이 확실했고 직설적이었으며 당찼다. 결국 모든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저게 사귀기로 한지 3시간밖에 안된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리니…? 앞으로 고생길이 열린 듯 했다.
사실 김종인을 받아 줄 생각따윈 추호에도 없었다. 아직 어린 종인이었기에 충분히 착각한 것일수도 있었고. 이제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고…. 중요한 시기였다.
그랬던 나를 종인은 키스 한 방에 뿌리채 뒤흔들어 놨다. 그래, 솔직히 좋았다. 시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좋다고 말해버린 게 다다. 18년밖에 안 살아본 새끼가 뭔 놈의 경험이 그리 많은지 입 안을 롤러코스터 타듯 미끄러져 헤엄쳐 다니는데 거기에 혹해버렸다. 결국 대답을 마친 뒤 다시 내가 매달려서 몇 분이나 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불편한 키스를 나눴더랬다. 미쳤지, 미쳤어….
나보다 9살이나 어린 이 아이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나갔다. 후에 이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적어도 나를 속이지 말자. 덮으려 한다고 덮어질 마음도 아니었고, 그래서 내린 결정이었다.
인정했다. 나는 은연중에 저 아이를 걱정하고, 그리워했고, 좋아했다는 것을. 너와 내가 서로 좋아했다. 그 외에 다른 일들은 모두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근데 살 좀 쪄야겠다. 허벅지에 살이 없냐. 뼈 밖에 없으면 나중에 할 때 좀 아플건데…."
"뭐, 뭐가 아파! 뭐, 뭐! 뭘 해!"
"뭐야. 나 아직 아무 얘기도 안 했어. 혼자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변태야?"
물론 생각하다가 머리가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만.
로션 오늘의 비지엠은 투빅의 니 눈 니 코 니 입술(꺆). 입니다. ㅎㅎ 아참, 그리고 오해하시는 분들 있을 까봐 말씀 드려요! 세훈이랑 찬열이는 절대 이어질 일 없어요! 이제 본격 카디.. 너무 먼 길로 휙휙 돌아왔네여. 백현이도 곧 처음 등장할 거예요. 빠르면 다음 편? 아님 다 다음 편 쯤에서요. 오작교가 될지, 아님 장애물이 될지ㅎㅎㅎㅎㅎㅎ.. 한달만에 늦게늦게 들고왔네요......보고팠어요! 그리고 엑소 컴백! 애들 좀 쉬게 해주지........ㅠㅠㅠㅠㅠㅠㅠㅠ 나쁜 수만이. 이번 활동 끝나고 제발 푹 쉬길.ㅠ^ㅠ.. 근데 너무 내 취향 저격 << 너무 이쁘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