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흔들리는 불빛 아래,
그의 고운 얼굴에 분칠을 하던 금옥은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태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이내 손을 멈추고 그의 안색을 살폈다.
이리저리 바라보는 눈빛에도 미동없이 넋을 놓은 그의 모습에 금옥이 태환의 어깨를 살짝 쥐고 흔들어보였다.
"..요 며칠 왜 그러오? 안색이 너무 안좋은데..."
걱정스럽게 묻는 목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태환이 눈을 두어번 깜박이고는 조심히 뺨을 쓸어내렸다.
"별거 아니오... 바느질 일도 있고... 잠을 못자서 그러오."
"아! 전에 들어온 일은 잘 되어가오? 품삯이 꽤 높은 일이라 하던데."
금새 신이 나서 묻는 금옥의 물음에 태환은 입만 벙긋거리다가 곧 다물어버렸다.
몸을 추스린지 얼마되지도 않은 이에게 그런 소식을 전했다가는 걱정만 끼칠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태환은 눈을 지그시 감아내리고 얼른 분칠이나 마저 해달라며 금옥을 재촉했다.
며칠내내 나으리가 맡긴 바느질을 하며 태환은 생각이 많아졌다.
나으리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커져갈수록 태환과 설화 라는 두가지의 인격속에서 그는 갈등하고 있었다.
어찌 그런 사내에게 감히 마음을 내보인 것인지...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나으리가 마음에 품은 설화는 여인이었지만...그를 마음에 품은 설화는 여인이 아니며, 태환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설화의 모습으로 나으리를 다시 마주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보여야 할지 태환은 두려워졌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자신은 그를 향해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대할 용기가 없었다.
다행히 요 며칠간 대화방에 오지 않아 당장 마음은 놓았으나 잠시뿐 일 것이다.
완성된 옷을 그에게 가져다주어야 하고... 그는 그 옷을 설화에게 줄테니까...
...그리고... 그 옷에는 '설화' 를 향한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푸른 달빛을 벗삼아 따스한 차를 마시던 쑨양은 어두워진 마당으로 들어서는 익숙한 그림자 하나에
손에서 찻잔을 내려두고 그를 맞이했다.
굳어진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와 깊이 고개를 숙여보이는 장린에게 쑨양이 가까이 오라 손짓을 하고는
호롱불이 흔들리는 방안으로 몸을 들였다.
"알아보았느냐."
목소리를 낮춰 묻는 그의 목소리에 장린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여보이고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생각보다 빨리 알아내었구나. 고생했다."
"아닙니다."
작은 손기척과 함께 찻잔 하나를 더 내온 하인의 등장에 두 사람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침묵을 지켰다.
잔만 두고 돌아서나가는 하인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쑨양이 장린의 잔에 차를 부어주고는
그의 앞에 밀어두었다.
찻잔을 자신의 앞에 놓아두는 그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장린은 이내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로 시선을 맞췄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자를 찾는 연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잔뜩 흐려진 표정으로 조심히 물어오는 그의 목소리에 쑨양은 미간을 구겼다.
"지금은 말 할 수 없다. 어찌 그러느냐."
다시 되묻는.. 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와 굳어진 얼굴에 장린은 잠시 주저하는가 싶더니 곧 입을 떼었다.
"이조판서의 자제 김재호입니다."
".................."
얼마 전, 숲길에서 마주쳤을때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라 느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이조판서를 많이 닮은 모습이다.
정세를 의논할때 가끔 봤던 그의 얼굴이 김재호에게 남아있다.
...이조판서의 자제라...
한숨을 작게 내어쉬며 입술을 굳게 다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장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과거에 정을 품었던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뒤로 방탕한 생활을 했던 자입니다. 권력으로 뭐든 휘둘렀다
하니... 그에 대해 물을때마다 모든 이들이 말하기를 거부했습니다. 평판이 좋지 않은 자임은 확실합니다."
"..여인...?"
장린의 말속에 섞인 여인이라는 단어에 쑨양이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청루각 기생이었다 합니다. 초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유가 무엇이라 하더냐."
"자세한것은 모르나 김재호가 원인이었던것 같습니다."
"하..."
눈앞에 떠오른 김재호의 서늘했던 눈빛과 함께.. 눈물 짓던 설화의 모습이 겹쳐져 가슴이 내려앉았다.
이마를 짚은채 두 눈을 지그시 감아내리는 쑨양의 모습에 장린은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알았다. 네가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하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는 장린에게 쑨양은 시선을 맞추고는 계속 이야기하라 명했다.
"김재호는 조선 권력의 실세인 이조판서의 자제입니다. 그와 연루되신다면..."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 걱정하지 말거라."
".............."
장린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고 있기에 쑨양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쉬운 상대가 아니기에 그 자신도 걱정은 되었지만 설화를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는 일이다.
여인의 곁에 두기에.. 그는 매우 위험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고 해결을 해야 한다면....."
잠시 깊은 생각에 빠진듯 찻잔만 기울이던 쑨양은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에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에게 부탁할 일이 한가지 더 있다. 그 일만 해결하고... 먼저 청나라로 돌아가거라."
찻잔을 내려놓으며 장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호롱불에 붉게 반사되어 타오른다.
"으으~~~ 다했다!!"
문틈으로 스며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인상을 찌푸린 태환은 피곤한 눈을 비비고 겨우 완성이 된 옷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살구빛 상의와 주홍 빛깔의 치마를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인 그가 혹시 누가 들어오기라도 할까봐
문고리를 단단히 걸어 잠그고 완성이 된 옷을 주섬주섬 챙겨들어 자신의 몸에 끼워 넣었다.
어깨선이며...팔 길이... 그가 따로 부탁한 치마길이까지... 태환의 몸에 딱 맞게 완성이 되었다.
앞으로의 걱정보다 예쁘게 완성된 고운 빛깔의 옷에 마음이 가벼워져 그의 기분이 날아갈듯 상쾌해진다.
대화방에서 다른 여인들에게 빌려 입은 옷은 작고 불편했는데... 치마 길이까지 딱 맞춰진 옷에
자꾸만 입술을 비집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새 옷을 입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던 태환은 다시금 스물스물 떠오르는 생각에
기운 빠진 얼굴로 옷고름을 풀어내고 조심히 하나 하나 벗어 바닥에 내려두었다.
"이것을 받고 넌 어찌하려고 이러느냐. 생각 좀 하자. 생각 좀!!"
한심하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콩- 쥐어박고 수차례 고개를 흔들던 그가 구겨지지 않게 옷을 옆으로 밀어두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하아...이를 어쩌면 좋은가..."
자신을 위해 새 옷을 선물하려는 그의 마음이 고마워 한없이 행복하다가도...
거짓에 감춰진 자신의 모습때문에 솔직해 질 수 없는 신세가 한탄스러워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내이면서 여인의 옷을 선물받고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너무 한심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어 햇살에 반짝이는 금박 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가 바닥에 놓아둔 저고리를 집어들었다.
바구니를 뒤적여 찾아낸 붉은 실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고민을 하는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바늘에 실을 꿰어 저고리 소매끝단을 한번 접어올렸다.
그러고는 심혈을 기울여 붉은 실로 뭔가를 새겨 넣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 꼼지락거리며 뭔가를 하던 태환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뻣뻣해진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나만이 오롯이 알고 있을 징표.
소매 안감에 붉은 실로 정성스럽게 새겨 넣은 '雪花' 라는 이름에 태환은 어느새 무거운 마음도 잊고 베시시- 웃어보였다.
그가 지어주었기에 특별한 나의 또 다른 이름.
손끝으로 그 이름을 매만지며 눈앞에 떠오른 누군가의 얼굴에 저고리에 얼굴을 파묻고 실없이 웃는 그의 귓볼이 붉게 달아오른다.
당장 그를 만나러 가야하는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가슴 벅찬 선물을 받고도 한없이 기뻐할 수 없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태환은 행복했다.
이름이 새겨진 저고리를 다시 고이 접어 치마와 함께 노란 비단 보자기에 꼼꼼히 싸맨 태환은 결려오는 어깨를
주먹으로 살짝 살짝 두드리고 따스한 아침 햇살이 스며들어오는 문앞에 벌렁 누워 늦은 잠을 청했다.
피곤함이 몰려와 스르르 감기는 그의 고운 눈매에 부드러운 반달 웃음이 걸린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오늘의 태환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많이 복잡해진 모양입니다.ㅠㅠ
그럼에도 새옷에 기뻐하는군요~... 너 뭐임? ㅋㅋ
태환의 복잡한 마음처럼 저도 요즘 문장 연결이 왤케 어려운지;
몇번을 수정하다가 그냥 포기한것들이 많아요ㅠㅠ
쿨하게 넘겨주세요~!! 헛
오늘은 햇살이 쨍-해요! 날씨는 춥지만요...휴~
늘 건강에 유의하시고~수능 마치신 자유로운 영혼분들...고생하셨습니다!
모든 짐을 내려두시고...휴식을 취하세요^^
늘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이야기로 다시 만나욧! ♡ 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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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티즈앱 ![[쑨환] 雪花 (설화) 13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8/4/98475decbe2bffa6c6e680a6b62f3b91.jpg)
김의성이 예전에 배우들이랑 일하고 후기 쓴거 여기에 조진웅도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