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아이고~이게 누구십니까!"
관복을 단정히 챙겨 입고 관청을 나서던 한 남자가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잰걸음으로 다가가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짓는 중년 남자의 인사에 쑨양은 걸음을 멈추고는 마주 웃어보였다.
"그동안 별일은 없으셨습니까?"
남자의 인사말에도 그는 여전히 미소로 답을 했다.
"그날 저녁에 곤란한 자리를 마련했던게 아닌가 싶어...죄송했습니다."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남자의 얼굴에 쑨양은 손을 내저어 보이고는 괜찮다고 답을 해보였다.
그제서야 중년 남자의 얼굴이 편안해진다.
술 기운에 사신을 대화방까지 끌고 가긴 했으나 돈만 지불하고 정신을 잃어 가마꾼에게 실려갔던 그였다.
이렇다 저렇다할 변명도 못하고 그를 마주칠 기회도 없어 늘 마음에 걸렸었는데 지금에라도 사과를 할 수 있게 되어
남자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금옥에게 들은 소식이 하나 떠올라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그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이후에도 그곳에 가끔 들리신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귀가 발갛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 쑨양은 괜스레 헛기침만 해댔다.
여주인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며 당상관에게 이야기를 전했을 상황이 상상이 되어 민망해져버렸다.
흠흠..거리며 헛기침을 해대는 그를 바라보던 남자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다음에 다시 뫼시겠습니다.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아..예.."
당황한 그의 기색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는 남자에게 마주 인사를 하고 쑨양은 서둘러 그를 지나쳐 관청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에게 이야기가 전해졌으리라... 거기까진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설화를 보러 간 날들을 그가 알고 있음에 쑨양은 크게 당황해버렸다.
기방도 싫다..여인도 싫다.. 그리 거절하고 또 거절을 했건만.
조금 전 자신을 향해 내비친 그의 알 수 없는 미소가 다시 떠오르자 얼굴이 터질듯이 붉어져온다.
상기된 뺨을 매만지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을 향해 인사를 건네오는 이들에게 웃으며 답을 해주고 쑨양은 빠른 걸음을 내딛었다.
사나흘이 지난 듯 했다.
그날 이후로 집에만 틀어박혀 잔뜩 쌓인 바느질거리를 해결하던 그가 결리는 어깨를 풀어보려 잠시 옷감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점점 짧아지는 해 때문에 작은 방안에 짙은 땅거미가 스며들어오고 있다.
가만히 그 어둠을 바라보던 그는 생각하지 않으려던 그곳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없이 장사는 잘 되고 있을까... 혹, 김재호가 찾아와 여주인에게 해를 끼치진 않았을까...
아니면...........'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오진 않았을까........
갑작스러운 궁금증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그 생각들과 함께 떠오른 얼굴 하나에 태환은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가 곧 차갑게 지워버렸다.
며칠이 지나도록 별일이 없는걸 보면 이제 그만 걱정을 놓아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가슴 한켠이 쓸쓸해져온다.
그런 생각들을 잊어보려 고개를 크게 내저은 태환은 어두워진 방안에 빛을 밝히려 호롱에 불을 붙이고 바닥에
내려둔 옷감을 다시 집어 들었다.
"시간내에 하려면...집중을 해야지...흠~"
충혈된 눈을 두어번 깜박인 그가 다시 바느질을 시작하려던 찰나,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조용히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에
번뜩 고개를 들어보였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숨을 죽이고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낯익은 목소리에 집중을 하고 들어보니.. 이게 누구인가.
대화방 여주인의 딸아이 목소리가 아닌가.
이 시간에 자신을 찾아와 애타게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에 태환이 벌떡 몸을 일으켜 문을 밀어 열자, 보따리 하나를
가슴에 끌어안은 아이가 얼굴 가득 땀범벅을 하고 커다래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서있다.
"너..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로.."
태환의 얼굴을 확인한 아이가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묻는 말에 대답도 없이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섰다.
"오라버니...도와주세요.."
땀으로 얼룩진 얼굴에 곧 굵은 눈물 방울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손을 붙들고는 무엇을 도와달라는 건지 자세한 말도 없이 애원을 한다.
태환은 일단 아이를 진정시키려 자리에 앉히고는 엉엉 우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여 달랬다.
"이 시간에 어찌 온 것이냐. 혹, 대화방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게냐?"
"흐...흑....그자가 찾아왔습니다...어머니가 알리지 말라 하셨는데... 그대로 두면 아니되어요...오라버니가 좀 도와주셔요."
'그자' 라는 말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태환의 손을 꼭 붙잡고 애원을 하는 아이의 울부짖음에 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김재호를 말하는게냐? 그 자가 찾아온 것이냐?!"
아이의 어깨를 붙들고 강하게 묻자 굵은 눈물 방울을 훔쳐내며 아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며칠동안 잠잠하다 싶었더니... 우려하던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아이의 가슴에 꼭 끌어안긴 보따리를 받아 펼쳐보니 정신없는 와중에도 태환이 입어야 할 기녀복을 챙겨 온 모양이었다.
여전히 두 눈에 눈물을 뚝뚝-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태환은 주먹을 꼭 쥐었다.
"넌 이길로 집에 돌아가거라. 너의 어머니에겐 내가 가겠다. 걱정...하지 말거라."
"오라버니...고맙습니다...정말...고맙습니다........"
"내가 갈터이니..넌 돌아가거라."
태환의 두 손을 붙들고 놓을줄 모르는 아이를 달래어 보내고 태환은 서둘러 아이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었다.
치마단이 짧아 발목이 들어나는 탓에 치마 중간에 끈을 둘러 묶고 분칠을 할 시간이 안되어 전모를 머리에 쓰고 급히 집밖을 나섰다.
다행히도 날이 어두어져 자신을 알아볼 이가 없어 태환은 잰걸음으로 마을을 벗어나 숲길로 내달렸다.
제발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를... 별일이 없기를...태환은 바라고 또 바랬다.
아이의 울던 모습이 가슴에 박혀 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숨이 가빠온다.
"말하라... 그 계집은 어디에 있느냐."
"나으리...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날 이후로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다."
"네 년이..지금 누구 앞에서 거짓을 말하느냐."
"아닙니다...거짓이 아닙니다. 그 날 이후로 그 아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피가 맺힌 입술로 그의 발 아래 엎드려 한없이 비는 여인의 말에도 그는 협박을 멈출줄을 몰랐다.
여인이 모른다 하면 할수록 그의 화를 돋우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이미 머리는 엉망이 되어 헝클어졌고 그의 험한 손길에 여인의 저고리는 찢겨져 있었다.
그가 여인을 해하던 모습을 물끄러미 훔쳐만 보던 사내들은 눈치만 보다가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한채 하나 둘 대화방을 떠난지 오래였다.
한적한 산 속, 여인에게 고함을 쳐대는 그의 살기 띈 목소리만이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내가 무엇을 더해야 그 입을 열겠느냐. 이곳에 불이라도 질러야 그 입을 열겠느냐!"
"아이고...나으리...제발...제발..."
그의 발 아래 기어다니며 두 손을 싹싹 비는 금옥의 얼굴에 다시금 거친 손길이 가해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인의 피맺힌 입가가 붉게 부어오르며 바닥으로 고꾸라져 정신을 잃었다.
"감히...감히...!!!"
분을 삭히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던 그가 몸을 숙여 정신을 잃은 금옥을 거칠게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행동을 멈추었다.
"지금..뭐하는 짓입니까?!"
어두운 숲 길에서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의 얼굴에 김재호는 그제서야 금옥에게서 손을 떼어냈다.
"그래..올 줄 알았다..."
비틀어진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자신을 반기는 그의 모습에 선월은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었다.
그의 발 밑에 힘없이 쓰러져 누워있는 금옥을 발견하고 잠시 그에게서 시선을 거둔 선월은 곧장 달려가 금옥의 상체를 안았다.
붉어진 입가에 피가 맺혀 퉁퉁 부어오른 모습에 그의 잔혹함이 온몸으로 느껴져 소름이 끼쳤다.
금옥을 부둥켜 안고 붉어진 두 눈으로 그를 매섭게 바라보는 선월의 눈빛에 김재호는 피식- 웃어보였다.
"사람을 이리 만드시고...지금 웃음을 보이시는 겝니까?"
비틀린 웃음을 흘리며 피가 묻은 손등을 두루마기자락에 슥- 닦아내고는 그가 천천을 걸음을 옮겨 여인을 안고 있는
선월에게로 다가가 몸을 낮췄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매섭게 바라보고 있는 선월의 턱을 세게 움켜쥐었다.
"네가 그리 도망가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어찌 이러시는 겁니까. 나약한 여인에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자신의 턱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을 매서운 손길로 쳐낸 선월은 피가 베어나오도록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럼에도 김재호는 여전히 선월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웃어주는건 바라지 않겠다. 하나, 말없이 사라지는것은 용서치 않겠다. 내가 원할때 너를 보러 오면... 넌 이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선월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떠올렸다.
조금 전 두려움이 앞서던 눈빛이 아닌.. 어느새 어두워 탁해진 눈빛으로 자신을 짐승보듯 바라보는 시선에
김재호는 누군가가 겹쳐보여 가슴 한켠이 따끔거렸다.
상기시키고 싶지 않은 그 눈빛에...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는 누군가의 얼굴에...
김재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야....그만 하시겠습니까...?"
잠시 떠오른 누군가의 모습때문에 선월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자
입술을 깨문 선월이 다시금 또박 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저까지 목을 매어야 그만 하시겠습니까?"
"........!!!........"
자신의 한 마디에 움찔하며 흔들리는 눈빛을 보이는 그의 표정에 선월은 다시 입을 떼었다.
"제가 목을 매어야 저에 대한 집착을 버리시겠습니까?!"
"..............닥쳐라..."
어두워진 눈으로 뚫어질 듯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김재호는 견딜수 없이 화가 치밀어올랐다.
눈앞에 있는 계집이...계집의 싸늘한 눈빛이...
예전 초연을 떠올리게 해 가슴 한켠이 미어져왔다.
"그런 눈으로...나를.. 보지 마라."
".................."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지 말란 말이다!!!"
선월을 향해 악을 쓰는 그의 눈가가 조금씩 붉어지며...
어느새 두 눈동자에 뜨거운 눈물이 조금씩 차오른다.
[제가 바랬던 것은... 나으리의 온전한 사랑이었습니다.
하나, 그것을 주실 수 없음을 저는 압니다.
제가 감히 원해선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원한다해도 가질수 없음을 알기에...
.....외면할겁니다.
나으리가 저에게 무슨 짓을 하셔도... 저를 향한...나으리의 마음을...
그리고..... 나으리를 향한 제 마음을... 외면할겁니다.]
"나으리께선 저의 무엇을 얻으셔야 그 욕심을 버리시겠습니까."
"나는...! ..........너의 마음을 원한다."
진실된 눈빛으로 일렁이는 그의 눈동자를 차마 마주할 수 없어 초연은 시선을 피했다.
치맛자락을 붙든 손에 땀이 베어 축축하게 젖어드는데 자신을 향한 시선을 거둘줄 모르는 그 때문에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내가 무엇이라고...내가 대체 무엇이길래...
귀한 분께서 이리 매달리시는 겁니까.
저를 마음에서 놓으셔야 합니다. 이제 그만...놓으셔야 합니다...
차마 입속에 맴도는 그 말은 하지 못하고 애써 그의 시선을 피하는 초연의 두 눈가가... 점점 뜨거워져온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오늘은 김재호 과거의 '초연'의 속내가 조금 드러나네요...
반전..? 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감기때문에 끙끙거리다가 이제 왔어요.
머리가 띵~해서 오늘도 한참 헤매다가 완성했네요ㅠㅠㅠㅠㅠㅠㅠ
모두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김재호 과거를 빨리 터트리고 진도를 빼야하는데!!!
우리 쑨양은 코딱지만큼 나오고!! ㅠㅠ
지루하다고...도망가지마세요!ㅎㅎㅎㅎㅎㅎㅎㅎ
다음이야기로 다시 만나요~되도록 빨리 가지고 오겠습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제 글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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