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향기가 퍼지는 순간
김종인, 평생을 바칠 사랑을 만났을 때 그의 나이 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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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아니, 그냥 그랬다.
나의 부모님은 두 분다 남자셨다.
생각해보면 기억이 있을 때부터 여자라는 존재가 내게 없었다.
그렇다고 아빠만 둘이였던건 아니였다.
두 분은 엄마와 아빠의 경계선을 남자와 여자로 긋지 않았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면 엄마였고, 아빠라고 부르면 아빠였다.
그만큼 두 분은 내게 있어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주지 않으셨고, 나 역시 그것을 이상하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마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연인이 내 옆에 있는 걸 보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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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인아, 여기야. "
" 여기? "
" 응, 앞으로 종인이가 다닐 유치원. "
" 뉴치언? "
" 유치원. "
어눌한 말투로 아빠의 손을 꼭 잡은채 앞으로 자신이 다닐 유치원 앞에 서 있는 꼬마아이.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면서 선생님을 맞이한다.
" 아! 안녕하세요 종인이 아버님 "
" 아, 예. 이 녀석 잘 좀 부탁드려요. "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아이의 아빠가 아이를 뒤로한채 떠났지만
아이는 울지않고 의젓하게 선생님을 따라 들어갔다.
" 자아- 여러분, 오늘 새 친구가 왔어요. 종인아? 자기소개 해볼래? "
" 김쫑인이야. "
지읒 발음이 어려웠던지 세게 강조해 말하는 바람에 이상한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신경쓰지 않고 씩씩하게 인사를 한 아이.
이제부터 함께 지내게 될 친구들을 둘러보다가 눈이 크게 떠진다.
" 나 저기 안자야해요. "
" 응? 어디? 경수 옆에 말하는거니? "
" 응. 경수. "
선생님의 옷을 잡아 늘리며 억지를 부린 아이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 경수! "
" 뭐야 넌. "
둘의 첫 만남이였다.
.
처음부터 경수랑 사귄건 아니다.
경수는 오히려 날 싫어했다.
그랬겠지.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며 시도때도 없이 고백을 해댔으니.
한번도 놓을 생각이 없었던 경수를, 딱 한번 포기하려했던 적이 있었다.
.
" 도경수!! 도경수!! 꺅!!!!! "
" 우와아!!! "
누구나 할 것 없이 운동장 한 가운데에 놓여진 무대를 둘러싸 한 아이의 이름을 외쳐댄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나오는 한 소년.
도경수.
노래를 꽤 잘 부르는 덕에 3년 내내 학교에서 축제가 있을 때마다 참가해 노래부문 상을 다 휩쓸어버렸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둔 중요한 마지막 축제를 망쳐버렸다.
" 도경수야-!!!!!!!! 내 애인 잘생겼다!!!!!!!!!!!! 이쁘다!!!!!!!!!! "
김종인 때문에.
.
경수가 노래를 부른다.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
맑은 숲 속에서 듣는 꾀꼬리의 지저귐같은 듣기좋은 소리.
이번에도 어김없이 축제에 참가한다길래 노래자랑이 시작하기 두시간 전부터 맨 앞자리에 앉아 경수를 기다렸다.
다른 녀석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내 아름다운 천사가 걸어나온다.
노래에 맞춰 소리를 빽빽 질러대다가 빠르게 빠져나와 아이가 좋아할 꽃을 한다발 샀다.
좋아하겠지.
좋아할꺼야.
" 좀!!!!!! 짜증난다고 김종인!!! "
" ...어..? "
친구랑 얘기 중이던 그의 어깨를 톡톡 건드려 날 보게 한뒤 감추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들어 사랑한다며 축하하자
웃고있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버린다.
" 창피해!!! 너 이러는거!! 언제까지 날 게이로 만들어 놓을 셈이야!! "
" ..야.. "
" 싫어!! 너 나한테 왜그래!! 니가 이러는거 나는 싫다고! "
주변이 다른 새끼들로 꽉 차기 시작한다.
구경꾼.
시발새끼들.
나와 경수를 번갈아가며 보더니 킥킥 웃기 시작한다.
그걸 본 경수의 눈에 눈물이 찬다.
하얗고 맑은 그 눈망울에, 그 착한 마음만큼 깨끗한 눈안에서.
나를 향한 원망이 담긴 눈물이 가득 고이다가 결국 툭. 하고 떨어진다.
그래. 나 때문에 힘들어했다.
싫다는 표현을 했는데도 모조리 무시하고 내 사랑만 보여줬다.
경수는 동성애자가 아니였다.
여자를 좋아했고, 연애도 하고싶어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찾아가서 자리를 뒤집어 놓은 나때문에
결국 경수 주변에 남아있는 여자는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그렇게 지켜왔던 사랑인데.
몇 년째 홀로 버텨왔던 마음인데.
오늘 처음으로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크게 울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며 눈물만 흘리는 아이를 봤다.
그의 까만 눈동자에 담긴 내가 너무 미웠다.
왜 이렇게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을까.
" 도경수."
" ...왜. "
" 하나만 묻자..."
" ...... "
" 정말 내가 이러는거 싫냐? "
흔들리는 눈동자가 내 눈에 보여.
빠르게 바뀌고 있는 너의 표정이 보인다고.
아니라고 해줘.
사실은 너도 날 사랑했던거야. 그렇지?
" 응. 싫어. "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게 사실이였나보다.
이렇게 아프게 포기하게될 것을 미리 알았다면 난 널 사랑하지 않았을까.
" 그래. 여태껏 싫은데 받아줘서 고맙다. 앞으론 이런 일 없을거야. "
손에 들고있는 꽃다발을 던지듯이 바닥에 놓고 뒤를 돌아 학교를 나와버렸다.
.
" 야, 그거 들었어? 김종인 완전 망가졌다던데. "
" 아냐, 걘 원래 그랬는데 도경수가 있어서 그나마 괜찮ㅇ...야야, 저기 지나간다. 쟤가 도경수임. "
" 그럼 쟤도 게이야? "
" 글쎄, 모르겠는데. 물어볼까? "
" 됐어...예전에 못봤냐. 괜히 장난친 옆 반 남자애 반병신된거. "
" 누가 반병신을 만들어놨대? 도경수가? "
" 아니. 김종인이. "
남자아이들의 목소리로 가득찬 복도에 도경수가 홀로 걸어간다.
수업 종이 치자 하나, 둘 반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경수 역시 그러려고 했다.
누군가 뒷통수를 세게 친 뒤 입을 막고 끌고가기 전까지는.
" 읍....!! 으으...읍!!! "
" 야.. 얘봐라. 이러니 김종인 그 새끼가 미치지...킥킥... "
허리를 쓰다듬는 차가운 손길에 벌벌떠는 아이.
" 야.. 얘 김종인이 안건드렸나봐. "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가려진 눈 사이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김종인. 김종인.
도경수의 머릿속에서 끝없이 그를 찾는다.
.
경수가 사라졌다.
수업시간이 됬는데 아이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옆 분단 남자새끼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학교를 뒤집어 놓을까 생각중이다.
" 도경수!!! 어디있어!!! 시발!!!!! "
그렇게 소리치며 달리고 달리다 오래되어 안쓰던 창고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길래 문을 열었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 했다.
나로인해 끝없이 힘들어하는 아이.
개새끼들에게 둘러싸여 옷이 반쯤 벗겨진채로 농락당하고 있는 내 사랑스러운 아이.
죽여버리려고 했다.
아이를 만진 손을 잘라버리고
아이를 향해 역겨운 말을 뱉었을 입을 찢어버리고싶었다.
잔인하게 짓밟던 도중 바지 끝을 잡아오는 손길에 모든 동작을 멈췄다.
" 으..으으읍....으..... "
내가 멈춰있자 개새끼들이 도망간다.
이미 늦었어 새끼들아. 얼굴 다 기억해.
시선을 아래로 두자 입이 막히고 눈을 가리고 손과 발이 결박당한 경수가 보인다.
조심스럽게 손을 대자 뒷걸음치는 아이.
미안해.
내가 미안해.
사랑해서 너무 미안해.
아이를 꼭 끌어안아 품에 넣자 무서웠던지 도리질을 치며 소리를 지르려 애쓰는 아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이자 숨을 흡- 하고 들이키며 반항을 멈췄다.
" 괜찮아. 경수야. 괜찮아. "
아까와는 다른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한다.
손과 발을 묶고 있던 끈을 풀렀다.
입을 막고 있던 천을 풀었다.
눈을 칭칭 감고있던 천까지 풀어내리자 날 보고 엉엉 울기시작한다.
아이를 꽉 끌어안다가 놓았다.
내가 떨어지자 불안한듯 품에 파고드는 아이를 떼어놓았다.
도경수. 미안해.
날 용서하지 마.
" 내가 그렇게 싫다더니 나 없으니까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네? "
" 흐으...흐읍... "
" 게이취급 받으면서 이렇게 살기 싫으면 똑바로 행동하고 다녀 병신아. "
" ....... "
" 귀찮아 죽겠네. 짜증나니까 꺼져. "
거칠게 그를 일으켜세워 문 밖으로 내쫓아버리고 문에 기대어 앉았다.
이젠 제대로 정이 떨어졌을거다.
마음에 없던 소리를 뱉는동안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마지막일지도 모를 경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로 지켜줄 수 없다.
더 이상 이렇게 찾아줄 수 없다.
이제부터 혼자 이 수모를 겪어야 할 경수를 생각하니 내가 죽을 죄인이였다.
무릎에 고개를 박고 엉엉 울어버렸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며칠이 지났을까.
망가져버린 내게 경수가 다가온다.
낯선 내 모습에 두려워 하면서도 멈추지않고 나에게 온다.
" 할 말...있어....종인아....학교 끝나고 ...우리.....그....놀이터에서 보자. "
" 난 너랑 할 말 없어. "
" 기다릴께.."
.
시점이 계속 바뀌느라 힘들죠?
저도 힘듭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똑똑하니까...그래도 스토리는 이해가 가죠?
(안가면 안돼는데)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카디입니다 (의심미)
근데 좀 슬프네요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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