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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어,박찬열!"


조금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자극했다.누구지?궁금함에 고개를 들었는데 내 앞에 다가오고 있는 저 얼굴은 세훈이 틀림없었다.놀라 찬열을 쳐다보는데 찬열은 별로 놀랍지 않은 표정이다.오세훈은 금세 그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오더니 내 바로 앞에 서서 얼굴을 떡하니 들이밀었다.그 멍한 듯 얄쌍한 눈이 나를 진득하게도 오래 향하더니,곧 이내 눈을 크게 뜨며 급기야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한다.

 


"변백현이네?"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그 음색에 나도 모르게 응,하고 대답해버렸다.세훈은 나를 신기한 것 보듯 몇 번이고 확인하더니 이내 찬열에게 뭐야?하고 무미건조한 음성을 탁 뱉어냈다.뭐야-라니.그것은 아마 날 보고 찬열에게 묻는 말같았다.

 

 


"뭐긴 뭐야."
"너 백현이랑 놀아?"

 


백현이-친구 부르는 듯 친근한 그 말에 나는 한 번 더 움츠러들었다.세훈은,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기억..못하는건가.하지만 내 얼굴과 이름은 기억하는 것을 보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닌 것 같았다.나는 눈을 도르르 굴려 세훈에게,그리고 또 찬열에게 자연스레 향했다.너 백현이랑 놀아?그 말의 참 의미는 무엇인지,난 잘 알 수가 없어서 그저 평범한 물음이라고 정의내렸다.

 


"니가 뭔 상..뭔 문제있어?"
"..아니?"

 


세훈이 찬열을 바라보다가 무엇이 웃긴지 약간 비소를 띄며 아니-하고 말했다.무언가 눈빛이 오가는데 난 그것이 궁금해 세훈을 힐끔거렸다.


"어디 가냐 둘이?"
"집에"
"왜?"


세훈의 묘한 눈이 날 향했다.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딱히 나에 대한 중학교시절 기억이 없는 것 같아 생각보다 마음이 안정됐다.찬열이 나를 한 번 훑더니 세훈에게 말했다.

 


"놀려고-"
"그래?"

 


그럼 나도 데려가.
세훈이 순간 작게 미소짓더니 그렇게 말하고는 내 옆으로 와 어깨에 팔을 걸쳤다.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았는데 꼭 친한 친구를 보는 듯한 표정에 나는 너무 의아해졌다.가자 가자.그가 막무가내로 내 어깨에 팔을 걸친 채 앞으로 전진했다.찬열이 끌려가는 듯한 모양새의 나를 보고 곧 걸음을 맞춰 걸어오더니 세훈에게 눈짓을 보냈다.

 


"너 왜 백현이한테 친한 척하냐?"

 


평소 말투와는 조금 다른 어조였다.하지만 왠지 그것이 좀 더 친구스럽고 안정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세훈이 그런 찬열의 반응이 우스운지 한 쪽 입꼬리를 올려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더니 우리 먼저 가자.하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이걸…친화력이라는 표현을 써야하는 걸까 나는 심각히 고민했다.찬열이 인상을 찡그리며 따라 빠른걸음으로 걸어오더니 뭐냐고 너?하고 진심어린 짜증섞인 물음을 던졌다.

 


"김종인 친구면,나랑도 친구지."

 

..뭐?난 그의 허무맹랑하고도 소름 돋는 그 말에 눈을 댕그랗게 뜨고는 그를 올려다봤다.내 이런 반응을 무엇으로 생각한건지 그렇지?하고 눈을 접어 웃어보이는데 소름이 쫙 돋았다.김종인과 내가 친구라고?나는 소름 돋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그의 기억이 얼마나 심하게 덧칠된 것인지,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나와 그의 관계를 잘 몰랐던 것인지 난 금세 궁금증이 물 밀듯 쏟아졌다.어쨌거나 중요한 것은,세훈은 날 김종인의 친구로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기억도 잘 못하더니 친구는 무슨"

찬열이 비꼬았다.세훈은 별 상관않는지 날 보며 그나저나 너 얼굴이 좀 귀여워졌니 키가 그대로니 마니 말을 별로 안하는 듯 하면서도 은근하게 말을 걸어댔다.난 문득 찬열과 세훈이 담배 피던 그때 그 모습이 떠올랐다.그리고 다시 세훈을 쳐다보았다.없다,아무것도….긴장감도 위화감도,어떤 것도 없는 그 느낌에 나는 다시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왜 그렇게 쳐다봐?세훈이 궁금한 듯 물었다.아냐-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세훈은,생각보다 나쁜 애같지는 않아보였다.

 

 

-


찬열의 집엔 예상과 다르게 찬열의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다.어,또 어딜 간거야 엄마는.찬열이 중얼거렸다.끼어들어온 세훈이 잘 됐네 편하고-하고 거들었다.그는 자기 집에 온 것인냥 편하게 소파에 다리를 쭉 뻗어 눕고는 리모콘으로 자연스럽게 TV를 틀었다.그 모습을 본 찬열이 네 집이냐고 세훈을 발로 차는데 그 모습이 너무 색달라서 나는 조금 신기했다.그나저나 집에 오자 마자 화장실이 가고 싶었는데 남의 집에 들어오자 마자 화장실을 가기도 그렇고,참을까 하고 세훈의 옆에 앉아 TV를 같이 시청하다가 도저히 방광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결국 화장실 좀 쓰겠다고 말하고는 화장실로 달려왔다.

 


"근데 박찬열 너는,변백현 쫄따구임?"
"뭔-지랄이야"
"오랜만에 봐서 잘 모르는 걸수도 있는데,쟤 존나 소심하잖아.근데 왜 그렇게 설설 기냐 너 꼴이 찌질이같던데 완전..착한 척도 하고"
"시발 뭐?"
"뭐 말할라다가도 눈치 보고 그런거 다-보임"

 


다 들리거든….나는 손을 씻으며 입술을 잘근거렸다.둘이 계속 그런 류의 대화를 주고 받으며 욕설이 자연스레 오고가는데 이 문을 열고 나가야하나 심히 고민이 됐다.둘의 대화는 참 자연스러웠다.보통 일반 남고딩들의 대화같았다.그럼 나는?찬열과 꽤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비교해보면 세훈처럼 저렇게 자연스럽고 '친구'스러운 대화는 아닌 것 같았다.그러고 보면 세훈은 나와 같은 중학교를 나왔는데 찬열과 어떻게 친해졌으며 어찌 저리 친해보일까-내심 부럽기도 하였다.

 


화장실 문 바로 앞에 서서 그들의 잡음 섞인 대화를 듣자 하니,찬열의 욕설도 조금 익숙해졌다.수긍하진 못했지만 이해는 할 수 있었다.찬열이는,아직 나와 덜 친한 것이구나.아니면 내가 너무 소심해서 꺼려진다던가….한 번도 찬열과의 우정을 부정해본 적이 없었는데 비교할 만한 '세훈'이라는 대상이 나타나니 역시나 대조되는 느낌에 조금 씁쓸해졌다.찬열이는 나보다 세훈이랑 더 친하구나-이렇게까지 연결이 되자,나는 조금 라이벌의식을 느꼈다.

 

 

"아,나 변백현 중학교때 일 기억나는 거 하나 있어"

 


뭐?난 순간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갈 뻔 했다.하지만 곧 차분하게 들려오는 찬열의 뭔데?하는 집중한 목소리에 금세 불안해졌다.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나는 불안해서 손톱을 깨작깨작 깨물었다.

 

 

"김종인 전학 가기 전에 있잖아,가기 하루 전 날인가"
"어어"
"그 날 쟤한테 빵인가 뭔가 아무튼 뭘 사다줬어.그때 그 미친놈이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뭐 원래 좀 이상한 놈이니까 하고 그러려니 했는데"
"근데 뭐"
"근데 그거 받고 백현이 울었다?"
"..어?"
"몰라 왜 운지도 모르겠는데,김종인 전학 갈 때 마지막으로 가기 전에 반에 들려서 딱 주는 걸 봤는데 막 울더라."
"백현이 원래 잘 울어?"
"나야 모르지,아무것도 몰라 난.아무튼 그렇게 김종인이랑 애들이랑 같이 마지막으로 하교했지.몇 번 많이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은 이게 제일 선명하게 남"
"..."

 

 

세훈의 마지막 말까지 듣자 잔뜩 소리에 집중해있던 몸에 긴장이 스르륵 풀리면서 그때 일이 상기됐다.잠시 잊고 있었지만 다시 떠오르니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그에 대한 기억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이것은 조금 남달랐다.뭔가,얼룩덜룩 잔뜩 덧칠되어 미화된 추억같았다.난 중학교시절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매일 소보루빵,소보루빵이 아니면 모닝빵을 먹었었다.엄마가 아침을 챙겨주지 않았기에 그랬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내가 가져온 빵들이 어느 날 한 번 빼앗긴 뒤로는 내가 아침에 빵을 가져올 때마다 당연한 권리인 냥 빵들을 빼앗겨서 남에게 아침을 내어주는 꼴이 되었다.가져오지 않으면 내 아침을 왜 안가져왔냐고 말도 안되게 화를 내는 통에 나는 꼬박꼬박 챙겨왔었던 것 같다.그게 누구인지는…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랬다,내가 그렇게 언제부턴가 매일 자연스레 아침을 빼앗기며,또 괴롭힘을 당하며 지나가는 듯 했던 중학교 2학년 왕따시절,갑자기 '그'가 전학을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그'의 그 소식에 슬퍼할 입장은 못되었다.오히려 반대라고 하면 이해가 갈지도 모르지만.나는 그 소식에 남 몰래 작은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그렇게 꾸역꾸역 버티다가 종인의 전학 가기 하루 전날이 성큼 다가왔고,난 그의 친구들이 그를 격려하는 것을 저 너머로 들으며 자리에 가만히 앉아 멍 때리고 있을 뿐이었다.그렇게 가만히 앉아있는 내 앞 책상에 무언가 던져졌는데 그것이 종인이 준 빵이었다.정확히,뭐라고 했었더라….난 그 빛 바랜 기억을 다시 변색하려 애썼다.

 

먹어.

그리고,

나 이제 간다.
였었나….

 

그 무미건조한 말투와 다르게 곱게 포장된 빵을 보고 있자 하니 너무 맞지 않는 상황인 듯 해 '그'를 올려다보았는데 평소의 그 표정이었다.냉기 어린,또 알 수 없는 그 표정에 나는 다시 흠칫했었다.그러자 그 번듯한 얼굴이 무언가 틀어지는 듯 하더니 곧 종인의 입술이 매끄럽게 작은 호선을 그렸다.나는 또 그 모습에 얼이 나갔었다.그렇게 정신이 나간 듯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눈을 깜빡이다 다시 그 포장된 빵을 보자 무언가,아직도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무언가가 북받쳐올라 목까지 차올랐다.삼켜내려고 했지만 결국 끝까지 차올라 눈물 몇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왜 그랬을까?

 


난 그 당시 알 수가 없어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지만,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었다.그렇게 눈물 흘리는 나를 뒤로 한채 친구들과 하교하는 종인을 텅 빈 교실 안에서 창문 너머로 바라보고 있자,나는 참으로 시원하면서도 안타까우면서도 또 그리 깔끔치못한 감정이 물 밀듯 밀려왔었다.분명 난 '그'때문에 고통스러웠고 숨이 막혔었는데,어쩐지 종인의 텅 빈 뒷모습을 홀로 바라보고 있자니 무엇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지금의 난 이렇게 이해했다.아-그래,'그'도 사람이라고 내가 불쌍하긴 하였나 보구나.난 또 그 동정에 혹해서 눈물을 짜낸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하지만,무언가 반쯤 부족한 해석이었다.무엇이 어찌 되었든,중학교 2학년 초가을- 그는 나에게 '나 이제 간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학을 갔었다.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다리 아파.난 그 기나긴 회상을 끝내고나서야 화장실 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꽤나 오래 되었다고 직감했다.결국 화장실 문을 열고 내가 거실로 나오자 세훈과 찬열의 시선이 곧바로 내게 향했다.세훈의 그 맹한 듯한 눈초리에 왠지 언짢아지는 느낌이었다.

 

 

 

"똥 쌌냐?화장실에서 도대체 몇 분을 있는거야-"
"...."

 


너네때문이잖아.세훈은 자기가 말을 하고는 웃긴지 찬열을 툭툭 치며 낄낄 웃었다.그런 세훈을 보고는 인상을 조금 찌푸리자 농담-하고 다시금 웃어보인다.아까 종인의 기억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세훈이 그런 것도 기억할 정도면,다른 일들도 기억하지 않을까-나는 걱정됐지만 세훈은 전혀 그런 것을 알고 있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난 세훈을 계속 눈치 보며 있다가 찬열의 옆에 앉았다.언제 가져온 것인지 과일들이 놓여져 있길래 사과 하나를 집어들어 베어물었다

 


"..아,궁금한 게 있는데"
"나?"
"응."
"뭐?"
"..찬열이랑,언제부터 친한거야?중학교때 다른 학교였잖아."
"아-"

 


초등학교때 친구였거든.난 그 말에 아….하고 말을 멈추었다.그렇네,초등학교때 친구인데 쭉 친하게 지낼수도 있는건데 그걸 생각 못했다.그러고 보면 연지랑 나도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인데 말이다.문득 생각하다 연지가 떠오르자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예전만큼 친하게 지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아무튼,둘은 그렇게 따지면 연지와 자신만큼 오래된 친구인데 왜 제가 연지와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였다고 했을 때 그렇게 놀랐던 것일까?

 


"쭉 친했던 건 아니고,초등학교 예전 반카페에서 연락이 닿아서 중학교때 다시 친해진거야"
"뭐 그렇지."

 

 

아-나는 그제서야 납득했다.언제 양말도 벗은건지 소파 끝부분이 꼼지락거리는 세훈의 발이 보였다.어떻게 남의 집에 와서 저런 짓들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하지만 곧 자신도 같이 집에 가자며 내게 어깨동무하던 모습이 생각나 그러려니 이해했다.찬열이 잡생각을 하는 내 모습이 영 심심해보였는지,심심해?하고 물어왔다.

"어?아니 별로.."
"난 심심해"
"너말고"
"마침 세 명인데 보드게임할까?아니면 영화라던가.."
"진짜,니 집이냐고"

 


찬열이 어이없는 듯 작게 실소했다.세훈이 내 집이다 어쩔래 새꺄-하고 발을 흔들거렸다.그 둘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샘나는 느낌이었다.나도 찬열이랑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러운 친구처럼 대화하고 싶은데,하는 마음이 들었다.언젠가 나도 저렇게 찬열과 자연스레 웃으며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찬열과 저 사이에 형식적인 것이 있는 듯한 느낌이 적지 않게 드는 것이 이유였다.

 

 


찬열이 그럼 영화나 볼까,DVD 있어 하고 TV밑 서랍에서 DVD를 꺼내들었다.세훈이 빨리 보자고 재촉해댔다.둘만 있어는 봤지만 남자 셋이 모여있으니 뭔가 색다른 느낌이었다.그것도,친구 둘.나는 그 조금 어색하고도 좋은 느낌에 얼굴에 웃음기가 조금 번졌다.좋다-이렇게 친구'들'이랑 있는 것도.고등학교 2학년,그제서야 처음 느껴본 그 새로운 느낌에 난 조금 들떴다.

 

* *

BGM-tales weaver ost-reminiscence

드디어 100kb 돌파..힘들었네요ㅠㅠ시간 없는데 정말 쪼개서 썼어요..

완결까지 그래도 적어도 2주 이상은 넘게 걸릴 것 같은데..완결나면 텍본으로 올리겠습니다~!

다음편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주 주말이나,또는 다음주 평일쯤에 나올 수 있어요..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백현이의 중학교시절엔 또 어떤일이 있는건가요?!ㅠ세훈이와 종인이 백현이를 괴롭히던 애들이였을까요...
12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운건 백현인데 왜 제가 괜히 슬프죠?ㅠㅠㅜㅠㅠㅠㅠ왠진 모르지만 뭔가 이상하게 기분이 슬픈데ㅠㅠㅜㅜㅠㅠㅠㅠㅠㅠㅠㅜㅜ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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