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시리즈 (부제 : 녹음실 그 남자, 스튜디오 그 남자)
세훈x준면
episode 1. 녹음실의 그
[세훈씨 스케줄 비어요?]
세훈과 평소에 친분이 있는 잡지사의 편집장으로부터 참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스케줄을 묻는 것으로 보아, 사진 찍을 거리가 생겨 일정을 맞춰보려는 것 같았다. 예전에 몇 번 잡지에 실릴 화보 같은 것을 촬영할 때마다 도와준 적이 있어서 그런지, 소속된 사진작가를 두고 굳이 세훈에게 연락을 하곤 했었다. 특히 스튜디오가 아닌 외부에서 촬영을 할 때 말이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붙여가며 물어오는 것을 보니, 세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때마침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 사진전도 마무리 단계이기도 해서 세훈은 답장 대신에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편집장은 마치 세훈의 연락을 기다리기라도 하고 있던 사람처럼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어 세훈씨, 카톡 봤어?"
"아 네. 마침 이제 백수생활로 돌아가는데, 잘 되었다 싶어서요."
"-그래? 다행이다. 혹시 작곡가 김준면씨 알아? 뉴에이지 장르에서 유명하고, 가끔 가수들이 그 사람 곡에 가사 붙여서 부르기도 하는데. 이번에 그 사람 작업실에서 인터뷰 하거든, 세훈씨는 그냥 작업실 내부 사진이랑 인터뷰 하는 사진, 작업하는 모습 그런 것만 찍어주면 돼."
"그래요? 화보 촬영보단 간단하네요. 언젠데요?"
"-날짜는… 기다려봐, 내가 알아보고 연락 줄게. 확실히 아무런 스케줄 잡힌 거 없지?"
"네, 없어요. 그럼 연락 주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세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작곡가 김준면. 세훈은 그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 그가 만든 음악을 자주 듣곤 했기 때문이다. 팬이라면 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훈은 그가 발매한 앨범은 모두 샀고, 사진전 같은 것을 하거나 화보 촬영 후의 사진 보정 작업을 할 때면 꼭 그의 음악을 틀어놓곤 했었다. 그랬기에 세훈은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괜히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얼핏 듣기로는 세훈과 비슷한 또래라고 했기에 이참에 잘 되면 친해지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세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앨범을 꽂아놓은 책장 앞에 섰다. 그때 편집장으로부터 카톡이 왔다는 알림이 울려 세훈은 곧바로 확인을 했다. 수요일 오후 네 시. 세훈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을 꺼냈다. 사인이라도 받고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쳤다가 괜히 머쓱해져서 뒷머릴 긁적이며 다시 앨범을 집어넣었다.
***
준면의 작업실에 도착한 세훈은 편집장에게 받아두었던 준면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문가에 기대서서 귀를 기울여보지만 방음처리가 잘 되었는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는 것 같아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늘어지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은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세훈은 잠시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었다. 여보세요? 재차 준면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세훈은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사진작가 오세훈입니다. 미리 연락 받으셨죠, 오늘 촬영 있다고.”
“-아… 잡지 인터뷰. 네, 기억나요.”
“이제 곧 도착하니까 준비해두시라고 미리 연락 드렸어요.”
“-네에… 고마워요. 마침 작업실이 조금 지저분했거든요.”
“십 분 정도 걸릴 것 같네요, 그 사이 정리 하세요. 그럼 끊겠습니다.”
“-네, 정말 고마워요.”
준면은 진심으로 세훈의 호의에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세훈은 준면의 작업실 문에 기대었던 몸을 바로하고, 십 분 동안 무엇을 할지 잠시 고민했다. 촬영을 하기 위해 왔다는 연락에 망설이는 것 같은 준면의 기색이 느껴져 도착 전이라고 하긴 했지만, 자신은 이미 도착했었고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세훈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십 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제 손에 들린 카메라 가방을 보고는, 빈손으로 누군가의 개인적인 공간에 간다는 것이 실례인 것은 아닌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도 음악 하는 사람에게는 집이나 다름없는 작업실에 가면서 빈손으로? 더군다나 초면인데 마실 것이라도 사가야 예의인 것 같아서 세훈은 건물 밖으로 나와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갖가지 종류의 음료들이 나열된 메뉴판을 보던 세훈은 준면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준면에게 다시 전화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급하게 작업실 내부를 정리정돈하고 있을 준면에게 방해가 될까 싶은 마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접었다. 앨범 후기에서 작업할 때 마다 마시는 음료가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 세훈은 결국 눈에 보이는 데로 레몬에이드 두 잔을 주문했다. 진동 벨을 받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음료를 받고 가면 대충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그사이 진동 벨이 울리고 직원이 건네는 포장된 레몬에이드 두 잔을 들고 카페를 나섰다. 다시 준면의 작업실 앞에서 세훈은 준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도착했거든요, 정리는 다 하셨어요?”
“-아, 아아 네. 들어오셔도 돼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받으면서 정리를 마무리 지은 건지 목소리에서 안도한 기색이 역력했다. 세훈은 비싯비싯 세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작업실의 문을 열었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준면으로 보이는 남자가 긴장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묘하게 경직된 준면의 모습에 또 다시 웃음이 세어 나오는 것을 막으며 세훈은 준면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준면 또한 세훈을 향해 인사를 했다. 작업실은 전체적으로 은은한 오렌지 빛 조명이 밝히고 있었고, 한 가운데에는 준면이 앉아 있던 책상이, 그리고 각종 음향 기기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가죽 소파도 있었고, 기타나 전자 피아노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놓인 책상 바로 맞은편에는 두 대의 컴퓨터와 한 대의 노트북이 있었고 유리창 너머에는 녹음실이 있었다. 대략적으로 작업실 내부를 둘러본 세훈은 준면을 향해 유하게 미소 지으며 카메라 가방과 레몬에이드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안녕하세요, 사진작가 오세훈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작곡가 김준면입니다.”
“어… 일단 오늘은 작업실 내부 사진 먼저 찍고 있으면 이따가 잡지사에서 에디터가 올 거예요. 그럼 인터뷰하는 모습도 찍을 예정이고… 아, 또 작업하는 모습도 찍을 예정입니다.”
“네, 그럼 작업실 먼저 찍으실래요? 제가 자리를 비켜드려야 하는 건지….”
“아니에요. 편하게 작업하고 계세요. 제가 알아서 사진 찍고 그럴게요.”
준면은, 세훈이 예전에 보았던 어떤 잡지에서의 인터뷰에서 있던 사진 속 모습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다만 조금 긴장한 모습에 세훈은 작게 미소 지었다. 작업실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세훈은 말없이 카메라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렌즈를 조립하고 초점을 맞출 겸 연습용 사진을 찍었다. 오렌지 빛의 은은한 조명 덕에 별다른 조명과 보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 만족스러웠다. 그사이 준면은 작업하던 중이었는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세훈은 그 뒷모습을 보며 초점을 맞추고 사진을 찍었다. 제 등 뒤에서 들린 카메라 소리에 준면이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고, 세훈은 의도하지 않게 몰래 사진을 찍은 꼴이 되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마, 말씀 해주시고… 찍으시면 안 될까요?”
“아… 저도 그러고 싶은데, 지금 굉장히 긴장하신 것 같아서요. 말하고 찍으면 표정 굳어지고 설정하고 찍는 것처럼 어색하게 나와요. 요즘 사람들 눈이 매서워서 어색한 부분 잘 잡아내거든요.”
“아…….”
세훈의 말에 준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다시 침묵이 흐르자, 세훈은 문득 자신이 사 온 레모네이드가 떠올라 카메라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레몬이드를 들고 준면의 앞에 놓아뒀다. 세훈을 보는 준면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세훈은 그 표정을 보자마자 귀엽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 혼자서 한 생각에 스스로 놀라 세훈은 잠시 멍하니 준면을 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냥 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뭘 좋아하는지 알았는데 기억이 안 나서 대충 사왔어요.”
“아…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그리고,”
“……?”
“사실 준면씨가 만드는 노래 엄청 좋아해요. 뉴에이지 장르 즐겨 듣는데 준면씨가 만든 곡 위주로 들어요. 그러니까… 음, 실례가 아니라면 여기 사인 부탁해도 될까요?”
세훈은 가방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준면의 앨범을 준면에게 내밀었다. 제 앞으로 내밀어진 자신의 앨범을 멀뚱히 보던 준면은 세훈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앨범으로 시선을 돌렸다. 준면이 멀뚱히 보고만 있자, 머쓱해져서 앨범을 다시 가방에 집어넣으려던 찰나 준면이 작게 소리 내어 웃으며 앨범을 받아 들고는 서랍에서 네임펜을 꺼내 사인 -원래는 없었지만 인터뷰를 할 때마다 사인을 요청했기에 그때만 하던- 을 해서 세훈에게 돌려주었다. 세훈은 앨범을 받아들고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웃으며 가방에 앨범을 넣었다. 둘 사이에 흐르던 어색한 기운이 조금은 유하게 풀렸다. 세훈은 이때가 아마 친해질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 준면씨 나이가 정확히 어떻게 되요?”
“네? 아 저, 올해 스물여덟이에요.”
“저보다 두 살 많으시네요? 대충 비슷한 또래일 것 같았는데.”
“아… 그래요?”
“네 그래요. 그럼… 형이라고 불러도 되요?”
세훈이 준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묻자, 그 물음에 답하려던 찰나 세훈의 휴대폰 벨이 울리며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편집장으로부터 온 연락에 전화를 받으니, 오늘 하기로 했던 인터뷰가 내일로 옮겨졌다는 내용이었다. 어쨌거나 세훈은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기에 알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세훈이 전화를 받을 때 편집장님, 이라고 부른 것을 듣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준면이 세훈을 보았다. 준면의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변화를 볼 때마다 세훈은 그것이 의도하지 않은 귀여움을 유발하는 것 같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곧, 원래의 약속을 깨는 것이기에 미안한 표정으로 준면을 보며 전화내용을 말해주었다.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세훈의 말에 준면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세훈은 준면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어색해진 것 같은 분위기를 실감했다. 딱히 뭐라고 더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준면 또한 별달리 할 말이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여 세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다시 올게요.”
“네, 그러세요. 아 그리고…”
“……?”
“또… 연락 해주시고 와주실 수 있으세요?”
“푸핫, …네, 그럴게요. 이만 가볼게요.”
“…내일 봐요.”
세훈은 카메라 가방을 챙기고 작업실의 문을 열었다가,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보았다. 나가려는 세훈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준면이었기에 갑자기 뒤를 돌아본 세훈과 눈이 마주치고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이리 저리 돌렸다. 어쩜, 끝까지 의도하지 않은 귀여움 이라니. 세훈은 또 다시 소리내어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헛기침으로 무마하며 말을 했다.
“준면씨 도넛 좋아해요?”
“네? 어… 네, 좋아해요.”
“알았어요. 내일 봐요.”
세훈은 들어올 때처럼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준면의 작업실을 나왔다. 얼떨결에 준면은 조금 늦게 세훈의 등 뒤에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지만 이미 작업실의 문은 닫혀있었다. 머쓱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이며 세훈은 의자를 끌어 당겨 앉았다. 책상 위에는 세훈이 사 온 레몬에이드 두 잔이 놓여있었다. 하나는 세훈이 건넨 자신의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마 세훈의 것인 것 같았다. 얼음이 절반쯤 녹아 컵의 표면에는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컵을 만지작거리던 준면은 슬쩍 미소를 내비치며 방금까지 있었던 세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에 세훈 또한 준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은, 귀여운 모습들 말이다. 자꾸만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애써 막지 않으며 세훈은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내일이, 조금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S,
의도하지 않았으면 뭐 어때, 귀여웠으면 된 거지. 아 근데 형이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내일 한 번 더 물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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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시트콤 같은 형식이에요.
왠지 세준을 떠올리면 '낭만' 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그래서 아마 제가 가진 낭만을 모조리 담을 예정(...)입니다.
달달할수도 있고, 오글거릴수도 있는 그런 내용 이랄까요?
글잡 외에 두곳에서 동시연재 할 예정입니다. 어디서든 본다면 반갑게 아는척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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