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형이 내려오래!!"
찬열이 매니저형의 전화를 끊고 모두에게 소리쳤다. 애들은 하나둘씩 겉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했고 나도 나가려고 신발을 싣었다. 나는 언제나 애들보다 한걸음 빨리 나갔다. 엘리베이터에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불편했고 두려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누군가 오기 전에 닫치는 버튼을 눌렸다. 문은 서서히 닫치고 난 이어폰을 꽂았다. 그때 다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나는 열린 문을 쳐다보았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종대가 올라탔다. 종대는 재빨리 닫는 버튼을 누르고 지하 2층을 눌렀다.
"... ㅎ.. 아.. 안.. 내...."
종대는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뺏다.
"뭐라고?"
"아 씨발"
"..."
나는 종대의 욕에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나와 같은 엘리베이터 공간 안이 싫었는지 혼자 말을 중얼거리는 거 같았다.
*
지하에 내려오니 매니저형이 얼른 타라면서 손짓했다. 나는 애들에게 왕따를 당한 후부터 매니저형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앞자리이고 매니저형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애들과 같이 안 앉을 수 있어 예전부터 앉아온 자리였다.
"매니저형~나 오늘 맨 앞에 앉을래!"
종대가 매니저형에게 말하면서 앞 좌석에 앉았다. 나는 종대를 한번 쳐다보고 어쩔 수 없이 맨 뒷좌석에 앉았다. 맨 뒷좌석에 타자 나머지 애들이 내려와 차에 올라탔다. 제일 먼저 차에 올라탄 레이는 나를 보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레이 뒤로 하나 둘 올라타면서 나를 보면서 모두 레이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 여기 앉아요?"
".. 그냥.."
레이가 존댓말로 물었다. 익숙하지 않았다. 레이는 팬들 사이에서 힐링, 치유 등 좋은 이미지로 자리 잡혀있는데 실제로는 반대 이미지에 가까웠다. 레이는 상처 주는 말로 나를 괴롭혔다. 수많은 말들 중 제일 충격이었던 말은 '가수 왜 해? 도움 안 돼. 나가.'라는 말이었다. 그날 이 말을 듣고 처음으로 울었다. 그 후 나에게 레이는 제일 피하고 싶은 멤버 중 한명이었다.
"저 매니저형.."
"응? 민석아 왜?"
".아..... 아니에요. 빨리 가요.."
자리를 옮기고 싶어 매니저형을 부르자 레이가 내 허벅지를 손으로 꽉 잡았다. 잡힌 허벅지가 아려왔다.
"놔아.. 아파.."
들리듯 말듯한 소리로 말하자 레이는 천천히 손을 뗐다. 아픈 허벅지가 아려서 손으로 쓱쓱 문질렀다. 또 어떤 봉변을 당할까 억지로 눈을 감고 잠에 취했다.
*
헤어숍에 도착할 때쯤 눈이 떠졌다. 밖을 쳐다보니 날씨는 비가 올 듯 꾸물꾸물했다. 그리고 나중에 머리 손질을 하다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비가 좋았다. 정확히 빗소리가 좋았다. 방에 누워 책을 보면서 듣는 빗소리가 좋았고 창문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나와 달리 애들은 비를 정말로 싫어했다. 비 오는 날이면 애들의 감정 기복이 심했고 괴롭힘도 평소보다 심했다.
"형-이것 봐요"
종인이가 나를 부르더니 핸드폰에서 무언가를 보여줬다. 어떤 여자의 알몸 사진이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고개를 돌렸다.
"머.. 머 하는.. 거야.."
"왜 이렇게 놀래요~형도 이런 거 좋아하잖아요"
"그런 거 좋아할 나이는 지났어."
나는 그런 종인이를 피할 겸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러 밖으로 나왔다. 툭-툭-소리를 내는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을 안정 시켜지만 또 다시 그 여자 사진이 떠올랐다. 여자의 얼굴은 나를 똑같이 생겨였다.
*
마음이 어느 정도 갈아앉히고 다시 숍 안으로 들어왔다. 숍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 속은 그렇고 싶지 않지만 겉으론 아닌 척 애들과 이야기를 하고 애들도 밖에서는 날 전처럼 대해준다.
"민석 어디 갔다 와??"
루한이 다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내 눈에는 저 모든 게 가식이고 연기인 게 보였다. 내가 가만히 서있자 루한은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이쪽으로 와서 과자를 먹자면서 끌어당겼다. 잡힌 손을 내치고 싶었지만 참고 소파에 앉았다. 루한은 과자봉지 하나를 뜯고 내 입에 가져다 됐다. 나는 억지로 입이 벌리고 과자를 받아먹었다. 순간 나는 헛구역질이 날 거 같아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지금 그가 준 과자는 내가 못 먹는 과자였다. 루한은 분명 알고 그런 것이다. 그 과자를 못 먹게 된 계기가 루한 자신 때문인 걸 알고 있을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