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너무 격했던 건지 쿨쿨 소리까지 내가며 열심히 자고있는 학연과
똘망똘망 배가불러 행복감에 젖어있는 택운이 아주 상반되는 모습이다.
거의 쓰러지듯 널부러진 학연을 욕실로 데려가 깨끗히 씻기고 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아주고 옷도 가지런히 입혀주고.
또 본인들의 격렬한 행위로 축축해진 침대가 아닌 쇼파에 살짝 눕혀놨더니
내내 자놓고 또 새근새근 잘도 잔다.
학연의 머릿결을 몇번 쓰다듬던 택운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웠다.
첫 날 새초롬 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학연만 보면 슬슬 웃음이 나오는지 웃음을 눌러 참은 얼굴을 하고있더라.
바삭하게 마른 수건으로 학연이 깨지 않게 살살 머리를 부벼 말려주는 그 따듯한 손길이.
그저 로봇에 불과한 택운의 손길임을, 기분좋게 잠이든 학연이 알고나 있을까.
[택운/학연] 너는 펫. 08
w. 유리엘
" 아악 지각이야 지각! "
주말에 아무것도 하질 못했는데 벌써 아침이라니 월요일 아침이라니.
게다 지각이라니!
학연은 냅다 비명을 질렀다.
정신없이 학연이 옷을 막 주워입고는 넥타이 내 넥타이! 하며 우왕좌왕하자
무심한 얼굴로 학연이 먹을 아침을 차리고 있던 택운이
학연이 씻으러 가기 전에 대충 막 꺼내두었던 옷가지들 사이에서 넥타이를 찾아 목에 매주었다.
그리고나서도 한참이나 정신빠지게 왔다갔다 우왕좌왕 하더니,
가방에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쑤셔담고는 신발부터 냅다 신는 정말 고등학교 선생님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학연.
그리고 그런 학연을 붙잡고 들고 가면서라도 먹으라며 뜨끈한 토스트를 키친타올에 감싸 쥐어주는 건 택운이었다.
급하게 차를 몰고 나서느라 토스트는 대충 조수석에 아무렇게나 놓여졌지만.
교감선생님께 된통 혼쭐이 나고, 1교시 2교시 3교시까지 연달아 수업을 하고 나니 학연은 머리가 지끈지끈 쑤실 지경이었다.
아침도 못먹어서 배도 고프고... 그리고 왜인지 허리도 뻐근해서 미치겠다.
꼬르륵 소리를 내는 배를 부여잡으며 이제 1시간만 버티면 점심인데.
그래도 뭐라도 사먹을까? 하고 고민하며 매점으로 향하던 차에 학연이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 어! 재환쌤! 쌤! "
" 어, 차선생 4교시는 수업 없어? "
" 네 월요일은 1,2,3 교시 밖에 없어요. 쌤은 왜 보건실에 안있고? "
" 나야 뭐, 잠깐 바람 쐬러 나왔지. 종인이가 맨날 아프다고 꾀병 부리면서 보건실 지켜주니까 괜찮아. "
" 저 안그래도 머리도 지끈거리고 허리도 아프고 막.. "
" 어이구, 운동을 안해서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지금 점심먹으러 같이 나갈까? "
" 네네. 좋아요. "
재환은 학연의 대학 선배이자, 같은 학교의 보건선생님이다.
학연은 4교시 수업이 없고, 재환은 학생에게 보건실을 맡겨뒀으니 점심이나 나가서 먹자며 학연의 차로 향했다.
운전석에 앉은 학연과 자연스레 조수석에 앉은 재환.
그런데 재환이 갑자기 윽 하는 소리를 내더니 차 천장에 머리를 쾅 부딛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 어? 무슨일이예요? 왜 천장에 박치기ㄹ... "
" 으 머리야, 이게뭐야. 토스트? "
" 어.. 맞다 아침에 먹으려다가 지각해서 까먹고... 괜찮아요? 아 옷 다 버렸네 미안해요 진짜 어떡해.. "
학연이 깜빡하고 택운이 만들어준 토스트를 조수석에 놔두었다가 재환이 그걸 깔고 앉아버렸나보다.
바지에 온통 기름자욱이 남아버려서 학연이 당황한채 휴지로 얼른 재환의 바지춤을 닦아냈다.
" 야, 야 어딜만져. "
" 예? 아.. 아니 이거 닦으려ㄱ.. "
" 아, 하필 딱 정중앙이야, 똥싼것 같잖아. "
" 어떡해.., 재환 쌤 집도 먼데.. "
" 이거 큰일이네, 정장 바지를 새로 살수도 없고. "
학연이 당황해 어버버버 거리며 급기야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재환이 웃으며 학연의 머리를 흩트렸다.
" 괜찮아, 괜찮으니까. "
" 아 죄송해요 진짜. 일단 저희 집에 가요, 학교 근처니까. 제 옷이라도 일단 갈아입으셔야겠어요. "
" 진짜 그래야겠다. 미안 신세좀 질게? "
" 신세라뇨, 저 때문인데... "
" 내가 못보고 앉은거니까 반반 잘못인 셈 치자 이제 그만. 너 울겠어 그러다가. "
" 네... "
결국 식사를 하려던 계획이 뒤틀려 차는 학연의 집을 향해 달렸다.
" 재환쌤 이 바지 입어요 잘 맞으려나 모르겠네 하필 토스트가 조수석에 놓여져있ㅇ... "
집 문을 열자마자 얼른 방에 들어가 바지부터 찾아 나오던 학연이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깜빡했다. 게이로봇.
무심한 표정으로 쇼파에 앉아 학연의 빨래를 접어 정리하던 택운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 학연이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어떻게 해야하지 뭐라고 설명을.. 그보다 어떻게 숨기지, 직장동료한테 나 게이로봇이랑 같이 살아요 이런 전개로 이어지는건 최악이야.
학연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려 얼른 재환의 손에 바지를 들려 제 방으로 밀어넣었다.
" 잘 맞네 고마워. "
바지를 입고 방에서 재환이 나올때까지도 학연은 택운의 눈치만 슬금슬금 보고있었다.
택운이 설마 제가 차학연의 게이로봇입니다. 이따위의 말을 꺼내는건 아니겠지? 그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택운만 뚤어져라 보고있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택운은 한마디 말도 하지않았다.
학연을 바라보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재환에게 시선을 둔것도 아니고.
그저 학연의 빨랫감을 개는 일에만 집중했다.
아, 진짜 다행이다.
저 사람은 누구야? 인사라도 해야하는거 아니야? 라고 묻는 재환의 등을 밀며 집을 나오면서 학연은 말했다.
" 아 그냥 친구인데, 어쩌다보니 저희집에서 며칠간 신세지게 됐어요. 인사는 무슨, 중요한 사람 아니니까 소개는 됐어요. "
그리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그제서야 마주쳤다.
택운과 학연의 시선이.
그 날
처음으로 보았다.
택운의 울것같은 얼굴을.
고객님, 늦어서 죄송해요^^
너는 펫. 08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