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아, 삼촌이랑 가니까 좋아?" "그냥 그런 것 같아염." "사탕 다시는 안 사줘." "좋아염!! 행복해!! 쏘 굿!" 사탕 얘기에 그제야 엄지를 흔들어보이는 비굴한 제 조카의 머리를 헤집어놓은 원식이 고사리같은 손을 억지로 부여잡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무책임한 누나 부부가 덜컥 한 달 유럽여행 이벤트에 당첨되는 바람에, 누나 집을 꿰차게 된 작곡가, 원식은 백수같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면서 조카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는 게 일상이 되어버림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리고 오늘이 그 첫 날이었다. "가서 선생님 말 잘 듣고, 몇 시에 끝나?" "음.. 음.." "그것도 몰라?" "쌔앰! 택운쌤! 오늘은 몇 시에 끝나요오?" "오늘은 세시에 끝날 거에요. 혁이 오늘은 엄마랑 같이 안 왔어요?" "삼촌이랑 왔어요! 우리 삼촌!" 안녕하세요, 굉장히 말랐는데 큰 키에 다리도 길고, 어깨도 떡 벌어졌다. 이런 사람이 유치원 교사라니, 내 로망.. 원식이 안타까워 하는 사이에 몸을 일으킨 택운이 뒤를 돌아 원식을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혁이 담임 교사 정 택운이에요." 헐. 여리여리한 목소리에 하얀 피부. 새빨간 입술에 까만 머리하며, 동그란 듯 하면서도 째진 눈에 오똑한 코. 혁이에게 지어주던 환한 미소와 상반되는 도도한 표정에 원식이 넋을 놓아버렸다. "삼촌, 삼초온! 뭐해, 인사 안 해?!" 김원식 인생 20년, 나는 오늘 천사를 만났다. * "김원식 왕바보.." 작곡을 하던 노트북의 키보드를 쾅쾅 내리치다가(사실 부서질까봐 엄청 약하게 때렸다) 거의 끝나가던 곡 작업을 전부 날려버린 원식이 거실 마루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초록반 택운쌤' 이라고 적혀있던 노란 병아리 명찰이 짹짹째개개짹 하면서 머리를 헤집어 놓는 기분이었다. 결국 아까 얼굴만 멍하니 보다가 미처럼 뛰어 왔는데, 말이라도 걸었어야지.. 번호라도 땄어야지!! 포효하며 허공에 발차기를 하던 원식이 몸을 일으키곤 손거울을 집어들어 저를 이리저리 살폈다. 내 꽃단장을 하고 다시 가리라! 오랜만에 욕실에 들어선 원식이 기적적으로 씻으려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꼬질꼬질한 김원식이여 가라!! 결국 미용실에서 예쁜 샘플 사진을 보고 혹해버린 원식이 곱게 탈색된 백금발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유치원의 노랗고 아기자기한 울타리에 기대어 섰다. 두시 오십분, 십 분 남았어! 기쁜 마음에 허공에 주먹질을 하던 원식이 누구세요? 하는 얇은 미성에 굳어버렸다. 내 귀가 막귀가 아니라면 이건.. "혁이 삼촌 분?" 택운쌤이리라, 뒤를 돌아서자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는 택운에 헉, 숨을 들이쉰 원식이 볼을 긁적였다. "아.. 안녕하세요." "머리 염색하셨네요?" "네? 네, 뭐.." "잘 어울리세요." 또 벙쪄서 끄덕끄덕.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원식을 빤히 보던 택운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사람 모양의 작은 쿠키가 들어있는 봉지를 내밀었다. "선물이에요. 오늘 애기들 간식." "...가,감사합니다." "직접 만든거에요." 애기들 알림장 써줘야 해서 이만 가볼게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동그란 정수리에 같이 고개를 숙인 원식이 총총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쿠키를 만드는 택운을 상상하며 중얼거렸다. "귀..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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