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최승철] 문과 + 이과 = perfect
w. 뿌존뿌존
바야흐로 수능이 끝났다, 나의 영원할것만 같던 학창시절이 끝났고, 나의 사랑스럽던 이과 승철이는 이제 그냥 승철이가 되어버렸다. 뭐, 그래도 승철이가 어디 간것은 아니니까, 하고 위안해본다. 수능 보기 전만해도 시간이 너무 없어서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 그리고 (매우 슬프지만) 승철이와 만나는 시간까지 몽땅 줄이며 공부했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남아돌아서 하루 종일 자고 하루 종일 먹고 하루종일 승철이와 있어도 시간이 남아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어서 그런진 몰라도 나와 승철이 모두 무난히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고, 어느새 졸업을 앞둔 잉여가 되어있었다. 난 간간히 동아리 후배들에게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해 조언해주곤 했고, 승철이는 지수와 함께 새해 종이 울리는 순간 편의점에 달려가 술을 마시겠다며 민증을 주머니에서 멋지게 꺼내는 방법을 연구하곤 했다.
"우리, 이제 대학가면 지금 처럼 자주 못 보겠지?"
그냥 흘리듯 한 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찹쌀떡같았던 나와 승철, 지수의 관계엔 분명히 커다란 문제가 생길 거라는 것 정도는 우리 셋 모두가 아는 일이었기에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툭 던진 말이었다. 그냥, 이제 이 찬란했던 고등학교에 돌아올 수 없을거라는게,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를 휘날리며 교실에 뛰어들어와도, 해사하게 웃으며 제 옆자리를 팡팡 칠 승철과, 그런 날 놀릴 지수가 없을거라는게 아쉬워서. 왜 갑자기 분위기를 잡고 그래? 소오-름. 방송부 후배인 승관에게 배운 말인지 신세대 같은 지수의 반응이 웃겨 책상에 머리를 박고 끅끅거렸다. 승철의 다리가 불안정하게 떨리는 것도 잘 모른채, 승철, 아무래도 걔는 많이 무서웠나보다. 이젠 집으로 함께 돌아갈 수도 없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없을테니까. 이젠 3학년 17반으로 급히 뛰어와도, 투닥거리고 있을 나와 지수를 찾을 수 없을테니까.
겨울 방학이 하루하루 다가올 수록, 우리 셋은 점점 더 끈끈해져만 갔다. 사실, 이미 3년 동안 끈끈해져있어서 더 끈끈해질 간격조차 없었지만. 승철은 간혹 날 집에 데려다 주며 눈물을 쏟곤 했고, 난 그런 승철을 달래다 함께 눈물을 쏟곤 했다. 아무래도,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이골 나게 앉아있었던 내 의자와, 조는 날 깨워주던 지수의 매운 손, 그리고 승철이 사준 초코빵 하나면 행복했던 그 시절이. 지수는 커서 좋은 의사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2학년때 정신을 놓았던 지수는 문과를 선택한 지난 날의 자신을 후회하며 정시에 올인해, 의대에 합격했다- 승철은 좋은 체육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넌, 넌 커서 뭐가 될거야? 반짝 거리는 승철과 지수의 눈동자가 내게로 향했다. 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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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첫사랑 얘기해주세요! 첫사랑!"
아직도 간혹 그때의 생각을 하곤 한다. 좋은 의사선생님, 훌륭한 체육교사, 그리고 따뜻한 국어선생님. 한없이 어리기만 했던 고등학생 세명은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찬란했던 그 날의 기억들은 모두 학교에 남아있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실로 들어서면, 저 맨 뒷 자리에 졸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깨우는 지수가 보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 날 훔쳐보는 승철의 모습도. 첫사랑, 그땐 몰랐지. 그렇게 찬란했을 줄, 내가, 그리도 예뻤을 줄을. 네가 좋았다. 널 좋아했던 그때의 내가 좋다. 그때의 내가 그리워져 매일 졸업사진을 들춘다. 환히 웃고있는 나와, 그런 날 보며 더 환하게 웃는 널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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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피곤에 절어있는 듯한 지수의 목소리. 난 잘 지내지, 우리 홍 교수님은? 흘리듯 묻자, 전화기 반대편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지수 녀석, 요즘 환자 하나가 자꾸 말 안 들어서 힘들다고 그렇게 징징거리더니 말야. 난 잘 지내. 그러니까 제발 싸우지 좀 마- 내가 아주 힘들어서 미치겠어. 자꾸 그때의 생각이 난다. 별거 아닌거로 투닥이던 나와 승철을 중재해주던 지수의 모습. 우리 그때 참 밝았는데, 그때가 참 그립다. 보고싶네, 첫사랑. 보고 싶네, 홍지수. 지수야, 너 언제 오프야? 무언가에 홀리듯 밥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삼총사 뭉치겠네, 싶어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한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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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넌 커서 뭐가 될거야?"
승철이 꼭 붙잡은 손을 매만지며 물었다. 난, 국어 선생님이 될거야. 어릴 적부터 그러고 싶었어. 반짝거리는 눈으로 승철에게 말하자 승철의 눈도 덩달아 반짝인다. 예쁘네, 내 애인. 둘이 한참을 마주보고 있자 화학요정이 나와 승철의 등짝을 번갈아 때린다. 동시에 터지는 웃음꽃. 너무 행복해서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지 왜인지 모르게 가끔씩 문득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들어 요즘. 이렇게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너 , 그리고 남부럽지 않은 지금의 우리. 그런 우리가 정말 언젠가 불행하게도 떨어지게 되면 그땐 어떡하지, 울컥하는 마음에 고개를 가만히 떨구었다. 뭐야, 너 울어-? 소오-름! 내 팔을 툭툭 치는 지수의 손에 주책맞게 엉엉거리며 울었다. 많이 보고 싶을거야, 지금의 우리도, 우리의 추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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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왔어!"
고소한 된장찌개 냄새가 반기는 집 안에 발을 들였다. 나 오늘 야자 감독이라서 진-짜 힘들었어. 넌 좋겠다, 학교 일찍 끝나서. 이런 저런 불평을 하며 집 안에 들어서, 익숙하게 자켓을 벗고, 의자에 걸터앉았다. 오늘은 멸치볶음이네? 맞다. 지수가 요즘 칼슘 부족하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늦은 저녁식사 시간. 소파 위에 널브러진, 이미 색이 바랜 졸업사진이 눈에 띈다. 너도 그립구나, 그때의 네가. 남편의 손을 붙잡고 눈을 맞춘다. 나 이번주 토요일날 지수 만나러 갈거야. 너도 갈래? 그럼 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가야지. 그립다, 그때의 우리"
네가 내 옆에 있다는게 좋다. 찬란한 내 청춘을 함께 걸어준 네게 늘 감사하다. 고등학교 3학년, 김세봉과 최승철, 그리고 홍지수는 이제 기억 속에 남았지만, 우린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 그때의 추억보단 현실에만 안주하여 살지만, 그리워진다. 많이 보고 싶다 그때의 우리가. 그리고, 혹시나 그때의 우리를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함께라서 웃을 수 있었고, 너라서 울 수도 있었다고. 그때의 너희는 내 전부였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