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 부터 변경된 사항이 몇 개 있습니다.
여주가 윤기 보고 ' 아저씨 ' 라고 부르는 것을 없애고
아저씨 → 그
태형, 석진 오빠 등 등장인물 이름 → 이름에 성을 포함 시켰습니다. ( 김태형, 김석진 등 )
로얄 호텔까지의 거리 10km → 20km
이 전 글들은 최대한 빨리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Tomorrow ; 하나의 목적지 10.
w. 내일이란 미래
' 로얄 호텔 20km '
너무나도 익숙한 커다란 초록색 표지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표지판을 보고는 다리에 힘이 풀릴뻔했지만 간신히 부여잡았다. 그저 한동한 초록 바탕에 흰색으로 또박또박 새겨져 있는 커다란 글씨를 눈에 담기 바빴다. 모두들 반응이 나와 같았다. 커다란 표지판 한구석에는 로얄 호텔이란 곳의 위치를 알려주는 작은 약도가 그려진 낡은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그 낡은 종이는 사소한 바람에도 펄럭여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나는 눈으로 대충 약도를 훑어보았다. 약도에 그려진 길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 도로가 지금 우리가 걷고있는 쭉 뻗은 아스팔트 도로인지 비교를 해야만 했다. 약도에 그려진 길을 따라 짚었던 손가락을 밑으로 슥 훑으니 그 한구석에는 주유소라고 쓰인 건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따라 밑으로처럼 보이는 도로를 따라가면 길 한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듯하였다. 나는 주유소로 추정되는 건물 그림 위에 손톱으로 딱딱
치며 입을 열었다.
" 이 주유소가 우리가 지나쳐온 주유소에요. "
" 그럼 호텔로 가는 길은 이 길 하나밖에 없는 건가? "
"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다른 길은 표시되어 있지 않고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도로만 그려져 있는 걸 보면요. "
나는 주유소에 머물렀던 손가락을 다시 위로 올리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도로 중앙에 멈추어 섰다.
" 이쯤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표지판의 위치일 거고… "
" 딱 여기서 목적지까지 20km? "
" 네. "
" 뭐? 20km? 그 거리를 걸어가자고? 가능해요? "
정호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나와 그의 계획을 재차 확인하며 물었다.
" 일반 보행 속도로 4km에 약 1시간이라고 치고 20km면 5시간 정도, 중간에 쉬엄쉬엄 가면 6시간 안팎이야. "
"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5시간, 그 정도라 해도 해가 질 텐데 6시간이라고요? 그건 자살행위나 마찬가… "
" 그럼 사방이 노출된 도로 한가운데에서 자던가. "
" ……. "
그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에 정호석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정호석의 입에서 더 이상 뒷말이 나오지 않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 그래도 너무 먼대… "
" 지금부터 부지런히 걸어가도록 해요. 해 지기 전까지 도착하길 빌어야죠 뭐. "
그의 날카로웠던 행동에 주눅이 든 정호석이 입을 삐쭉거렸다. 나도 정호석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목적지로 잡은 그곳이 사방이 뻥 뚫린 도로 한가운데보다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쪽에 승산을 걸어보기로 했다. 일종의 도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지금 상황에서 그와 대립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 중 누구 한 명이 정호석과 같은 생각이었다고 해도 대놓고 정호석의 편을 들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뒤에서라도 정호석을 달래줄 수밖에 없었다.
" 그럼 석진이 형은? "
" ……. "
" ……. "
" …응? "
정호석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김석진을 향했다. 그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도려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딱히 별말없이 말이다. 한동안 이어진 분위기를 깬것은 바로 김태형이었다. 김태형은 김석진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손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던 김석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 나는 괜찮아. ' 라고 하는 것으로 긍정을 표했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어색한 웃음 또한 빼놓지 않고는 말이다.
' 그럼 이제 출발하죠. ' 한껏 들뜬 김태형의 말에 모두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하나둘 앞서 길을 걸어나갔고 마지막으로 발을 뗀 나는 표지판에 붙어있던 약도를 뜯어 손에 쥐고 등에 매고 있던 배낭을 고쳐매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두 번째로 늦게 걸어가고 있는 정호석에게 뛰어가 옆에 나란히 서 걸었다. 인기척에 옆에서 나란히 걷는 나를 내려다본 정호석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나도 정호석의 미소를 보고 덩달아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주눅이 들어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던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사상이 밝은 사람이다. 정호석이라는 사람은.
우리는 날이 저물기 전까지는 호텔에 도착하리라 굳게 마음을 먹었고 과연 그 끝은 어디일지 가늠이 가지 않는 도로를 또다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더운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데다가 도로 양쪽이 숲과 나무가 우거진 곳이라서 그런지 습하여 찝찝했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이 몸에 질척하게 달라붙어 불쾌지수를 한껏 더 높여주었다. 봄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벌써 여름이 시작되고 그것도 모자라 곧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이 대충 6월 하고도 며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직감과 날씨의 상태를 합한다면 적어도 몇 주 내, 길면 한 달 후에는 지독하기 짝이 없는 장마가 시작될 것이라는 통계가 머릿속에서 대강 계산이 되었다. 그때 불가피하게 집을 떠나게 된 때가 봄이었는데 벌써 여름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달려왔다. 그간 겪어왔던 일을 정리 차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려와 금방 포기했다.
자동차를 타고 간다면 20km쯤은 문제도 아니니 그렇게 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20km라는 그 길이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었다. 그 많던 물들이 이젠 점차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바닥을 보이기 직전까지 가득 차있던 수분들은 우리 몸의 땀구멍을 통해 그대로 헛되이 배출되었다. 지겹디 지겨운 회색 아스팔트도 이제는 싹 다 밀어버리고 싶다는 충동만 들 뿐이었다. 우리는 걷다 지치면 나무 그늘 밑에서 잠깐이라도 땀을 식혔다.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다 김태형이 선두로 그늘 밖을 나서면 나간 지 1초도 되지 않아 호들갑을 떨며 다시 그늘로 발을 들여놓았다. 김태형이 펄쩍펄쩍 뛰는 모습을 지켜보다 모두 하나둘씩 시원한 그늘 밖인, 뜨겁게 달궈진 도로로 발을 내미려고 하니 그 모습들이 흡사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내 직감으로는 마지막에 그 표지판을 본 게 거의 2시간 전이다. 중간중간 탈수지경까지 이르렀지만 가끔씩 도로 한편에 서있는 빈 상가에 들어가 수돗물을 마시기도 했다. 이때까지 별 무리 없이 쉬엄쉬엄 걸어왔으니 앞으로 4시간은 더 걸어야 하는 셈이었다. 모두들 얼굴에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우리가 얼마나 걸어왔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대충 눈치챈 김태형은, '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더 ' 라는 거짓말을 귀에 딱지가 얹도록 입에 달고 다녔다. 사실상 김태형의 뻔한 거짓말이 희망고문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나름대로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모두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묵묵하게 길을 걸었다.
" 나한테 여동생이 한 명 있었다는 말, 저번에 들었었지? "
" 네? "
말을 먼저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심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정호석이 먼저 자신의 여동생의 이야기로 운을 뗐다. 저 멀리 앞서 걸어가고 있는 무리에 눈을 떼지 않고, 정면만을 바라본 채 입만 움직였다. 얼떨결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을 했지만 속으론 정호석을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입에서 직접 여동생을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정호석에게서 여동생은 어떤 존재고 또한 어떠한 상황인지 대충 알았기에 그 의미가 더 컸다.
" 너 올해 몇 살이야? "
" 저 21살이요. "
" 내 동생이 너보다 2살 어려. "
" ……. "
" 나랑 내 동생은 8살 차이 나지만 내가 업어키웠는데, 그래서 더 특별했을지도 모르지. "
" ……. "
" 2년 전 부모님께서 부득이한 사고로 돌아가시고 우리 둘은 서로 의지하며 살았는데. "
" ……. "
" 이런 사달이 나서……. "
" 아……. "
" 에이, 내가 분위기 또 다운시켰네. 미안하다. "
" ㄴ,네? 아니에요. "
그래서 동생은 어떻게 됐나요?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비집고 올라오다가 턱 막혀버렸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하던 정호석에겐 상처가 되어 버릴게 분명했다. 현재 정호석 자신은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자괴감이 똘똘 뭉쳐있는 큰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그 뒤로 정호석과 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별로 없었다. 내가 매고 있던 배낭을 빼앗아 자기가 매고서는 ' 오래 걸으니 힘들지? ' 나 ' 배고프다. 너는? ' 혹은 ' 재미밌는 이야기 없어? ' 같은 말만 해대었다. 정호석이 먼저 대화를 시도하여 이어가려고 했으나 얼마 안 가 뚝 끊기기가 대부분이었다.
무심코 땅을 내려다보다 나를 따라다니던 그림자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벌써 하늘이 어둑어둑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분명 ' 로얄 호텔 ' 로 향하기 전에는 밝은 대낮이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6시간이 다다른 것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무리해서 걸은 것 빼고는 별 탈이 없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몇몇의 좀비를 만나 간단하게 처리한 것이 다였다. 만약 운이 나빠 좀비 떼라도 나타났으면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전부 죽었을 것이다. 곧 우리들의 눈앞에는 ' 로얄 호텔 1km ' 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 우리의 ' 안식처 ' 가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있는 것이다.
Tomorrow ; 하나의 목적지 10.
w. 내일이란 미래
' Royal Hotel '
" 뭐야, 호텔이라더니 완전 구리잖아. "
" 다 쓰러지겠다… "
" 하하, 그러네요. "
" 그럼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무성한 나무와 풀밖에 없는 이곳에서 신라호텔을 기대한 건가? "
사실 기대한 건 맞았다. 그가 엄청난 팩트를 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생각한 로얄 호텔은 그렇게 크진 않지만 적당한 크기에 관리가 잘 된 깨끗한 건물 그리고 화려한 빛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움을 자아내는, 조금은 가격대가 있는 그런 호텔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호텔이 아닌 모텔에 더 가까웠다. 아니 이건 모텔이었다. 언제 지어진 것인지 추측이 전혀 불가능할 정도로 낡아 빠진 5층짜리 싸구려 모텔. 흔히 건물을 지을 때 많이 쓰이는 붉은 벽돌에는 쩍쩍 금이 가 있었고, 건물 꼭대기 벽면에 붙어있던, 이곳이
로얄 호텔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쨍한 빛의 형광 핑크 네온 간판 ' Royal Hotel ' 중 Royal의 알파벳 ' R '과 Hotel의 'ot ' 은 빛을 잃은지 오래였다.
' Royal Hotel '
모텔 주변은 당연히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난장판이었다. 쨍한 핑크색의 네온 불빛이 우리들의 몸과 얼굴을 붉게 물들였고 온통 캄캄한 이곳에서 불씨라고는 저 네온 간판밖에 없으니 이 환경을 더욱더 처참하게 만들었다. 그는 혁대에서 권총 하나를 뽑아들어 소음기를 장착한 후 모텔 입구로 다가갔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말이다. 그가 짙은 검은색으로 코팅이 되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유리문 위에 달려있던 종이 ' 딸랑 ' 하며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안에서는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았으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에 좀비가 득실거린다면, 소리에 민감한 좀비라면 이미 튀어나왔어야 정상인데 이리 고요한 것을 보면 모텔 안에는 70%쯤 안전하다고 보면 된다. 그가 권총의 탄창 아랫단으로 유리문 벽을 두어 번 두드려도 어둠 가득한 모텔 내부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안심하지 마. 혹시 모르니까 조용히 내부 확인해. "
" 네. "
그는 우리에게 어둠이 내려앉은 모텔 내부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조용히 얘기했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명씩 차례대로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 로비 쪽에도 무언가 한바탕 벌어졌었는지 물건들이 이리저리 바닥에 뒹굴어 다녀 발에 걸리는 것이 많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도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이것저것 잡아내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유리 파편을 밟은 것인지 유리가 무언가에 짓눌려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이 온통 청각에 집중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꽉 쥐었다. 그리고는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가며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숨소리를 죽인다 치지만 지나치게 고요한 이곳에서는 작은 숨소리도 완벽하게 감추지 못 했다.
" 미안, 나야. 내가 밟았어. "
김태형의 목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나는 김태형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심장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을뻔한 것을 간신히 버텨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찰나, 카운터 쪽에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상황을 빠르게 눈치챈 그는 정호석이 매고 있던 배낭을 가리키며 손짓을 했다.
정호석은 어둠 속에서 그가 있는 곳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정호석이 매고 있는 배낭을 가리키는 것을 보면 무언가 필요하다는 말인데, 정작 정호석 자신은 전혀 그걸 눈치 못 채고 있었다. 카운터 쪽에서는 무언가 '탁, 탁' 거리는 소리가 자꾸 미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 정호석, 손전등. "
그는 하도 답답했는지 결국 소리 내어 입을 열었고 정호석은 그제야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 깨달았다. 정호석은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서둘러 손전등을 찾기 시작했다. 배낭에 챙겨두었던 것을 발견한 정호석이 손전등을 꺼내들자,그는 정호석 손에 들려있던 것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리고 손전등의 스위치를 켜고 카운터 쪽을 비추는 순간,
' 키아아아악! '
' 쾅! '
카운터의 쇠창 너머로 흉측한 몰골의 여자 좀비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달려와 매달렸다. 좀비는 얼굴만 간신히 보이는 작고 좁은 쇠창 사이로 나오려는 듯 얼굴을 구겨 넣었다. 좁은 틈으로는 절대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좀비는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쇠창을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날카롭고 커다란 소리로 비명을 질러대니 모텔 안이든 밖이든 이 주변에 있을 좀비들이 순식간에 모여들 것 같았다. 그는 작은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좀비에게 조준하고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마 한가운데에 깔끔하게 구멍이 뚫린 좀비는 힘없이 뒤로 넘어가 버렸다.
" 올라가. "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그의 말에 모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옆에 위치한 계단을 올랐다. 2층에 도착하니 복도가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식의 구조였다. 그리곤 방이 일자로 여러 개 나열되어 있었다. 그가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집어 바닥에 던지자 그것은 한참 동안 바닥에서 데구루루 구르다가 이내 멈춰 섰다.
시끄러운 소리는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엄청나게 큰 소리가 되어 귓가에 돌아왔다. 고요한 공간에서의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져도 반응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2층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복도에 사람은커녕 좀비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우리는 이 방들 중에서 열려있는 곳이 있는지 문고리를 하나씩 돌려보아야 했다.
기대와는 달리 방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포기하고 계단이 위치한 복도 정 중앙에 모이려는 찰나, 김태형이 열려고 했던 방문이 너무나도 쉽게 열려버렸다. 김태형은 자신도 문이 열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문을 열다 말고 눈만 껌뻑이며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이 방 문 너머는 비었는지, 아니면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이 조금이나마 있을지 아니면 좀비가 달려들지 아무도 몰랐지만 그래도 한번 확인차 다같이 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소름끼 치는 쇳소리를 내며 약간 열린 방 문 틈에서는 차가운 한기와 약간의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한 번의 심호흡을 마친 김태형이 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히는 순간 우리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 …세상에. "
" 하…. "
얇은 침대 시트로 만든 줄로 천장에 목을 매단 남자와 여자가 활짝 열린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시체는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것인지 몸 곳곳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까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왔던 한기는 바람이었으며, 이상한 냄새는 시체가 부패된 냄새였다.
아마 이 사람들은 좀비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퍼지고 이 방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버티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침대 옆 서랍 위에 놓여있던 수첩을 확인하고 추측해본 내용이었다. 뭐랄까, 지금 느끼는 기분으로는 참 묘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시체를 보고 충격이 상당히 컸지만 가슴 한편은 먹먹해지는 기분?
말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버린 남자와 여자의 시체를 끌어내려 침대에 눕혀주었다. 그리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준 후 조용히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방을 나서고 한동안 우리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는 없었다. 모두 방금 전 상황을 보고 충격이 상당히 컸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굴을 보니
표정은 의외로 덤덤한 것 같았다. 아마 죽음에 대해 조금은 익숙해져버렸다는 증거일까.
그렇게 우리는 3층으로 향해야 했다.
계단이 얼마 되지도 않다 보니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다음 층이었다. 그는 3층 복도로 들어서기 전 잠깐 멈춰 서더니 우리에게 한쪽 팔을 들어 보였다. 잠깐 기다리라는 신호였다. 그의 신호를 본 내가 계단을 오르다 멈추자 내 뒤에 있던 모두가 줄줄이 멈춰 섰다. 아직 신호를 보지 못하고 올라오다 내 등에 코를 박은 김태형은 왜 멈추냐며 짜증 섞인 말투로 작게 얘기했다.
" 기다리ㄹ, "
' 쉿. '
그가 자세를 낮추고 복도를 두리번 거리며 팔만 뒤로 뻗은 채 내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이내 고개를 뒤로 돌리더니 검지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다 대어 보였다. 무슨 영문인지 궁금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니, 그는 손가락으로 왼쪽 복도 측을 가리키면서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고 이내 복도 오른쪽을 가리키며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고 다른 손의 검지로는 하늘 위를 가리키고서는 콕콕 찌르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 왼쪽에 좀비 셋, 오른쪽에 하나. 조용히 하고 4층으로 바로 올라간다. '
그의 사인을 알아들은 나머지도 의견에 동의하는 표현을 보였고 우리는 조용하고 신속하게, 좀비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여야 했다. 3층 복도에 들어서기까지 남은 몇계단, 그는 발걸음을 움직이나 싶더니 다시 팔을 뻗으며 계단을 오르려던 나를 저지했다. 이번엔 또 무엇인가 했더니 좀비 두 마리가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좀비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모르는 것인지 좀비는 좀처럼 복도 한가운데에서 멈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분 동안이나 기다려도 그르렁 거리는 소리만 낼 뿐 미동조차 하지 않으니 그는 그냥 무시하고 이대로 4층으로 올라가자고 손짓으로 말했다. 그가 앞장서서 3층 계단을 마저 다 오르고 그다음으로 내가 계단을 오르는 찰나였다. 아무리 눈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한 칸 남은 계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져 버렸고 다행히 손으로 땅을
짚어 큰 사고는 넘길 수 있었지만 엄청나게 큰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가 황급히 뒤돌아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한번 내려다보고는 좀비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두 마리의 좀비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 씨발, 비켜! "
그는 혁대에서 권총을 뽑아들고는 욕을 곱씹으며 팔로 나를 뒤쪽으로 밀어버렸다. 그 덕에 중심을 못 잡고 뒤로 넘어간 나는 내 뒤에 있던 김태형, 정호석과 함께 뒤로 밀려나 계단 밑으로 떨어졌다. 우당탕탕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바닥에 처박힌 나와 김태형, 정호석은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토해냈다. 영문도 모른 채 넘어진 김태형은 신음 섞인 욕을 연신 내뱉었다. 이 상황에서 그는 복도에 있던 두 마리의 좀비 말고도 나머지 숨어있다 튀어나온 세 마리의 좀비, 총 다섯 마리의 좀비를 상대해야 했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좀비들을 하나하나씩 총으로 처리했다.
그사이 나와 김태형, 정호석은 바닥에서 급히 일어나 한쪽 구석으로 몸을 숨기고 위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좀비를 상대할 마땅한 무기도 없는 데다가, 괜히 나섰다가는 저 사람에게 괜히 피해를 줄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다섯 마리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좀비 말고도 다른 좀비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그를 덮쳐버렸다.
그는 자신을 무려고 하는 좀비의 머리를 손으로 밀어내며 버텨냈다. 하지만 좀비는 쉽게 밀려나지 않고 밀어내는 힘을 버티며 썩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좀비의 입에서는 걸쭉한 검붉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좀비의 머리통을 밀어내면서 총을 쥔 또 다른 손을 들어 올리고는 길쭉한 소음기 부분을 좀비의 눈에 찔러 넣었다. 눈에서 피가 튀기고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는 좀비를 보며 방아쇠를 당긴 그는 갑자기 표정을 확 구겼다. 달칵, 달칵 거리는 소리만 나고 총알이 나가지 않자 또 한 번의 욕을 내뱉고선 주머니에 있던 탄창을 꺼냈다. 좀비 눈의 찔러 넣었던 소음기와 총을 타고 피가 흘러내려 그의 손과 와이셔츠 소매를 흥건히 적시다 못해 선을 타고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는 좀비 눈에 꽃아 넣은 총을 빼지 않은 채 빈 탄창을 비우고는 새로운 탄창을 장전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뒤통수에 구멍이 뻥 뚫려버린 좀비는 결국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는 좀비의 눈에 꽂힌 소음기를 빼내고 거친 숨을 내쉬며 계단 한구석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뻥긋거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뒤, 뒤 보세요!! "
( * 바로 밑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좀비 짤 있으니 주의하세요* )
나의 외침을 듣고 그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죽은 줄만 알았던 좀비 한 마리가 다시 일어나 그를 덮쳐버렸다. 그로 인해 그는 좀비와 함께 공중으로 붕 떠 계단 밑으로 추락했다. 딱딱한 돌계단에 등판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둔탁한 소리와 진동이 함께 전해져 왔다.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신음을 토해냈다. 등에 매고 있던 샷건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듯했다. 등뼈라도 안 부서졌으면 다행일 정도였다. 그는 그 상황에서도 자신을 물려 안간힘을 다 쓰는 좀비를 힘겹게 밀어냈다. 한 손으로는 좀비를 밀어내고 다른 손으로는 바닥을 이리저리 짚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 보였다. 아마 권총을 찾는 것 같아 보였다. 권총이라면 아까 그와 좀비가 같이 계단에서 떨어질 때 총도 같이 떨어져 버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총은 어디 사라지고 없으니 현재 그에게는 좀비를 해치울 무기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등에 있는 샷건을 쓴다면 꺼내서 조준하기도 전에 좀비에게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제 그의 힘도 서서히 한계에 다다른 것인지 밑에서 밀어내고 있던 좀비와 그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져 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태형이 발로 좀비의 머리통을 차버린 것은. 머리가 뜯겨나가면서 물감 뿌리듯 흩어진 피들이 그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깔끔하게 뜯겨나간 좀비의 머리통은 벽에 한번 부딛히고는 계단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태형이 머리가 뜯겨나간 좀비의 몸뚱어리를 끌어내 바닥에 내팽개치고 나서야 그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샷건을 맨 등으로 돌계단에 떨어져 부딪힌 충격이 큰 것인지 그는 쉽사리 몸을 일으킬 수 없는 듯하였다. 일어나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으나 전혀 일어나지를 못했으니까 말이다.
" 저기 괜찮아요…? "
" 형, 형 괜찮아요?"
" 괜찮으니까 일어나는 것 좀. "
" 참, 끝까지 고맙다는 말은 안 하네. "
" 시끄러워. "
나와 김태형은 그의 부탁으로 몸을 일으켜 앉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마자 한 행동은 마른 세수였다. 얼굴에 피가 묻어있다는 것을 잊은 것인지 그대로 마른 세수를 해버린 그의 얼굴은 점점 피로 얼룩져갔다. 얼굴 전체에 피가 묻고 손바닥에도 검붉은 피들이 묻어있는데도 그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그 더러운 손으로 평소 박박 닦아대던 샷건을 집는 행동은 좀 의아했지만 말이다. 커다란 총의 쇠와 돌로 이루어진 바닥이 마찰을 이루어 쓸리는 소리란 이 어둡고 차갑게 내려앉은 밤과 딱 어우러지기 그지없었다.
그는 샷건을 손에 들고는 땅을 짚고 일어났다. 다시 아무렇지 않게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그의 모습에 나와 김태형, 정호석은 그 뒤를 따랐다. 3층 복도로 진입하자마자 바닥에 널려있는 좀비의 시체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피해 발을 디뎌 앞으로 나아갔다. 붉은색보다는 검은색에 가까운 피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코를 자극했다. 이번에도 우린 대여섯 개 되는 방들을 일일이 다 확인해야 했다. 각자 하나씩 방 문을 확인 한 뒤 열려있는 방만 내부를 대충 둘러보고 필요한 물품들을 챙겼다. 그 물품들은 전부 정호석이 맡았다. 그가 유일하게 배낭을 메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마지막 하나 남은 방인데, "
" 안에 좀비가 있나 봐요. "
쇠 문 너머에는 무언가 쿵쿵거리는 소리, 그리고 좀비가 괴성을 지르는 소리까지 난리가 아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는지 마른침만 연신 삼켜대었다. 그 사이 그는 방 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시끄러운 소리는 배가되었고 눈에 보이는 것은 장롱에 미친 듯이 몸을 부딪혀대는 좀비의 뒷모습이었다. 좀비가 달려들어 장롱에 몸통 박치기를 할 때마다 장롱은 들썩들썩 흔들렸다. 저 문이 부서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 저 안에 뭐가 있길래 저러는 거죠? "
" 뭐든 있으니까 그러겠지. "
" 뭐가…… "
" 고기. "
" 네? "
" 사람 말이야. "
그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한 손에 들고 있던 샷건을 세게 쥐어 잡았다. 그리고선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여전히 장롱만 집착하고 있는 좀비를 향해 그 총구를 겨누었다. 망설임 없이 당겨진 방아쇠, 거대한 총성과 함께 좀비의 머리는 터져버렸고 순식간에 머리통이 사라진 좀비는 허우적거리다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아이보리색의 벽지와 옅은 브라운 계통의 장롱은 금세 붉은색으로 뒤덮여 끔찍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그는 터벅터벅 장롱을 향해 걸어가더니 쓰러져 있는 좀비의 시체를 발로 몇 번 툭툭 차고서는 저 멀리 밀어내었다. 그리고선 주먹으로 장롱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 쾅쾅쾅! '
" 나와. "
' ……. '
" 밖에 있던 좀비 갔으니까 나오시라고. "
' ……. '
몇 번의 두드림 끝에 장농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 숨어있던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 정말, 정말인가요? "
안녕하세요, 내일이란 미래입니다.
분명 빨리 올린다고 했는데 연말에 찾아오는 친척들을 피할 수는 없더 군요...ㅎ 기다리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한 마음에 늦은 새벽이라도 급하게 올리고 튑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문맥이 안 맞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다면 날이 밝고 수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너무 피곤해요 ㅠㅠ)